기픈옹달

장자열전

사마천은 <사기열전>에 당대의 여러 철학자들의 생애를 기록해두었습니다. 비록 짧지만 장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 역시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된 글은 아닙니다. <노자한비열전>에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노자한비열전>은 노자와 장자, 한비자와 신불해를 함께 기록해 둔 글이어서 <노장신한열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장자에 대한 기록만을 발췌하여 전문을 옮겨두었습니다.
장자는 몽蒙 지역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장주는 한때 몽 지역의 옻나무 동산의 관리였다.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학문은 두루 여러 방면을 다루었으나 핵심은 노자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렇게 십여 만 자의 글을 남겼는데 대체로 우화이다. <어부>, <도척>, <거협>편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학술을 주장했다. <외루허>, <항상자> 따위는 모두 사실과 무관한 헛소리이다.
그는 글과 이야기를 지어 세상일을 논하는 것을 잘하였다. 이를 가지고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다. 당시 빼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제멋대로여서 제후나 대부에게 등용될 수 없었다.
초위왕이 장주가 빼어난 인물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과 많은 재물을 보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장주가 웃으며 초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귀한 재물을 가져왔고, 높은 재상 자리를 제안하는 구려. 헌데 교제郊祭에 바치는 희생 소를 보지 못했소? 여러 해 동안 잘 먹이고, 비단옷을 입혀서 태묘로 끌고 갑니다. 그때 혼자 나뒹구는 돼지를 바란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나를 더럽히지 말고 썩 꺼지시오. 나는 이 지저분한 곳에서 멋대로 즐기며 살지언정, 나라를 가진 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겠소.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