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픈옹달

장자잡설

장자번역에 대한 이런저런 내용을 정리해두는 곳입니다.
齊諧者,志怪者也。諧之言曰:「鵬之徙於南冥也,水擊三千里,摶扶搖而上者九萬里,去以六月息者也。」野馬也,塵埃也,生物之以息相吹也。天之蒼蒼,其正色邪?其遠而無所至極邪?其視下也亦若是,則已矣。
안병주•전호근 역 제해라고 하는 사람은 괴이한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제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 옮겨 갈 때에는 <그 큰 날개로> 바다의 수면을 3천 리나 치고서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여기 북쪽 바다 상공을 떠나서 6개월을 계속 난 뒤에 비로소 한 번 크게 숨을 내쉬는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아지랑이와 티끌은 <천지 사이의> 살아 있는 생물들이 입김을 서로 내뿜는 데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그 본래의 제 빛깔인가. 아니면 끝없이 멀고 멀기 때문일까. 붕이 <9만 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에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김갑수 역 <제해>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다, <제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붕새가 남쪽의 컴컴한 바다로 옮겨갈 때 물보라가 삼천 리 밖까지 솟구친다. 그 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9만 리 상공까지 올라 가고, 여섯 달 만에 한번 쉰다.” 아지랑이라든가 먼지라든가 하는 것들은 살아 있는 것들이 숨을 쉬면서 서로 내뿜는 것이다. 하늘이 짙푸른 것은 그것의 본래의 색깔일까. 아니면 끝없이 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그쪽에서 이 아래를 내려다 볼 때도 역시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앵거스 그레이엄 역 (김경희 역)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諧)>에서 전하는 말로는, “붕은 남쪽 넓은 바다를 향해 가려고 할 때, 수면을 내려쳐서 물결을 일으키는데 그 물결의 파문이 장장 삼천 리까지 퍼져나가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나선형을 그리며 상승하는데 그 높이가 장장 구만 리에 달하며, 육 개월을 가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고 한다.(<제나라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제해齊諧)>은 경이로운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하늘에 감도는 푸른빛은 하늘의 본래 색깔일까? 아니면 우리가 끝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붕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이 위로 올려다보이는 것과 똑같아져야(아지랑이, 모래폭풍, 생물들이 서로에게 내뿜는 숨처럼 보여야) 비로소 더 높이 올라가기를 멈춘다. : ‘齊諧者,志怪者也。’ , ‘野馬也,塵埃也,生物之以息相吹也。’ 이 두 구절을 나중에 추가한 부분이거나, 후대 편집자의 주석이 끼어든 것으로 보고 순서를 바꾸고 괄호에 넣어 옮겼다. : ‘則已矣’를 ‘그친다’고 옮겼다.
<장자>에서 ‘息’의 쓰임 - 그치다 혹은 숨쉬다는 뜻으로 두루 사용되고 있음 아래는 <내편>에서 찾아본 내용
소요유 : 去以六月息者也。
소요유 : 生物之以息相吹也
소요유 : 日月出矣,而爝火不息
인간세 : 獸死不擇音,氣息茀然
대종사 : 古之真人,其寢不夢,其覺無憂,其食不甘,其息深深。真人之息以踵,眾人之息以喉。
대종사 : 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
대종사 : 日月得之,終古不息;
대종사 : 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
응제왕 : 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
<장자>에서 ‘已’의 쓰임
소요유 : 其視下也亦若是,則已矣。
소요유 : 湯之問棘也是已。
소요유 : 子治天下,天下既已治也。
제물론 : 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
제물론 : 已乎已乎!
제물론 : 可行已信,而不見其形
제물론 : 因是已。已而不知其然,謂之道。
제물론 : 今我則已有謂矣,
제물론 : 既已為一矣,且得有言乎?既已謂之一矣,且得無言乎? … 無適焉,因是已。
양생주 : 以有涯隨无涯,殆已;已而為知者,殆而已矣。
양생주 : 動刀甚微,謋然已解,如土委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