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대학의 그리스도인과 학문의 자유 문제…

결국 이번 문제의 발단은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비단 모교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질문해봅니다.

면죄부 발부와 같은 교권의 전횡으로 유럽에서 저항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저항운동은 유럽을 휩쓸고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 저항운동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소수 사제가 독점한 성서 해석의 권위를 빼앗았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선물, 이성에 따라 성서를 읽고 풀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저항 정신은 잠든 유럽을 깨웠습니다. 새로운 교회의 탄생은 근대정신의 출현과도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습니다. 낡은 교권에 대한 저항은 학문의 자유를 낳는 토대가 되었고 유럽 근대 학문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대학은 바로 이 저항정신, 학문의 자유를 펼치는 공간이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선교사들은 대학을 세웠습니다. 이곳은 근대 학문을 전하는 곳인 동시에 자유 그 자체를 탐구하는 곳이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모 대학의 표어는 자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보여줍니다. 저항은 곧 자유를 의미했으며, 제국주의와 군부독재 나아가 삶을 얽매는 다양한 문제에 눈을 돌리게 만듭니다. 한동대에서도 이 자유의 문제는 늘 숙고해야 할 주제입니다. 혐오와 폭력, 배제와 처벌을 외치는 율법주의자들의 얼굴 앞에 저항과 자유를 고민해야 합니다. 개교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이 문제는 한시도 비껴간 적이 없습니다.

성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죄하는 자들의 폭력과 혐오에 저항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예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성찰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당시 로마 제국과 다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율법주의자들의 전횡과 대결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혐오와 차별 대신 자유와 평등을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고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숙제입니다.

저는 이번 김대욱 목사의 해임 결정을 단지 총장 및 보직 교수의 전횡 혹은 일부 구성원의 종교적 감수성의 차이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대학으로서 한동대학교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고 탐구할 수 있는 곳이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와 닿아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의 자유라는 대학 본연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고민케 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학교 당국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논외의 문제이지만 최근 이슈가 된 언론정보문화학부의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이라는 연극은 기독교 대학이기에 가능한 실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 교회였다면 이런 주제를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일반 대학이었다면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까요? 총장 및 보직 교수, 혐오와 배제의 감정에 휩싸인 율법주의자들의 결정에 순응해야 할까요? 반대로 대학 본연의 주제, 학문의 자유에 따라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 이 문제를 판단하고 나아가 무엇이 우리 사회의 자유를 위한 방향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불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길인지를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는 한동대가 ‘기독교’ 대학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그 기독교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묻고 싶습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교권에 대한 저항, 평등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떼어놓고 기독교를 이야기할 수 있나요? 여러분은 입학할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왔나요? 저 옛날 아브라함이 들었던, ‘네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처럼 설렘을 품고 발을 내딛지 않았는지요? 그 설렘은 모교회와는 다른 또 다른 무엇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는지요? 학문적 자유의 요람,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찰의 현장으로 모교를 선택하지 않았는지요. 그리스도인을 강령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잃기는 얼마나 쉬운지요. 학문의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저항이 빠진 한동대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저의 모교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이번 문제에서 모교의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구,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해수와 담수가 교차하는 곳은 다양한 어종이 풍부하다 합니다. 기독교 – 대학은 상반된 요소를 합쳐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또 다른 실험의 장일 수 있습니다. ‘한동대’, 졸업한 이상 따라다닐 표찰이 아닌가요? 그 이름에서 저마다 고민을 짊어진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바랍니다.

#다른생각 #하고픈말은 #이게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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