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주일부터 논어강독을 시작했다. 첫 시간이라 논어 서설을 조금 읽었을 뿐.
이렇게 정리해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올릴까한다. 대부분이 성백효 선생의 해석을 참고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말 되는 해석을 위한다는 생각이다. 계속해서 나중에 논어를 다시 읽으면 새로 수정할 수도 있다. 여튼 우선은 서설 일부를 옮겨놓는다.
史記世家曰 孔子名丘字仲尼
: [사기 세가]에 이르기를 공자의 이름은 ‘구’이고 자는 중니이다.
其先宋人 父叔梁紇 母顔氏
: 그 조상은 송나라 사람으로 아버지는 숙량흘이었고 어머니는 안씨였다.
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 十一月庚子 生孔子於魯昌平鄕鄹邑
: 노나라 양공 22년,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공자를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낳았다.
爲兒嬉戱 常陳俎豆 設禮容
: (공자는) 여려서 항상 제사 도구를 늘어놓고 예를 행하는 시늉을 했다.
及長爲委吏 料量平 爲司職吏 畜番息
: 장성하여서는 창고관리자가 되어서는 회계를 공평하게 하였다. 축산담당자가 되어서는 가축이 번식하였다.
適周 問禮於老子 旣反而弟子益進
: 주周 나라에가서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돌아오자 제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昭公二十五年甲申 孔子年三十五 而昭公奔齊魯亂
: 소공 25년, 갑신년, 공자 나이 35세에 소공이 제나라로 도망처 노나라가 어지러워졌다.
於是 適齊 爲高昭子家臣 以通乎景公
: 이에 (공자는) 제나라로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경공을 만났다.
公欲封以尼谿之田 晏嬰不可 公惑之 孔子遂行 反乎魯
: 공이 계의 땅을 공자에게 봉해주려 하자 안영이 반대하였다. 공이 의혹을 품자 공자는 (제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갔다.
定公元年壬辰 孔子年四十三 而季氏强僭 其臣陽虎作亂專政
: 정공 원년, 임진년, 공자 나이 43세에 계씨가 강하여 참람하자 그 신하인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권을 독점하였다.
故 孔子不仕 而退修詩書禮樂 弟子彌衆
: 이에 공자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서예악을 닦으니 제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何氏曰 魯論語 二十篇 齊論語 別有問王知道 凡二十二篇 其二十篇中章句頗多於魯論
: 하씨(하안)이 말하기를 노나라 논어는 20편이다. 제나라 논어는 따로 문왕, 지도라는 편이 이씅니 모두 22편이다. 그 20편의 장구도 노나라 논어보다 상당히 많다.
古論 出孔氏壁中 分堯曰下章子張問 以爲一篇 有兩子張 凡二十一篇 編次不與齊魯論同
: 고론은 공자의 집 벽에서 나왔다. 요왈 아랫장의 자장문을 하나의 편으로 만들어 두 개의 자장편이 있으니 모두 21편이다. 편차는 제나라, 노나라 논어와 같지 않다.
程子曰 論語之書 成於有子曾子之門人 故其書獨二子以子稱
: 정자가 말하였다. 논어라는 책은 유자와 증자의 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그 책에서는 오직 유자와 증자만을 子라고 칭하였다.
程子曰 讀論語 有讀了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 정자가 말하였다. 논어를 읽는 데는 읽고 나서 전혀 아무 일이 없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그 마음(中)에 한 두 구절을 얻어 기뻐하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알고 좋아하는 자도 있으며, 읽은 뒤에 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이 춤추고 발이 뛰노는 자도 있다.
程子曰 頤自十七八 讀論語 當時已曉文義 讀之愈久 但覺意味深長
: 정자가 말하였다. 나(頤, 정이)는 열일곱 여덟부터 논어를 읽었다. 그 때에 이미 글의 뜻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읽기를 더욱 오래하자 다만 의미가 더욱 깊어짐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