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내게는 골목이 변한다는 말이 맞다. 굴러굴러 우연히 들어온 해방촌에 산 지 10년이 되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옛 이야기를 주절 거릴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망각이란 역시나 힘이 세어, 대체 저 곳이 무엇하는 곳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골목이란 기억되기 보다 변화로 덧칠되기를 욕망하는 곳이어서 그런가?

요즘은 점심을 먹고 동네 산책하는 것이 일이다. 바람도 쇠고, 햇볕도 맞으며 어디 어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빼꼼히 지켜본다. 오늘은 좀 크게 한 바퀴 돌았는데, 며칠 새 또 변화가 있다. 오거리에서 보성여중고 방향으로 커다란 가게 셋이 문을 닫았다. 언제 무엇으로 바뀔지 모르니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남산 도서관 쪽으로 걷는데, 이번에도 공사 소리가 시끄럽다. 종종 들리던 카페 2층에 크게 공사가 한창이다. 골목 쪽으로 벽을 다 드러낸 것을 보니 아마도 커다랗게 창문을 내지 않을지. 가수 정엽이 열었다는 레스토랑, 그래서 후암동 정엽길이라 이름붙인 그곳엔 한층 발빠른 변화가 보인다. 몇 걸음 더 가니, 건물을 통째로 공사하고 있다. 뭐 또 레스토랑 하나가 생기겠지.

신흥시장에 들어오니, 문 닫은 가게 앞에 붙여놓은 광고가 눈에 띈다. ‘세 놓습니다. 대박부동산’ 늘 컴컴하고 상권은 다 죽었다던 시장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아마 ‘신흥시장’이라는 말도 기억 저편으로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지.

문득 시장 구석에 ‘필요하신분 가져가세요’라는 글귀가 보인다. 그릇들이 내놓여 있다. 뒤척거리니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가져가시려고 챙겨둔 것을 건드리는 것은 아닌가 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니 물건을 내놓으셨단다. 훑어보니 쓰던 물건도 있지만 새 물건도 적지 않다. 접시 몇개와 쟁반 등을 챙겨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간판이 보인다. ‘평남상회’. 여쭤보니 50년이 되었단다. 월남하신 분이다. 고향은 이북. 여쭤보니 역시나 장사를 정리하려고 물건을 내놓았단다. 내 나이가 90인데 장사도 접어야지라지 라며. 여기도 뭐가 들어오나보죠? 모르지, 산 사람이 뭐라도 하겠지.

여기도 건물이 팔렸다. 긴 이야기를 하는 게 실례인가 싶어 길게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모퉁이를 돌아보니 지난 여름 고춧가루를 샀던 집이다. 그 옆도 정리 되었고, 그 옆도 텅 비었다. 그리고 그 옆은 시장엔 도통 어울리지 않는 고급진 무슨 의상 디자인실이 있다.

돌아보니 평남상회는 노홍철의 철든책방 바로 코앞이다. 오가는 사람도 늘었을테고, 앞으로도 책방을 들리며 오가는 사람도 많을 텐데 지난 수 년간 파리만 날리던 시장이 좀 활기를 띄지 않을까? 평남상회 자리를 산 사람은 시장에서 무슨 장사를 하려는 걸까? 아니, 시장에 어울리는 건 아닐 것이다. 앞으로의 일이야 모를 일이지만 신흥시장의 미래는 더 이상 ‘시장’은 아닐 테다. 피맛골에서 ‘피마’를 찾을 수 없듯, 해방촌에서 ‘해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날도 곧 올테지.

 

9월 19일

잠깐 책방에 다녀오는 길에 바로 책방 너머 수산물 가게를 철거하는 모습을 보았다.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그냥 집에 있었으면 텅빈 공간만 보았겠지.

아들은 푸딩을 만들겠다며 두부를 사야 한단다. 대체 두부로 어떻게 푸딩을 만드는지 모르겠으나, 두부와 요플레로 어찌저찌 만들면 된단다.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내 삶이 푸딩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끔하고, 예쁘고, 그럴싸 하나 사실 망가지기 쉬운. 그리고 일단 망가지면 복구하기 힘든. 그런 위태로운 삶.

요 근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동네의 발빠른 변화다. 노홍철이 책방을 열었고, (그것도 우리 책방 바로 옆에!!!!) 그 탓인지 주말에 오가는 사람이 늘었다. 좁은 골목에서 보기 힘든 명품 차의 등장도 늘었고, 더불어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그 시끄러움 중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보다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더 크다. 무엇인가 부수는 소리, 벽을 갉아대는 드릴의 소음. 5월부터 노홍철의 책방이 열린다고 매일 소음을 들으며 지냈다. 지척이라 벽을 부수고, 천정을 뚫고, 창문을 새로 내달고 하는 모습을 다 보았다.

며칠 사이에 부수는 소리가 많다. 벌써 지난 달, 동네 죽집(본죽이었으나..)이 사라졌고, 잘 가진 않았으나 나란히 제 몫을 가지고 있던 청과물 가게와 슈퍼가 문을 닫았다. 물어보니 건물 주인이 바뀌었단다. 작년에 페인트칠 한 벽에 새로 흰색으로 쓸모 없이 칠한다 했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수산물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동네 사람이었는데, 오가며 얼굴을 익히고 대충 어디 사는지도 아는 분이다. 생선을 즐겨 먹지 않았으나, 오가며 구경도 하고, 연구실 밥상에 고등어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제 생선은 어디서 사나.

사실 이 고민보다, 더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것은 스멀스멀, 이 동네에 살 자리를 잃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올해로 10년 째. 이제 내 동네라는 마음이 드는가 싶은데, 뭔가에 내쫓기는 기분이다. 누추한 삶과 어울리는 누추한 동네였는데 이제 그 자리를 상업 자본이 긁어 먹고 있다.

집 값이 오르고, 가게 세가 오르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문득 언제부터인가 서울에 살아야 하나 아니면 서울을 떠나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헬 조선의 뜨거운 지옥불 심장부에서 살아가는 게 정녕 옳은 짓인지. 그렇다고 연고도 없고, 기반도 없이 지방으로 훌쩍 뜨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라도 있어야 기틀을 잡을 텐데. 가진 것 없이 비빌 수 있는 게 그나마 사람들인데…

문득 철거하는 모습이라도 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하긴 만들고 꾸미고 꾸려가는 데는 한참 시간이 들지만 없애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사라지는 것, 내쫓기는 것이 자명한 미래라 하더라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지. 이런 의지 따위도 어쩌면 우울함에 먹혀버릴지 모를 일이지만.

배운다는 것

* 8월 27일 온지곤지 열린서당에서..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멀리서 함께 공부하는 이가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기분나빠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論語: 학이學而>

논어와 공자

정말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 있습니다. 이 괴물은 어찌나 식성이 좋은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줄 모릅니다. 이 괴물은 사람을 집어 삼키는 것은 물론, 나라를 집어 삼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의 기억도, 좋은 추억까지도 먹어치우지요. 가끔은 커다란 입으로 다 집어 삼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은 봐 주는 일이 없습니다. 커다란 이빨로 콱 물고는 절대로 놓아주는 법이 없지요. 집요한데다 교활하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 괴물의 커다란 입에서 도망쳐도 소용없습니다. 잠깐 한눈을 팔면 여지없이 이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수밖에요.

대체 이 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이 괴물의 이름은 ‘시간’이랍니다. 이 괴물 – 시간의 커다란 배에도 이름이 붙었답니다. 바로 ‘망각忘却’, 우리 말로 옮기면 잊어버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이 시간이라는 괴물에게 무엇인가를 빼앗겨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이라는 놈은 빼앗아버린 것을 절대 돌려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날카로운 이빨과 커다란 입을 가진 이 괴물도 집어 삼키지 못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는 책도 있습니다. 수십, 수백 년도 아닌 수천년을 살아남은 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에게 먹혀버리지 않은 책을 우리는 ‘고전古典’이라 부릅니다. 오래되었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책이 고전입니다. 이 고전이라는 책은 너무도 단단하고 커서 시간의 날카로운 이빨도, 그 커다란 입도 소용없습니다.

세상에는 고전이라는 책이 많습니다. 그 중에 제가 소개할 책은 바로 <논어>라는 책입니다. <논어>는 무려 2천 살이 넘은 책입니다. 저 먼 옛날 노나라의 공자라는 사람과 그의 제자들이 나누었던 말을 기록한 책입니다. 대체 이 책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시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하려는 이야기도 <논어>라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유익한 내용 가운데 하나랍니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책이, 글이, 글자가 태어난 것이 이 시간과 싸우기 위해서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적고 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논어>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공자라는 사람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공자孔子는 <논어>의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이거든요. 공자가 없었다면 <논어>는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자가 <논어>를 쓴 사람은 아니랍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쓴 글이 하나도 없답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한참 후에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억해서 만든 책이 <논어>랍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이 매우 귀한 나머지 책으로 만들어 훗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까닭이지요.

공자는 제자들에게 많은 부분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논어>도 꽤 두꺼운 책이 되었어요. 약 500개 문장 정도가 되니 짧은 책은 아닌게 분명합니다. 이 많은 문장 중에서 우리는 첫번째 문장을 함께 읽으려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문장이라니 무척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자들이 책을 만들면서 맨 처음에 놓았으니 분명 중요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배움(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어떤 글자보다 이 ‘학學’이라는 글자는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깝게 있지요. 특히 여러분에게 그럴거에요. 여러분은 대부분 ‘학교學校’에 다니는 ‘학생學生’이겠지요. 한편 다양한 이름의 ‘학습學習’을 경험하고 있을 겁니다.

이처럼 ‘학’이라는 말을 널리 쓰이게 만든 사람이 바로 공자랍니다. 왜냐하면 공자는 그 무엇보다 배움을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공부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대해, 배움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전한 사람이랍니다. 저도 어찌보면 공자의 제자로 여러분에게 공자 선생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이런 공자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드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공부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요.

 

배움은 기쁜 것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배움은 기쁜 일이다.’ 정말 그런가요? 저는 공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일이지요. 그런데도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답니다. 사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을 소개하는 것은 이것이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말을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번 읽으면서 이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보았습니다.

다행히 저보다 먼저 <논어>를 읽고 골똘히 생각한 사람 덕분에 그 비밀을 풀 수 있었습니다. 주희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배움-학學’이란 ‘본받음-效’이라고 합니다. 어떤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하긴 우리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따라 해보면서 배웠지요. 걸음도, 말도 모두 부모님의 행동을 따라 익혔습니다.

방금 익힌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한자로 옮기면 ‘습習’이됩니다. <논어> 첫 문장에서는 이 둘, 배움과 익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이것을 줄인 말이 바로 ‘학습學習’입니다.

‘습習’이라는 글자를 잘 보면 여기에는 새의 날개(羽)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익힘-習’이란 새가 날개짓을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새는 참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좁은 알을 깨고 나와 좁은 둥지에서 한참을 지냅니다. 어린 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빼고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먹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둥지에 갇혀 있던 새가 조금 자라나면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린새에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날개짓을 반복한 뒤에야 하늘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새들은 날기 위해 어미새의 날개짓을 따라하곤 합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 꽤 시간을 들여야하지요. ‘시습時習’이란 그렇게 오래 시간을 들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난 새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좁은 둥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기만 하던 새가 높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이전 둥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겠지요. 아마 훨씬 멋지고 신나는 경험일 것입니다. 높이 하늘을 나는 새는 결코 둥지 속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테지요.

이런 새로운 경험, 세상을 다르게 느끼는 것을 공자는 ‘기쁨’이라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한 시간이라는 괴물 때문에 잊어버렸겠지만 처음 말을 할 수 있게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기어다니다가 걸음마를 떼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아마 무척이나 기쁘지 않았을까요? 배움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배움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어린새처럼 이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꽤 힘들기도 하지요. 처음부터 두 발로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 것으로 만들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걸음걸이를 까먹는 사람이 있을까요? 따라서 배움이란 ‘기억하기’와는 다릅니다. 기억해놓은 것은 언젠가는 잊어버리지만 배운 것, 내 것으로 익힌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지요.

옛 서당에서는 소리내어 책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계속 반복해서. 마치 새가 날개짓을 배우듯, 우리가 처음 말을 배우듯 그렇게 글을 내 것으로 익히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기억 – 머리에 저장해두는 것보다는 몸에 저장해 두는 것이 더 오래갑니다. 머리보다는 몸이 시간의 공격에 더 강하거든요.

‘암송暗誦’ 보지 않고 외는 것이란 바로 이렇게 몸으로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저장해두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번 성실히 반복해야 해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내 귀에 들리도록 정확하게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사실 이 방법은 꽤 오래된 것이랍니다. 지금처럼 책이 많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소리내어 책을 읽고 익혔어요.

 

함께 그러나 혼자

신기하게도 사람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일을 더 잘합니다. 혼자서는 잘 안 되던 일도 여럿이 하면 거뜬히 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소리내어 읽으며 글을 익히는 공부가 그렇답니다. 혼자 방에서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금방 지칩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함께 목소리를 내어 글을 읽으면 쉽게 익힙니다.

공자는 혼자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논어>를 읽으면 다양한 곳에서 몰려든 여러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찾아온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멀리서도 찾아와서 함께 공부하니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혼자서는, 적은 수로는 벅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훌륭하기는 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중에는 공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설령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지요.

하나 덧붙이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꽤 어지러운 시대였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공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더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책을 읽으면 어지러운 시대를 홍수가 일어나거나 폭풍이 불어닥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물이나 바람에 휩쓸려 가듯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앞서 시간을 괴물이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시간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하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시간을 선물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훨훨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홍수가 일어나고 폭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이 아니 뮐새, 꽃 좋고 여름 하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칠새, 내가 되어 바다로 가느니
– 용비어천가

<장자> 읽기에 대해…

나는 <장자>를 사랑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는 식으로 <장자>를 독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존재를 그대로 긍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좋아 보이나, 거꾸로 기울어진 세계에서 그것은 지독하게 무력한 순응일 뿐이다.

그렇다고 <장자>에서 어떤 ‘저항정신’ 따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도리어 그에게는 세상을 비뚤게 보고 싶어하는 기괴함이 넘치며, 한편으로는 구만리 창공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웅대한 정신을 갖추고 있다.

자연속에 내버려둠, ‘자임自任’과 같은 표현은 곽상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인데 주석을 꼼꼼하게 읽으면 그 한계가 자명하게 나타난다. 곽상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현상태의 구조적 모순, 혹은 권력관계의 비대칭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것이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의 세심한 작동을 주저하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그 결과는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군왕과 민초의 삶이 어찌 같단 말인가!? 만물제동이란 참 부질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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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쩌허우 <중국고대사상사론>, 394쪽:

곽상 스스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가 전체적으로 장자를 다시 새롭게 해석한 목표는 바로 ‘내성외왕의 도를 밝히는 것’에 있다. 그리고 내성(이상적 인격)과 외왕(사회정치적 통치질서)을 통일하려는 것으로, 곽상은 정치상에서 군주가 있으면 비록 해로움이 있을지 모르나 군주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사회 질서에서 곽상은 ‘존비유별’을 인정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것이 군주이고 신하인지, 높은 사람이고 낮은 사람인지, 그리고 어느 것이 손이고 발인지, 안인지 바깥인지 아는데, 이것이 바로 천리자연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전통유가의 윤리규범이 바로 장자의 자연지도自然之道라는 것이다. 특히 이상적 인격에 대해 그가 해석한 <소요유>가 가장 전형적이다. 곽상은 장자가 말한 대붕과 작은 새의 우언에서는 매우 높고 멀리 날아가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반대로 장자가 말하는 대붕과 작은 새가 나는 것이 달라서 멀리 날 수도 있고 가까이 날 수도 있지만 똑같이 소요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우열을 나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작은 것과 큰 것은 비록 다르지만 스스로 얻는 상태에 이르면, 사물은 그 본성에 맡겨두고 하는 일을 그 능력에 맡게 하여 각각 주어진 바를 밭게하면 소요라는 것은 같은 것이다. 어찌 그 사이에 우월함과 열등함의 차이가 있음을 용납하겠는가?’

장자 철학이 본래 가지고 있던 ‘때를 따라서 세상에 대응하는’, ‘꼬리를 진흙 속에서 끌다’, ‘재목과 재목이 되지 못하는 것 사이에 처하다’는 것과 연결해 보면 이른바 이상적 인격이라는 것은 다만 세속에 복종하고 환경에 순응하는 것일 뿐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서문

漢中壘校尉劉向言 魯論語二十篇 皆孔子弟子記諸善言也 大子大傅夏侯勝 前將軍蕭望之 丞相韋賢及子玄成等傳之

한나라 중루교위中壘校尉 유항劉向은 이렇게 말했다. “<노나라 논어(魯論語)>는 20편으로 모두 공자 제자가 기록한 훌륭한 말이었다. 태자태전大子大傅 하후승夏侯勝, 전장군前將軍 소망지蕭望之, 승상丞相 위현韋賢과 그의 아들 현성玄成 등이 전하였다.

齊論語二十二篇 其二十篇中 章句頗多於魯論 琅邪王卿及膠東庸生 昌邑中尉王吉 皆以敎授

<제나라 논어(齊論語)>는 22편이었는데, 노나라 논어와 일치하는 20편도 내용이 훨씬 많았다. 낭야琅邪 사람 왕경王卿과 교동 사람 숙생庸生, 창읍중위昌邑中尉 왕길王吉은 모두 <제나라 논어>를 가르쳤다.”

故有魯論 有齊論

따라서 <노나라 논어>가 있었고, <제나라 논어>가 있었다.

魯共王時 嘗欲以孔子宅爲宮壞 得古文論語

魯共王노공왕 때에 공자의 집을 궁궐로 삼으려고 허물었다가 <옛 글로 된 논어(古文論語)>를 발견했다.

齊論有問王知道 多於魯論二篇 古論亦無此二篇 分堯曰下章子張問以爲一篇 有兩子張 凡二十一篇 篇次不與齊魯論同

<제나라 논어>에는 ‘문왕問王’과 ‘지도知道’가 있어서 <노나라 논어>보다 2편이 많았다. <옛 글로 된 논어>에는 이 두 편이 없었다. 대신 ‘요왈堯曰 편’의 ‘자장문子張問’ 이후를 나누어 따로 한 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두 개의 ‘자장子張’ 편이 있어 모두 21편이었다. 편의 순서도 <제나라 논어>나 <노나라 논어>와 같지 않았다.

安昌侯張禹本受魯論 兼講齊說 善者從之 號曰張侯論 爲世所貴 包氏周氏章句出焉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는 본래 <노나라 논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제나라 논어>의 내용을 함께 익혔다. 그 가운데 훌륭한 부분을 뽑아 엮어 <장후의 논어(張侯論)>라 불렀으니  사람들이 훌륭하게 여겼다. 포씨包氏와 주씨周氏가 문장을 나누고 풀이를 붙였다. 1

古論唯博士孔安國爲之訓解 而世不傳 至順帝時 南郡大守馬融 亦爲之訓說

<옛 글로 된 논어>는 오직 박사博士 공안국孔安國이 풀이를 붙였으나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순제順帝 시기에 이르러 만군태수南郡大守 마융馬融이 또한 여기에 풀이를 붙였다.

漢末에 大司農鄭玄就魯論篇章 考之齊古 爲之註

한나라 말, 대사농大司農 정현鄭玄은 <노나라 논어> 구성을 따라 <제나라 논어>와 <옛 글로 된 논어>를 참고하여 주석을 붙였다.

近故 司空陳群 太常王肅 博士周生烈 皆爲義說疏

최근 사공司空 진군陳群, 태상太常 왕숙王肅, 박사博士 주생렬周生烈이 모두 <논어의설소論語義說疏>를 지었다.

前世傳授師說 雖有異同 不爲訓解 中間爲之訓解 至于今多矣 所見不同 互有得失

예전에는 스승의 뜻을 전하는데 비록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따로 풀이를 붙여 책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풀이를 붙여 책을 만들게 되어 지금에는 그 수가 많아졌다. 관점이 서로 다르지만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今集諸家之善 記其姓名 有不安者 頗爲改易 名曰論語集解

지금 여러 학자들의 의견 가운데 훌륭한 점을 모아 그 이름을 기록하였다. 잘못된 부분은 크게 고쳤다. 이 책의 이름을 <논어집해論語集解>라 지었다.

光祿大夫關內侯臣孫邕 光祿大夫臣鄭沖 散騎常侍中領軍安鄕亭侯臣曹羲 侍中臣荀顗 尙書駙馬都尉關內侯臣何晏等上

광록대부光祿大夫 관내후關內侯 손옹孫邕, 광록대부光祿大夫 정충鄭沖, 산기상시散騎常侍 중령군中領軍 안향정후安鄕亭侯 조희曹羲, 시중侍中 순의荀顗, 상서尙書 부마도위駙馬都尉關 내후內侯 하안何晏 등 신하 올림.

 

《사기史記》 불후의 문장, 불굴의 삶 2강_ 충신도 씻겨가는 세상이라

1. 서막: 삼년을 울지 않는 새

<사기열전>의 여러 편 가운데 <오자서열전>은 이야깃 거리가 풍부하다.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로도 꽤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 인물과 얽힌 주변 인물과 사건까지 종합하면 거대서사를 이룬다. <오자서열전>은 오자서의 가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한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尚 其先曰伍舉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초장왕은 춘추오패春秋五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패霸란 강력한 무력으로 제후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된 인물을 가리킨다. 이는 반대로 주周 왕실의 권력이 보잘것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대 중국 역사를 보면, 주나라의 통치시기를 동주東周와 서주西周로 나누는데,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주나라 유왕幽王2에 얽힌 고사이다.

褒姒不好笑 幽王欲其笑萬方 故不笑 幽王為烽燧大鼓 有寇至則舉烽火 諸侯悉至 至而無寇 褒姒乃大笑 幽王說之 為數舉烽火 其後不信 諸侯益亦不至

후대의 기록에는 포사를 웃게 만드려고 애쓴 유왕의 다양한 고초가 전해진다. 이 웃지 않는 포사는 비단을 찢는 소리에 희미하게 웃곤했단다. 그 웃음을 보려고 유왕은 갖가지 방법을 쓰다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는 말씀. 미인의 웃음을 보기 위해 수시로 봉화를 올리던 유왕은 결국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죽고만다.

고대에 정말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경국지색傾國之色, 여인으로 나라의 국운이 좌우된다는 이야기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나라도 달기妲己의 말에 나라일을 팽개친 주왕紂王 시대에 멸망했지 않나. 그러나 주周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로 대치되지 않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는 것으로 그친다. 흔히 이렇게 주나라가 동쪽으로 천도한 이후를 ‘춘추시대’라 부른다.

다시 말해, 춘추시대란 주왕실을 중심으로한 봉건체제가 와해된 시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가운데는 주나라의 봉건제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있는 체제였는지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연 공자가 그토록 칭송했던 것처럼 안정된 체제였을까?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나라의 봉건 시스템이 실제건 상징이건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세번째 패자, 초장왕에 얽힌 이야기이다. 초장왕은 군주의 자리에 올라 삼년간 아무일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향락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그가 공표한 것이 이것이다. ‘有敢諫者死無赦’ 감히 간언하는자는 용서하지 않고 죽이겠다! 이때 왕의 명령을 어기고 초장왕을 찾아갔던 이가 오거伍舉, 즉 이야기의 주인공 오자서의 할아버지였다. 이 둘은 수수깨끼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伍舉入諫 莊王左抱鄭姬 右抱越女 坐鐘鼓之閒 伍舉曰 願有進隱 曰 有鳥在於阜 三年不蜚不鳴 是何鳥也 莊王曰 三年不蜚 蜚將沖天 三年不鳴 鳴將驚人 舉退矣 吾知之矣

삼년간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는 새, 그 새가 날지 않았던 이유는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일테다. 거꾸로 삼년이나 울지도 날지도 않았다면 그 새가 날아오를 때엔 그 새의 비상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초장왕이 자리에서 떨쳐 일어났을 때 수백명의 목을 베었고 수백명을 새로 발탁하여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고 한다. 수수깨끼 같은 말로 왕의 뜻을 물었던 오거가 높은 자리에 임명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이 삼년을 울지 않는 새의 고사는 위에 인용한 <초세가> 이외에 다른 부분에도 기록되어있다. <골계열전>에 실려 있는데 이번에는 주인공이 다르다. 순우곤과 제위왕이다. 아마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당대에 적지 않게 전승되었을 것이다. 사마천이 이런 이야기를 수집하여 기록한 것은 어째서일까?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 뜻,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구세력을 일소에 제거한 초장왕은 나라를 정비한 뒤 정벌에 나서 송나라를 치고 주나라에까지 이른다. <초세가>에는 초장왕과 주정왕周定王과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가 강력했다고 하나 이들의 대화를 보면 초나라도 주나라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본디 초나라는 양쯔강 주변에서 발흥한 나라로, 중원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사마천도 이들이 스스로 만이蠻夷, 오랑캐라고 일컬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我蠻夷也 不與中國之號謚’ 그래서 이들은 처음부터 왕王이라는 칭호를 썼다. 초장왕 이전의 패자, 제환공과 진문공晉文公은 모두 주周의 제후로 ‘공公’을 사용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다르게말하면 초나라의 부상은 본디 오랑캐의 나라로 여겨졌던 것이 중원의 나라로 편입되어 기술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디 다른 문화, 문명의 영역이 주周를 중심으로한 천하天下의 한 모퉁이로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마천의 <사기>야말로 ‘중국적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 최초의 텍스트라고 할수있다. 덧붙여 이야기하면 ‘중국2’이란 이처럼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순차적으로 팽장하였던 공간이었다. 하나의 단일한 공간이 아닌 다양한 것들이 유입되고 성장-팽장 하는 공간. 춘추전국 시대에 이미 초나라 지역은 중원의 세계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것은 한漢나라의 개국 공신들 가운데 대부분이 초나라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다루도록 하자.

춘추오패란 주왕실을 중심으로한 권력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이 일시적으로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문명세게 바깥에 있던 세력들까지 새롭게 중원에 편입하여 중원의 세계를 두고 다투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펑유란은 <중국철학사>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서술하며 중국 역사에 유래없는 자유로운 사상의 시대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다양한 힘들이 교차하고 뒤섞이는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2. 제1막: 사건의 시작

<오자서 열전>으로 돌아와, 당시 초나라의 임금은 평왕으로 그는 시작부터 당대의 임금 영왕을 죽이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러한 일은 초나라 조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초장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공왕共王과 손자 강왕康王이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그런데 이 장왕의 손자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강왕은 왕위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걸렸는데, 그의 동생 위圍가 이 소식을 듣고는 갓끈으로 형을 죽이고 그의 아들, 자신의 조카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영왕靈王. 그는 요역을 일삼아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의 동생 비比가 태자, 영왕의 아들을 죽이고 잠깐 왕위에 오르나 곧 실각하고 만다. 결국 막내였던 공자 기질棄疾이 형들을 모두 죽이고 왕위에 오르니 그가 평왕平王이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의 스승이었는데 당시 초나라 군주였던 평왕平王이 간신 비무기에 휘둘리는 바람에 목숨을 잃게 된다. 평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본래 태자의 아내로 삼으로 했던 진秦나라 여인의 미모였다. 그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태자의 아내로 삼으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이 일로 평왕은 태자 건建과의 사이가 틀어진다. 이후 평왕은 태자를 폐하고 이 진나라 여인의 아들을 새로 태자로 세운다.

형제들 간에 왕위를 두고 다투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군주가 아들과 군왕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 경우 선왕의 견제를 받는 첫째 아들이 화를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평왕은 실제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한다. 여기에는 태자의 세력 전체를 일소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태자 곁에서 그를 따랐던 오사가 그 척결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태자는 달아났으나 오사는 붙잡혔다. 후환을 두려워한 비무기는 이참에 그의 두 아들도 함께 죽이자고한다.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불러들이라고 하자 오사는 이렇게 말한다.

尚為人仁 呼必來 員為人剛戾忍訽 能成大事 彼見來之并禽 其勢必不來

상황을 보면 두 아들이 오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형 오상은 아버지를 위해 평왕에게 가고 그의 동생 오운,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며 도망친다. 여기서 흥미롭게 읽어야 할 것은 형 오상의 사람됨에 대한 평가이다. 오사는 오상의 사람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인하니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대체 인仁이라는 덕목과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초세가>에도 이 장면이 똑같이 보이는데 오사의 말이 더 자세하다.

尚之為人 廉死節慈孝而仁 聞召而免父 必至 不顧其死 胥之為人 智而好謀 勇而矜功 知來必死 必不來 然為楚國憂者必此子

<초세가>의 표현을 빌리면 ‘인’이란 청렴하며, 절개를 위해 죽을 수도 있고, 자애롭고 효성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 그는 사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초세가>에는 형 오상이 오자서에게 남기는 말이 남아 있는데 그 말은 이렇다.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데도 가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꾀(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을 헤아려 일을 맡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度能任事 知也) 나는 효를 따라 죽겠으니 너는 도망가 후일을 도모하라.

<초세가>에 나오는 오상은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좇는다. 아버지를 따라 죽으며 효를 추구하는 동시에, 동생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맡긴다. 이렇게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말처럼 둘의 성품과 능력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열전>에 기록된 형의 모습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가더라도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죽음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는 오자서의 항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여기에 덧붙이는 말, ‘아버지가 살기위해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고 나중에 이 치욕을 씻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한스럽다.(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 後不能雪恥 終為天下笑耳)’

<사기열전>은 의도적으로 오상의 선택을 소극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그러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오자서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을테다. 실제로 오자서에 얽힌 이야기는 <사기>이전의 기록에서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자서의 이야기에는 점차 살이 붙어 더 세세한 이야기의 구조를 갖는다. 예를 들어 <사기> 이후의 기록을 보면 이후에 오자서의 도망을 도와준 어부가 스스로 배를 뒤집어 목숨을 던지는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상상한 내용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오자서의 이야기는 그처럼 살을 붙여가며 전해 내려온 것일까? 그것은 복수를 완성하는 그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 나아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당대의 사람들은 물론 후대의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은 아닐까? 한편 그런 격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까닭에 형 오상의 선택은 덜 주목 받았을 것이다.

인仁하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효孝를 실천하겠다는 형 오상은 유가儒家를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논어>에서는 제자 재아의 말을 통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宰我問曰 仁者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의 질문은 이렇다. 인仁하다는 사람은 우물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속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속임수에 쉽게 속아넘어갈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도 쉽게 던지지 않겠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어떻게 그렇겠느냐며 우물 가까이 가도록할 수는 있으나 그를 우물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간단히 속일 수는 있으나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사마천은 재아와 공자가 주고받은 이 내용을 익히들어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간단히 인仁하다는 평가와 더불어 죽을 곳을 자처하여 가는 사람으로 오자서의 형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사마천의 시대, 한무제漢武帝의 통치기간에 유가가 얼마만큼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존에는 한무제 시기에 이르러 도가道家, 특히 황로학黃老學과의 싸움을 끝내고 유가가 본격적인 체제의 통치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 주였다.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 한무제가 제창했다는 이 말은 거꾸로 자유로운 학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다른 제자백가가 일소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점차 유가로 흡수되었고, 마찬가지로 유가가 체제의 이념으로 자리 잡는 데는 이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입장에 귀기울이는 편이며, 이러한 배경위에서 사마천의 선택과 입장을 상상해 본다. 자율적인 사상의 흐름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인물들을 직조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저항한 것은 아닐지.

오자서라는 인물을 보면 유가의 통념과는 거리가 꽤 멀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형과 달리 그는 효를 저버린 인물이다. 그뿐인가? 그는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이웃 나라로 투항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웃나라의 군대를 끌고 자신의 조국을 친 인물이다. 충효忠孝의 윤리에서 보자면 오자서는 극단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자서의 삶을 대체로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자서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르게 보자면 오자서야 말로 아버지의 복수를 이룸으로 효를 실천하였으며, 자신의 나라(吳)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 아닌가?

사족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마천은 어째서 이처럼 거대한 복수극 뒤에 <중니제자열전>을 놓았을까? 물론 공자는 앞 뒤로 언급되는 오자서와 상앙 사이에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제자들이 오자서와 상앙 사이에 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의 <노자한비>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열전의 인물을 기술하되 꼭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르게 배열할 수도 있었다는 말씀. 오자서를 통해 보여주는 폭풍같은 삶, 더불어 상앙을 통해 보여지는 진나라의 활발한 개혁. 그 사이에서 <중니제자열전>을 읽노라면 마치 쉼표처럼 느껴지는데, 여기에는 저자 사마천이 숨겨놓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를 두고 지나친 억측이라고 할수도 있으나, 사마천의 글, 특히 <열전>은 ‘욕망의 글쓰기’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그 실체를 보려면 드러나지 않은, 혹은 언뜻 제 모습을 보이는 사마천의 욕망을 새겨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읽는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일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것일테지만, 거꾸로 사마천은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시대의 실상, 사건의 사실을 묶은 게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음으로서의 시대의 본 모습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사기>가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나 시대의 모습을 엿보는 창구로서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테다. 그것도 여전히 ‘역사’라는 이름으로. 따라서 <사기>를 읽는다는 것은 거꾸로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3. 제2막: 번뜩이는 칼날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도망친 이후 여러 나라를 전전한다. 아버지 죽음의 단초가 되었던 태자 건을 모시는 몸이었으나 태자가 정鄭나라에서 반란을 도모하다 계획이 밝혀져 죽자 그는 오나라로 달아난다. 이때 강을 건너는데 어부가 그를 건네준다.

伍胥既渡 解其劍曰 此劍直百金 以與父 父曰 楚國之法 得伍胥者賜粟五萬石 爵執珪 豈徒百金劍邪 不受

옛글을 보면 강은 땅과 땅의 경계를 나누는 물리적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강은 숱한 이별을 낳는 공간이기도 하고(예: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로 상징되는 깨달음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했다.(此岸/彼岸) 그렇기에 어부는 비범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오자서를 건네준 어부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오자서가 풀어주는 백금의 값이 나가는 명검을 두고도 마다한다. 오자서의 목에 걸린 오만석의 곡식과 집규의 자리도 관심이 없었거늘 고작 백금의 검에 휘둘릴 일이 있을까. 이렇게 추격에서 도망치는 이 긴박한 상황 가운데 배 위에서 나눈 짧은 대화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는 이웃 오나라로 도망치는데, 이 오나라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대 왕 가운데 수몽이라는 이가 있었다. 참고로 오나라는 앞서 이야기한 태백의 후손으로 이야기되어 주나라의 왕실과 매우 가까운 친족이라지만 시호를 쓰지는 않았다. 이것은 태백의 전설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는 본디 오랑캐의 나라였기 때문일 것이다. 수몽의 아들이 넷 있었다. 제번諸樊, 여제餘祭, 여매餘眛, 계찰季札. 이 가운데 계찰이 가장 훌륭하여 수몽은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를 마다하고 농사를 짓자 첫째인 제번이 왕위를 물려받는다.

계찰은 고대의 현인으로 소개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데, <오태백세가>를 보면 그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읽을 수 있다. 노나라에가서 고대 음악을 들으며 이에 다양한 평가를 내놓는다던가, 진晉에 가서는 나라가 셋으로 나뉠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오태백세가>는 이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형제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한다. 제번을 이어, 여제, 여매까지. 그러나 계찰은 끝내 왕위를 물려받지 않는다. 이에 여매의 아들 요僚가 왕위를 이어받는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도착했을 때엔 요가 왕위에 막 올랐던 상황이었다. 그는 공자 광光에게 몸을 의탁한다. 공자 광은 제번의 아들로 요의 자리를 호시탐탐노리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야 말로 수몽의 맏손자로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사촌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오나라는 당시 초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자주 전쟁을 벌였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왔을 때에는 두 나라의 여인들이 뽕나무를 두고 다투는 바람에 양국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일도 있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의 힘을 빌어 초나라를 무너뜨리고자 하나 공자 광은 오자서가 사적인 원한으로 초나라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며 반대한다. 이때 오자서는 공자 광의 뜻이 전쟁터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전제專諸를 추천하고 후일을 기다린다.

전제가 오왕 요를 암살하자 광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廬다. 여기서 전제가 오왕 요를 암살하는 장면은 <오자서열전>은 물론 <오태백세가>와 <자객열전>에 걸쳐 자세히 묘사된다. 상황은 이렇다. 초나라와의 계속된 분쟁상황에서 오왕 요는 동생이자 심복인 공자 개여蓋餘와 촉용燭庸을 보내 초나라를 공격한다. 그리고 삼촌인 계찰을 진晉으로 보내 제후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왕의 주변 인물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 이때야 말로 반란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때이다.

吳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為吳王闔廬 闔廬既立 得志 乃召伍員以為行人 而與謀國事 <伍子胥列傳>

於是吳公子光曰 此時不可失也 告專諸曰 不索何獲 我真王嗣 當立 吾欲求之 季子雖至 不吾廢也 專諸曰 王僚可殺也 母老子弱 而兩公子將兵攻楚 楚絕其路 方今吳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是無柰我何 光曰 我身 子之身也 四月丙子 光伏甲士於窟室 而謁王僚飲 王僚使兵陳於道 自王宮至光之家 門階戶席 皆王僚之親也 人夾持鈹 公子光詳為足疾 入于窟室 使專諸置匕首於炙魚之中以進食 手匕首刺王僚 鈹交於匈 遂弒王僚 公子光竟代立為王 是為吳王闔廬 闔廬乃以專諸子為卿 <吳太伯世家>

於是公子光謂專諸曰 此時不可失 不求何獲 且光真王嗣 當立 季子雖來 不吾廢也 專諸曰 王僚可殺也 母老子弱 而兩弟將兵伐楚 楚絕其後 方今吳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是無如我何 公子光頓首曰 光之身 子之身也 四月丙子 光伏甲士於窟室中 而具酒請王僚 王僚使兵陳自宮至光之家 門戶階陛左右 皆王僚之親戚也 夾立侍 皆持長鈹 酒既酣 公子光詳為足疾 入窟室中 使專諸置匕首魚炙之腹中而進之 既至王前 專諸擘魚 因以匕首刺王僚 王僚立死 左右亦殺專諸 王人擾亂 公子光出其伏甲以攻王僚之徒 盡滅之 遂自立為王 是為闔閭 闔閭乃封專諸之子以為上卿 <刺客列傳>

이 셋을 모두 인용한 이유는 사마천이 동일한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다루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오자서열전>에서는 전제의 이야기를 매우 짧게 다루지만 <오태백세가>에서는 제법 자세히 다룬다. 그런가하면 <자객열전>, 전제와 같은 자객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묶은 편에서는 전제의 더 생동감있는 묘사로  읽는이를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는 당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야기를 사마천이 빼어난 글솜씨로 전해준 것이리라. 한 사람의 목숨이 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꿔치기 되는 순간. 이 찰나의 순간은 후대 사람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는지 화상석畵像石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공자 광에게 자객 전제를 소개시켜 주어서 그를 왕으로 만들었지만 오자서의 복수는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참고로 오왕 요가 죽기 바로 전 해, 오왕 12년 겨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오태백세가>에 실려 있다. “十二年冬 楚平王卒”

 

4. 제3막: 날은 저무나 갈 길이 멀다

합려는 왕위에 오른 뒤 나라를 정비하여 이웃 나라들과 전쟁을 벌인다. 특히 초나라를 쳐서 크게 이기는데 이는 오자서처럼 초나라에서 도망친 백비伯嚭와 싸움의 귀재 손무孫武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려 9년, 오자서의 입장에서는 평왕이 세상을 떠난 뒤 10년 째 되는 해에 비로소 초나라의 수도를 정벌하는 기회를 얻는다. 당시 초나라의 임금은 소왕昭王이었는데, 그는 평왕이 태자 건의 부인으로 삼겠다고 데려왔다 빼앗은 진나라 여인의 아들이었다.

오나라 군대는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러 수도인 영郢까지 쳐들어갔다. 그러나 소왕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오자서가 초나라 수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이미 죽어 뼈만 남은 평왕의 시체였다. 그는 평왕의 무덤을 파해쳐 300번이나 매질을 한다. 이를 두고 그의 옛 친구 신포서는 복수가 지나치다며 나무라는 말을 전한다. 이때 오자서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일모도원日莫途遠’ 날은 저무나 갈 길이 멀다.

흥미롭게도 사마천은 오자서의 이 잔혹한 복수에 앞서 일찍 도망친 소왕의 행적을 남겨놓는다. 소왕은 초나라를 달아나 운鄖이라는 소국에까지 이른다. 평왕은 주변 소국에도 악명을 떨쳤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운공鄖公의 아버지도 평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운공의 동생 회懷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平王殺我父 我殺其子 不亦可乎

<오자서열전>이 하나의 장엄한 복수극인 동시에 통속적인 복수로 귀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흥미롭게도 ‘아버지의 원수’를 처단하겠다는 동생 회의 성화에 운공은 소공을 데리고 나라를 도망친다. 이들은 수隨나라 땅으로 도망치는데 오나라 병사들은 수나라 사람들에게 초나라 사람의 악행을 들먹이며 소왕의 신변을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 악행이 지나쳤으니 그를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수나라 사람들은 소왕을 오나라에 넘기지 않는다. 점쳐보니 불길하다는 이유로.

隨人卜與王於吳 不吉 乃謝吳不與王

사마천이 이 장면을 굳이 집어 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역시 상대의 죽음으로 복수를 매듭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원수는 원수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이 당연한 법칙 앞에 복수는 종종 눈을 감는다. 복수가 허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원한은 격정을 낳고 그 격동하는 감정이 생을 추동하는 힘이되기도 하지만 대상을 죽여버리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고만다. 복수가 거대한 몰락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후대의 루쉰魯迅은 이 사실을 알았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복수>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사람의 살갗 두께가 반 푼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빨갛고 뜨거운 피가 그 밑, 담벼락 가득 겹겹으로 기어오르는 회화나무 자벌레 떼보다 더 빼곡한 핏줄들을 따라 달리면서, 다스한 열기를 흩는다. 그래, 저마다 이 다스한 열기에 현혹되고 선동되고 이끌리고, 죽자 사사 기댈 곳을 희구하면서, 입을 맞추고, 보듬는다. 그럼으로써, 생명의 무겁고 달콤한 큰 환희(大歡喜)를 얻는다.
그런데, 날 선 칼이 한번 치면, 복사꽃빛 얇은 살갗을 뚫고 빨갛고 뜨거운 피가 화살처럼, 모든 열기를, 살육자에게 쏟아부을 것이다. 그런 뒤, 얼음장 같은 숨결, 핏기 없는 입술로 넋을 흔들어, 살육자로 하여금, 생명 고양 극치의 큰 환희를 얻게 할 것이며, 스스로는, 생명 고양 극치의 크낙한 환희 속에, 영원히 잠길 것이다.
이리하여, 그러하기에, 그 두 사람은 온몸을 발가벗은 채 비수를 들고 광박한 광야에 마주 섰다.
그 둘은 보듬을 것이고, 죽일 것이다…….
– <들풀>, 루쉰 전집 3. 37쪽.

이 두 사람의 복수극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피의 생생한 맛’을 예감하면서. 그러나 복수자 둘은 광막한 광야에 그저 마주 서 있을 뿐이다. 비수를 든 채로. 루쉰은 이 둘이 노려보고 있는 생생한 장면을 ‘피가 없는 대살육’이라 칭하며 여기에서 ‘생명 고양 극치의 큰 환희에 한없이 잠겨든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절정의 순간, 날선 그 상태야 말로 삶의 본 모습이 가장 날카롭게 번뜩이는 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신포서에게 남긴 오자서의 말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子之報讎 其以甚乎 吾聞之 人眾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 伍子胥曰 為我謝申包胥曰 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과연 이때에 오자서는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어떤 미진함이 남은 채로 여전히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까. 아마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 평왕이 눈 앞에  살아 있거나 소왕을 붙잡았다면 서슴치 않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을까? 그러나 평왕은 이미 죽었고 소왕은 달아났다. 말 못하는 시체를 매질하며 그는 깊은 허망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일모도원日莫途遠’이란 십 수년 만에 복수를 거의 매듭지었으나(日莫) 그것으로 자신의 삶이 그치지 않겠다(途遠)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었을지. 한편 그렇기에 그가 이토록 참혹한 짓, 도행역시倒行逆施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제 복수에 그치지 않고,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복수의 칼에 제가 다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자서열전>은 오자서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중간에 헤어졌던 태자 건의 아들 승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공자 승은 이후 오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초나라로 돌아간다. 초나라 변경에 살면서 정나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강화를 맺고 돌아오자 복수를 할 길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승은 자서를 죽이고 나아가 왕을 시해하려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 충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승의 복수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이야기 끝에 승의 복수를 끼워 넣음으로 단순한 복수의 충동이 낳는 허망한 결말을 이야기한다. 거꾸로 오자서야 말로 원한의 치열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람이라고 할만하다. 사마천이 보기에 그는 불꽃같은 사람(烈丈夫)이었다. 그가 덧붙이는 ‘悲夫’라는 표현은 그 역시 오자서의 이야기를 기술하면서 남의 이야기로 흘려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우일모九牛一毛가 되지 않겠다고, 허망한 삶으로 끝내지 않겠다며 치욕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었던 그가 아닌가.

怨毒之於人甚矣哉 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 況同列乎 向令伍子胥從奢俱死 何異螻蟻 棄小義 雪大恥 名垂於後世 悲夫 方子胥窘於江上 道乞食 志豈嘗須臾忘郢邪 故隱忍就功名 非烈丈夫孰能致此哉 白公如不自立為君者 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隱忍! 드러나지 않는 숨은 뜻에 사마천은 주목한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며,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표현이기도 하다. 집요함의 결과. 이제 또 다른 집요함을 만나야 할 때다.

 

5. 종장: 죽어도 내 눈을 거두지 않겠다

오왕 합려는 춘추 오패의 반열에 오를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으며 그외에도 수많은 전쟁에서 여러 공을 세웠다. 바야흐로 남쪽의 최강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작은 상처 하나로 목숨을 잃는다. 월나라와의 싸움이었는데 전쟁이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나라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들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 <오태백세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越使死士挑戰 三行造吳師 呼 自剄

이른바 자살 부대. 이들의 모습에 놀란틈에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군대를 쳐서 패퇴시키고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힌다. 패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도 손가락의 상처가 도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때 아들 부차를 왕으로 세우며 이렇게 말을 전한다.

爾而忘句踐殺汝父乎 對曰 不敢 三年 乃報越

하나 흥미로운 사실을 덧붙이면 이때 부차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왕부차모吳王夫差矛’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1983년에 출토된 이 유물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吳王夫差 自乍用矛’ 그런가하면 합려를 죽음으로 몰고간 구천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검이 발견되기도 했다. ‘월왕구천검越王句踐劍’이라 불리는 이 유물은 부차의 창보다 앞서 1965년에 발견되었다. 문자를 넘어 실재 물건으로 고대의 역사 인물들이 말을 걸다니! 인터넷에 이 유물의 사진을 구할 수 있으니 한번 찾아보도록 하자.

오왕 부차는 삼년 만에 아버지의 복수를 이룬다. 복수의 시간이 짧았기 때문일까? 그는 월왕 구천이 스스로 치욕을 감내하며 신하의 자리에 있기를 청하자 이를 받아준다. 이때 오자서는 강렬하게 반대한다. 구천이야 말로 치욕을 능히 견디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후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복수의 칼을 품었던 사람이 볼 수 있는 혜안이라고 할까? 그는 구천이 결코 가벼운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끊임없이 구천을 칠 것을 간한다.

그러나 부차는 이미 다른 대신 백비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었고, 오자서의 간언은 듣지도 앟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백비의 모함으로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촉루라는 검을 선물로 주면서.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 曰 子以此死 伍子胥仰天嘆曰 嗟乎 讒臣嚭為亂矣 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 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 幾不得立 若既得立 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乃告其舍人曰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為器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 以觀越寇之入滅吳也 乃自剄死 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 浮之江中 吳人憐之 為立祠於江上 因命曰胥山

오자서는 간신 백비의 꾀임에 놀아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왕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다. 그러나 그 스스로 ‘장자長者’라 일컬었듯 그는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죽음 뒤에도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말한다. 내 눈을 파내어 동쪽 성문에 걸어놓으라. 내가 월나라 놈들이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두눈으로 보고야 말겠다. 그의 이 말은 읽는 이의 전율을 돋게 한다. 게다자 자신의 무덤 위에 자라는 나무를 베어 왕의 관으로 쓰라니! 끝까지 그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의 말을 들은 부차가 그의 시체를 가죽에 싸서 강에 내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려 그가 죽은 근처의 산에 오자서의 이름을 따 서산胥山이라 불렀다한다.

사마천은 <열전>에서 커다란 기개를 갖고 있는 사람을 ‘장자長者’라 칭하였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업적으로 평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을 세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훗날 고조 유방, 초패왕 항우와 천하를 셋으로 갈라 가질 수 있었던 회음후 한신은 장자長者가 아니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알아보도록 하자.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산 오자서에 대해 <장자>에서는 충신忠臣이라 평가한다. 더불어 그의 명성은 꽤나 널리 알려져 은나라의 주왕에게 간언했던 비간比干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름을 올린다. 비록 <잡편>인 <도척盜跖>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지만 그가 유가에서 크게 존중받았던 비간과 더불어 언급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世之所謂忠臣者 莫若王子比干 伍子胥 子胥沈江 比干剖心 此二子者 世謂忠臣也 然卒為天下笑 自上觀之 至於子胥 比干 皆不足貴也 … 比干剖心 子胥抉眼 忠之禍也

유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오자서의 삶을 결코 충신의 삶이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아버지와 조국을 버린 인물이 아닌가.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충신을 훗날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존재로 여기는 것은 편협한 이해가 아닐까? 후대에 그리는 충신이란 군주의 그늘에 갇혀서 모든 욕망을 그를 통해서만 실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나아가 군주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그러나 오자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선택했고, 오나라를 위해 진심을 다했다. 복수를 위해 초나라와의 전쟁을 벌였다는 것도 사실이며, 오나라를 위해 최전선에 섰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대의만 주장하는 것도 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일 것이며, 한 개인의 욕망에만 천착하는 것도 올바른 이해는 아닐 것이다. 이 둘은 서로 교차하며 그 모습을 계속 바꾸곤한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렇게 뒤섞이는 와중에 그 개인의 욕망이 가진 날카로움이 무뎌지는가 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오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롭다. 사마천의 평어를 빌리면 ‘志豈嘗須臾忘’ 그자 잠시도 잊지 않았기에 이런 거대한 사건들 속에서도 그를 또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월나라의 군대는 오나라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때 오나라 왕은 이전에 구천이 했던 것처럼 강화를 맺고자 한다.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 할 수는 없는 법. 구천의 곁에 있던 범려는 오왕 부차에게 작은 땅을 내어 줄테니 그곳에 가 살라고 한다. 오왕은 나이가 들어 월왕을 섬길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죽었다.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며.

遂自殺 乃蔽其面 曰 吾無面以見子胥也

<오자서열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복수에 복수로 화답한, 구천 역시 오자서에 견줄만한 인물이다. 오자서가 일찍이 그의 뜻을 알아차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句踐之困會稽也 喟然嘆曰 吾終於此乎 種曰 湯系夏臺 文王囚羑里 晉重耳奔翟 齊小白奔莒 其卒王霸 由是觀之 何遽不為福乎 吳既赦越 越王句踐反國 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即仰膽 飲食亦嘗膽也 曰 女忘會稽之恥邪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자신의 치욕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고보면 망각이란 매우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꿈을 품고, 강렬한 감정을 느꼈더라도 망각의 힘 앞에서는 그 예리함이 금방 사그라들고만다. 시간의 힘은 커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무디게 만들어 버리곤한다. 그 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가 시간에 저항하는 것이라면 때로는 쓸개를 핥듯 글을 써야하는 것은 아닐지.

사마천은 구천의 이 사건에 깊이 감명했는지 월의 세가世家에 <월왕구천세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월의 기록이 매우 부족하여 구천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구천과 그를 옆에서 보좌했던 ‘범려’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분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천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구천의 이름을 제목에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사기에 나오는 또 다른 자유로운 인간형의 대명사인 범려에 대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으니 시간이 되면 <월왕구천세가>를 읽어보도록하자.

월왕구천은 춘추시대 오패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제 패자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전국戰國, 본격적인 약육 강식의 시대. 각 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투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구천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은 초나라에 의해 망하고 만다.

 

6. 진秦, 새로운 강자의 등장

진秦은 서쪽 변경에 속한 나라로, 초나라처럼 초기에는 주나라를 중심으로한 문명 세계 안에 속하지 못했다. <진본기>에 따르면 진양공秦襄公이 주나라 유왕이 서쪽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죽었을 때 주周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때 유왕을 이어 왕이 된 평왕平王은 양공을 기산 서쪽의 제후로 삼았다. 이처럼 진나라는 한참 뒤에나 주나라의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천하에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은 효공에 이르러서였다. <진본기>에 따르면 효공 시대를 이렇게 서술한다. ‘황하와 효산 동쪽으로 강대국 여섯이 있었다. 효공은 이들 제나라 위왕, 초나라 선왕, 위나라 혜왕, 연나라 도후, 한나라 애후, 조나라 성후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진나라와 동쪽의 육국, 흔히 이야기하는 전국칠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국시대 일곱개의 나라의 특징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자. 이 강국들의 이름 가운데 주왕실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주왕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주나라가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효공시대에 진은 나라 전체를 개혁하여 크게 강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공손앙公孫鞅, 혹은 위앙衛鞅 훗날 상앙商鞅이라 불리는 이의 역할이 크가. <사기열전>에서는 그를 상군商君으로 소개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훗날 상商 땅을 봉지封地로 받기 때문이다.

商君者 衛之諸庶孽公子也 名鞅 姓公孫氏 其祖本姬姓也

위나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위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재주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는 위나라 재상 공숙좌의 중서자로 있었는데 공숙좌가 세상을 떠나며 상앙을 천거했다.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만한 인재일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쓰지 않을 경우에는 죽여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상앙에게 미안했는지 임금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빨리 도망치라고 말한다. 이때 상앙의 대답.

鞅曰 彼王不能用君之言任臣 又安能用君之言殺臣乎 卒不去 惠王既去 而謂左右曰 公叔病甚 悲乎 欲令寡人以國聽公孫鞅也 豈不悖哉

들어 쓰라는 말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죽이라는 말을 또 듣겠는가? 실제로 혜왕惠王은 자리를 뜨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숙좌가 심히 병들었다. 어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지. 그러나 그의 이 선택이 재앙의 씨앗이 될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상앙은 위나라에서 아무런 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진나라로 떠난다. 진나라는 변경에 있었던 탓에 나라 밖의 인재들을 널리 불러모았다. 상앙 역시 기회의 땅 서쪽 진나라로 떠난다. 상앙은 패왕의 이야기로 효공의 환심을 샀다. 어찌나 상앙의 이야기가 효공의 관심을 끌었는지 무릎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상앙의 말이 효공의 마음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한비자는 <세난說難>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凡說之難 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 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상앙은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효공의 의중을 파악했으며 결국엔 그의 마음을 사서 그의 심복이 될 수 있었다. 상앙은 변법變法, 나라 전체의 법을 바꾸어 진나라의 부강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위나라였다. 이미 위나라는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해 태자 신이 사로잡히고 장군 방연을 잃은 상황이었다. 상앙은 위나라 공자와 맹약을 맺는 척 하며 그를 구금하고는 위나라를 쳐 무너뜨린다. 결국 위나라는 크게 땅을 잃고 수도를 대량大梁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그 공적 덕분에 상앙은 상군商君이라 불린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를 들어 쓰기를 거부했던 위혜왕은 수도를 대량으로 옮긴 뒤 양혜왕이라 불렸다는 점이다. 맹자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양혜왕이 바로 그다. <사기열전>에는 맹자를 맞아들인 이후 이렇게 양혜왕이 하소연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寡人不佞 兵三折於外 太子虜 上將死 國以空虛 以羞先君宗廟社稷 寡人甚丑之 叟不遠千里 辱幸至獘邑之廷 將何利吾國 孟軻曰 君不可以言利若是 夫君欲利則大夫欲利 大夫欲利則庶人欲利 上下爭利 國則危矣 為人君 仁義而已矣 何以利為

혜왕 입장에서는 맹자와 같은 인재를 불러들여 새로 나라를 일으켜 보려 하였으나 맹자는 이로움을 추구하는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 <맹자>의 말을 빌리면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오직 인의만 이야기하자는 맹자의 말을 양혜왕은 어떻게 들었을까?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 당대에는 다양한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진나라에는 상앙이 있었고 초나라에서는 오기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한편 제나라에는 방연을 죽인 손빈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의를 외치는 맹자의 말은 지나치게 허망한 것이 아니었을까?

맹자가 인의仁義, 구체적으로는 상하 관계가 명확한 주나라 시대의 봉건체제를 언급하며 양혜왕을 두고 이로움만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매도했다면, 상앙에 반대하는 이들도 그와 비슷했다. 상앙 역시 개혁에 앞서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힌다. 감룡은 백성의 풍속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두지는 옛날의 법을 바꿀 필요다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앙은 옛날의 법도에 따라서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상앙은 효공의 강력한 후원 아래 나라 전체를 개혁하는 데 박차를 가한다.

그는 크게 두 차례의 개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 개혁에서 그는 열 집 혹은 다섯 집으로 백성을 묶고 서로 감시하게 하였다. 그리고 죄를 지었을 경우 이들을 함께 벌주도록 했다. 한편 형벌을 매우 가혹하게 집행하도록 하였으며, 성인 남성이 한 집에 함께 살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는 하부로부터 생산 조직을 체계적으로 갖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몇 가구를 묶어 그 단위에 부역을 부과하는 것은 후대에도 볼 수 있는 일이다. 한편 가구를 나눈 것은 농지 확대와 세수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당시에는 가구당 세금이 부과되었는데 이를 장정에 따라 나누었다. 게다가 당시만하더라도 미개척지가 많았으므로 이들 분리된 세대는 또다른 경작지를 개간하여 국가 생산량을 늘일 수 있었다.

부국강병! 나라의 생산을 늘렸으면 군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여럿이 있겠지만 그는 군공에 따라 벼슬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나아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그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그리고 공과에 따라 철저하게 차등을 두었다. 다르게 보면 상앙은 매우 일찍부터 공과에 바탕을 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군공에 따라. 나라 전체를 병영화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앙이 세운 시스템의 효과는 분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엄벌을 통해 반대 여론을 제거했으며, 예외없이 법령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백성의 기대를 모았다. 두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거리에 버려둔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막대한 상금을 내린 사건이다.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법령에 따라 행할 경우 상벌을 명확히 할 것을 알린 것이다. 한편 태자가 법을 어기자 태자를 벌하려 하기도 했다. 비록 후대의 임금이 될 태자이기에 대신 태부를 처벌했지만 이는 법령에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개혁에 백성들이 환호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법령에 따라 군공을 세우기만 하면 귀족의 자리에 오를 길이 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귀족들에게도 예외없이 집행된다는 점이 얼마나 큰 매력이었겠는가. 그렇기에 진나라 군대는 다른 나라의 군대보다 훨씬 용맹스러웠다고 한다.

두번째 개혁은 수도를 함양으로 옮기는 것,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 동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로 삼았다. 한편 읍邑과 현縣으로 나라를 나누었다. 이와 더불어 부세를 공평하게 하였고 도량형을 통일했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실효성있는 개혁이었는지는 궁금하다. 중앙 집권의 관료제와 이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세금 체계는 그렇게 간단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훗날 진시황의 통일 이후에 군현제와 도량형, 문자의 통일 등이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기초적인 수준에서 나라의 체제가 재편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고대 국가는 점과 점으로 구성되었다. 실제로 ‘국國’이라는 글자는 사방이 성으로 둘러쌓인 영역(域)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국경國境 바깥이란 다른 곳이 아니라 성문 바깥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면 성 바깥이 영토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또한 그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려야 할 방책도 함께  필요하게 되었다.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의 전환.

다르게 말하면 진의 부상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앞서 이 변신을 이루어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상앙의 공적이 있다. 그래서 김용옥은 오늘날 중국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상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China란 ‘秦qin’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던가.

<상군열전>을 통해 중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영토 국가에 필수적인 두 가지, 전쟁시에는 백성을 병사로 동원하며 평소에는 생산하도록 만드는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예외없는 공과제도와 체계적인 행정 구획이었다.

그러나 상앙의 끝은 결코 좋지 않았다. 상앙은 공자 건이 법령을 어기자 그의 코를 베는 형벌을 내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효공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노리던 자들은 반란을 모의한다며 상군을 잡아들이려 하였다. 상군은 달아나다 함곡관 부근에 이르러 어느 집에 묵고자 하나 받아주지 않았다. 상군의 법에 여행증이 없는 사람을 묵게 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이유에서. 이 말을 듣고 상군은 이렇게 한탄한다.

嗟乎 為法之敝一至此哉

결국 상군은 사지가 찢겨, 거열車裂형으로 죽는다. 그가 저잣거리에서 그를 찢어 죽이며 진혜왕이 남긴 말은 이렇다. 莫如商鞅反者 상군이 정말 반란을 일으키려 했는지는 모른다. 비록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에 대항하나 구석에 내몰린 결과가 아니었을까? 여튼 진나라에서 상앙은 반란을 꾸미다 죽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상앙은 시대의 변곡점에 매우 중요한 일을 했지만 결국 그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논어의 말을 빌리면 ‘滔滔者天下皆是也’ 천하가 크게 일렁이며 흘러가는 때였다. 상앙은 비록 엄청난 일을 세웠으나 결국엔 그 흐름에 씻겨가는 삶이었다.

#2 제물론 – 나를 잃어 버렸다.

1. 고목 같은 몸, 재 같은 마음

어떤 책을 읽을 때 고비가 되는 지점이 있다. 첫 시작은 나름 괜찮은데, 그 시작의 매력를 다 누리기도 전에 구렁텅이에 빠지는 듯 당혹감을 선물하는 부분이 있다. 《논어》에서는 〈팔일〉편이 그렇고, 《구약성서》에서는 〈신명기〉와 〈레위기〉가 그렇다. 십중팔구 《장자》를 일독하겠다는 마음을 꺾어버리는 데가 바로 여기 〈제물론〉이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고. 그만큼 풍부한 감각을 선물해 준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완전히 다르다면, 전헤 읽은 경험과 이번에 읽는 경험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면 어떨까? 당혹스러움만 남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제물론〉을 읽는 경험이 그렇다. 읽으면서 한숨이 나오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읽고나선 아찔한 나머지 멍-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말’이란 구체화 한다는 것이고, 개념화한다는 뜻일텐데. 이 당혹스러움 속에서 무엇을 찾아 말로 엮어낼 수 있을까? 말을 잊게 만드는 글이거늘!

《장자》 내에서도 〈제물론〉은 매우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학자마다 해석하는 방법이 크게 엇갈린다. 한 단어를 두고도 정반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표점을 찍는 방법도 다르며, 같은 글자를 두고도 다르게 풀이하거나, 다른 글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제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도 벌어진다. 〈제물론齊物論〉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제목에 매이지 않고 《장자》를 읽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차이는 〈제물론〉을 읽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대표하므로 소개한다. 한쪽에서는 ‘제물’론으로 이해한다. ‘만물이 서로 같다는 논의’가 바로 이 편의 중심 주제라는 것이다. 다른쪽에서는 제’물론’으로 읽는다. 이렇게 읽으면 물론物論, ‘사물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다루는 것’이 이 편의 중심 주제가 된다.

제목에 얽힌 복잡한 논의를 접어두고 〈제물론〉으로 들어가보자. 하나의 난해한 우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 인물, 남곽자기와 안성자유가 이야기를 나눈다.

南郭子綦隱几而坐,仰天而噓,嗒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几者,非昔之隱几者也。」

〈소요유〉가 컴컴한 저 북쪽의 바다에서 시작했다면 〈제물론〉은 남쪽성곽 바깥에 머물고 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책상에 기대에 앉아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제자로 보이는 안성자유가 묻는다. 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요. 몸은 마치 고목과도 같고 마음은 불꺼진 재처럼 되었습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낯설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女聞人籟而未聞地籟,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

안성자유는 남곽자기의 상태를 제대로 읽었다. 정말로 남곽자기는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뭔가 다른 인간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그 자신을 잃어버렸다.'(吾喪我) 자기상실!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안에 또 다른 무엇을 발견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것’ 혹은 ‘나’라고 부를 말한 것이 망가졌거나 훼손되었다는 것일까? 남곽자기의 말은 기묘하다. 그는 인뢰人籟, 지뢰地籟, 천뢰天籟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자기상실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

‘뢰籟’란 피리 혹은 피리소리를 가리킨다. 인뢰人籟란 사람이 불어서 내는 피리소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지뢰地籟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지에 이는 바람이 내는 소리를 말한다. 남곽자기는 바람이란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이라 말한다.(夫大塊噫氣,其名為風) 그런데 이 바람이 다양한 구멍들과 만나 소리를 낸다. 산을 가까이 하면 안다. 산 속에 들어가보면 이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갖가지 틈으로, 구멍으로 바람이 미끄러져가며 소리를 낸다. 웅웅, 윙윙, 우우, 스스 … 바람 많은 날 산에는 누군가 있는 것만 같다. 때로는 누가 우는 듯, 웃는 듯, 고함치는 듯, 화를 내는 듯. 이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바람 때문에 산은 단지 흙덩어리 무더기와 우거진 나무들의 조합에 머물지 않는다.

이 지뢰地籟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명문으로 꼽힌다. 번역문으로라도 한번 읽어보자. 안동림의 번역이다.

“말하자면 대지가 내쉬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게 일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일단 일었다 하면 온갖 구멍이 다 요란하게 울린다. 너는 저 윙윙 울리는 [멀리서 불어 오는 바람] 소리를 들어 봤겠지. 산림 높은 봉우리의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 구멍은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옥로 같고 술잔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은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 [그게 바람이 불면 울리기 시작해.] 콸콸 거칠게 물 흐르는 소리, 씽씽 화살 나는 소리, 나직히 나무라는 듯한 소리, 흐흑 들이키는 소리, 외치는 듯한 소리, 울부짖는 듯한 소리, 웅웅 깊은 데서 울려 나는 것 같은 소리, 새가 울 듯 가냘픈 소리[등 갖가지로 울리지]. 앞의 바람이 휘휘 울리면 뒤의 바람이 윙윙 따른다. 산들바람에는 가볍게 응하고 거센 바람에는 크게 응해. 태풍이 멎으면 모든 구멍이 고요해진다. 너는 나무가 [바람 때문에] 크게 흔들리기도 하고 가볍게 흔들리기도 하는 걸 보았겠지.” – 48~49쪽.

이 세상은 이렇게 소리가 웅웅 울리는 곳이다. 그렇다면 대체 천뢰天籟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남곽자기의 대답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아리송하다.

夫吹萬不同,而使其自己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바람은 하나이지만 제각기 구멍의 고유한 모양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그것은 지뢰地籟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뢰人籟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똑같은 숨으로 불더라도 운지법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난다. 그래서 저마다 제각기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데 남곽자기는 묻는다. 불어대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만약 불어대는 숨, 바람이 없다면 소리가 날 수 있을까? 구멍은 구멍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없다. ‘라’라는 음계를 내는 구멍이 있다고 치자. 그 소리가 그 구멍의 것일까? 맞다. 그러나 소리를 내도록 만드는 숨, 바람이 그친다고 해보자. 그때에도 그 구멍은 ‘라’라는 음계의 구멍일까? 아니, 그때의 구멍은 그저 구멍일 뿐이다. 그때에도 ‘라의 구멍’을 ‘도의 구멍’과 구별할 수 있을까? 바람과 숨이 그쳐버린 그때에도?

《장자》에서 구멍이란 단순히 사물에 뚫려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에게도 일곱개의 구멍이 있다. 눈, 코, 입, 귀. 이 구멍으로 사람은 외부 사물과 만나고 접촉한다. 이 감각기관은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인 동시에, 감각이 발현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말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이 구멍으로 느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느낌과 표현이 개별인간의 고유한 특징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그런 개별적 감각의 총합이기에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이 구멍, 입을 통해 발화되는 개별적 특징은 나를 나라고 규정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이렇게  나라는 존재가 규정되지만, 그 고유성이란 매우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우리는 이 일곱개의 구멍을 통해 개별적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도 다양한 차이가 생기지만 정작 우리는 마치 피리와 같아서 그 바람이 멈춰버리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는가? 오보에는 누군가 불어서 오보에의 소리를 낼 때 오보에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남곽자기는 고목과도 같은 신체, 식은 재와도 같은 마음으로 멍하니 있었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렇게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인간이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개별적 소리들, – 이 소리의 총합을 장자는 심心이라 불렀을 것이다 – 이것의 고유함이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喜怒哀樂,慮嘆變慹,姚佚啟態;樂出虛,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非彼無我,非我無所取。是亦近矣,而不知其所為使。

인간의 마음은 멈춰있지 않는다. 다양한 감정이 들끓어 넘친다. 여러 소리가 웅웅 울리는 아우성의 공간이다. 끊임없는 변화. 이는 외부의 세계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세계의 바람은 우리의 마음에 갖가지 소리를 불어넣는다. 밤낮으로 여러 가지가 생겨나지만 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문제는 이 구멍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갖가지 감정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저마다 울리는 소리는 소음이 되어 내면을 진동시킨다. 인간의 내면은 늘 어떤 소음으로 가득차 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시끄러운 게 문제다.

一受其成形,不亡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人之生也,固若是芒乎!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

그것 뿐인가. 인간의 삶이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게 세상의 일에 치이며 살다보니 한 사람의 삶은 마치 말이 빨리 달려가버리는 것과 같다. 장자는 다른 부분에서 인간의 삶이란 좁은 틈으로 말이 달려지나 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생이란 순식간이다. 이 빠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우리는 자기 삶의 속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나간다. 불행히도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지 않다. 그것뿐인가?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 그치는 날이 찾아오겠지만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종신토록 수고로운 것이 인간의 인생이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피곤하고 힘든 것이 우리네 삶이다. 슬프지 않은가?

장자는 인간의 보편적 삶의 한계를 잘 깨달았던 인물이다. 인간이란 불우한 존재이다. 장자는 죽음을 미룬다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비웃는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계도 문제이지만, 육신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낳는다. 몸을 따라 마음도 낡는다.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슬픔이 아닌가? 삶이란 이렇게 허망하다. 이 허망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장자는 묻는다. 나 혼자만 이렇게 허망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뭇 사람들의 삶이란 본디 이렇게 허망한 것이 아닌가?

 

2. 도는 대체 어디있기에?

도란 만물(자연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세계)을 존재∙변화시키는 근원적인 주재자인데, 그에 비해 인간은 이 도에 의해 존재∙변화되는 단순한 피주재자, 만물의 한 존재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소외되고 몰주체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이런 까닭에 도가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인간소외의 극복과 주체성의 획득이었는데, 그 기초에는 ‘도—만물’의 두 세계를 도려하는 독자적 존재론(두 세계론)이 깔려 있다. 그 목적은 단순히 만물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도에 도달하고 도를 파악함으로써 도가 세계에 가지는 전능한 힘(일체의 만물을 존재∙변화시켜 주재하는 힘)을 손에 넣고 그것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여 스스로 위대한 주재자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데 있었다. –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미조구찌 유조 외, 25쪽.

인간의 한계는 자명하다. 인간 역시 천지간에 존재하는 만물(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개별 사물은 제각기 저마다의 한계에 갇힌 존재들이다.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 제한적 사물은 도道의 무한성과 비교할 때 그 한계가 자명하다. 인간의 지각, 언어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제물론〉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면에 걸친 장자의 불신을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지각 자체를 불신한다. 개별적 판단이란 일시적으로만, 혹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까?

天下莫大於秋豪之末,而大山為小;莫壽乎殤子,而彭祖為夭。

크다 혹은 작다고 하는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장자는 이런 판단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증거한다. 장자는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습한 곳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생긴다. 그러나 미꾸라지에게도 그렇던가? 높은 나무는 어떤가? 사람에게는 아찔한 높이이지만 원숭이에게도 그렇던가? 대체 적합한 자리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사람은 고기를 먹는다. 사슴은 풀을 뜯고, 지네는 뱀을 먹는다. 올빼비는 쥐를 잡아 먹는단다. 대체 이 넷가운데 무엇이 참된 맛을 알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하는 미인도 못가에 가면 물고기를 놀래킨다. 사슴을 달아나게 하고 새를 쫓아보낸다. 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장자는 분명 맹자와 명시적으로 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맹자는 사람들의 감각이란 비슷하여 누군가 그 감각의 척도가 될만한 인물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루의 밝은 시력이나 공수자의 뛰어난 손재주가 있어도 콤파스와 곡척을 사용하지 않으면 네모 모양과 원 모양을 만들 수 없다. 사광의 예민한 청력이 있어도 육률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음을 바로 잡을 수 없다. 요순의 도가 있어도 어진 정치를 실행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없다. … 성인은 밝은 시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게다가 콤파스∙곡척∙수형기∙먹줄과 같은 정확한 도구에 의거했으므로, 네모난 것과 둥근 것 평평한 것 곧은 것을 만듦에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예민한 청력을 남김없이 활용하고 게다가 육률과 같은 정확한 기구에 의거했으므로, 오음을 바로 잡음에 그것이 이루 다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어진 마음과 생각을 남김없이 활용하고 게다가 차마 남에게 악하게 굴지 못하는 정치에 의거했으므로, 인仁이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졌다.” — 《맹자》, 박경환 역, 홍익출판사. 187~188쪽.

맹자는 사람들 가운데 남보다 더 잘볼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직선을 더 잘 본다. 물론 그에게도 부족한 부분은 있다. 곧은 자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음계를 구분한다. 그러나 육률, 다르게 말하면 음계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 맹자는 이 세계의 척도가 존재하며, 이 척도에 가까운 인간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척도는 이 세계의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성인을 중시한다. 성인은 곧 척도를 체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세상은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맹자는 이 성인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장자는 이와 정반대이다. 도리어 그는 그렇게 규정해 놓은 척도의 한계에 주목한다. 맹자가 음에 밝은 사광이라는 사람을 등장시켰다면 장자는 이와 비슷한 소문昭文을 예로 든다. 그는 매우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그가 음악을 완성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완성이야 말로 또 다른 파괴를 의미한다고 장자는 말한다.

其分也,成也;其成也,毀也。

장자는 말한다. 개별적인 대상으로 나누는 것(分)은 그 대상을 구체화하여 확정하는 것(成)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본질을 훼손하는 것(毁)이기도 하다. 여기서 장자가 음악, 소리를 문제 삼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소리-음악이란 유가에 있어 문명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시에서 마음을 일으키고, 예에 몸을 세우며, 음악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라. 공자가 주나라의 문물로 예악禮樂을 이야기했지만, 예식과 음악 가운데 그가 더 최종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은 음악이었다. 조화로운 예가 완벽하게 구현된 상태.

이러한 생각 가운데 유가가 음율, 오늘날로 따지면 음계 정도가 될텐데, 이것을 규정하는 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음은 단순히 어떤 떨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지간의 우주적 기운이 응축되어 하나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며, 그것은 곧 이 우주가 정교한 윤리에 의해 구성되고 운행되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정음正音, 바른 소리를 가지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하는 것(和)이야 말로 천지간의 다양한 존재들이 어울리는 조화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자의 소리란 다르다. 장자에게 소리란 제 각기 다른 구멍을 통해 울려되는 소리의 총합이다. 피리로 예를 들어보면 공자는 그 소리를 구분하고 그 소리들 사이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반면 장자는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조정할 것인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도리어 그 소리라는 것 조차 불어대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따라서 그 불어댐이 사라지면 그 소리도 사라진다는데 주목한다. 그것은 음을 나누고 확정하는 것은 그 불어댐이라는 본질적 힘, 운동, 흐름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음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구멍, 사람의 입(口)을 통해 울려지는 말(言)을 생각하라. 말 – 언어활동은 늘 어떤 제한성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그것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입을 열어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본질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라는 말과 그것이 아니라는 말 사이를 잘 보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지칭할 때엔 늘 어떤 덜어냄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아닌 것 – 덜어낸 것이 너무 큰 나머지 그것이라 지칭한 것을 가지고 그것이 아닌 것을 사유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以指喻指之非指,不若以非指喻指之非指也;以馬喻馬之非馬,不若以非馬喻馬之非馬也。

따라서 무엇이 아닌 것, 아직 지칭하지 못한 무엇, 규정되지 않은 무엇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지각 역시 마찬가지인데, 무엇이라 포착할 수 없는 그 바깥을 장자는 주목한다. 그와 반대로 무엇이라 규정하고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의 총체란 – 이것을 성심成心이라 하자 – 장자에겐 극복해야 할 것이 된다. 이는 특정한 언어 활동을 통해 표현되고 규정된다. 말이란 세계를 분활하는 활동이며, 이를 통해 특정한 가치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가치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개별적 고유성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비판단을 뛰어넘는 길은 없는가? 장자는 그것을 도道라 이름 붙였다.

道惡乎隱而有真偽?言惡乎隱而有是非?道惡乎往而不存?言惡乎存而不可?道隱於小成,言隱於榮華。故有儒、墨之是非,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則莫若以明。

말은 다툼을 낳는다. 서로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사람들에게 도道가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또 다른 지평, 밝은 지혜의 지평이 있다고 말한다. 대체 그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일까? 〈제물론〉 안에서 이 밝은 지혜는 다양한 형태로 설명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묘사는 회전의 중심이 되는 지도리로 묘사한 부분이다. 도는 마치 회전의 중심축과 같아서 다양한 모든 사물들에 대응하는 무한성을 갖는다. 도를 체득한다면 세상의 갖가지 일에 무수히 대응할 수 있다.

物無非彼,物無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是以聖人不由,而照之于天,亦因是也。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果且有彼是乎哉?果且無彼是乎哉?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是亦一無窮,非亦一無窮也。故曰「莫若以明」。

장자에게는 두 세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하나는 물物로 이야기되는 개별 사물들의 세계라면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도道로 이야기되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각기 다른 가치들이 대립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들면 무엇인가를 버릴 수 밖에 없다. 옳음과 그름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이 둘 모두를 뛰어넘는 세계란 없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의 세계 말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장자가 제시하는 것은 도道의 세계이다. 바로 여기에 이 둘을 뛰어넘는 길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도道는 특정한 무엇이라고 규정지어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자는 도道를 무엇이 아닌 것으로 설명한다. 그가 그렇게 설명을 아끼는 이유는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할 경우 그에 반대되는 것이 자연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엇이라 부르는 순간, 무엇이 아닌 것이 등장한다. 따라서 무엇이 아니라는 그 부정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道는 숨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有始也者,有未始有始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有有也者,有無也者,有未始有無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俄而有無矣,而未知有無之果孰有孰無也。今我則已有謂矣,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其果無謂乎?

도道는 하나의 의문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도를 인식하는 길은 다른 것을 아는 것과 다르다. 참고로 장자는 ‘도를 안다(知道)’고 표현하기 보다는 ‘도를 얻었다(得道)’고 표현했다. 도道란 개별적 경험의 장에서 체험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보편적인 원리로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편적인 조각으로 나뉘어진 개별적인 부스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음이야 말로 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큰 것은, 세계의 참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부정의 지식, 그 불가능에 주목해야 한다. 무지에서 지혜가 나온다.

 

3. 말을 버려야 한다

동양의 여러 사상가 가운데 말의 한계를 이야기한 사람은 적지 않다. 말 – 언어는 늘 제한적인 기능만 할 뿐이다. 세계의 참 모습은 이 말 – 언어의 굴레를 훌쩍 넘어선다. 아마도 여기에는 중국 문자와 언어의 특징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문자는 단순히 기호가 아니라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림 가운데 하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늘 실패할 뿐이다. 세계는 언어 바깥에 있다.

夫大道不稱,大辯不言,大仁不仁,大廉不嗛,大勇不忮。道昭而不道,言辯而不及,仁常而不成,廉清而不信,勇忮而不成。五者园而幾向方矣。故知止其所不知,至矣。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

장자에게 커다랗다는 말은 세계의 본디 실상을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참된 것은 크다. 크다는 것은 차마 말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커다람 자체,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그 바깥의 세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무한한 변화에 대응할만한 훌륭한 지혜를 얻는 것이리라. 마르지 않는 샘, 차지 않는 독과 같다. 이것이 바로 도道의 세계일 것이다. 이 참된 세계를 인지하는 인물은 세계를 구분하며, 구획하는 지식 이전의 본디 모습을 보는 사람이다.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為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為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為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道之所以虧,愛之所以成。

이런 면에서 그가 비판하는 인물이란 곧 이 세계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특정한 틀에 얽매여 희비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세계의 총체적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희노의 감정이 일어난다. 작은 일에, 어쩌면 별 것이 아닌 일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 이를 장자는 조삼모사라 불렀다.

已而不知其然,謂之道。勞神明為一,而不知其同也,謂之朝三。何謂朝三?曰狙公賦芧,曰:「朝三而莫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莫三。」眾狙皆悅。名實未虧,而喜怒為用,亦因是也。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是之謂兩行。

세상은 끊임 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마음은 이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쉽다. 사물의 변화에 따라 마음이 변화하지 않는 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무게감으로, 중후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가볍지 않다면, 튼튼한 마음을 갖춘다면 세상 일에 덜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강한 마음을 가지라!

그러나 장자의 해결책은 이와 달라 보인다. 장자는 세상의 흔들림에 기우뚱하지 않는 강한 자아를 주장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도리어 장자는 침묵하는 것, 어떤 능력으로 내면을 채우는 것이라기 보다는 주체가 본디 능력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그의 침묵에서 무거운 입술을 떠올리지는 말자. 도리어 그는 말을 멍하게 잃어버린 것,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말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는 침묵을 강요하기 보다는 도리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언어의 문제에서도 이야기하지 말 것을 충고하기 보다는 말할 수 없음을, 말로 담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그가 입을 열었을 때에 그 입에 담기는 말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의 말은 세계를 규정하고 평가하며 그려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세계를 매만지는 말에 가깝다. 장자는 나를 잃었다고 말한다. 세계의 참 모습을 봄에 있어 나(我)라는 규정적 틀이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말(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말을 버려야 한다면, 말을 하지 말라는 금언의 규율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말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가. ‘말을 버려야 한다’고 벌써 말해버린 것을.

장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말이 아닌말, 언어가 아닌 언어, 내가 아닌 나로 말하면 될 것이라고.

노자의 맨 얼굴

1. <노자>는 누구의 글인가?

<노자> 혹은 <도덕경>이라 불리는 책은 흔히 노자의 저작으로 여겨진다. <노자> 번역서를 보아도 노자는 당당히 저자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찍이 펑유란은 모든 제자백가서는 특정 인물을 추종하는 학파나 무리의 저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맹자>는 맹자 본인의 저작이 아니며, 맹자를 따르던 제자, 혹은 그 뒤에 맹자의 사상을 따른 이들이 쓰고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책의 제목, <맹자>는 맹자가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맹자의 책’, ‘맹자의 사상을 담은 책’이라고 보는 게 옳다.

어떤 이들은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 공자 등이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은 참된 가르침을 말로 전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 가운데 노자가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언어의 한계를 이야기했다고 전해지는 노자라면 그 역시 글이 아닌 ‘말’로 가르침을 전한 이들 가운데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마 이는 상술한 이들과 달리 노자에게는 그의 말을 기록할 제자들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노자>에 얽힌 하나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는 이 책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이야기한다. 노자가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가면서 ‘관윤’이라는 자에게 5,000자의 글을 남겨 주었다는 것이다. 이 81장, 5,000자의 글이 오늘날 <노자>라고 본다. 이어지는 내용에 따르면 노자는 이 글을 남기고 숨어 살았다 한다. 이렇게 <노자>는 은자隱者의 책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 전설같은 이야기를 가리고 <노자>를 읽어보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된다. 대체 <노자>라는 책에서 노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어>나 <맹자>, <장자> 등에서 공자, 맹자, 장자 등이 직접 등장하여 말(曰)하는 것과 달리 <노자>에는 노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최진석은 이것이 특정 인물의 권위를 빌려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법칙을 근거로 삼는 <노자> 특유의 서술 방식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정반대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구체적인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편적 진리를 다룬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보다 추상적이며 절대적인 위치에서 가르침을 전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쉽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핵심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혜롭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아는 자가 드물기에 나의 가르침은 귀하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천한 갈옷을 입었으나 귀한 옥을 품고 있다고 한다.

<노자>가 침묵으로 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노자>의 화자는 전설 뒤에 숨어서 비밀스러운 말을 전한다.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역설적으로 <노자>의 화자는 이렇게 말함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한다. ‘나의 가르침은 귀하다!’

노자는 ‘노老’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후대에 그려진 수많은 노자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노자> 안에서는 이 ‘늙음’에 대한 찬양을 찾아볼 수 없다.

30장, 55장: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사물이 장성하면 늙으니 이것을 일러 도가 아니라고 하겠다. 도가 아니므로 일찍 사라진다.

<노자> 전체에서 두번 반복되는 이 표현은 늙음에 대하여 정확히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한다. 도리어 <노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조이早已’와 반대되는 ‘장구長久’, 지속에 대한 찬양이다. 과연 상술한 <노자>에 얽힌 전설을 가리고 이 글을 읽었다면, 혹은 <노자>라는 제목을 없앤 채 읽었다면 흔히 그려지는 노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간단히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노자와 <노자>는 별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노자의 모습도 본래 전통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노자>라는 책이 언제 기록되고 오늘날 보는 형태로 완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분히 논란이 많다. 대체로 전국시기 중반 이후에서 한대 초기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아마 이때 노자의 전설과 <노자>가 만나 오늘날 전해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번째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노자는 누구인가?

다른 제자백가와 마찬가지로 노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사기>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열전>의 여러 인물 가운데 꽤 일찍 등장한다는 것이다. <백이열전>, <관안열전>을 이어 세번째로 등장한다. <노자한비열전>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노자와 한비자를 다룬 편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장자와 신불해를 함께 다루어 <노장신한열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노자와 장자가 함께 엮인, ‘노장’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노자와 장자가 함께 연이어 다루어지기는 하나 그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것은 노자와 한비자의 조합이다. 보통 도가의 창시자로 노자를, 법가의 종합자로 한비자를 든다. 그러나 도가와 법가는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하지 않았나? 한쪽은 자유로운 자연적 삶을 추구했다면 다른 한쪽은 억압적이며 폭력적인 사회를 그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렇게 보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둘을 한데 묶은 게 아닌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듯, <노자>의 최초 연구자가 한비자라는 점은 이 둘의 연속성, 혹은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데, 이유는 노자로 지칭되는 인물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세 명이 등장한다. 이이李耳, 노래자老萊子, 주나라의 태사 담儋. 세세하게 따져보면 이들의 생몰연대도 불분명하다. 대체 몇 살을 살았는지 사마천도 난감했는지 ‘160여살 또는 200여 살을 살았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과연 역사적 인물로서 노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늠하기 힘들다. 그의 행적에 얽힌 사건은 크게 셋인데, 하나는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는 내용,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사라지며 5,000자를 남겼다는 내용, 마지막으로 진나라 헌공을 만나 예언을 전했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공자와의 사건은 여러 문헌에 두루 보인다. <공자세가>에서도 볼 수 있으며 <장자>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다. 송대 이후 이 기록은 여러 사람의 의심을 샀으며, 오늘날에는 이를 공자 생애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으로 보지 않는 입장도 있다. 우리 주제와는 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나머지 둘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둘은 매우 밀접하게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서쪽으로 사라지기 전 지났다는 함곡관이 이른바 ‘관중’, 진으로 가는 길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진나라에 가기 위해서. 가서 무엇을 했을까? 이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헌공을 만나 예언을 들려준다. 주와 진은 본디 한 나라였는데 나뉜 지 500년 만에 다시 합쳐질 것이며, 합쳐진 이후 70년이 지나면 패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이때 패자는 누구일까? 사마천은 주난왕의 사망 이후 주나라가 사라진 것으로 본다. 주는 진에 흡수되며 진시황의 통일, 그리고 잠시 혼란기를 지나 다시 한에 의해 통일된다. 난왕이의 사망은 진 소양왕 51년으로 기원전 256년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육국을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다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것은 기원전 202년. 한편 난왕의 죽음 이후 70년 후를 잡으면 기원전 186년이 되는데, 이는 여태후가 정권을 잡았던 때였다. 이후 다시 유씨가 권력을 잡은 것은 기원전 179년 문제였다. 이를 상세히 나열한 것은 언급된 인물들이 이 패자의 후보이기 때문이다. 70년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튼 사마담은 진의 통일과 패자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 기록은 <노자한비열전> 뿐만 아니라 <주본기>, <진본기>에도 함께 실려 있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대신 그 예언의 성격이다. 통일과 패자의 등장. 대체 이 예언이 <노자>라는 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일부 연구자들은 <노자>를 법가 혹은 병가의 저술로 보기도 한다. 김시천은 한걸음 더 나아가 <노자>가 권력의 기술을 위한 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을 호모 임페리알리스, 즉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과학 기술적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달리 말해 <노자>의 독자들은 천하의 대권 지망자들로서, 바로 <노자>를 읽고 실천 방법을 모색하려 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자>는 철저하게 권력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57쪽.

노자는 구체적인 생애와 업적이 모호한 인물이다. 예언자로서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다. 소국과민을 주장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던 인물이기는커녕 진의 통일과 패자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그가 진으로 넘어가기 전 세상에 남겼다는 책은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김시천의 말처럼 천하를 통일할 제왕을 위한 책이 맞는 걸까? 도와 덕을 이야기한 이 책이!

3. <노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도덕경>은 <노자>의 다른 이름이다. <도덕경>이라 불린 것은 도道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경道經과 덕德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덕경德經을 합쳐 놓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마천의 기록에서는 <도덕경>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도와 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천여자(言道德之意五千餘言)’를 말할 뿐이다.

이 둘 가운데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도경, 그것도 시작하는 첫 문장이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 문장은 도에 대한 신비로운 표현으로 여겨졌다. 도는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도’라는 난해한 주제를 다루지 않으려 한다. 다만 ‘노자는 도에 대해 무엇이라 말했는가’라고 질문하지 말고 ‘노자가 말한 도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는 점을 짚어둔다. 왜냐하면 ‘도’란 사람마다, 시대마다 달리 사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도’에 대해 노자가 무어라 말했는가를 묻는다면 ‘도’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노자>를 읽게 된다.

여기서 ‘도’를 괄호치고, 그리고 그와 연관된 혹은 대립되는 ‘명’이라는 개념을 괄호치고 읽으면 이 글은 ‘상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상’은 <노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다.

16장: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명을 회복하는 것을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알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모르면 헛되이 행동하고 다치게 된다.

<노자> 첫머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는 어떻게 하면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담겨 있다. 적어도 그것은 가도可道, 혹은 가명可名이라 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앞서 자신의 가르침을 아는 이가 적다고 말한 것처럼 이는 또 다른 식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자>가 언어의 한계를 말했다는 통상적인 이해는 반만 맞다. 그는 새로운 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자>에서 현상유지의 욕망을 가장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7장이다. 그 유명한 천장지구 天長地久로 시작한다.

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천지는 오래 간다. 천지가 그처럼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처럼 오래 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자신을 뒤로 숨겨야 자신을 앞세울 수 있다. 자신을 버려야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노자>의 가르침은 모순적이다. 그러나 이 모순 자체보다는 이 모순의 현실을 알아야 특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노자>가 전하는 핵심 내용이다. 7장에서 보이는 목적이란 천지처럼 오래 갈 수 있을 것, 나아가 자신을 앞세우고 보존하며 사사로움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흔히 알려진 것처럼 <노자>가 무지무욕無知無欲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무지무욕이라는 표현이 <노자>에서 나온 것은 맞다. 그러나 <노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무지무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무지무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

3장:
不尚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為盜 不見可欲 使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為也 為無為 則無不治

재능있는 자를 높이지 않으면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 수 있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바랄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의 다스림은 그들의 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우며 그들의 뜻은 약하게 만들고 뼈는 강하게 만든다.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무욕케 하라. 그리고 저 안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라.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과연 <노자>는 누구를 위한 책인가? 앞서 보았듯 통일 제국과 그 지배자를 예언한 노자, 그리고 그의 글은 당연히 권좌에 앉아 천하를 다스릴 사람을 위해 말한 것일 테다. 김시천의 말을 빌리면 호모 임페리알리스.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노자>의 핵심이다. 따라서 백성은 대상으로 머물며 그들은 무지무욕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노자>를 읽어보면 어떤 지혜를 가진 자가 그 지혜의 비밀스런 부분을 전수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지혜를 듣는 청자는 누구일까? 일차적인 청자는 위에 언급된 ‘성인’일 것이다. 무릇 성인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 인용한 글의 맥락이다. ‘성인’은 통치자 곧 왕을 의미한다.

25장: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역시 크다. 이 세계에 큰 것이 모두 넷 있는데 왕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천, 지, 그리고 ‘도’와 왕은 동일한 자리를 공유하고 있다. <노자>에서 그 자리의 모습은 크다(大)는 말로 표현된다. 무릇 큰 것은 다른 법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마치 천지가 그러하듯. 이 커다람은 어떻게 스스로의 모습을 증명하는가? 자신의 커다란 모습을 숨겨서이다.

34장:
以其終不自為大 故能成其大
끝내 스스로 크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 커다람을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노자>에서 강조되는 것은 부정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을 통한 특정한 목적의 성취이다. 커다란 존재는 커다란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을 때 그 존재를 내보일 수 있다. 이런 윤리는 결코 모두를 위한 보편적 윤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디 작은 존재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보다 나은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기는 커녕 부정당하는 자신을 긍정하기에도 벅차다.

<노자>는 제왕, 본디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를 위한 글이다. 권력의 유지와 보전의 글! 그런 면에서 ‘故能成其大’가 진시황에 대한 표현으로 <사기>에 다시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훗날 통일 진의 승상에까지 오르는 이사는 젊은 시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한껏 꿈을 품고 진나라에 왔지만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때 진시황에게 올렸다는 글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是以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眾庶,故能明其德
이런 까닭에 태산은 작은 흙덩이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커다란 크기를 이룰 수 있었으며, 바다와 강은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토록 깊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뭇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아야 그 덕을 밝히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이사열전>

<노자>는 춘추전국, 특히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시대의 배경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천하가 혼란으로 치닫는 시대였으나 당대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예감하고 있었다. 과거의 체제가 주왕실을 중심으로 천하를 마치 한집안처럼 운영하는 것이었다면 새롭게 등장할 권력은 그와 동일한 모습일 수 없다. 새로운 권력은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이전 주왕실의 왕과는 달라야 한다. 당연히 충효를 기반으로 유지되었던 권력의 성격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권력은 ‘인친仁親’이라는 가까운 표정을 가진 얼굴이 아닌 무표정의 얼굴이어야 한다.

5장: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천지는 인하지 않으니 만물을 마치 풀강아지 처럼 보잘 것 없이 여긴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인하지 않으니 백성을 마치 풀강아지 처럼 보잘 것 없이 여겨야 한다.

예禮와 인仁으로 대표되는 가족적 정감을 천하의 통치 방법으로 쓸 것을 주장한 것은 유가였다. 그러나 법가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한다. 기존의 전통과 단절하며 또한 혈연적 친소에 의해 사회적 계급이 구성되는 것을 근절하고자 했다. 이들은 정확히 공과功過에 따라 새롭게 사회가 재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노자가 한비자 곁에 있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유명한 ‘무위’라는 행위도 이와 같은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37장:
道常無為而無不為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鎮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 행위가 없으나 하지 못하는 일도 없다. 만약 왕이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교화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통나무를 가지고 그를 누를 것이다.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통나무로 욕망을 갖지 못하게끔 하라. 고요하여 욕망하지 않으면 천하는 장차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노자>는 천하의 소란스러움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바로 욕망 때문이다. 누구의? 앞서 보았듯 백성들이 아래서 들끓는 욕망을 갖고 저마다 여러 일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것이 천하의 지배자에게 남겨진 숙제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상적인 언어로 일컬어지며, 말해지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비밀스런 방법을 쓸 것. ‘무위’, 즉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 그렇다면 그 결과는? 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무위이무불위無為而無不為,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나 이루어 내지 못함도 없는! 바로 이것이 표정 없는, 아니 표정을 숨긴 권력의 비밀이다. 진시황은 스스로를 짐朕이라 불렀다. 이때 ‘짐’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수많은 궁을 지어 자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감추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노자>는 끊임없이 표정을 지우도록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욕망을 감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절대 권력은 영원을 추구하는 법. 최초의 황제 시황제는 만세토록 자신의 제국이 유지되고자 했고, 이에 신선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신선이 된 노자, 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4. <노자>, 오독 혹은 해석

<노자>는 정말로 그렇게 복잡하고 풍부한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노자>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후세 사람들의 지레짐작으로 <노자> 본래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의미가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요? <노자>는 처음부터 곁가지가 무성한 거목의 축소판이 아니라 그저 한 그루의 바싹 마른 등나무는 아닐까요?
<노자를 읽다> 65쪽.

<노자>를 읽으며 늘 당혹스러운 것은 그 가면의 이면에 대체 어떤 얼굴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러한 막막함은 이 책이 그려내는 인물이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발견에서 연유한다. 끝자락에 매달려 아둥바둥 거려야 하는 나에게 <노자>의 이야기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나아가 어떤 불편함마저 남겨 주는데 이는 그 존재가 가진 낯설음 때문일 테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관계’에서 만나는 장소에서 내가 저들과 똑같은 표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며, 특히 계급적 지위가 다른 까닭일 테다. 보아도 읽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가면은 필요하다. 자신의 욕망을 맨얼굴에 펼쳐 놓은 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들이 쓰는 가면과 내가 쓰는 가면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한쪽의 가면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면, 다르게 말해 또 다른 수탈을 위해 쓰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덜 상처입기 위해 쓰는 가면도 있다. 욕망의 실현보다 덜 좌절하기 위해 쓰는 가면. 아니 헬맷이라고나 해야할까?

당연히 ‘무욕’도 다르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이야 어느 시대 모든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말일 테다. 그러나 수 없이 욕망을 거세당한 사람에게 무욕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의 의미는 있을 수 있겠다. 본디 무욕의 존재인 자신을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할 말을 찾는 것. 그러나 이런 해석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위안을 준다고 하나 그 깊이가 얼마나 될까? 이는 도리어 신체를 무감하게 만드는, 마치 모르핀과도 같은 이해가 아닐까? 어떤 사유는 사유 자체를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위에 소개한 <노자> 해석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권력의 기술, 제왕학으로 <노자>를 이해한 역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에 대한 이야기에는 대부분 무위자연, 생태주의, 자율성 따위 등이 붙기 마련이다. 물론 이는 직접 글을 읽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노자>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노자>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알음알이!

그러나 <노자> 번역이나 해설을 찾아보면 상술한 것과 정반대를 찾는 것이 더 쉽다. 자유와 평등 따위를 이야기한 책으로. 그렇다면 저 많은 <노자> 번역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대체 왜?!

하나는 서구적 근대화에 따른 자기 변신의 결과 때문이다. 전통 사상은 이른바 유가나 도가 따위는 근대적 사회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철학’으로 탈바꿈해야 했다. 거꾸로 이는 본디 가지고 있던 정치적 색체를 지우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른바 ‘동양의 정치’란 낡아 수명이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아닌 철학으로! 이것이 전통 사상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따라서 그 구체적 맥락보다는 개념과 추상적 명제가 더 크게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노장철학’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저 고아하고 세련된 말로 치장된 이론의 묶음을 가리키지 않는가?

그러나 ‘철학’으로 변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민권은 2등 시민권이었다. 1등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으려면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함을 증명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이른바 동양철학에 요구되는 바가 그렇다. 무엇인가 삶의 대안을 마련해 줄 것. 삶을 분석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고 삶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것을 도와주는 보조자로서의 위치!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일종의 신앙이라고 할만 한 것이 깃드는데, 거기에는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뭔가 신비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이 아닌 대안으로서의 철학.

한국적 상황에서 그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함석헌 류의 해석이다. 그는 이른바 전통적인 노장사상을 현대화, 토착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석헌의 사상은 어떤 독창적 세계관을 추구한 철학적 탐구의 결과라기보다 20세기 한국인의 아픔과 삶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닌 독창성은 따라서,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찾아 헤맨 사람이 아니라 아픈 역사의 길을 따라간 고난의 순례자였기 때문이다.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 109쪽.

많은 이들이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서구 기독교가 토착화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가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을 통해 말한 수난받는 민중의 모습은 기독교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문제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난으로 설명하면서 고난 자체를 수용하도록 요구한다. 어째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고통을 의미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고통은 개인의 문제로, 내면의 영역으로 후퇴한다. 이 퇴보의 지점에서 <노자>는 위안을 위한 적절한 안식처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려 이런 해석태도에서 ‘꼬오온대’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흔히 도가를 난세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도가는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부흥했다. 그러나 식자들은 절벽 끝에서도 어떻게든 밀리지 않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절벽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곤 한다. 도교의 부흥이 민중반란과 함께 한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이때 그들에게 <노자>가 혹은 노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도가라는 학술전통과 다른 도교라는 종교적 영역에 대한 탐구로 시선을 옮겨야 할 것이다.

언뜻 보아 오늘날 <노자>를 읽는 사람들은 시대를 뛰어 건너기 위해 읽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쓴 약을 삼킨 뒤에 달콤한 사탕에 손을 대듯, 철저히 현세적 위치에서 <노자>를 읽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낭만적 독해 속에 노자는 맨 얼굴은 드러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는 저 옛날, <노자>를 쓴 누군가가 바라 마지 않았던 상황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거꾸로 이제 권력은 스스로 표정을 숨길 필요도 없어졌다. 맨 얼굴의 권력, 인간의 탈조차 벗어 버린 짐승의 시대. 오늘날 <노자>를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자》, 그 은밀한 권력의 기술

1. 천하통일天下統一

맹자는 중국 역사를 일치일란一治一亂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다스려진 평화로운 시대가 열린다면(一治) 이어서 다시 혼란스러운 시대(一亂)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역사란 치세治世와 난세亂世가 교차는 현장입니다. 치세란 안정된 왕조가 등장하여 천하를 지배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반대로 난세란 천하가 이리저리 찢겨 다양한 나라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루던 시대를 말합니다. 이 일치일란의 사이클 때문에 중국 역사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단순히 통일 왕조의 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일왕조와 통일왕조 사이의 혼란기에는 워낙 여러 나라가 등장한 바람에 이름을 다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역사를 두고 말하면 통일 신라의 몰락 이후 짧게 등장한 후삼국 시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뉜 나라가 셋이 아니라 열 몇 개가 되면 이제 외우기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이 시대를 하나로 묶어 부릅니다. 예를 들어 ‘위진남북조’라던가 ‘오호십육국’이라던가…

이 혼란기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춘추전국시대도 저물 때가 되었습니다. 혼란기를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기를 고대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춘추전국 말기에는 어떠한 형태로 통일될 것인가, 어떤 나라가 통일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역사는 서쪽에 위치한 진秦이라는 나라의 손을 들어줍니다. 서쪽에서 힘을 키우던 이 나라는 동쪽으로 전진하며 한 나라씩 지도에서 지워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천하를 통일합니다. 기원전 221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진나라의 통일에는 법가法家라는 사상가들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법가는 법法, 특히 문서화된 성문법成文法을 기준으로 강력한 통치 체제를 만들어 갑니다. 법이 현존하는 오늘날에는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법이 없던 나라도 있었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맞습니다. 법 없이도 나라는 잘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듯 ‘법 없이도 평화로운, 양심적인’ 사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법 없는’ 아직, 명문화된 법이 없는 사회였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문서화된 법조문이 없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이런 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범죄나 사회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는 통치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과거 관리들은 형을 집행하는 권력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행정과 사법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판결해주는 역할까지 떠맡았습니다. 한 사람의 판단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던 것이지요. 한편 전통적인 관습도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관습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전통 사회에서는 흔한 방법이었습니다.

법가는 법으로 공과를 확실하게 평가했습니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렸으며 법을 어긴 자는 엄하게 처벌했습니다. 그 결과 국가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며, 공을 세우고자 하는 병사들 덕택에 전쟁에서도 쉽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법가의 도움으로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던 진은 천하를 재패하고 새로운 시대를 엽니다.

진의 통일은 새로운 통일 왕조의 등장만을 의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황제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의 통일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왕’, 혹은 ‘천자’라 불리던 통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의 통치자는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며 지고至高의 존재를 자처했습니다. 여기서 황제는 중국 고대의 ‘삼황오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진의 군주였던 영정嬴政은 스스로를 첫 번째 황제라는 뜻에서 ‘시황제始皇帝’라고 칭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이 바로 그입니다. 보통 군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후대 군주가 역사적 공과를 따져 선대의 군주를 부르는 호칭을 붙여줍니다. 이것을 시호라 부르지요. 그러나 진시황은 스스로 시호를 거부하고 그저 ‘첫 번째 황제’로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세운 제국이 자신을 시작으로 만세萬世토록 천하를 지배하리라는 기대감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의 야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 이세황제二世皇帝 이후 진은 멸망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 과인은 보잘것 없는 몸이지만 군대를 일으켜 포학한 반도들을 주살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혼령이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섯 나라 왕이 모두 자신들의 죄를 승복하니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다. 이제 (나의) 호칭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룬 공적에 걸맞지 않게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그대들은 제왕의 칭호를 논의하라.”

“…신들이 삼가 박사들과 함께 의론하여 말하기를 ‘고대에는 천황天皇이 있고, 지황地皇이 있고 태황泰皇이 있었는데, 태황이 가장 존귀했다.’라고 했습니다. 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존칭을 올리나니, 황을 ‘태황’이라 하십시오. 명命을 ‘제制’라 하시고, 영令을 ‘조詔’라 하시며, 천자가 스스로를 부를 때는 ‘짐朕’이라 하십시오.”
진나라 왕이 말했다.
”‘태泰’자를 없애고 ‘황皇’자를 남겨둔 후 상고 시대의 ‘제帝’라는 호칭을 받아들여 ‘황제皇帝’라고 부를 것이다. 다른 것은 의논한 바대로 하라.”

…
”짐이 듣건대 태고 때에는 호號는 있었으나 시호는 없었으며, 중고 때에는 호가 있다가 죽으면 행적에 의거해 시호를 삼았다고 한다. 이와 같다면 자식이 아버지를 논의하는 것이나 신하가 군주를 논의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짐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지금부터 시호를 정하는 법을 없애노라. 짐은 시황제始皇帝라 부른다. 후세부터는 수를 세어 이세二世, 삼세三世에서 만세萬世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전하도록 하라.”
- <사기본가>, 김원중 역, 민음사. 219~220쪽

<노자>를 이야기하는데 천하통일과 진시황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노자>라는 책이 천하통일로 성립한 제국의 시대를 좌우로 기록된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노자>라는 책이 완성된 것은 진한교체기를 지나 한대漢代 초기로 추정합니다. 한편 이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인간형, 황제라는 통치자와 <노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에서 말하는 도道란 이 지고의 존재의 통치술을 의미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노자>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봅시다.

 

2.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과 노자老子

<노자>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시선을 통해 노자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마천이 말하는 노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인물입니다.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성은 이씨李氏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이다. 그는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 머무를 때 노자에게 ‘예禮’를 묻자 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숨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 데 힘썼다. 오랫동안 주나라에서 살다가 주나라가 쇠락해 가는 것을 보고는 그곳을 떠났다. 그가 함곡관에 이르자. 관령 윤희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은둔하려 하시니 저를 위해 억지로라도 글을 써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노자는 《도덕경》 상, 하편을 지어 ‘도道’와 ‘덕德’의 의미를 5000여 자로 말하고 떠나갔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여생을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 의하면 노래자老萊子도 초나라 사람으로 책 열다섯권을 지어 도가의 쓰임을 말하였는데,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대체로 노자는 160여 살 또는 200여 살을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노자가 오래 살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도를 닦아 양생의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은 담이 바로 노자라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아는 이가 없다. 노자는 숨어 사는 군자였다.
… (이하 생략)
- <사기열전>, 민음사 81~83쪽.

과연 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어보아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이름조차 몇 개가 튀어나옵니다. 맨 처음에는 이이李耳라고 했다가, 다음에는 노래자老萊子라는 이름을 듭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노자에 대해 당시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마천은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은 노자가 숨어사는 군자였기 때문이랍니다. 사마천은 공자가 노자에게 배웠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믿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존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인물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노자에 대해 알 수 있는 믿을만한 정보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으려 합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증명할만한 자료도 없을뿐더러, 설령 노자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안다고 해서 <노자>라는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구를 일부 소개하면 역사적 인물로서의 노자는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춘추시대의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겹쳐서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적 인격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매우 설득력있는 주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 <노자>와 역사적 인물 노자를 쉽게 연결시키지만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노자>는 제목이 <노자>일뿐 역사적 인물로서의 노자와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사마천의 글에서 볼 수 있듯, <노자>는 매우 짧은 책입니다. 약 5000여 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짧은 책은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앞부분 37장을 <도경道經>, 뒷부분 34장을 <덕경德經>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각각 도道와 덕德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둘, 도경과 덕경을 합쳐, <도덕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노자>의 다른 이름이 바로 <도덕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둘을 합쳐 <노자 도덕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도덕경>이라고 하지 않고 <노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덕경>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전’의 지위에 오를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겨의 경전이었던 텍스트들도 오늘날에는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잃었기 때문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논어>나 <맹자> 따위를 읽을 때, 그것은 경전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지혜를 담고 있는 위대한 고전이기 때문에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상이 담겨 있다는 의미에서, 비록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으나 전통적인 호칭을 따라 <노자>라는 이름을 쓰기로 합니다.

<노자>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습니다. <노자>에 얽힌 흥미로운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땅은 크고 넓습니다. 그런데 깊이도 깊나봅니다. 1993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무덤이 발견된 것인데, 그 무덤 속에는 죽간 책이 무더기로 들어 있었습니다. 무려 기원전 4세기로 추정되는 이 무덤에서 나온 문서 묶음을 학자들은 ‘곽점초간郭店楚簡’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곽점초간 가운데 <노자> 일부가 섞여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이 문서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노자>와 유사하기는 하나 적지 않은 부분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자>를 보는 관점도 많이 변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편 한대漢代에 비단에 적힌 백서帛書 <노자>도 나왔습니다. 이 역시 오늘날의 모습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오늘날처럼 인쇄소에서 인쇄기를 돌려 같은 책을 찍어내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고대의 책들은 계속 모양이 변하면서 유통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처음에는 어떤 모양이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곽점초간과 마왕퇴 백서라는 유물이 발견되면서 그 궁금증이 조금은 풀릴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오늘날과 똑같은 형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노자>의 본래 모습, 이전 모습을 복원하려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오늘날 통용되는 <노자>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3.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노자>는 ‘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바로 ‘도가도비상도’라는 말로 시작하지요. 이것을 풀이하면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앞서 강의에서 소개한 <장자>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이 이야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자>에서도 이야기했듯 도(진리, 이치 등등)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말할 수 있는 도라면 그것은 가짜라는 말입니다. 기왕 시작했으니 <노자>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나머지 부분도 함께 살펴 봅시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 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21쪽

<노자>역시 언어의 한계로부터 시작합니다. 참된 것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말로 옮길 수 있는 것은 그 본래의 것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옮겼을 때의 실망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생각만큼, 느낌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말이 원망스럽지 않던가요? 지금 <노자>역시 그 답답함의 여백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노자>에서 말하는 도란 이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와 이름 이후에 등장하는 무(없음)과 유(있음)에 대해 주목해봅시다. 무는 세계 시작을. 유는 모든 만물을 아울러 부르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계는 무에서 유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하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무’란 아무 것도 없는 ‘절대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유-있음’과 상대적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냥 ‘없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무엇이 없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빅뱅이전, 물질적인 우주가 구축되기 이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도리어 세계는 무에서 어느 순간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계속 있어왔던 것이며, 여기서 ‘무’란 늘 있는 그것의 근거가 되는,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작’이라는 말이 직선적인 시간을 떠오르게 만들기에 문제가 된다면 ‘기틀’이나 ‘근본’, ‘바탕’이라는 말로 바꿔도 좋을 것입니다. 결론만 말하면 이 세계에는 이 무와 유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개념적으로 보자면 이 무와 유, 없음과 있음을 아우르는 더 큰 개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노자>는 이 무와 유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일러 ‘현묘玄妙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현묘’는 원문으로 보면 ‘현玄’입니다. <장자>에서 설명했던 혼돈을 떠올리면 쉬울 것입니다. 본래 어둡다는 뜻의 이 ‘현’이란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이 닿지 않는 저 깊은, 혹은 멀리 있는 무엇. 그래서 그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볼 수 없으며 단지 현묘하다, 아득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현묘함, 도道야 말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도’를 철학적인 의미로 풀이합니다. 진리에 대한 <노자>의 설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노자>의 ‘도’를 철학이 아닌 정치적인 의미에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이 ‘도’가 권력의 속성을, 앞서 이야기한 황제라는 지고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계는 다양한 이질적인 존재들이 모여 사는 공간입니다. 이 세계를 과거 사람들의 용어로 옮기면 ‘천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천하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천하 밖의 세계도 있습니다. 천자의 지배가 닿지 않는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요. 과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 동쪽 오랑캐라고 불렀습니다. 천자는 이 미개한 오랑캐들에 대해서도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 다스림이 미치지 못했을 뿐, 그들도 천자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존재들을 다 포괄하고 책임지는 천자-황제는 마치 ‘도’와 비슷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존재, 유有를 다스리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무無까지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은 ‘도’의 속성인 동시에 황제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백성은 언제나 황제의 은총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도가 말해질 수 있다면, 명확하게 인식된다면 도가 아니듯, 황제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이해될 수 없어야 합니다. 진시황은 스스로를 ‘짐朕’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짐’이 ‘조짐兆朕’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태가 완벽하게 드러나기 이전을 뜻하는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권력을 가리키고자 했습니다.

황제, 절대권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백성들, 국민들에게 통치자의 행동이 속속들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언제나 쉽게 알 수 없도록 감춰져야 합니다. 쉽게 알려지면 그것은 누구든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 황제는 백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 알아야만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역사상 절대 권력을 지향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손쉽게 정보를 모으고자했습니다. 그것도 은밀하게.

 

3.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다

不出戶知天下 不闚牖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為而成

문 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고, 창문을 통하지 않고도 천도를 본다. 나간 것이 점점 멀어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이런 이치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명철해지며, 하지 않고도 이룬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365쪽.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보았는지요. 거기서는 절대 권력에 의해 통제된 세상을 보여줍니다. 안을 볼 수 없는 검고 커다란 차량이 있습니다. 빙빙 돌아가는 원형 접시를 탑재한 이 차량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대화를 검열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벽을 뚫고 이불 밑을 뚫고 엿듣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들의 대화를 수집해야 누가 반동을 꾀하는지,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TV나 매체를 통해서는 언제나 정부를 통해 통제된 정보만 전해질 뿐입니다. 권력이 어떻게 정보를 독점하며, 반대로 어떻게 정보를 조작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지요.

이런 것은 단지 상상 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영화 ‘타인의 삶’은 공산정권이었던 동독의 한 비밀경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동독에서는 10만 명의 직원과 20만 명의 정보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주인공인 비밀경찰은 집에 감청장치를 설치하고 이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까지 세세하게 기록합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바로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노자>에서는 ‘문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안다’고 말합니다.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까요? 바로 절대 권력을 손에 쥔 황제가 그럴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황제는 가만히 앉아서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편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멀리 나갈수록 아는 것이 점점 줄어듭니다. 여기서 멀리 나간다는 말은 황제의 자리에서 멀리 떠나 간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질수록 아는 것, 정보를 통제하고 알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줄어든답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보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단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따로 무엇을 하지 않고서도 일을 이룰 수 있다(不為而成)고 합니다. 이 말에 주목해봅시다. 무엇을 하지 않고서도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어떻게 행동 없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손에 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권력이란 한 사람의 능력의 총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힘들을 모두 총괄하여 일컫는 말이지요. 황제가 무서운 것은 그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람을 찢어 죽일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편 매우 영리하여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만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며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존재들, 그의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지 않고서도 이룬다는 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일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道常無為而無不為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통치자가 만일 그 이치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299쪽.

‘도 는 항상 무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를 원문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 도는 항상 하는 일이 없으나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이 역설에 주목해야 합니다. 도는 이 세상의 움직이는 근본 원인입니다. 그것은 모든 움직임의 중간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도 없이는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도가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늘 ‘하지 않는 모양’(無爲)으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도에게 아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도리어 이 도란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앞에서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진은 법을 사회 통치의 중요한 개념으로 삼은 뒤, 구체적인 법령으로 사회를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황제’입니다. 법 위에 있는 존재, 법 바깥에 있는 존재기 때문에 그는 역설적으로 법과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법이 있기에 황제는 일일이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않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법에 얽매여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 법을 바꾸거나, 혹은 법의 예외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합니다. 이 법을 두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다가는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법의 저편에 있으면서 만물이 스스로 돌아가도록(自化) 두어야 합니다.

 

4. 뺏고 싶으면 먼저 주라

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強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強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장차 접고 싶으면 먼저 펴 주어야 한다. 장차 약화시키고 싶으면 먼저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장차 폐지하고 싶으면 먼저 잘 되게 해 주어야 한다. 장차 뺏고 싶으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미명이라고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고기는 물을 떠나면 안 되고, 나라의 날카로운 도구로 사람들을 교화하려 하면 안 된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293쪽.

<노자>는 역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번에 인용한 문장 역시 역설입니다.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답니다. 빼앗고 싶다면 먼저 줘야 한답니다. 그런가하면 무엇인가를 없애고 싶다면 먼저 잘 되게 해줘야 한답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편 그러면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나중에 <주역>에서도 볼 수 있는, 모든 일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의 중요한 특징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늘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너무 한쪽으로 힘을 강하게 주는 것은 도리어 반대 방향으로 힘을 강하게 주는 것과 같게 됩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배운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떠올리면 됩니다. 물리학에서도 하나의 힘이 한쪽으로 작동하면 그 반대로 그와 같은 크기의 힘이 작동합니다. 사람 사이의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하고자 한다면 그 반대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지 않고 빼앗으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빼앗으려고만 한다면? 일단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아니면 위협이 될 만한 무엇이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빼앗았다고 합시다. 문제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문제가 될 소지가 많습니다.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은 괜찮을지 모르나 계속적으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를 나랏일에 비유 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고 싶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걷기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 무력이 강할수록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저항도 만만치 않게 강력하겠지요. 너무 폭력을 사용하면 자칫하다가는 군주의 자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폭력으로, 강압으로 이루어놓은 평화는 오래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노자>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일단 주고 은근히 빼앗아야 합니다. <노자>에서는 이를 두고 미명微明, 미묘한 지혜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微, 드러나지 않도록,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빼앗을 수 있으며, 계속해서 빼앗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와 비슷한 예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 거대 통신사들이 등장했습니다. SK나 KT 등등. 그러나 이 통신사들이 이처럼 거대하게 성장한데는 기술의 발전이나 소비자들의 수요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핸드폰이 싸게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계를 싸게 주고 그 동안 그 수십 배의 통신료를 오랫동안 천천히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꺼내가는 것이지요. 빼앗으려면 주라는 교훈을 잘 실현한 것입니다.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은 ‘일단 주라’는 명령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은품에 혹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일단 작은 것을 주어야 더 많이 소비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질문해야 합니다. 미명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인가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은 ‘교환의 법칙’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주는 것은 빼앗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교환은 결코 등가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주는 것만큼 빼앗는다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 많은 것을 빼앗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은밀한 지혜, 즉 도道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자>식의 도를 우리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천하를 지배했던 절대 권력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정 치적 수장인 대통령이라던가, 아니면 입법부의 국회의원들. 한편 정말로 보이지 않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삶을 크게 지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쇼미더무비 1강 – <죽은 시인의 사회>, 지옥에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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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헬튼과 헬조선 사이

영화를 보며 ‘헬튼’이라는 말에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학교를 조롱하며 내뱉는 저 말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지옥불반도’. 아마 2015년을 장식한 수 많은 말 가운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말일 것이다. 누군가는 2015년을 ‘헬조서니즘’의 탄생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하긴 신문과 잡지, 언론, 정치인의 입에까지 이 표현이 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말은 문제적 표현이다.

거꾸로 돌아보면, ‘지옥’이라는 표현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된 표현 가운데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17살, 고등학교 나이 또래의 영화 주인공들이 경험한 현실은 입시라는 경쟁에서 비롯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전통’이라는 것도 결국엔 재학생 가운데 다수를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1989년에 제작된 이 오래된 영화를, 그것도 이국 청소년의 삶을 마치 우리 이야기처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대다수 사람이 이 지옥, 입시 지옥의 불길을 통과했고, 통과하고 있고,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갈등, 압박, 폭력은 우리네 삶에서는 일상적인 게 아니던가. 영화에서 헬튼이라 조롱했던 그 지옥의 현실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곳에 우리가 처해있는 건 아니냐는 질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다닌다. 교정은 아름답고,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을 길러내기 위한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아무리 똑같이 입시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라틴어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대신 미적분을 공부한다고 하면 될까? 그렇다면 그 장면은 어떤가? 가죽 축구공을 차고, 조정을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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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저들이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식이라는 사실을 번뜩 깨닫게 된다. 언뜻 언급되는 아버지의 직업이란 이렇다. 의사, 변호사, 판사 등등. 아버지 덕분에, GM 소송을 처리했다는 그 아버지 덕분에 부잣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함께한 녹스를 보며 이질감을 느낀 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저들 사이의 대화에서도 이런 문제가 살짝 언급된다. ‘누완다’라고 이름을 바꾼 찰리는 이들 가운데서도 잘사는 집 도령으로 꼽힌다.

따라서 영화를 보면서 저 정도의 학교에 다닌다면, 저런 교육을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저들은 헬튼이라며 자신들의 현실을 지옥에 빗대어 표현하지만, 거꾸로 저 말은 얼마나 낭만에 푹 적셔진 말이던가. 만약 영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의 친구가 되었다면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니네가 지옥을 알아?!’

영화를 처음 보았던 약 20여 년 전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억압적인 학교, 그리고 그 속에서 저마다 꿈을 찾기 위해 갈등하는 이들의 삶에 동감하면서도 이들이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부럽고 선생도 부러웠다. 비단 키팅 같은 선생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저런 기품있는 교장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적어도 저들은 교실 안에서 쌍욕을 내뱉으며 함부로 몽둥이를 휘두르지는 않는다. 게다가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영화를 보면서 ‘진짜 지옥은 여기 있다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입시 지옥’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그건 ‘지옥’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 아닐까? 아니면 혹시 나이가 들어서 ‘입시’와는 거리가 먼, 학교와 영 동떨어진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걸까? 궁금해서 ‘입시지옥’이라는 말과 ‘헬조선’을 각각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훨씬 더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입시지옥’이라는 말도 간간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빈도가 덜하다. 고로 슬픈 현실은 이렇다.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 나라 전체가 지옥인 지옥불반도에선, ‘입시지옥’은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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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지옥’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말이 이미 사회적 용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지옥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넘친다. 여기에는 다양한 문제가 섞여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 경제에 대한 위기감, 취업-결혼-육아로 이어지는 정상적 삶의 붕괴… 이런 현실에서 영화에서 말하는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기라는 말은 좀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죽은 ‘시인의 ‘사회’

살다 보니 ‘영화 같다’는 말처럼 허망한 말이 없더라. 현실을 뛰어넘는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일을 두고 영화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현실이 영화를 압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영화는 현실을 확장하기보다는 현실의 일부, 한 토막을 겨우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의 한 토막을 보여주지만 그 가운데도 사유해야 할 부분이 있을 테니. <죽은 시인의 사회> 역시 마찬가지. 저렇게 낭만적인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며 발로 차버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전달되는 몇 가지 주제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란 잘못된 번역이다. 원제는 ‘Dead Poets Society’ 이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여기서 ‘Society’는 ‘사회’라고 옮기기보다는 ‘모임’ 정도로 옮겨야 옳다. 즉 이들의 굴속에서 가진 모임의 이름이 ‘Dead Poets’였다는 것. 그러나 워낙 널리 알려진 제목이고, 뭔가 멋진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이른바 ‘초월번역’.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모임’,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동아리’라는 데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옥이라며 조소한다. 그러던 그들의 삶이 바뀐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키팅 선생의 존재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또래들의 모임, 비밀 결사와 같던 그 모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그 작은 동굴 속의 모임.

돌아보면 어렸을 적 이 영화를 보며 셋의 부재가 아쉬웠다. 시, 친구, 선생. 돌아보면 영화처럼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문학 선생. 그의 수업을 통해 만나는 작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친구. 함께 서점을 다니며 같이 읽을 책을 고르기도 했다. 같이 시집을 읽어보자며 뜻을 모아보기도 했다. 부족한 안목에 그나마 고른 시집이라는 게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집이었지만. 김소월의 시집은 다 읽었던 것 같은데 한용운의 시는 다 읽지도 못하고 던져두고 말았다.

영화를 보며 다시 생각하는 것인데 학창시절 저들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더 깊이 시를 읽을 수 있었을 테다. 그 영향 때문일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문예반에서 시를 지어보겠다고 바둥거렸는데 거기서도 함께 시를 읽고 이야기할 손꼽을 정도였다. 결국 다 채우지도 못한 내 습작노트는 나만의 부끄러운 기억이 되고 말았다.

‘카르페 디엠! : 현재를 즐겨라!!’ 그런데 어떻게? 여러 길이 있겠지만 개별적 차원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즐김’이란 개인적 차원에 그치는 것은 아닐 테다. 인간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人間)에 있는 존재여서 자신을 그 사이의 틈에서 확장시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수다스럽다. 그것을 전염시키고,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기에. 그렇기에 그 욕망을 풀어내는 공간은 갈등이 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욕망들 꺼내놓고자 하기에. 그것도 더 많이.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출발점 필요하다. 이들의 모임이 단순히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는 데 주목하자. 이들은 시를 읽었다. 시, 넓게 말하면 문학이야 말로 이들의 유대를 지탱해주는 튼튼한 버팀목 이었다. 영화에서 ‘시’는 분명 이들을 엮어주는 매우 훌륭한 재료였다.키팅 선생이 시를 매개로 학생들과 만났고, 학생들은 시를 통해 우정을 쌓았듯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이야기해보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학교를 떠나며 키팅은 자신의 물건을 찾기 위해 교실에 들린다. 마침 영문학 수업시간이었다. 키팅의 자리를 대신한 교장은 교과서를 처음부터 다시 나가려고 한다. 반복되는 질문, ‘시란 무엇인가?’ 영화에서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체 시란 무엇인가?

시詩… 참으로 먼 이야기이다. 시란 따분하고 재미없고 심심하며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채기 힘든 아리소한 말의 묶음 아닌가? 게다가 외워야 할 것은 어찌나 많은가? 심상이며, 은유니 환유니 하는 말들에, 음보, 운율, 형식 등등. 궁극적으로 수능 공부를 위해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면 시는 결코 정복하기 쉽지 않은 대상이다. 시 문제만 나오면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에 고전시가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거꾸로 키팅이 쓰레기라며 서문을 찢어버리라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시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시는 수학이 아니다. 시의 가치를 그래프로 그려서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키팅의 말을 기억하자. 시는 죽지 않는 말들의 보물 창고다. 그렇기에 ‘죽은 시인’이란 어쩌면 모순적 표현일 수 있다. 시인의 삶은 무덤으로 들어가겠지만 그의 말들은 늘 살아서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시란, 문학이란, 글이란, 책이란 그렇게 죽음을 건너오는 목소리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삶을 즐겨라’, 어떻게? 삶을 즐기려면 죽음과 싸워야 한다. 살아있어야 즐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거꾸로 어떻게 죽음과 대면하여 저항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죽지 않는 말로 가능하다. 죽지 않는 말, 죽음을 건너온 말, 죽음에도 무뎌지지 않는 말을 담아보라. 그 말들의 생명이 곧 우리의 생生이 될테니.​ 이것이 죽음과 맞닿은 지옥에서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