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정부는 건국 6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관련하여 ‘건국 60주년’을 운운하는 정부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많다. 가끔 놀러가는 이정환 닷컴에서도 이를 문제 삼았다.
관련글: 누구 맘대로 건국절인가.
꽤나 뒷북이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오는 15일 광복절에 건국 60주년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그 날을 우리나라의 건국으로 삼는다는 해괴한 논리에서다.
우리나라가 1948년에 건국됐나. 이건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지만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 출발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2333년 단군의 고조선 건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누구 맘대로 올해가 건국 60주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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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첫째, 헌법 전문에 나와있는 건국이념과 맞지 않는다. 적어도 헌법 전문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보지 않았다. 둘째, 이렇게 될 경우 같은 해 수립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즉 북한과의 문제가 있다. 건국이라고 말할 경우 남북한은 서로 완전히 독립된 개별 국가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등등… 반만년의 역사가 60년으로 단축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광복절이 건국절로 뒤바뀐 데 있어 뉴라이트 친일파의 입김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부수립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건국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역사적인 상황들을 살펴보아야 하지만 여튼 찝찝하다. 심심해서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은 1999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찾아봤다. 말하나 차이겠지만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0주년’이라고 했다. 복잡하게 찾아볼 것도 없이 기념 지폐 인증샷을 보면 된다. 좀더 찾아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0년전, 그러니까 1998년에 우리정부도 기념 화폐를 제작했다. 그런데 그때 명목은 ‘정부수립 50주년‘이었다. (관련글: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주화’ 추첨 행사)
10년 전이 대한민국 ‘수립’ 50주년이었던 것이 왜 갑자기 ‘건국’ 60주년이었이 되었을까?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 60년, 즉 환갑이라고 호돌갑이다. 십간과 십이지를 따지는 동아시아 전통에 따르면 60주년, 환갑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50주년, 반 백년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갑자기 ‘건국’이라는 말은 어째 많이 부담스럽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1998년에도 ‘건국 50주년’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개개인이 명명한 이름이었을 뿐,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표한 이름은 아니었다. ‘정부수립일’과 ‘건국일’은 다르지 않는가.
찾는 김에 현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살펴보았다. (헌법 원문 보기)
헌법 제10호 전부개정 1987.10.29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이상이 현재 헌법의 전문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즉, 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그 근원을 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60주년으로 제단할 경우 임시정부와는 단절된 역사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담 1948년 최초의 헌법은 어땠을까?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다운 받을 수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큰 차이는 없다.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 그러나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밝히고 있어 새로운 국가의 수립이 아닌 나라의 복원이라는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 한편 서기가 아닌 단기를 사용하여 단군 조선과의 연속성을 보이려고 한 점도 흥미롭다.
살펴보는 김에 북한 헌법도 살펴보았다. 북한 헌법 전문은 김일성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 가득차 있다. (최근 헌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북한 헌법 원문 보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정치,경제,문화,군사 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
(… 이하 김일성에 대한 찬양 ㅡ”ㅡ)
이쯤되면 아바이 수령을 위해 눈물을 쏟는 인민들을 이해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일종의 신앙인 이상 설명은 무의미하다. 김일성은 나라의 창건자이자, 시조 게다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기까지하다. 근데 흥미로운 점은 북한의 경우 1948년 건국을 훨씬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점. 마치 지상에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한 양 호돌갑 떨며 자랑하는 그들, 북한의 뒷꽁무니를 좇아 간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건국 60주년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조선일보에서는 북한이 여전히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참고: “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선택은 정당했다” 그래, 북한은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에 건국의 이념적 근거를 둔다고 치자! 그렇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의 이념적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3.1운동과 독립운동과의 연속성을 끊는다면 과연 어디에 이념적 근거를 두어야 할까? 결국 미국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미국과 함께한 60년. 어쩌면 그것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의 보다 분명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 젠장.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지금도 북한 정보를 찾는 것은 꽤나 힘들다. 1948년 제정된 북한 최초의 헌법을 찾으려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 사이트를 있는 다 찾아 봤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구글에서 일부 북한 사이트가 걸리는 듯 했지만 페이지를 볼 수 없었다. 통일부나 국정원 등도 가봤는데 ㅡㅡ” 생각보다 정보가 형편없었다. 혹시라도 1948년 북한의 헌법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