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이야기 #1 – <논어>, 그 뻔한 책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서당에서 한결같이 <논어>를 공부한다는 점입니다.

10년을 운운하는 이유는 토요서당이 벌써 10년을 넘었기 때문에 그래요. 옛 수유너머가 원남동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사정에 따라 장소가 바뀌기는 했지만 ‘토요서당’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모이고 있어요. 10년이나 되었으니 토요서당을 거친 친구들도 많이 나이를 먹었답니다. 초등학교 때 만난 친구가 훌쩍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어있기도 해요. 형제를 만나는 일도 있고…

이런 많은 변화 속에서도 <논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논어>가 가장 풍성한 고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마법천자문>이라는 책이 유행하는 바람에 다시 <천자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 같아요. 하긴 옛날 한문 공부라고 하면 누구나 <천자문>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하늘 천 따지’ 하면 누구나 그 뒤를 이어 ‘검을 현 누르 황’하고 외칠 정도지요. 어찌나 널리 알려졌는지 한자를 잘 알지 못하는 예닐곱 살 친구들도 <천자문> 앞 부분은 알더라구요. 그것도 우리에게 익숙한 음을 붙여서.

이렇게 유명한 책이지만 그 뒤를 혹시 아시는지요? <천자문>은 천 글자로 된 책인데, 아마 1%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 거예요. 명성에도 불구하고 채 열 글자를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 이유는 <천자문>이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글자로 만든 책인데 철학적 내용부터 신화적, 역사적 내용까지 담으려 하다 보니 내용이 너무 많아졌어요. 게다가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글자들도 많답니다. 한문을 일상에서 익혔던 조선 문인들도 그 어려움을 잘 알았나 봐요. 정약용의 경우에는 새로 다른 <천자문>을 제안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글자’가 앞선다는 점이 큰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른바 한문 세대, 학교 과목 가운데 한문이 있었던 세대 중에는 한자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기과목’이었던 바람에 외우기는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글자로 보면 한자가 쉽지 않습니다. 쓰기도 복잡하고 글자마다 음과 뜻을 따로 익혀야 하니 어려운 게 당연하지요.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재미도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글자는 글을 위해 필요한 거랍니다. 누군가는 글자를 모르고 어떻게 글을 읽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실 누구도 글보다 글자를 먼저 익힌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자를 익혀 글을 읽는 것보다, 글을 통해 글자를 익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생각하면 <천자문>은 물론 ‘文-글’이기는 하지만 ‘字-글자’의 모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때에도 마치 단어장을 익히듯 그렇게 익히곤 하지요.

따라서 옛날 초학자를 위한 교재로 알려진 <천자문> 대신 <논어>를 읽는 것은 ‘글’을 읽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짧은 대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짧은 호흡으로 한문을 공부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예를 들어 <맹자>의 경우에는 한 주제의 대화가 무척이나 길어요. 어른들도 <맹자>를 강독할 때면 한 대화가 몇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한답니다. 지금 토요서당식으로 공부하면 어떤 대화는 몇 달이 걸릴지 몰라요.

<논어>를 좋아하는 선호하는 다른 이유로는 윤리적인 내용이 덜한 점도 있습니다. <사자소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천자문>처럼 네 글자로 끊어진 이 책은, 어린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다양한 행동 지침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이 많아요. 부모님께 인사를 잘해라, 나가고 들어올 때는 꼭 말씀을 드려라, 밥 먹을 때엔 말하지 말라 등등.

그래서 이른바 예절 교육 차원에서 <사자소학>을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는데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예의범절’이라는 것은 시대마다 바뀌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이미 기성세대도 <사자소학>의 예의를 몸에 익히지 않고 있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 그건 공염불일 겁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도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에요.

<논어>를 읽어보면 그렇게 규범적인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라는 명령이 별로 없어요. 당위와 명령으로 가득 찬 <사자소학>을 읽다 <논어>를 읽으면 뭔가 느슨한 맛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 <논어>의 참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뭘 하라는 이야기 대신, 공자라는 인물과 함께한 제자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예요.

얼마 전 한 친구가 <논어>를 읽다 웃었다며 저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인즉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하는 말이에요. 보내준 번역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사는 똑똑한가보구나? 나는 (내 공부도 벅차서) 그럴 겨를이 없다.” ‘단목사’라는 이름의 제자, 자공에게 공자가 한 말이예요. 자공이 사람들과 저 자신을 비교하며 다니는 모습을 보고 공자가 한 말입니다. 그 모습이 얄밉게 보였나 봐요.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논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잘 읽으면 때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한 사건들이 많거든요. 언제든 우리 주변에 일어날 것 같은 일. 그러고 보면 <논어>라는 책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요. 엄청난 진리나 고귀한 말이 담겨 있을 거로 생각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뻔하다는 것이 시시하다는 것은 아닐 거예요. 우리에게 익숙한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이지, 그게 별것 아닌 이야기라는 건 아닙니다. 도리어 뻔한 가르침이야말로 삶에 큰 도움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누구나 경험하는, 경험할 일상적인 가르침이 <논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토요서당에서 10년 동안 읽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 10년도 읽을 수 있을 테구요.

2017년 선농인문학서당

2015년부터 서울사대부고에서 ‘선농인문학서당’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첫 해 첫학기는 다른 분이 <맹자>를 하셨고, 둘째 학기에는 제가 <논어>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1년간 <사기본기>와 <사기열전>을 읽었어요. 학교 안에서 하는 강의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여러 생각도 들고…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올해에도 강의 부탁을 받았어요. 올해에는 <장자>와 <루쉰문집>을 읽기로 했답니다.

아래 강의 소개를 붙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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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선농인문학서당

고전이란 낡은 글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수천년의 시간을 살아내온, 오늘날에도 생생한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글을 말합니다. 오래 살아남은 글. 한편 오래 곱씹어 읽어야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쉽게 읽히지 않는 글.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매우 반가운 소식이기도 합니다. 평생토록 읽어도 되는 글이라는 뜻이기에.

지금까지 ‘선농인문학서당’에서는 <논어>와 <맹자>, <사기본기>와 <사기열전>을 읽었습니다. 올해에는 장자와 루쉰을 만나려 합니다. 둘은 수천년의 시간을 두고 떨어져 있지만 기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낯선 이야기들을 전해주기 때문이지요.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이야기들. 이 매력적인 문장 속으로, 멋진 모험으로 초대합니다.

1학기_ <장자>, 광인의 우화

여기 수수께끼 같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장자>라는 책입니다. 어찌나 괴상한 이야기가 많은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에 붙은 별명이 ‘광언狂言’, 미친소리 입니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장자 본인은 ‘미친 사람’ 광인狂人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글에서 또 다른 생각의 방법, 삶의 기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의 우화를 곱씹으며 여러 질문들을 던져볼 것입니다. 답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질문만큼 깊어지고 날카로워질 수 있을테니까요.

* <장자>는 총 33편의 방대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장자 본인의 글이라고 전해지는 <내편> 7편을 중점적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첫 시간에는 강사의 글,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에서 ‘참된 것은 말할 수 없다’를 읽어오면 좋습니다.

1강_ <장자>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2강_ <소요유> 떠나자! 세상 밖으로
3강_ <제물론> 너도 나도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
4강_ <양생주> 삶을 가꾸는 법
5강_ <인간세> 가시밭 길을 걸어가며
6강_ <덕충부> 참으로 잊어야 할 것
7강_ <대종사> 이것이 바로 운명이니 어찌하랴
8강_ <응제왕>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혼돈이라

2학기_ 루쉰문집, 나는 크게 웃고 노래하리라

투창이 된 문장. 루쉰의 글은 투창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어찌나 그의 글이 뼈아팠는지 혹여 자신을 두고 쓴 글이 아닌지 근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답니다. 게다가 루쉰은 그의 글 때문에 살해의 위협을 느끼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한 시대의 모순을 과감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이지요. 루쉰의 글을 읽으면 그가 폭로하는 것이 단지 약 100여년 전 혼란스런 중국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의 외침이 오늘 우리에게도 투창이 되어 날아 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날선 비판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낡은 들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 루쉰의 여러 글 가운데 소설집 <외침>과 시집 <들풀>을 읽습니다. 유명한 ‘아Q정전’과 ‘광인일기’는 물론, 짧지만 강렬한 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외침>의 서문을 읽어오면 됩니다. 아래 순서는 그린비 ‘루쉰문고’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1강_ <외침> 서문 : 철의 방에서 외치다.
2강_ <외침> ‘광인일기’ : 누가 사람을 잡아 먹는가
3강_ <외침> ‘쿵이지’ ~ ‘작은사건’ : 몹시도 부끄러운 날
4강_ <외침> ‘두발이야기’ ~ ‘고향’ : 길을 내며 걸어가자
5강_ <외침> ‘아Q정전’ : 그래 난 버러지야!
6강_ <외침> 나머지 & <들풀> 제목에 부쳐 : 나는 나의 들풀을 사랑한다
7강_ <들풀> ‘가을밤’ ~ ‘길손’ : 허망한 길을 가며
8강_ <들풀> ‘죽은불’ ~ ‘일각’ : 투창을 들어라​

호모 히스토리쿠스 강좌 후기

  • 연구실에서 오항녕 선생의 ‘호모 히스토리쿠스’ 강의를 들었다. 6주간의 강의인데, 반장으로 여러 일을 하기는 했지만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후기나 짧게 남기는 것으로 대체.

 

0.
사실 돌아보면 학창시절 재미를 느낀 과목 가운데 하나가 역사였습니다.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에 나는데, 칠판에 연표를 그려가며 장대한 역사를 술술 풀어내곤 하셨지요. 중간중간 크게 웃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곁들여 주셨습니다. 한편 저 역시 청소년기에 역사책을 읽으며 두 손을 불끈 쥐곤 했답니다. 이 고난 많은 민족사를 보며 홀로 눈물을 훔치곤 했지요.

그러나 철들고 나서는 역사를 그렇게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 감동적인 민족 정기’ 정도가 제가 생각한 ‘역사’가 아니었나 합니다. 다른 재미있는 게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감동을 일부러 꺼려한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른바 ‘역사’를 제목에 단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좀 읽다 내버린 기억이 납니다. 다 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다만 무엇인가 불편함이 남았던 게 분명합니다.

1.
오항녕 선생님의 강의는 이전에도 몇 차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역사’를 다룬 강의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역시나 어린 시절 생각했던 ‘재미있고 감동스런 역사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재미와 감동’이라면 요즘 장안에 화제인 설민석이 더 적합한 인물이겠지요. 요즘처럼 자극적인 세상에서 ‘재미와 감동’에는 억지와 과장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전 몇 주간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게 없는 담담함이 좋았습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진지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역사가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는 선생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만큼 너도나도 한 소리 할 수 있는 분야는 별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가라는 이름이 너무 가벼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를 너무 쉽게 소비하기 때문이 아닐지요.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소위 ‘덕후’들 가운데 ‘역사덕후’, ‘역덕’이 많은 것은 그 반증이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마다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떠드는지요.

그러나 거기에 ‘역사’ 자체에 대한 고민, 자신도 ‘역사적 삶’ 위에 있다는 성찰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역사란 국사, 더 좁게는 ‘국사책’에서 다루는 것이라는 편협한 사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역사공부가 내 삶을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구나’라는 말은 아무런 울림없는 허망한 소리이겠지요.

저는 강의를 들으며 선생님의 역사 – 간단한 일기를 엿보는 게 참 좋았습니다. ‘역사가’가 단순히 역사 사실을 잘 아는 전문가를 넘어 ‘역사적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기-기록이 삶을 건강한 삶을 위한 좋은 도구라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몇년 전 사두었던 10년 일기장을 꺼내어 다시 몇자를 적었답니다. 10년 동안 매년 똑같은 날을 한 장에 기록해두는 일기장인데, 아주 드문드문 적어둔 옛 이야기를 들춰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적어보려구요.

2.

‘2017년 vs 정유년’의 주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의 진보에 대해 어렴풋이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를 더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이른바 ‘수난사’에 질린 이유도 그걸 거예요. 거기에는 늘 어떤 열등감이 서려있거든요. 강의 시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서양 선교사들의 그 시선을 내면화하여 과거를 보는 것이지요. 근대에 도달하지 못했던 까닭, 그 좌절의 이야기를 ‘역사’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매우 익숙합니다.

근대 혹은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조바심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식의 이야기는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덕일 류의 다양한 음모론을 비롯하여, 강의 시간에 나온 실학 논쟁은 물론이고, 정치적 이슈가 된 건국절 논쟁 등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지요. 근대를 실패한 서사로서의 역사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또 다른 진보, 다른식의 발전론을 이야기하겠지만 저는 60갑자로 돌아가는 옛 사람들의 사고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변화 없는 순환이라며 손가락질 하겠지만, 저는 그것이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리듬’일 거라는 선생님의 글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게다가 이 ‘리듬’은 ‘진보’라는 거대 담론이 폐기되고 실제 삶에서도 의미를 잃고 반대로 몰락과 파국, 리셋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더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발전이 아닌, 리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시간의 도구를 바꾸면서 새로 감을 살려야 하는게 아닐까요. 제 기억이 맞으면 선생님의 일기에는 년도 대신 60갑자가 쓰인 것 같던데,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지 짐작해 봅니다.

3.

‘구조, 의지, 우연’ 이것이 단지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는 기준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나의 삶을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문득 제 개인이 겪은 사건들을 나누어 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각잡고 책상머리에 앉아 끙끙대며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길을 오가며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는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구조와 우연이.

둘 모두 자신의 손을 떠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겠지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구조는 다양한 틀로 설명 가능하다면 우연은 그 반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시대에 우연으로 여겨지던 것이 누군가의 연구, 분석을 통해 ‘구조’로 발견될 수도 있겠지요. 프로이트 이전의 다양한 정신증이 그랬을 거예요.

저는 요즘 언어의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실의 변화에 말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현실의 기묘한 사건들을 풀어낼 말들이 별로 없어요. (한편으로는 반대로 지나치게 말들이 앞서 간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구조보다는 우연에 관심이 더 많이 갑니다. 마치 우연처럼 보이는 게 많아서.

다만 우연과 구조를 헷갈리면 안 된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다가는 상대주의자 혹은 운명론자가 되겠어요. 구조와 우연 그리고 의지의 문제는 강의가 끝난 뒤에도 화두삼아 곰곰이 따져보렵니다. 문득 이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아닐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네요. ;;;

2017년 선농인문학서당 기획

우연한 기회에 서울사대부고에서 고전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두 해, 학기로 따지면 세 학기를 강의했네요.

첫 해에는 <논어>를, 둘째 해에는 한 해동안 <사기본기>와 <사기열전>을 읽었습니다. 줄곧 학교밖 청소년을 만나다가 학교 안 청소년들을 만나니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 고등학생의 삶을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올해에도 다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 사실 작년을 마무리하며 아쉬움이 많았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실은 마음 속에 정해둔 책도 있었습니다. ‘인문학’이라면 함께 읽고 싶은 책이 많지만 ‘서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서양 텍스트는 좀 꺼리게 됩니다. 뭐… 제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담당 선생님과 자세한 내용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작년부터 다시 강의를 맡게 되면 장자와 루쉰을 읽겠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미친세상’에 이보다 적절한 글이 있을지요.


2017년 선농인문학서당

고전이란 낡은 글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수천년의 시간을 살아내온, 오늘날에도 생생한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글을 말합니다. 오래 살아남은 글. 한편 오래 곱씹어 읽어야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쉽게 읽히지 않는 글.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매우 반가운 소식이기도 합니다. 평생토록 읽어도 되는 글이라는 뜻이기에.

지금까지 ‘선농인문학서당’에서는 <논어>와 <맹자>, <사기본기>와 <사기열전>을 읽었습니다. 올해에는 장자와 루쉰을 만나려 합니다. 둘은 수천년의 시간을 두고 떨어져 있지만 기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낯선 이야기들을 전해주기 때문이지요.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이야기들. 이 매력적인 문장 속으로, 멋진 모험으로 초대합니다.

1학기_ <장자>, 광인의 우화

여기 수수께끼 같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장자>라는 책입니다. 어찌나 괴상한 이야기가 많은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에 붙은 별명이 ‘광언狂言’, 미친소리 입니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장자 본인은 ‘미친 사람’ 광인狂人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글에서 또 다른 생각의 방법, 삶의 기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의 우화를 곱씹으며 여러 질문들을 던져볼 것입니다. 답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질문만큼 깊어지고 날카로워질 수 있을테니까요.

* <장자>는 총 33편의 방대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장자 본인의 글이라고 전해지는 <내편> 7편을 중점적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첫 시간에는 강사의 글,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에서 ‘참된 것은 말할 수 없다’를 읽어오면 좋습니다.

1강_ <장자>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2강_ <소요유> 떠나자! 세상 밖으로
3강_ <제물론> 너도 나도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
4강_ <양생주> 삶을 가꾸는 법
5강_ <인간세> 가시밭 길을 걸어가며
6강_ <덕충부> 참으로 잊어야 할 것
7강_ <대종사> 이것이 바로 운명이니 어찌하랴
8강_ <응제왕>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혼돈이라

2학기_ 루쉰문집, 나는 크게 웃고 노래하리라

투창이 된 문장. 루쉰의 글은 투창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어찌나 그의 글이 뼈아팠는지 혹여 자신을 두고 쓴 글이 아닌지 근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답니다. 게다가 루쉰은 그의 글 때문에 살해의 위협을 느끼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한 시대의 모순을 과감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이지요. 루쉰의 글을 읽으면 그가 폭로하는 것이 단지 약 100여년 전 혼란스런 중국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의 외침이 오늘 우리에게도 투창이 되어 날아 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날선 비판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낡은 들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 루쉰의 여러 글 가운데 소설집 <외침>과 시집 <들풀>을 읽습니다. 유명한 ‘아Q정전’과 ‘광인일기’는 물론, 짧지만 강렬한 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외침>의 서문을 읽어오면 됩니다. 아래 순서는 그린비 ‘루쉰문고’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1강_ <외침> 서문 : 철의 방에서 외치다.
2강_ <외침> ‘광인일기’ : 누가 사람을 잡아 먹는가
3강_ <외침> ‘쿵이지’ ~ ‘작은사건’ : 몹시도 부끄러운 날
4강_ <외침> ‘두발이야기’ ~ ‘고향’ : 길을 내며 걸어가자
5강_ <외침> ‘아Q정전’ : 그래 난 버러지야!
6강_ <외침> 나머지 & <들풀> 제목에 부쳐 : 나는 나의 들풀을 사랑한다
7강_ <들풀> ‘가을밤’ ~ ‘길손’ : 허망한 길을 가며
8강_ <들풀> ‘죽은불’ ~ ‘일각’ : 투창을 들어라

고전학당 강의계획

어릴 적 우리 집 가계를 보면서 ‘꾸역꾸역 잘 살아간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빚쟁이도 당해보고, 부도니 하는 말도 자주 듣다보니 아무렇지 않더군요. 그러면서도 근근이 살아가는 게 신기하더니 제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

작년 1년 책방 살림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기쁜 건 2015년보다는 조금 나아졌기 때문이고, 헛웃음이 나온 건 대체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에…

작년 외부 강의가 가뭄의 단비 같았습니다.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는 것처럼 마음도 삶도 쩍쩍 갈라질 때 힘이 되었네요. 올해를 시작하면서 한 해 무사히 잘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티다보면 뭐 솟아날 구멍이 있겟지요.

다행히 어디서 강의 요청이 와서 연초부터 강의 계획을 짜느라 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기획은 기획이고 실행은 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아래 기획을 다 하지는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끙끙대며 짜놓은 기획이 아까워 나눕니다.

학교나 도서관 등 고전을 재미나게 공부하고자 하시는 곳이 있다면 불러 주시길. 올 한 해도 단단히 살아 보렵니다. ^0^


<강의소개>

고전은 늘 새로운 해석을 기다립니다. 단순히 과거의 지식만을 담고 있다면, 수고롭게 옛 책을 꺼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식의 홍수 가운데 옛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속에 오늘을 살아갈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천년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은, 오늘 우리 삶의 토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새롭게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논어>, <맹자>, <장자>를 읽으며 우리의 현주소를 반추하며 더불어 미래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공자, 맹자, 장자 이 셋을 만나는 이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강의 방식>

군자의 학문은 지식이 귀로 들어오면 마음에 새겨져서 몸 전체에 퍼져 동작에 드러나게 된다. …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오면 입으로 내뱉는다. 입과 귀 사이는 겨우 사촌 거리이니 어찌 충분히 칠척이나 되는 몸을 훌륭하게 할 수 있겠는가. -<순자>

공부는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귀를 즐겁게 할 뿐이라면 그 공부의 유익은 금새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공부를 삶에 새겨넣기 위해, 텍스트와 직접 대면하기 위해 본 강의에서는 고전을 직접 읽고 풀이하는 힘을 기르고자 합니다. 따라서 참여형 학습 강좌로 진행합니다.

  1. 강의 순서를 따라 번역된 책을 직접 읽습니다.
  2. 그 가운데 중요한 문장을 뽑아 손으로 쓰며 필사노트를 만듭니다.
  3. 번역할 수 없는 원문의 힘도 있는 법, 고전의 문장을 원문으로도 읽고 씁니다.

강의 시간에는 주요 원문을 뽑아 함께 읽으며 각 텍스트가 놓인 역사적 배경, 주요 주제에 대해 심도 깊게 알아봅니다. 강의 시간 이외에 개별적인 학습 시간, 다른 참여자와 함께 하는 학습 모임을 위해 ‘카페’를 개설하여 운영합니다. 이 공간에서 각자의 일상은 물론, 책에 대한 생각, 뽑아 필사한 문장 등을 나눕니다. 강의 시간 이외에 혹은 방학 중에 주민들끼리 학습 모임을 개설하도록 다양한 도움을 드릴 예정입니다.

 

<강의 계획>

1학기 <논어>:: 꿈을 찾아 헤매는 자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

1강. <논어>와 공자 :: 말은 글을 낳고 삶은 사람을 낳고
2강. <학이> ~ <팔일> :: 군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리라.
3강. <리인> ~ <옹야> :: 참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
4강. <술이> ~ <자한> :: 왁자지껄 수다스런 제자들
5강. <향당> ~ <자로> :: 삶의 리듬과 관계의 조화
6강. <헌문> ~ <계씨> :: 고향을 떠나면 고생이라 하나
7강. <양화> ~ <요왈> :: 꿈꾸는 이여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8강. <논어서설> :: 손과 발이 춤추는 날을 그리며

 

2학기 <맹자>:: 고집 센 아웃사이더의 날선 비판

1강 춘추전국과 맹자 :: 난세의 영웅이 여기에 있다
2강 <양혜왕> :: 천하 혼란의 근원, 썩은 뿌리를 들어내라
3강 <공손추> :: 짓궂은 질문과 영리한 대답
4강 <등문공> :: 천하 대장부가 꿈꾸는 세상
5강 <이루> :: 밝은 눈과 밝은 귀, 밝은 마음
6강 <만장> :: 효자의 눈물은 언제 만날 수 있나
7강 <고자> :: 성선설과 성악론의 치열한 논쟁
8강 <진심> :: 하늘과 인간, 마음과 본성,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

 

3학기 <장자> :: 삶의 기술을 알려주는 광인의 우화

1강 천하국가와 장자 :: 탈주와 은둔의 철학, 삶을 논하다
2강 <소요유> :: 자, 떠나자 세상 밖으로
3강 <제물론> :: 너도 나도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
4강 <양생주>, <인간세> :: 칼을 들어 세상을 내리치다
5강 <덕충부> :: 날개 없이 날고, 다리 없이 걷고, 말 없이 말하라
6강 <대종사> :: 이것이 바로 운명이니 어찌하랴
7강 <응제왕> ::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혼돈이구나
8강 <외편>, <잡편> :: 장자, 천 개의 얼굴 만 개의 삶

 

<세부 강의 내용>

1학기 <논어>:: 꿈을 찾아 헤매는 자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담은 책입니다. 주유천하周遊天下라는 말처럼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기회를 찾아 여러 나라는 전전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그의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맙니다. 공자는 자신이 꿈꾼 세상을 만나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품은 이상은 후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줍니다.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유학자들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논어>를 읽으며 꿈에 사로잡한 사람, 공자와 그와 함께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제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더불어 학습, 예, 인, 공동체 등 오늘날에도 유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예정입니다.

1강. <논어>와 공자 :: 말은 글을 낳고 삶은 사람을 낳고

<논어>와 공자, 그리고 그의 시대에 대해 간단히 살펴봅니다. <논어>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공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공자가 살아간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더불어 공자 이후 유가의 발전상을 간단하게 훑어봅니다.

2강. <학이> ~ <팔일> :: 군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리라.

공자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군자’를 제시합니다. 그는 덕을 갖추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또한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이기도 하지요. <논어>는 군자를 북극성에 비유합니다. 저 하늘의 빛나는 별 같은 사람, 여기에는 또한 수천년의 논쟁 주제가 된 무위지치無爲之治에 대한 문제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3강. <리인> ~ <옹야> :: 참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

‘택리擇里’의 문제가 <논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풍수적 관심에 따라 좋은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그 출발이었습니다. 과연 공자는 어떤 공동체, 어떤 마을의 모습을 꿈꾸었을까요? 공자가 생각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4강. <술이> ~ <자한> :: 왁자지껄 수다스런 제자들

삼천문도, 공자의 제자들은 삼천 명이나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논어>에서 만날 수 있는 제자는 수십 명에 불과합니다. 공자가 손꼽아 칭찬한 제자는 열 명 남짓이지요. 공자와 함께 천하를 누빈 주요 제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얼마나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곁에 있었는지 그들을 만나봅니다.

5강. <향당> ~ <자로> :: 삶의 리듬과 관계의 조화

예禮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깨뜨립시다. 공자는 상하간의 위계에서만 예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는 자신의 삶을 가꾸는 지혜이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위계 대신 질서를 대립 대신 조화의 관점에서 ‘예’를 고민합니다.

6강. <헌문> ~ <계씨> :: 고향을 떠나면 고생이라 하나

공자는 그의 방랑길에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늘 적지 않은 실망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당대의 주요 권력자들을 만나 공자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대체 공자는 왜 고향을 떠난 그토록 힘든 방랑길을 감수했을까요?

7강. <양화> ~ <요왈> :: 꿈꾸는 이여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논어> 후반부에는 공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등진 채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세속적인 세상을 떠나지도 않고, 그 속에 속하지도 못합니다. 그 경계지점, 갈등이 빚어낸 기묘한 공간이야 말로 공자와 이후 유가의 삶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8강. <논어서설> :: 손과 발이 춤추는 날을 그리며

<논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왜냐하면 <논어> 읽기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논어>, 그때 우리는 <논어>를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할까요? 이 질문은 ‘읽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2학기 <맹자>:: 고집 센 아웃사이더의 날선 비판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유가의 성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맹자의 시대, 춘추전국의 혼란기 위에서 <맹자>를 다시 읽어내려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 백성들의 삶은 황폐해져버렸습니다. 맹자의 말을 빌리면 시체가 들에 나뒹구는 시대였지요. 이 시대의 혼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맹자는 어떤 대안을 제시했을까요? 그의 정치적 이상에 주목하여 <맹자>를 읽어봅시다. 또 다른 혼란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맹자는 어떤 지혜를 전해줄 수 있을까요?

1강 춘추전국과 맹자 :: 난세의 영웅이 여기에 있다

합종연횡合縱連衡, 춘추전국을 대표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처럼 각 나라는 이합집산을 통해 저마다의 이익을 도모했습니다. 더불어 이에 봉사하는 여러 유세객들이 이름을 떨친 시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맹자의 말이 시대와 동떨어져 받아들이지 못했다 합니다. 그러나 맹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군요.

2강 <양혜왕> :: 천하 혼란의 근원, 썩은 뿌리를 들어내라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말로 <맹자>는 시작합니다. 그는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천하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이익이란 보편적인 인간 욕망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진단한 당대의 모순은 무엇이었을까요? 대체 무엇 때문에 왕들은 맹자의 말에 그토록 쩔쩔 매었을까요?

3강 <공손추> :: 짓궂은 질문과 당당한 대답

제자는 스승을 닮는 법. 맹자의 제자들이라고 스승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손추는 난감한 질문으로 맹자를 구석에 몰아 넣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호락호락 당할 수는 없지요. 이때 맹자가 꺼내드는 새로운 무기가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4강 <등문공> :: 천하 대장부가 꿈꾸는 세상

맹자는 옛 제도를 들먹이며 당대의 사회를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세금과 토지, 국가 운영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과거로 돌아가는 퇴보적 발상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제시합니다. 후대 여러 혁명가를 낳은 그 씨앗이 여기 있습니다.

5강 <이루> :: 밝은 눈과 밝은 귀, 밝은 마음

철학사에 끼친 맹자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그가 설명한 인간은 후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가 탐구한 마음과 본성에 대한 문제는 이후 많은 논쟁을 낳기도 했습니다. 후대 사람의 말을 빌리면, 늘 활활 불타오르는 등불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강 <만장> :: 효자의 눈물은 언제 만날 수 있나

<맹자>에는 가능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대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은 부분 또한 적지 않습니다. 루쉰은 사람을 잡아먹는 학문에 대해 논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은 것일까요? 맹자의 보수적 일면을 만나봅니다.

7강 <고자> :: 성선설과 성악론의 치열한 논쟁

인간 본성에 대한 끊이지 않는 논쟁, 성선설과 성악론의 대립 현장으로 떠나봅시다. 맹자와 고자의 대화는 조금 복잡하지만 인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귀중한 논쟁입니다. 여기서 더불어 떠올려야 하는 순자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다뤄봅시다.

8강 <진심> :: 하늘과 인간, 마음과 본성,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

맹자의 심성론心性論이 다시 빛을 보기 까지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기나긴 얄궂은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을 맹자는 알고 있었을까요? <맹자>의 마지막 단편적인 문장들은 후기 맹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풍부함이 <맹자>를 더 빛나게 만듭니다.

 

3학기 <장자> :: 삶의 기술을 알려주는 광인의 우화

흔히 공맹孔孟의 유가와 노장老莊의 도가를 대립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도식적 이해는 늘 특정한 한계를 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공자와 맹자가 던졌던 질문의 연장선에서 <장자>를 읽어보려 합니다. 이는 장자 역시 당대를 살아간 한명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자>의 여러 부분 가운데 장자의 저술, 혹은 장자의 사상으로 확정된 <내편> 7편을 중점적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조금은 좁은, 그러나 뚜렷한 장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외편>과 <잡편>의 내용도 다룰 수 있습니다. <장자>를 넘어서는 장자, 혹은 도가의 모습에 대해서도 간단히 다룹니다.

1강 천하국가와 장자 :: 탈주와 은둔의 철학, 삶을 논하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추정합니다. 이 매력적인 사상가 둘이 서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는 이 둘의 사상적 차이 뿐만 아니라, 삶의 자리도 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방외인方外人,스스로 세상 밖 사람을 자처한 장자의 독특한 지점을 살펴봅시다.

2강 <소요유> :: 자, 떠나자 세상 밖으로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르는 거대한 새. <장자>를 펼치며 만나는 붕과 곤의 이야기는 읽는이를 사로잡습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우리에게 손을 내밉니다. 이 멋진 모험, 천하세계 바깥을 노니는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지요. 장자를 따라 낯선 세계로 나아가봅시다.

3강 <제물론> :: 너도 나도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

다양한 논변으로 가득찬 <제물론>은 오늘날 까지도 많은 학자들에게 숙제 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 아리송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우리는 남곽자기가 말한 천뢰天籟를 해석하며 <제물론>이 말하는 ‘자기 상실’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려 합니다.

4강 <양생주>, <인간세> :: 칼을 들어 세상을 내리치다

장자가 당면한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장자의 말은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새로운 삶의 지혜를 제시하며 다르게 살아 보라고 권합니다. 삐딱한 장자의 삶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5강 <덕충부> :: 날개 없이 날고, 다리 없이 걷고, 말 없이 말하라

장자가 말하는 삶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특정한 행위를 하라고 주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을 이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라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대답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장자가 말하는 역설의 철학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6강 <대종사> :: 이것이 바로 운명이니 어찌하랴

도가는 신선을 꿈꾸었지만 장자는 충실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다양한 질병, 고통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사의 문제에 새롭게 접근합니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 생사의 굴레를 장자는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요? 논쟁이 끊이지 않는 안명론安命論에 대해 살펴봅니다.

7강 <응제왕> ::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혼돈이구나

<장자>를 읽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입니다. 기존의 사고 방식, 이해를 완벽하게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장자를 ‘해체적’이라 평가합니다. 기존의 틀을 부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그 파괴의 끝은 어디일까요? 이제는 <장자> 자신을 배신해야 할 때입니다.

8강 <외편>, <잡편> :: 장자, 천 개의 얼굴 만 개의 삶

장자가 <장자>에 머물러 있지 않듯, 장자가 제시하는 여러 생각들도 장자에 갇히지 않습니다. 장자를 넘어 도가와 도교, 선불교에 이르기 까지 <장자>와 장자가 끼친 영향을 막대합니다. 장자가 아닌 장자를 만나기도 해야하며, 장자를 넘어선 또 낯선 얼굴의 누군가를 만나기도 해야 합니다.

장자와 곽상이 말하는 ‘나(我)’

무릇 나의 삶은 내가 낳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한평생 백 년을 살며 앉으나 서나, 나아가나 멈추나, 움직이나 가만히 있거나, 얻거나 잃거나 하는 일이며, 본성과 감정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있다고 하는 것이나 없다고 하는 것, 직접 한 일이나 우연히 벌어진 일 모두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이치가 저절로 그럴 뿐이다. 그러니 멋대로 살고 여러 걱정하는 하는 것은 곧 또한 자연을 거스르며 잃어버리는 일이다.

夫我之生也,非我之所生也,則一生之內,百年之中,其坐起行止,動靜趣舍,性情知能,與凡所有者,凡所無者,凡所為者,凡所遇者,皆非我也。理自爾耳,而橫生休戚乎其中,斯又逆自然而失者也。

<장자:곽상주>

—–

작년부터 <장자>를 강독하고 있는데, 곽상주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막히는 구석이 많기도 하나 그의 주석까지 읽는 것은 곽상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흔히 위진시대의 손꼽히는 사상가/철학자로 곽상과 왕필을 꼽는데, 왕필과 비교하면 곽상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곽상주를 번역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벌써 10년 전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곽상의 주석을 읽으며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장자적 자연自然’이라는 게 곽상에게서 보인다는 점이다. 섣부르게 결론을 내려보면 아마 후대에 ‘도가적 자연’ 나아가 ‘동양적 자연’의 모습에 최초의 입안자가 아닐지. 첨언하면 왕필의 <노자주>에서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읽은 기억이 없고 (오직 무! 무! 무!) <장자>나 <노자> 본문에서도 자연自然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곽상의 ‘자연’이 <노자> 및 <장자> 해석에 영향을 주고 오늘날까지 그토록 찬양받는 ‘자연’의 이미지를 그려내지 않았을지.

더불어 ‘리理’를 가지고 논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곽상에게 세계란 ‘당연當然’한 체계로 이루어진 ‘자연自然’이며 이는 ‘리理’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해야 할 것은 ‘임任, 맡겨둠’일 뿐이다. (아마도 이 가운데 일부는 송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게 분명하다.)

위의 인용문은 <덕충부>의 신도가 이야기에 달린 주석이다. <덕충부>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안명론安命論, 즉 장자식 운명론을 바탕으로 곽상은 나(我)를 해체한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 ‘비아非我: 내가 아니다’라는 말이 재미있는데 이 말은 제물론의 오상아吾喪我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담벼락에 길게 남길 말도 아니고, 나도 바빠 ;; 짧게 내 소견을 이야기하면, 장자는 <제물론>에서 인식의 한계를 들어 ‘나’를 해체하는 반면 곽상은 나, 곧 나의 삶은(我之生) 능동적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나를 부정하는 데에 이른다. 그리고 나를 부정하는 조건은 곧 ‘자연’이라 불러도 무방할 테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장자 본인은 도리어 이런 척박한 삶의 조건, 운명이라 불러야 할 자리에서 ‘나’를 새롭게 구성해낸다.

나를 상실한 내가, 이 텅 빈 내가 척박한 삶을 살아내는 것. 이것이 장자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다.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 ??

언젠가 이 문제를 다루었지만 다시…
페북에 ‘감사’가 일본어 어휘고 ‘고맙습니다’를 써야 한다는 말이 돌기에… 다시 찾아 보았다.

의문의 시작은 중국어에서 ‘感謝你’가 일상적으로 쓰인다는 점. 중국어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나?
일단 고문古文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진한시대 문헌에서는 검색이 안 되나… (당연히 謝는 무진장 나온다) 송명시대 이후에 많이 나오더라. 서유기 삼국지 등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당시 민간에서도 많이 쓰였던 표현으로 보인다.

http://ctext.org/post-han?searchu=感謝
귀찮아서 용례는 따져보지 않았다. 찾아볼 사람은 링크를 참고하길.

즉 일본식 표현은 아니라는 말씀. 그렇다면 과거 조선에서는 쓰이지 않았나?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원문 검색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용례는 귀찮아 따져보지 않았음. 여튼 많이 나온다는 것이 중요.

https://goo.gl/CBfrjs

따라서 ‘고맙습니다’는 순 우리말이고, ‘감사합니다’는 일본에서 왔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이 퍼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말’에 대한 환상이 첫번째 이유일테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말’ 이른바 ‘한국어’가 어떤 순수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수천년간 고스란히 보존되고 소박한 변화만 있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말은 순수하기보다는 늘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다. 순수한 말이라는 게 과연 있기나 할까?

더불어 이른바 ‘일본식 표현’ 혹은 ‘한자어’에 대한 반감도 크다. 마치 어떤 질병과도 같은 것인양 생각하는데, 그저 하나의 역사적 흔적일 뿐이다. 지우고 싶어하는 건 이해하겠으나 과연 지우고 돌아갈 ‘순수한 과거’이 있기나 한 것일까? 1910년 혹은 20년대 ‘녯적’ 글을 읽어보면 도리어 그런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 한자어의 일상적 표현부터 다양한 외래어의 사용까지.

조금 성급한 생각일지 모르나 나는 이른바 ‘순수한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마치 건국절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편 이는 이른바 ‘환빠’라는 신화적 뿌리를 탐구하는 이들의 욕망과 닮아 있기도 하다. 분명히 존재하는 과거의 흔적, 영향, 자취를 지우고 순수한 우리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은 거꾸로 신화적 역사를 그려내곤 한다.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관심 없이 그저 현재적 필요에 따라 삭제되고 치장된 과거를 갖고 싶다는 욕망.

2016년 청소년 인문학교 4학기 :: SF소설 읽기

 

청소년 인문학교 4학기 SF소설 읽기

2014년 만우절, 한 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바로 포켓몬 마스터를 모집하는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공유했지만 실제 현실로 옮겨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년이 채 안되어 이 유쾌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 그렇다면 아직 현실로 실현되지 않은 또 다른 상상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기발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을 만나 이들이 꿈꾼 미래를 엿보려 합니다. 다양한 주제의 SF 소설을 읽으며 다채로운 미래를 그려봅시다.

로봇과 클론의 사회, 우주로 나가 외계인을 만나기까지! 이 멋진 모험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강사: 기픈옹달 010-5101-5707 | 카톡 zziraci
  • 일시: 10월 9일 ~ 12월 11일 (10주) | 일요일 오후 2시 ~5시 반
  • 장소: 책방 온지곤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1-80 2층
  • 대상: 중고등학생 또는 그 또래의 청소년

 

*  교재 4권을 함께 구입할 경우 댓글로 표시해주세요.
*  주제별로 두 주씩 수업을 진행합니다. 첫 주는 SF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며 둘째 주에는 자유롭게 선택한 연구 주제에 관해 발표합니다.
*  매주 간단한 과제가 있습니다. 과제에 대해서는 OT 시간에 설명합니다.
*  참여형 세미나식 수업입니다. 매 주제에 강의가 있으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거침없이 이야기하되 귀 기울여 듣고, 명료하게 주장하되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  우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재미난 SF 소설을 더 재미나게 즐기기. 깊이, 다양하게, 함께!!
-글쓰기 및 발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기
-다양한 매체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법 익히기
-서로간의 소통능력과 듣기능력, 토론능력을 발달시키고 실제 연습하기

_ 강 좌 일 정 _

OT_ 10월 9일: 참여자 및 강좌 내용에 대한 자세한 소개

 

첫째 주제_ 로봇, 생각하는 기계 (10월 16일, 10월 23일)
<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김옥수 역, 우리교육
노동하는 기계에서, 생각하는 기계로! 알파고의 승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생각을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을 닮은 로봇이 보급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원칙”을 바탕으로 상상해보자.
#로봇,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알파고

 

둘째 주제_ 클론, “나-너”들의 세계 (10월 30일, 11월 6일)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정소연 역, 아작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 인류는 멸종을 앞두고 복제 인간을 만들어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 한다. 과연 이 복제인간, 쿨론들은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유전학적으로 나와 동일한 인간이 이 세계에 태어난다면?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들”과 “너들”의 세계!!
#인간복제, #유전학, #방사능, #포스트홀로코스트, #종말론

 

셋째 주제_ 우주, 저 낯선 공간에서 살아남기 (11월 13일, 11월 20일)
<마션>, 엔디 위어, 박아람 역, 알에이치코리아
아뿔싸! 화성에 홀로 남겨졌다!! <마션>은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한 과학자의 극한 생존 과정을 담았다. 과연 그는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어떤 생존 기술이 필요할까? 우주에서 살아남기는 분명 무인도나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를 꿈꾸는 당신, 우주 생존법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화성, #우주여행, #생존법, #생물학, #우주과학

 

넷째 주제_ 외계인, 상상 그 이상의 존재 (11월 27일, 12월 4일)
<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이수현 역, 비채
혹시 우주인이 지구를 찾아온다면 그 우주인은 어떤 모습일까? 반대로 우리가 먼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만나게 될 우주인의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인간의 친구일까 적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더불어 흑인 페미니스트 SF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색다른 단편들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SF 소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자.
#외계인, #우주식민지, #새로운SF, #단편의매력

 

종강_ 내가 쓰는 미래 (12월 11일)
SF소설은 과거가 꿈꾼 미래일 뿐이다. 그들이 내다본 미래 가운데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그들의 미래,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그려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각자 상상력과 자료수집, 글쓰기 능력을 총동원하여 멋진 SF 작품을 써보도록 하자. 혹시 아는가? 우리가 상상한 미래가 어느날 현실이 될지!

2016년 청소년 고전학교 3학기 :: <사기본기>, 어제를 읽고 오늘을 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삶, 지혜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과거로 고개를 돌리려 합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보려 합니다.

<사기본기>는 고대 중국의 격변을 담은 책입니다. 사마천이라는 불굴의 인물이 쓴 이 책은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눈앞에 여러 삶을 펼쳐놓습니다. 천하를 호령한 황제와, 천지를 뒤흔든 영웅, 한낱 불량배에서 천자의 자리에 오른 호걸까지! 가슴 뛰는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가 봅시다.

  • 강사: 기픈옹달 ( O1O-51O1-57O7 | 카톡: zziraci )
  • 일시: 2016년 7월 10일 ~ 9월 11일 /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5시 30분
  • 대상: 중고등학생 또는 그 또래의 청소년

 

_진행일정_
OT    07.10    공개강좌: 사마천과 <사기> – 불굴의 삶, 불후의 문장
#1    07.17    1강: 전설에서 역사로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백이열전>
#2    07.24    2강: 춘추천국, 패자와 영웅의 시대     “<주본기>    <진본기>”    <오자서열전>
#3    07.31     “3강: 짐의 천하는 만세토록 가리라”     “<진시황본기>”    <이사열전>
#4    08.07     “4강: 하늘이 나를 버린다하나”     “<항우본기>”    <진섭세가>
#5    08.14     “5강: 용의 형상을 한 사내”    <고조본기>     “<소상국세가>    <유후세가>”
#7    08.28     “7강: 새 시대가 열리는가?”    <효문본기>, <효경본기>    <위기무한후열전>
#8    09.04    8강: 중국적 천하의 완성    <효무본기>    <흉노열전>
#9    09.11    9강: 오늘을 읽고 내일을 쓰다    <태사공자서>    <이릉편>

_교재_

  

_기픈옹달은…_

지난 10년간 수유너머에서 고전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책방 온지곤지’의 책방지기로, ‘연구공간 우리 실험자들’의 연구자로 분주히 생활중입니다. 공부하면서 다양한 청소년들과 함께 여러 고전을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청소년에게 고전과 인문학을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논어》를 쉽게 풀어쓴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을 썼고, 연구실 동료들과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 《나를 위해 공부하라 》, 《우정은 세상을 돌며 춤춘다》, 《감히 알려고 하라》를 썼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청소년은 물론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생각입니다.

2016년 청소년 고전학교 2학기 :: 플라톤, 국가의 ‘정체’를 묻다

예로부터 나라와 정치에 대한 질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좋은 나라와 바른 정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2000년도 넘는 먼 옛날 이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한 철학자를 만나려 합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이 사람의 이름은 플라톤입니다.

‘넓은 어깨’라는 이름처럼 그는 매우 당차고 건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 사건을 통해 심각한 질문에 마주합니다. 바로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이지요. 철학자로 당당한 죽음을 선택한 스승의 길을 좇아 그는 이후 연구와 저술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나중에 학교도 세우는데 그 이름을 ‘아카데미아’라고 합니다. 이 이름에서 훗날 학술을 뜻하는 ‘아카데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철학사에 남긴 그의 영향은 너무 커서 훗날 어떤 철학자는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모두 그를 해석한 것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답니다. 그만큼 이미 플라톤이 모든 철학적 논의를 다 해놓았다는 뜻이었겠지요.

청소년 고전학교에서는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국가>를 읽습니다. ‘정체’, 즉 ‘정치체제’라고도 번역되는 이 책은 어떤 나라, 어떤 정치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맙시다. 소크라테스와 여러 인물의 대화를 통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청소년 고전학교의 수업도 이들의 대화처럼 풍부한 대화를 통해 진행할 예정입니다. 국가와 정치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고전 중의 고전! 멋진 플라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강사: 기픈옹달 (zziraci@gmail.com / O1O-51O1- 57O7)
  • 일시: 2016년 3월 13일 ~ 6월 26일(4개월) /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5시 30분
  • 대상: 중고등학생 또는 그 또래의 청(소)년
  • 교재: 주교재 – ⟪국가⟫, 천병희 역, 숲 / 세미나 교재 – <대화편, 플라톤의 국가란 무엇인가>, 너머학교
  • 3월 6일에는 청소년 고전학교를 소개하는 간단한 간담회가 있습니다. 간담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참여하실분은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_ 진행 방법 _

2시 ~ 3시 30분 : 세미나
3시 30분 ~ 5시 30분: 강의 및 질의 응답

* 이번학기에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 시간을 갖습니다. 세미나 교재를 바탕으로 토론하며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봅니다.
* 강의시간에는 강의안을 통해 플라톤의 <국가>에서 주요 내용을 나눕니다. 세미나 시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학기 끝에는 그 동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한편의 글로 써서 발표합니다.

 

_ 강좌 일정 _

#1 3월 13일 OT: 강좌 소개 및 자기 소개
#2 3월 20일 세미나 교재 1장 강의 1강 플라톤과 <국가>
#3 3월 27일 세미나 교재 2장 강의 2강 제1권 (24~85쪽)
#4 4월 3일 “세미나 교재 3장” 강의 3강 제2권 (86~139쪽)
#5 4월 10일 “세미나 교재 4장” 강의 4강 제3권 (140~207쪽)
#6 4월 17일 “세미나 교재 5장” 강의 5강 제4권 (208~261쪽)
#7 4월 24일 “자체 세미나 1” 강의 6강 제5권 (262~327쪽)
#8 5월 1일 “자체 세미나 2” 강의 7강 제6권 (328~383쪽)
#9 5월 7일 “자체 세미나 3” 강의 8강 제7권 (384~435쪽)
#10 5월 14일 “에세이 준비 1” 강의 9강 제8권 (436~490쪽)
#11 5월 21일 “에세이 준비 2” 강의 10강 제 9권 (491~537쪽)
#12 5월 28일 에세이 준비 3 강의 11강 제 10권 (538~591쪽)
#13 6월 5일 에세이 초고 발표
#14 6월 12일 에세이 수정 1
#15 6월 17일 에세이 수정 2
#16 6월 26일 최종 에세이 발표

 

* 위의 책은 모두 ‘책방 온지곤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강좌 신청자는 10% 할인된 가격에 해당 도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할인된 교재 2권의 가격은 45,000원입니다.
* 작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시면 출판생태계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 책방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까지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방문하여 책방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이끎이 기픈옹달은 …

지난 10년간 수유너머에서 고전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책방 온지곤지’의 책방지기로, ‘연구공간 우리 실험자들’의 연구자로 분주히 생활중입니다. 공부하면서 다양한 청소년들과 함께 여러 고전을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청소년에게 고전과 인문학을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논어》를 쉽게 풀어쓴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을 썼고, 연구실 동료들과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 《나를 위해 공부하라 》, 《우정은 세상을 돌며 춤춘다》, 《감히 알려고 하라》를 썼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청소년은 물론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생각입니다.

홈페이지: http://zzirac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