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쪽: 새 술을 헌 부대에 ...... 나는 그들 개성의 심층과 더불어 연대의 풍경을, 이제 다들 내버리자고 목소리 높이는 낡은 말들, 주기와 주리, 이학과 기학의 낡은 프레임워크를 통해 보여줄 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헌 부대를 기어코 선택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책을 사서 훑어보았는데 처음 시작부터 실망이다. 제목이야 거창하게 조선유학의 '거장'들 이라고 잡았건만. 내용은 그 기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처음부터 걱정이 앞선다. 주리-주기, 이학-기학과 같은 낡은(그 스스로 조차 언급하는) 구도를 기어코 쓰겠다는 심보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낡은 것이라면 새것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254쪽: 서학에 일부 사대부들의 경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주자학은 선명히 자연론적이지도 않고 분명히 신학적이지도 않은 모호한 절충의 체계이다. 그래서 과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교도 될 수 없었다. 퇴계와 율곡의 철학적 논변에서 인물성동이론까지의 논쟁들은 이 애매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충함으로써 쳇바퀴를 돌았다고 할 수 있다. 서학은 이 둘을 분리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 해체는 한쪽으로는 주자학의 자연학을 분화시켜 자연과학적 관심으로 이끌었고, 또 한쪽으로는 자연학의 지평 너머에서 초월적 신학으로 독립시켜나가게 했다.
대략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자학의 내부 모순, 자연학과 신학의 적절한 조합이 필연적으로 분리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데는 이 둘을 따로 때어보는 근대적 시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자연과 신학 혹은 윤리의 혼재에서 분리를 자연스러운 역사의 발전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여기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끼어들 만한 요소가 많다. 그것이 주자학 내부의 이론적 발전의 필연적 귀결이었는지. 아니면 서학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의 영향 혹은 침입에 의해 자기 변화를 이룬 것인지.
그러나 이어지는 아래 내용은 동의할 수 없다.
254쪽: 주자학의 자연-신학이 도전받고 있었다. 이 중추가 흔들이면, 그 위에 선 문화적 정체성, 사회적 질서 또한 위태롭게 된다. ... 정조는 '주자학을 복구'하려고 했다. 그는 정학, 즉 주자학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속학을 비판하며 문체반정을 주도했다.
한형조는 정조가 주자학의 수호자로 자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명감은 주자학의 붕괴로 이어질 사회적 혼란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흥미로운 것은 어떤 이념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보다 때로는 그 이념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그 이념의 모순을 재빠르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을 지탱했던 사유로 기독교를 생각하면 쉽다.
정조의 주자학 숭상은 주자학을 기본 사회 이념으로 보았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사회에선 어떤 사유든 기독교적 사유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세속적인 철학을 주창했던 스피노자나 니체 조차 성서, 교회, 신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물며 아직 주자학의 체계가 굳건했던 조선사회에서랴. 게다가 정조
가 '주자학으로'라고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그 '주자'가 어떤 '주자'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시 기독교 예를 들면,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해방신학이건 아주 보수적인 성서 무오설을 주장하는 신학이건 모두 '예수께로!'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 문제는 그 예수가 어떤 예수냐 하는 문제다. '주자로!'라는 구호를 구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주자에 대한 고정 관념을 그대로 덧씌우는 것 뿐이다. 누구에게는 과거로의 회귀일 것이며 누구에게는 개혁의 목소리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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