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 Z씨 #3

2003년 ~ 2008년

2003년 복학하니 학교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건 학부의 변화였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이른바 언정에서 기독교 문화 전공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아침에 전공을 잃어 버릴 처지에 놓인 거다. 그래도 Z씨는 다행히 꾸역꾸역 졸업학점을 매워 원하던 바대로 졸업할 수 있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들리는 소문에는 언정 출신이 취업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하긴 욥의 질문 따위가 취업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한동대는 졸업생 전원 취업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100%, 그것도 대기업 등으로. 그런데 언정 출신은 별로 그에 어울리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선배들을 보아도 취직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학교는 취업에 도움이 된다며 전산교육과 한문교육, 영어교육 거기에 인성교육을 더했다. 아마 가장 큰 문제는 언정 출신이 인성교육이 덜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전공 이름에 ‘언론’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그런지 다들 말이 많았다. 많은 말 가운데는 불평도 많았다. 어느새 Z씨 역시 불평하는 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사실 불평보다 질문이었을 거다. 그건 아니잖아 하는.

2003년 노무현 정권은 이라크 파병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가까운 친구와 다투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러나 친구의 말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총학에서는 버스를 빌려 여의도에 올라가 항의 집회에 참석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시위 현장을 찾았다. 여튼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생각보다 시위현장에는 냉탕과 온탕이 공존하고 있었다. 저 앞은 치열하게 싸우는데 뒤는 조용했다. 멀리서 구경하는데 그 유명한 N이 경찰차 위에 올라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불의를 맞서 대항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학교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기숙사는 좁고 불편했으며 입학시 지불했던 예치금 100만원을 돌려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학교는 커가는데 자신은 크지 못한다는 생각에 뭔가 우울해진 탓도 있다. 어쩌면 복학후 한문 선생이었던 K교수와 가까워진 탓도 있을 거다. 그는 늘 거침없는 말로 유명했는데 어느 새 Z씨도 그의 오피스를 종종 찾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복학 후 가을이 지나고 였을까. 한창 책에 파묻혀 지내면서 이제는 목사님도 총장님도 아니라 목사니 총장이니 하며 돌아다녔다. 함께 아웃리치를 떠났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교육보다는 취직을 목표로 하는 학교 운영 방식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졸업 직전 몇몇 힘을 모아 대자보를 붙였다. 밤에 몰래 학내에 들어가 대자보를 붙였다. 어차피 떼어질 것이니 그래도 좀 버텨보자는 생각에 일부러 높게 붙였다.

졸업 직전에는 여성학회에 들어갔다. 여성 학회라고 해보았자 3명의 여성 동기가 주축이된 작은 모임이었다.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 이야기가 실린 대자보가 학내에 붙었다. 학교는 크게 시끄러워졌다. 대자보를 붙인 것은 여성학회였다. Z씨는 졸업 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뒤에 안 것이지만 그 교수는 조용히 학교를 떠나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는 소란을 잠재우기위해 노력했다. 갈등을 해결할 창구는 어디도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가? 어쩌면 입닫고 있었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낸 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 불경스러운 일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여지없이 졸업은 닥치고 있었고, 여성 학회의 몇몇 역시 학사모를 써야했다.

졸업 이후, Z씨는 딱 한번 학교를 찾았다. K선생과 R선생을 따라 답사하는 길에 찾아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반가웠지만 졸업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당시 Z씨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지식이 일천한 그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의 친구는 네가 대학원을 떨어지다니 놀랍다며 위로의 말을 건냈다. 실제로 그는 학점이 좋은 축에 속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갈 실력은 안 되었다. 또 다른 질문이 그를 휘감았다. 이른바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버금간다는 게 허울 좋은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실력이 그낭 부족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지난 8학기 동안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없는 건 아니었나?

무엇인가를 많이 배웠지만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는 그에게 도움이되는 건 별로 없었다. 대학원 입학에서는 그가 자신있어하는 ppt 실력도, 엑셀 함수도, 양심 시험을 친 과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누구도 대학원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하긴 서울에 올라온 졸업 동기들은 대부분은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었다. 대학원, 특히 인문학 따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제로 학내에서도 인문학은 찬밥이었다.

여차저차 인문학 연구 공동체에 발을 들여놓고, 다행히 대학원 진학에도 길이 열렸다. 자연스레 학교 소식을 듣는 일은 없었다. 몇번 M 교수와 옛 친구들을 만났지만 어색할 뿐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M 교수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매가 대통령님 보자관이라면서. 돌아보니 Z씨는 대통령의 이름조차 부르지도 않았다. MB라는 괴상한 조어를 쓰는 사람들 틈에 있다보니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는 옛 관계가 어색했다. 게다가 눈이 부리부리한 M 교수는 그가 공부한다는 주제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더 어울릴 이유가 없었다.

주변에서 출신학교를 묻지도 않았고, 동문을 만날 일도 없었기에 자연스레 학교를 잊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둑처럼 모교는 다시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당혹스러운 모습으로.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그 역시 매일 같이 광장을 나갔다. 어느 순간에는 맛을 들여 밤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대포도 맞고 경찰차도 끌어보고, 방패도 밀어보고… 어느새 제법 시위형 인간에 가깝게 되었다.

어느 금요일 새벽 3시쯤이었을 테다. 동아면세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쉬고 있었다. 좀 쉬다 들어가야지 생각하는데 일군의 무리가 악기를 연주하며 돌아다녔다. 시민 악대일까? 그들은 동아면세점 앞에 모여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 나라를 팔아먹는 세력이 있으니 이들을 대적해야 한다는 거다. 죽기까지 금식해서 미군을 불러 모아 일본을 물리쳤던 저 옛날 순교자처럼 우리도 순교하자고, 기도를 이끄는 그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외쳤다.

Z씨의 옆 짝꿍이 발끈했다. 그러면 당신이 먼저 금식하고 순교하라고. 우리를 나라 팔아먹는 사람이라 생각하냐며 핏대를 세웠다. Z씨도 벤치에 올라가 뭐라뭐라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사람들이 말렸다. 나도 기독교인인데 다 그런거 아니예요. 핏대올리며 소리치는 앞에 두 여성이 나타났다.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여성은 이렇게 말하며 그를 진정시켰다. 우리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 한동대학 교수에요.

그 한마디는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뭐지? 대체 누구지? 손바닥 만한 학교라 얼굴을 모르는 교수는 없었다. 아무리 졸업 전에 은둔 생활을 했다지만 모교 교수를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예? 대체 누구신데요? 저요? K라고 해요.

메일 보내기

아무 내용이나 상관 없어요.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는 중입니다..
또는

로그인하세요.

계정 내용을 잊으셨나요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