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 Z씨 #1

1981년~1999년

Z씨의 유년시절은 좀 달랐다. 또래들이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지방에서 서울로 삶을 전환하는 경험을 할 때 부모를 따라 역주행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외딴 시골에서 양계장을 했다. 그 전에는 고깃집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고깃집 아들일 때보다 양계장집 아들일 때 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 쏟아지는 폐사 닭들을 먹어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또래처럼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지낸 탓에 또래들이 누린 흔한 추억거리가 없다. 예를 들어 ‘달고나’ 혹은 오락실 따위는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심심하기는 부모도 비슷했다. 부모가 경험하는 사회는 대부분 교회를 통해서였다.

그렇지만 부모도 그도 뜨거운 신자는 아니었다. 부모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집사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Z씨 역시 예배시간이나 공과공부 시간보다는 점심밥이 더 즐거웠다. 그런 와중에 이른바 회심의 경험이 ㅋ씨를 찾아왔다. 1995년 중학교 2학년 나이였다.

감수성 넘치는 청소년 시기, 뜨거운 집회 열기는 그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해 여름 CCC에서 연 대규모 전국 집회였다. 시골 교회를 전전했던 그에게 그렇게 큰 대중집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1990년대,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그 시절 Z씨는 연예인은 좋아해본 적이 없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는 수 백, 수천 번을 들어 가사를 달달 외웠지만 한번도 따라 부르지 않았다. 누군가 ‘사탄의 음악’이라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백워드 매스킹’, 테이프를 거꾸로 틀면 나오는 비밀스런 메시지. 거기에는 ‘피가 모자라…’라는 무서운 말이 숨어 있었다.

<낮은 울타리>는 그와 세상의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이른바 ‘문화선교’라는 데 관심을 기울인 것도 그 작은 책에서 이래저래 읽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세속의 문화와 맞서 싸우는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자. 저들에게 콘서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찬양집회가 있다. 올네이션스, 예수전도단, 최덕신의 테이프가 서태지, 김건모, HOT, GOD 따위를 대신했다.

교회 청소년들과 함께 온누리 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체육관을 옮겨둔 모양의 거대한 공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스피커, 수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울리는 메시지. 역시 기도는 울려야 맛이다. 서빙고 온누리 교회는 천국을 그대로 옮겨둔 것처럼 보였다.

1997년 나라가 망했다며 난리가 났다. 교회에서 ‘회개’와 ‘부흥’이 크게 외쳐진 것도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있었던 것처럼 90주년인 1997년, 다시 부흥을 이야기하자. 10년 뒤에는 불길처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세상에 퍼져나갈 것이며, 우리의 죄가 낳은 이 분단의 역사도 사라지리라.

저 카타콤의 순교자들처럼 망국의 목전에서 교회는 새 나라를 외치고 있었다. ‘경제를 살립시다’가 유머였던 그 시절, 교회가 내놓은 답은 ‘회개’였다. 어쩌면 그들이 말한 ‘부흥’이란 단순히 교회의 재성장을 의미하는 걸 넘어 70-8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그 고성장 사회를 다시 열어보자는 소망이었을테다.

그때 쯤이었다. 사랑의 교회를 다니는 외삼촌이 ‘한동대’라는 곳을 소개해 준 것이. Z씨는 물론 Z씨 부모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표어였다. Z씨는 편지를 썼다. ‘한동대 총장님께…’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학교를 소개하는 두툼한 책자도 함께 왔다. 어느 날은 입학처장인가 하는 이에게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외삼촌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시내 어느 교회를 다닌다는, 한동대 재학생의 소문도 들었다. 공부도 잘하고 신앙도 좋다더라.

수능 성적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가-나’는 서울 소재 대학에 넣고, ‘다’는 한동대를 넣었다. 사실 한동대보다는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 가슴에 자리한 뜨거운 그리스도는 어서 복음을 전하라 외치고 있었다. 갈렙이나 여호수아 마냥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서울 캠퍼스로 가야하는 게 아닐까. 하나님의 대학에서는 그가 품에 간직한 ‘사영리’가 아무런 필요가 없을 듯했다.

결국 한 겨울 모든 대학의 면접을 마치고 기도원에 들어갔다. 금식하며 기도하자. 사흘을 지내고 나왔다. 그리고 Z씨는 한동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그것은 기도의 응답 때문이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므로. 이제 정든 고향과 교회를 떠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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