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도통론道統論이라는 게 있다. 도道, 즉 성인의 가르침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성리학’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희가 도통론을 주장하며 자신을 도의 계승자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족보(!)를 간단히 나열하면 이렇다.

요 – 순 – 우 – 탕 – 문 – 무 – 주공 / 공자 – 증삼 – 자사 – 맹자 / 주돈이 – 정호&정이 / …

당연히 저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했다. 명시적으로 넣지는 않았을 뿐 그 자리가 주희 자신의 자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주희를 주자로 존숭하며 그 뒤에 자신의 이름을 넣기를 바랐다.

‘/’로 표기한 사이에는 일종의 단절이 있는데 이 단절을 잇는 이들은 시대의 어둠을 걷어낸 인물로 소개되곤 한다. 주공을 꿈에 그린 공자가 그렇고, 맹자 이후 이단사설이 들끓은 상황을 정리한 북송시대의 선배들이 그렇다고 주희는 생각했다.

이 구도는 여러 모로 비판 가능한데, 강의 준비차 <논어>를 정리하면서 문득 증삼의 저 자리가 새롭게 보였다. <논어>만 읽어보면, 공자와 증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증삼은 공자 제자 가운에 끄트머리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별볼일 없는 여러 제자 가운데 하나 였을 게다.

그런데 그가 공자 사후에 새롭게 권력을 쥔다. <논어>에서는 그것이 ‘오문저부자吾聞諸夫子 – 내가 선생님께 들었는데’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구체적 경험과 사건이 아닌 선생님의 ‘말씀’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리는 상황. 그러고 보면 증삼은 공자와 구체적으로 엮인 사건이 별로 없다.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것은 후대에 창작된 사건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논어>를 ‘경서經書’로 읽으면, 도가 담긴 그릇처럼 여기면, 하나의 일관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논어>에는 수 많은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공문孔門의 권력을 누가 쥐는 지를 다툰 흔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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