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거칠게… (간단하게 쓴다는 게 길어졌다. ;;;)

http://blog.naver.com/iden_com/220958002702

0.

어쩔 수 없이 관심은 제한적이다. kpop, 소녀, 포르노, 신유교주의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신유교주의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해 하시라. 사람들은 모두 제 세계에 관련된 것에 더 주목하기 마련이다. 글쓴이는 손가락만으로 읽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우선은 지하철에서 손가락으로 쓸어가며 서둘러 읽을 수밖에 없었다. 공자를 주제로 강의하러 가는 길에 이 글을 만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패이스북이건 네이버 블로그 건, 웹에서 Neo-confuianism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도무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낯선 용어는 아닌데, 이쪽 전공의 언어가 워낙 대중과 거리가 있는 터라…

결과적으로 이 글의 주제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해야겠다. 간단히 요약하면 ‘신유교주의’라는 번역, 아마도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성리학적’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는데… 이 개념을 씀에 정밀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거기에 좀 불편함도 얹어서.

1.

일단 ‘신유교주의 Neo-confucianism’라는 표현에 대해.

이 표현이 본격적으로 쓰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중국 철학자 펑유란(1884~1990)의 <A Short History of ChinesePhilosophy(1948)>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책은 <간명한 중국철학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펑유란은 중국철학계의 1세대 인물로, 저서 <중국철학사>로 유명하듯 ‘중국 철학’이라는 영역을 최초로 개척하다시피 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전통 사상에 철학의 시민권을 부여했다고 본다.

그는 이른바 ‘철학사’를 정리하면서 ‘신유가(Neo-confucianism), 그러니까 기존의 유가와는 다른 철학사조가 송명대에 형성되었다고 본다. 크게는 당의 한유 이래로 싹을 틔우기 시작하여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되. 따라서 신유가란, 그런 표현은 없지만, 곧 ‘구舊유가’가 있다는 말인데, 이는 공맹의 선진先秦유가 혹은 동중서 이후의 한당漢唐유가를 포괄한다.

그런데 이 ‘신유가’라는 표현은 우리들에게 낯설다. 주희에 의해 완성된 학술조류로 흔히 ‘주자학朱子學’ 혹은 ‘성리학性理學’이라는 표현을 쓰지 신유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펑유란 등의 논의가 수입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 아닐지. 한편 중국에서도 ‘신유교주의’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해봤다.) 그보다는 송명리학宋明理學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간단히 위키피디아를 기준으로 말하면 Neo-confucianism = 성리학 = 宋明理學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신유교주의’라는 어색한 표현보다는 성리학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2.

그런데 ‘성리학’이라는 표현에는 너무 학술적 냄새가 난다. 유가 혹은 유교를 지칭하고 싶다. 그러니 ‘신유교주의’가 아니라 위에서 살짝 언급된 신유가 혹은 신유학, 아니면 신유교는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신유가’라는 표현을 쓴다.)

보통 유가의 본격적 수입을 여말선초로 보는데 이때의 유가란 결국 주희의 손에 의해 정리된 그것을 말한다. 물론 그 이전의 유학자라 불릴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저 먼 과거, 신라의 설총, 최치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지만 너무 까마득한 일이고… (문묘에서는 설총&최치원을 시작으로 배향한다.) 따라서 앞에 조선을 붙이건 한국을 붙이건 ‘신(Neo)’을 떼고 붙이는 것 모두 차이가 없는 말이다. 조선 유가(학/교)나 조선 신유가(학/교)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

글쓴이는 아무래도 중국의 유가와 조선의 유가를 구분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여성을 다루는 입장에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나본데, 보통은 그것이 중국의 본류 유가와 조선의 지역적 유가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보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강화된 ‘충렬忠烈’ 개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역적 혹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대적 문제라는 말씀.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선이 동시대의 명/청 혹은 도쿠가와 막부보다 더 강하게 여성을 억압했다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그랬는지 잘 모르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의 문제인지, 아니면 조선 ‘후기’의 문제인지, 조선의 ‘성리학’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대단히 지엽적 문제, 누구의 말처럼 ‘거머리의 뇌’를 해부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나 대상이 정확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글쓴이는 ‘한국의 모든 것을 유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님을 밝힌다.’라고 했지만 그가 경계했던 것만큼 정밀한 태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3.

그렇다고 유가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하는 데 책임이 없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때 문제 삼게 되는 ‘전통적 문화’를 ‘유가’라는 말로 담아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차후 찾아보아야겠지만 중국의 루쉰은 전족이라는 풍습을 통해 전통이 여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문제삼았다. 그런데 전족 – 작은 발은 유가와 연결시키기 모호하다.

글쓴이가 문제 삼은 논개의 예나, 이른바 용기容器로서의 신체는 유가와 보다 쉽게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은 국-가에 몸 바치는 충렬의 예로, 뒤는 가부장적 체제에 종속된 신체로.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 과연 ‘유가’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 혹은 가부장제의 문제는 아닌가?

아마도 여기에는 유가에 대한 비판이 흔히 ‘유가=봉건/전근대’도식에서 행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유가가 과연 무엇인지에 묻기 보다는 전근대적 습속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유가를 끌어다 쓰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도리어 이는 ‘여성 억압 = 전근대적 문화’라는 구도를 감추는 장치가 아닐까?

내가 불편한 것은 ‘신유교주의’라는 표현에 ‘전근대적’ 혹은 ‘미개한 문명’이라는 입장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신유교주의 포르노다’라는 말에는 실상 그것이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보이지만 대단히 전근대적인 구조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쇠창살’이라는 전 근대적 감옥! 이렇게 되면 문제는 젠더적 차원을 넘어 문명적 차원에 이르게 된다. 여전히 계몽이 필요하다. 청교도의 쇠창살과 유가의 쇠창살은 다르지 않나.

덧붙이면 한국 사회를 유교적이라고 할 때, 많은 부분이 70년에 이전까지 만들어진 것을 지칭하곤 한다. 이른바 박정희 시대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과연 논개의 충렬 서사가 언제부터 강조되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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