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스스로 독립연구자라 칭하지만 과연 ‘연구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내 삶에 ‘연구’라고 부를 만한 활동이 대체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일종의 보따리장수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떠돌이 강사, 지식 소매업자.

학력은 석사. 그렇게 짧지 않은 가방끈이지만 도무지 쓸모가 없다. 석사 학위를 마치고 박사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한동안 고민했다. 석사논문을 쓴 해가 2010년 아이가 태어난 해였기 때문일 테다. 가족들은 진학을 바랐다. 그러나 없었다. 시간도, 돈도, 마음도.

대학원 시절 나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라고는 조교장으로 타 학부에서 일한 것, 학회지 작업한다고 뭇 교수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들 따위다. 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논문을 쓰면서 지도 교수에게 들었던 말은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순응하면서도 별 인연이 없는 당신에게 무슨 예를 갖춰야 하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

논문 통과는 순조로웠다. 크게 문제 되는 것도 없었고 크게 칭찬받은 것도 없었다. 한 한기 더 옆에 두자니 귀찮으니 치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후련함 보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보다 내 머리를 어지럽힌 것은 ‘거마비’, 즉 논문 심사 사례비를 준비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더불어 논문 학기를 새로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수십 만원을 다시 학교에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함께.

그 이후로 지도 교수를 만날 일이 없었다. 수년이 지난 뒤, 문득 학교 앞을 지나다 낯선 기분이 들었다. 주변이 너무 익숙해서. 뒤늦게 석사를 마친 학교라는 사실이 떠올라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그래도 3년을 보냈는데 왜 이리 남의 학교 같을까. 철이 들어서? 아니면 학교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내가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듯, 그도 나를 제자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조교 자리를 알아보아주었고, 덕분에 매달 용돈으로 쓸 만큼은 받았다며. 그래서 대학원 생활이 그리 고달프지는 않았다.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점이다. 학과에서 공부하는 대신, 이런저런 일을 하는 바람에 학비는 충당되지만 거기까지이다. 대학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일한 기억밖에는 없다. 수 차례의 학회와 몇 권의 학회지 모두 지도교수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었나?

좋은 선생으로 꼽혔다는 서울대 모 교수의 인터뷰를 읽다 짜증이 올라 옛 기억이 마구 떠올랐다. 그의 말은 ‘인문학적 꼰대질’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자기는 저항했으나 오늘날에는 너무 고분고분하다는 식의 뻔한 구도에서 시작해서 대학원생들에게 욕심을 줄이라는 세심한 충고까지. 경전을 읽었다며 <맹자>를 들이밀며 ‘욕심’을 줄이라는 훈계도 더하면서.

저항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갈등의 구조가 바뀐 것인가? 아니 그전에 스스로 젊은 시절 저항을 뽐내는 이들을 볼 때면 당신들의 저항이 열어놓은 게 이 지옥 같은 세상이냐고 대차게 물어보고나 싶다. 오늘날 연구자들이 마주한 갈등의 현장을 인식하기나 하는 걸까? 이 척박한 땅에 학문이라는 이름을 붙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항이라는 훈장을 붙여주기엔 부족한가?

욕심을 줄이라는 그의 말에서는 지독히도 썩은 냄새가 난다. 욕심을 줄이고 줄여서 이제는 욕구까지 틀어막은 사람들에게 그게 할 수 있는 소리일까? 그래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순백의 영혼으로 학업을 지속한다 하자.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졸업하면 대체 무엇이 남는가? 오늘날 연구자들을 내모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뿐만이 아니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인정욕구. 경제적 어려움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소외감까지 더해져 두 어깨가 무겁다는 사실을 그는 도무지 모른다.

그의 인터뷰를 보며 왜 대학 교수라는 작자는 저렇게 현실 인식이 엉망일까 생각했다. 배가 부르기 때문에, 선 곳이 다르기 때문에…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일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자. 대학원생들 앞에 저런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그들에게 동류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지. ‘제자’를 둔 선생들은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었다. 대학원생들을 거느린, 연구원들을 거느린, 조교들을 거느린 교수들은 꽤 되겠지.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굴려 먹을지를 고민하고 있지 않는가. 함께 학문의 길을 걷는다는 이상 따위는 내쳐지고, 그들은 ‘프로젝트’를 위한 소모품으로 버려진다. 그러니 비정규직보다 낮은, 최소한의 노동도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지.

저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본디 학문의 길이란 그렇게 계산적이지 않다고. 그러나 저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철저히 직업인이 된, 교수들의 무덤에 들어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인가? 하긴 질문이 잘못되었다. 인문학에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나 인문학자의 위기라면 어떨까? 인문학도의 위기라면? 직업으로서의 교수는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인문학은? 참, 이 인터뷰의 제목이 ‘앞으로의 인문학과 고전의 과제’란다.

http://humanities.snu.ac.kr/board/facintv/view/2449

덧: 맹자의 제자 팽경은 맹자에게 많은 수레와 사람들이 뒤따르는 것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런 소리를 하는 이가 대학에 앉아 나 같은 이가 가늠할 수 없는 연봉을 받아먹고 있는 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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