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길을 걷다 몇년 전 한동안 입에 담고 살았던 넋두리가 떠올랐다.

십 수년 전 한 친구와의 대화였다. “십 년 뒤면 먹고 살 수는 있겠지.” 상경하여 공부하겠다고 아둥바둥 거리던 시절 이야기이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 뭐가 그리 피곤한 지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았다. 공부보다 외로움과 싸우는게 숙제였다.

여튼 다행이도 10년이 지나니 먹고 살 수는 있겠더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딱 먹고 살 수만 있겠더라. 젠장 그때 더 지르는 건데… 10년이 지난 어느날 그 한마디에 뭔가 더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더라. 난 말하는 대로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딱 먹고 살만한 상태가 되고 또 몇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먹고 살만하기만 하다. 하긴 먹는데 돈을 가장 많이 쓴다. 최근에는 책을 사는 일도 줄었다. 몇 년째 똑같은 옷을 입고 산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선물 받은 옷이다. (내게 옷을 선물하고 몇 년 동안 입는 지 보는 것도 재미난 일 아닐까?)

말하는 대로 10년.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 주니 앞으로 10년은 어쩌고 싶느냐고 묻는다. 조금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도 딱 먹고 살만한 내 삶을 계산하며 조금 유명해지면, 살림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셈해본다. 10년 뒤에는 더 유명하고, 더 살만한 삶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문득 ‘큰 학자’는 되기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큰 학자가 되려면 고유한 이론을 내놓던가, 아니면 멋진 책이라도 하나 세상에 내놓아야지. 난 그저 먹고 살 걱정 뿐이다. 게다가 유명세 타령이라니 속물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고결할 생각은 없다. 속물이 비단을 걸치는 게 얼마나 우스우냐.

오늘 어떤 연구자의 글을 읽었다. 나보다 몇살 어린 이의 글을 읽으며 쓸데없이 위로받는다. 나도 이꼴인데 너도 비슷하니 참 다행이라는 식의 못된 생각이 스며드는 거다. 부럽지 않아 다행이라 할지. 갑자기 나도 ‘젊은’ 연구자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한 번도 못본 내 간 처럼 나도 그렇게 삭아버렸다.

아침에 청소기를 돌리면서 였을까?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 였을까? 그저 천년이고 만년이고 이런 ‘일상’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부귀와 명예를 얹어서. 나름 쓰고 보니 뿌듯하다. 부귀와 명예와 일상. 얼마나 멋진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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