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말은 왜 문제가 있나.

지난 주 포항 지진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모교 한동대학의 소식을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류여해라는 이의 말이 문제가 되었나 봅니다. 뒤늦게 찾아보니 ‘하늘의 준엄한 경고’라고 했다는 군요. 며칠 뒤, 포털 사이트에 김동호가 검색 순위에 있네요. 찾아보니 교계 목사로 류여해의 저 말을 비판했답니다.

뒤늦게 오늘 김동호의 인터뷰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읽는 동시에 ‘미친’이라는 쌍소리가 튀어나오더군요. 누군가는 김동호의 발언에 흥분하는 이유를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모 당의 최고위원이라는 자의 말보다 기독교 원로 목사의 말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에 말을 덧붙입니다.

제가 문제 삼고 싶은 부분은 그의 인터뷰 시작부분, ‘무당은 하늘을 팔아가지고 자기 이익 챙기는 사람이잖아요. 사람들 겁주고, 비슷하지 않아요?’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비판이야 어디서나 늘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저도 소싯적 김동호의 설교를 여럿 들었던 사람이지만 훗날 그가 이른바 교계의 ‘어르신’ 역할을 할 때엔 영 못마땅한 구석이 적지 않았습니다. 늘 적당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죠. 누가 들어도 수긍할만한 이야기. 물론 그렇기에 그는 ‘기독교의 원로 목사’로 상식적인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류여해의 저 말은 상식적인 기독교인들의 눈에 보기에도 영 불편한 내용이었다는 점을 일러주는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만약 김동호가 말하는 것처럼 ‘무당의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이라면 그 역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우선, 그의 말은 타문화, 타종교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과연 저가 말하는 것처럼 무당이 ‘하늘을 팔아 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인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겁주고’ 제 이익을 얻어가는 사람이 무당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무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 친한 무당이 없는 게 아쉽지만, 저 역시 무당에 대해 별 이해가 없는 게 아쉽지만 적어도 하늘을 팔아 제 이익이나 챙기며, 사람을 겁주는 존재가 무당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하늘과 땅, 귀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누구는 묵은 원한이나 쌓인 감정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 신령스런 어쩌면 숭고한 의무를 지닌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체 무슨 이유에서 무당을 손가락질하는 도구로 이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떨까요? 누군가를 손가락질 하며 “신도 머릿수로 권리금 주고받고, 베껴 쓴 이야기로 사람 속이고, 성추행해도 성전 뒤에 숨고, 제 뱃속에 들어가는 게 무엇인지 그 누구에도 보이지 않는, 그토록 탐욕스럽고 기만적이며 음탕하고 음흉한게 마치 목사같다.” 아마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났을 겁니다. 목사가 그런 사람이냐고. 설사 목사가 저런 일을 저지르고, 일간지에 TV 뉴스에 나와도 여전히 목사는 ‘성’스러움을 간직한 고귀한 직업처럼 이야기됩니다. 저는 문득 목사가 무당을 손가락질 한다는 자체도 웃기지만 그 내용도 우스워, 자연스레 욕이 튀어 나오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저 생각의 이면에는 기독교라는 고귀한 종교와 상대되는 무속의 천박하고도 미신적인 믿음이 있다는 마음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의문입니다.

나아가 그처럼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자기 우월감, 자기 믿음에 대한 또 다른 믿음이야 말로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를 여기까지 몰고 온 게 아닌지요? 저는 모 당의 최고위원의 말에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할만한 당이었고, 그런 소리를 늘상 하는 집단이었습니다. 나아가 기독교인 가운데 누군가 하느님의 징벌이라 한다해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게 한 두 해 인지요. 벌써 십수년전에도 하느님은 여러모로 자신의 뜻을 보이셨고, 또 그걸 소재로 삼아 줄줄이 이어지는 다양한 간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아니 어쩌면 기독교는, 적어도 이땅의 기독교는 저런 해석과 함께 성장한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포항의 지진 하나 더해진들 그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러나 김동호의 저 말은 자기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기만적 믿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말하고는 하죠. 모든 교회(기독교)가 그런건 아니예요. 그러나 정말 뿌리를 캐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쩌면 기독교는, 아니 모든 종교는 하늘을 팔아 자기 이익을 챙기기도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을 끊임없이 겁주고. 그렇다고 모든 종교를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 반성 없는 믿음에 대한 믿음, 제 믿음이 숭고하다는 정신이야 말로 오늘날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독교를 낳았다 생각합니다. ‘하늘의 준엄한 경고’라는 저 당당한 말과, 무당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목사의 날선 비판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저는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나 더 첨언하면, 하늘을 운운한 건 무당만 그러는 거 아닙니다. 저 옛날 합리적인 유가 지식인들도 늘상 입에 올렸던 말입니다. 천인상관, 혹은 천견론이라 하여 무슨 낯선 사건이 벌어지면 다 하늘의 경고라 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식으로 그것이 설득력을 얻는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 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하늘에 대한 어쩌면 그토록 순박한 생각이야 말로 미신적이거나 야만적인 것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문화심리구조’ 같은데 심어져 있는 생각이 아닌가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하늘을 쉽게 입에 올리는, 하늘을 빌어 제 이야기를 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면 ‘하느님’이라는 저 말을 살갑게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지요.

하늘이 무엇이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소리는 그저 헛웃음으로 넘길 뿐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팔아 사람을 겁주는 게 무당’이라는 어떤 이의 말은 그저 지나치지 못하겠기에 긴 말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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