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요즘 헛헛한 마음에 속마음까지 들어 찬 추위를 몰아내기 힘들다. 서늘한 가슴에 일이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이럴 때면 이런 삶을 때려치워 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곤 한다. 물론 배운 기술도 없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렇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이렇게 채념하며 일상을 꾸역꾸역 살 궁리를 하다가도 문득, 그놈의 ‘연구자’라는 자의식이 대체 누가 던져 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거다. 내가 연구자 때려치운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누구 하나라도 있으랴.

드문드문 글을 쓰고 있으나 이 글을 누가 읽으랴 하는 생각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글 재주도 문제지만 배운 게 워낙 편협한 탓에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끙끙 거리며 곽상이 어쩌고 하안이 어쩌고 해봤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마 대학에서야 논문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겠지만 내 주변에는 그깟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내내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 <주자평전>을 구해 뿌듯한 마음에 연구실에 가서 자랑했다. 만든 폼새도 좋고 묵직하니 펼쳐 본 게 없어도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걸 본 연구실 동료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주자가 공자랑 동시대 사람이냐는 질문까지. 주자가 주희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여튼 나 홀로 배불렀다.

누군가 제 사는 꼴이 영 아니라면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전에 세상 탓을 하라더라. 그래서 요즘 내 삶이 퍽퍽한 이유를 홀로 세상에 따져묻고는 한다. 연구자랍시고 강의로 벌어먹고 사는 삶인데, 다재다능한 게 한이다. 누구는 철학자 하나 만으로도 잘 살더만, 나는 <논어>, <맹자>, <장자>, <노자>, <사기>, 이제는 루쉰까지 끌어와야 좀 세상에 비벼볼만 하다. 이런 푸념에 누구는 <삼국지>를 강의해보란다.

대학 강단에 설 자격도, 생각도 없으니 지식 보부상이 되는 건 뭐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짊어지고 다녀야 할 책 무더기가 너무 많다. 별 인기 없는 상품들 뿐이니 이런 저런 것을 다 긁어모아야 그나마 좀 구색이 갖춰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좀 나이가 지긋하고 머리는 희끗하며, 말수도 점잖고 그래야 할 텐데 그것마저도 거리가 멀다. 이쪽 바닥에서는 윤리교사, 혹은 일종의 부흥강사를 바라건만 나는 그와 영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쨌든 어디서건 진지한 탐구는 별 관심 거리가 아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건만, 어째 마음을 울적해 하고 있을까. 겨울의 음습함 때문이려니 생각했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한 사건이 문득 스치는 걸 보니. 몸 담고 있는 연구실에서 연말에 세미나들을 모아 발표회를 갖기로 했다. 그에 앞서 세미나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기로 했다. ‘동양고전’ 세미나를 모아 올리라는데, 지금 읽고 읽는 루쉰의 글은 ‘동양 고전’에 들여놓기 좀 모호하다. 게다가 이른바 고전이라는 책들 지금은 다루고 있지 않기도 하고…

결국은 루쉰 세미나는 루쉰 세미나대로, 이전에 공부한 내용은 ‘동양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올리기로 했다. 하나씩 정리하면서 그간 많이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자>, <열자>, <논어집주>, <노자>, <대학>, <장자 내편 (곽상주 포함)>, <사기 본기>, <사기 서>, <사기 세가> …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또 예전 사건이 떠오른다. 세미나 시간표에 ‘사기 세미나’라고 써놓아서 ‘사기 본기 세미나’라고 고쳐달라 했더니 누군가 뭐 그리 복잡하게 따지느냐고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니체, 데리다, 푸코, 카프카 … 이름을 훑어보고는 저것들은 왜 ‘서양 고전’ 혹은 ‘서양 철학’ 따위로 묶이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아니, 울컥 억울한 마음이 솟구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았나 보다. 이렇게 나열해 놓는다 해서 누가 알아 준다고. 저런 것들에 관해 글을 쓴다고 대체 누가 읽어 준다고. 이러니 자연스레 골방으로 골방으로, 내 영혼은 어두운 그늘로 몸을 구겨 들어간다. 메아리 조차 없는 황야에 선 기분이다.

소리를 질러 보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까 하는 것도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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