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을 금함

지식이란 말과 글을 다루는 능력입니다. 같은 말도 얼마나 다르게 쓰일지 아는 것, 말에 감추어진 또 다른 의미를 읽어내는 힘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좀 예민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작은 표현, 단어 하나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새로운 말을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기존에 있던 말을 버리기도 합니다.
앞서 ‘착하다’는 말이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다르게 쓰인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착한 가격’ 혹은 ‘착한 몸매’ 따위의 말에서 볼 수 있듯, 착하다는 말에는 ‘다루기 쉽다’, ‘보기 좋다’ 등의 의미가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착하다는 말에는 ‘정의正義’가 빠져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에는 ‘옳은 일을 실행하라’는 의미보다는 ‘보기 좋은 일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착하지 말라’는 말에 누군가는 그럼 ‘나쁜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군가 ‘악惡’으로 규정한, 한 시대의 가치가 제한한 지점을 때로는 넘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악인惡人’이 되어서 말이지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훗날 혁명가라 불리는 이들이 처음에는 악인으로 불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강하게 요구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착하지 말라’는 말이 ‘악을 행하라’라는 말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오늘 우리 사회의 가치를 성큼 뛰어넘으라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선의 반대가 꼭 악은 아니듯, 착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꼭 그 반대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고귀한 사람, 성실한 사람, 진솔한 사람, 소박한 사람 … 착한 사람이 아니어도, ‘착하다’는 말을 버려도 우리가 좇아야 할 가치는 여전히 많습니다.
과제를 받아보고 ‘교훈’이라는 말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말 역시 별로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상식적이고 뻔한 가르침’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가요. ‘교훈을 주는 책’, ‘교훈적인 이야기’라면 따분하게 여겨지지 않나요? 기대되는 게 별로 없지 않나요? 누군가 ‘교훈을 주는 책’이라며 책 한 권을 권해준다면 그 내용을 궁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착한 아이’라면 의무감으로 읽겠지요.
‘교훈을 주는 글’은 채 읽기도 전에 이미 읽은 것이나 다름없는 글입니다.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지요. 그래서 읽은 뒤의 반응도 정해져 있습니다. 늘 ‘~야겠다.’는 반성이나 다짐이 뒤따라 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실제로 힘을 갖지는 못합니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교훈이라는 말을 버립시다. 아니, 이제부터는 금하려 합니다.
도리어 어떤 깨우침, 깨달음, 새로운 발견을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낯선 문제를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공부가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낯선 것, 신기한 것을 다루는 것이야 말로 짜릿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교훈’을 재미있다고, 흥미롭다고 여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익숙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익숙한 말을 조심하세요. 하나씩 점검하면서 사용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너무 낡았다면 과감히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 2017년 5월 23일 선농인문학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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