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12-1

12-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이을호 역

안연이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 “사욕私慾을 억누르고 예법대로 실천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으니, 하루만 사욕을 억누르고 예법을 실천하더라도 천하 사람들이 모두 사람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은 내게서 되는 것이지 남에게서 될 법이나 할 일이냐!” 안연 “자세한 것을 일러 주십시오.” 선생 “예법대로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안연 “제가 비록 불민하지만 말씀대로 해 보겠습니다.”
[평설] 사람으로서 나는 二重構造的이다. 道心과 人心, 道義와 慾心, 大體와 小體, 心之官과 耳目之官 등등 전자가 후자를 克服한다면 그것을 克己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克己란 내가 나를 이기는 행위요, 일차적인 자기부정에서 새로운 도덕적 자아를 발견하는 능동적 행위인 것이다.

임자헌 역

안연이 공자에게 ‘온전한 사람다움(仁)’이란 게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예의’를 회복하는 게 온전한 사람다움이지. 하루라도 제대로 ‘나’를 넘어서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예의’를 생각할 수 있다면 세상은 온전한 사람다움이 지닌 가능성을 신뢰하게 될 거네. 온전한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건 다 내 할 탓이지 다른 사람이 해주지 않아. 이게 어려운 점이지.” 공자의 말을 듣고 안연이 다시 물었다. “구체적인 실천 항목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공자가 말했다. “‘함께’와 ‘그 함께를 위한 질서’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네. 이 개념에 맞지 않는다 싶으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아야 하지.” 안연이 자못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이 말씀대로 따라보도록 할게요!”
: 사람은 육체에 갇혀 있다. ‘나’와 ‘너’가 당연히 별개의 존재로 느껴진다. 그래서 종종 ‘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너’와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일부러 이기심을 부리든 아니든, 개인의 모든 단추는 ‘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채워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입장에서만 단추를 채우면 어떻게 될까? 한두개 잘 채워지는가 싶더니 얼마 못 가서 내 단추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단추에, 어라? 네 손이 불쑥 나와서 자기 단추라며 채우고 있고, 어쩌면 서너 명이 한 개의 단추에 달려들기도 해서 네 거네 내 거네 하며 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다반사다. 세상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얽혀 있는 곳이니까.
적절한 간격 조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예禮’ 가 등장한다. 예는 ‘나와 너’가 함께 하는 이 사회란 곳이 무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질서와 규범이다. 안 지키면 욕먹고, 벌맏고, 벌금 내고, 그렇게 귀찮고 손해나는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나’가 잘살기 위해서는 ‘너’의 자리를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너’의 자리부터 생각해주는 것이 ‘나’도 내 자리를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것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예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삶이 타인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공인公人 아닌 사람이 없다.

<논어주소> 정태현 역

[注]馬曰 克已約身
馬曰 克已는 約身(몸을 단속함)이다.
[疏]人君若能一日行克已復禮 則天下皆歸此仁德之君也 一日猶見歸 況終身行仁乎
임금이 만약 하루라도 몸을 단속해 예로 돌아오는 일을 행한다면 천하가 모두 이 仁德을 가진 임금에게 歸依한다는 말이다. 하루만 (克己復禮) 하여도 (천하 사람이) 歸依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데, 하물며 終身토록 仁을 행함에랴.
[疏]劉炫云 克訓勝也 已謂身也 身有嗜慾 當以禮義齊之 嗜慾與禮義戰 使禮義勝其嗜慾 身得歸復於禮 如是乃為仁也
劉炫은 “克의 訓詁는 勝(이김)이고, 義와 싸울 때에 禮義가 嗜慾을 이기게 하면 몸이 禮로 回歸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야 仁이 된다.’라고 하였다.

<논어집주> 박성규 역

仁者 本心之全德 克 勝也 己 謂身之私欲也 復 反也 禮者 天理之節文也
인仁은 본심의 온전한 덕이다. 극克은 이김, 기己는 자신의 사욕, 예禮는 천리의 절문節文(절도와 격식)이다.
歸 猶與也 又言一日克己復禮 則天下之人皆與其仁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귀歸는 인정함(與)과 같다. 또 ‘하루라도 사심을 이기고 예를 실천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어질다고 인정한다고 말한 것은, 그 효과가 신속하고 지대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어류] “’국가는 예로써 다스린다(爲國以禮)’고 할 때의 예가 곧 ‘극기복례’의 예입니까?’” “예는 저 천지자연의 이치(理)이다. 이해를 하면 번다한 형식과 절차가 모두 그 안에 있다. … 어느 것인들 천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투철하게 깨달으면 모두가 천리이다. …”
[어류] “하루 사이에 어찌 이처럼 (천하 사람들이 나서서) 인정할 수 있습니까?” “하루 사이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하루 동안 극기복례 했다 하여, 어떻게 온 세상 사람이 어질다고 인정합니까?” “극기복례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다. …”
[어류]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성인 문하에서 안 자도 질문을 잘하였다. … 반대로 사마 우가 질문하는 태도는 비뚤어졌다. 인을 질문하여 공자가 답해주자, 사마 우는 ‘말이 신중하기만 하면 곧 인이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사마 우의 마음이 모두 바깥으로 향해 있고(向外去), 그 문제를 자기에게 절실한 공부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되물은 것이다. 또 군자에 대한 문답의 경우도 사마 우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군자라고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마치 성인을 꺾어 넘어뜨릴 듯한 말투이다. 이런 것들이 질문을 할 줄 모르는 모습이다.
[어류] “극은 이기다(勝) 보다 다스리다(治)로 풀면 더 온당하지 않습니까?” “다스린다는 말은 느슨하다. 1할을 막아도 다스림이고, 2할을 막아도 다스림이다. ‘이김’은 사심을 깨끗이 죽여 없앤다는 뜻이다.” 성인께서 ‘극’자를 쓴 것은, 비유컨대 서로 죽이는 것과 같다. 적(사욕)을 반드시 이겨서 제압해야 한다.
[어류] 불교는 ‘극기’만 있고 ‘복례’ 공부가 없다. 그래서 질서와 예법에 어긋나고, 군신을 부자로 여기고 부자를 군신으로 여겨 모조리 혼란시켰다.

옹달메모

: 이을호는 극기복례를 ‘사욕을 억누르고 예법대로 실천함’으로 풀었다. 평설에서 언급하듯 이는 인간을 이중구조로 분석하는 태도에서 가능하다. 욕심과 도의라는 이중구조. 그러나 이러한 태도에서 인간은 자기 분열증적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루쉰은 이를 두고 사람을 죽인다 하지 않았나.
: 임자헌의 풀이가 매력적이다. 禮를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예의’, ‘함께를 위한 질서’로 풀고 있다. 이을호처럼 개별 인간 내부의 모순, 투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문제로 본다. 예를 내면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해석할 때에야 ‘예’가 갖는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우리’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나만의 나’를 넘어설 때야 공자가 꿈꾼 禮를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소>를 보면 고주에서는 ‘극기’를 행위의 문제로 풀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이를 ‘자기를 이김’으로 풀이하는 전통이 생겼음을 볼 수 있다. 한편 고주에서는 이를 임금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 주희의 풀이는 대단히 개념적이며 답답한 구석이 적지 않다. ‘이치’를 빌어 이 문장을 해석하는데 제자들도 쉽게 납득하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사마우를 비판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뭐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었을지.
: 주희가 버린 풀이에 개인적으로 눈이 간다. 극기를 治己, 자기를 다스림으로 푸는 것. 임자헌의 풀이처럼 자기 수양과 공동체적 삶의 발견으로 풀이하는 게 <논어>의 소박한 본의에 맞는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풀이하면 후대 유학자들이 주목했던 감각기관에 대한 경계에 크게 주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과연 공자가 주장한 예라는 것이 그처럼 세세한 규범을 동반한 것이었는가? 후대 예교비판의 관점을 참고할 때 아무리 보아도 주희의 보수적 해석에 동의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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