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9-12

9-12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 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이을호 역

선생이 병석에 누웠을 때 자로가 제자들로 신하처럼 꾸미려고 하였다. 병이 웬만하자 이 사실을 알고 말하기를 “진작부터였던가. 유가 속임수를 쓴 것은! 신하도 없으면서 신하를 만들다니, 내가 누구를 속일까! 하늘을 속인단 말이냐? 나야 거짓 신하들의 손에서 죽는 것보다는 몇 사람 제자들의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기야 훌륭한 장례는 못 지낼 망정 길가에서 죽기야 할라구!
: 欺天乎의 天은 上帝天임이 분명하다. 모름지기 공자의 天에 대한 內省的 信仰의 篤實함을 엿볼 수 있다.

임자헌 역

공자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로가 스승님의 장례식을 격을 높여서 치러드리고 싶은 마음에 문하생들을 장례를 집행할 신하로 세우는 장례 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공자의 병이 호전되었다. 병이 호전되고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자는 자로의 무리한 행동에 실망해서 적잖이 화가 났다. “자로가 참 오래도 사기를 쳤구나! 나한테 무슨 신하가 있었다고 신하를 세워? 그럼 내가 누구한테 사기를 친 거냐? 하늘한테 사기를 친거 아니냐? 나는 나한테 있지도 않았던 신하들 시중 받으며 죽고 싶지 않아. 그저 너희들 품에서 죽으면 된다고! 내 비록 거창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내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건 아니잖아.”
: 공자가 자로의 마음은 이해했으리라.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꾸짖을 땐 여지를 주지 말아야 다시는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로처럼 행동에 뛰어난 사람은 또다시 마음만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원칙만 분명히 밝혀주는 게 아니라 말도 모질게 해서 꾸짖는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병이 위독해져서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이 무슨 시운에 이렇게 화를 냈겠는가? 또 스승의 그 마음을 잘 아니까 자로는 만날 퉁을 먹으면서도 공자가 그렇게 좋다며 늘 그 옆에 있었던 거겠지.

<논어주소> 정태현 역

[注] 鄭曰 孔子嘗為大夫 故子路欲使弟子行其臣之禮
鄭曰: 孔子께서 大夫가 되신 적이 있기 때문에 子路가 弟子들로 하여금 家臣의 禮를 행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疏] 我既去大夫 是無臣也 女使門人為臣 是無臣而為有臣
내가 이미 大夫에서 물러났으니 家臣이 없어야 한데 그런데 네가 門人들로 하여금 家臣이 되게 하였으니, 이것은 家臣이 없어야 하는데 家臣두는 일을 한 것이다.
[疏] 言就使我有臣 且我等其死於臣之手 寧如死於其弟子之手乎
가령 나에게 家臣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家臣의 손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내 弟子들의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집주> 박성규 역

[注] 夫子時已去位 無家臣
공자가 이때는 이미 직위를 떠나 가신이 없었다.
[注] 我之不當有家臣 人皆知之 不可欺也 而為有臣 則是欺天而已 人而欺天 莫大之罪
내가 마땅히 가신을 두면 안 됨은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니 속일 수 없다. 그런데 가신을 둔다고 하면, 이는 하늘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사람으로서 하늘을 속이는 일보다 더 큰 죄는 없다.

<공자, 인간과 신화>, H.G.크릴, 이성규 역

공자의 제자들은 선생이 인정받는 것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만약 공자가 그런 자리를 실제 얻었다면 그들은 <논어>에 이 성공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에는 공자가 무언가 높은 자리를 지냈다는 시사조차 없는 것이다. 공자가 사구였다는 맹자의 기록은 단지 100년 뒤에 공자의 전설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64쪽)

옹달메모

: <논어>에서 공자는 몇 차례 天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이을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을호가 참고하는 다산의 해석을 따르자면 그렇게 풀이해야겠지만 <논어>에서 명확한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공자가 말한 하늘은 보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닐지? 이를 보려면 춘추시대 다른 문헌을 참고해야 하나 그럴 여력이 없다. 의문을 남겨둔다.
: 공자와 자로의 관계에 주목하는 임자헌의 풀이가 인상 깊다. <논어>에서 공자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자로였을 테다.
: 하안 이래로, 아니 맹자 이래로 공자가 노나라의 높은 자리에 올랐을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크릴의 비판처럼 정작 <논어>에서는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는 공자가 사구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리라 추정하나 근거는 없다. 혹자는 下大夫였을 거라 추정하나 그도 분명하게 알기 힘들다. 크릴은 그가 아무런 자리를 얻지 못했으리라 추정한다.
: 다산은 자신의 관직생활을 근거로 송대 학자들의 주석을 대차게 비판한다. 실무경험이 없으니 그들의 주석이 공리공담에 불과할 뿐이라는 식으로. 그러나 정작 공자는 어땠을까? 개인적으로 공자가 관직을 얻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설사 관직을 얻었다 하더라도 매우 낮거나 명예직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염유나 자로 등 계씨의 가신이 된 제자들과의 갈등이 쉽게 이해된다.
: 이 문장은 아무래도 방황길에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고향을 떠나 떠도는 가운데 공자가 위독한 병에 걸렸다. 심각한 상황에서 자로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비록 스승이 아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나 장례라도 대부의 예로 치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나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공자는 제자를 꾸짖는다. 허례는 필요 없다. 나아가 그에게는 대부의 자리보다 제자들과 함께 했다는 그 사실이 더 중요했다. 공자는 정치가로서는 실패했으나 선생으로서 그는 지울 수 없는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제자 그리고 <논어>가 그의 행적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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