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7-8

7-8
子曰
不憤不啟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이을호 역

선생 “달려들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았고, 애태우지 않으면 튕겨 주지 않았고, 한 귀를 보여 줄 때 셋까지 깨닫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임자헌 역

공자가 말했다. “저는 학생이 애가 탈 정도로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고,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가 아니면 말문을 틔워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각형 한 귀퉁이를 제가 보여줬을 때, 학생이 그걸 보고 곧장 ‘어? 나머지 세 귀퉁이가 있겠군요!’라고 대답하지 않고 ‘응? 뭐지? 뭘까요?’라는 반응을 보이면 더는 알려주지 않죠.

<논어주소> 정태현 등 역

鄭曰 孔子與人言 必待其人心憤憤 口悱悱 乃後啟發為說之 如此則識思之深也 說則舉一隅以語之 其人不思其類 則不復重教之
鄭曰: 孔子께서 남과 이야기하실 때에 반드시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알려고 노력하고 입으로 표현하려고 애쓰기를 기다린 뒤에 깨우치고 틔워주기 위해 말씀을 해주셨으니, 이와 같이 하면 識見과 생각이 깊어진다. 말해 주실 때는 한 모퉁이를 들어 일러주시고, 그 사람이 나머지 세 모퉁이를 類推하여 생각지 못하면 다시 일러주지 않으셨다.

<논어집주> 박성규 역

又曰 不待憤悱而發 則知之不能堅固 待其憤悱而後發 則沛然矣
번민하거나 끙끙거림을 기다리지 않고 열어 주면, 아는 것이 견고할 수 없다. 번민하고 끙끙거림을 기다린 다음에 열어 주어야 힘차게 나아간다. – 명도
[어류]
끙끙거림(悱)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고, 3~5할은 이해하지만 다만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71) 학생은 번민하고 끙끙거린다면(憤悱), 그 마음이 이미 대략은 뚫린 상태이다. 다만 마음으로는 깨달았지만 확실한 믿음이 없고, 입은 말하려고 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성인이 거기서 계발시켜준다.(69) 번민하고 끙끙거려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번민하거나 끙끙거리지도 않았는데 계발시켜주면, 결국 세 귀퉁이를 유추하는 대답을 못하게 되고, 따라서 그는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또한 가르침을 듣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옹달메모

이을호의 풀이가 재미있다. 분憤을 ‘달려들다’로 풀었는데 이는 다산의 풀이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산은 ‘心之怒: 성냄’이라고 풀이했다. 주희는 ‘心求通而未得之意: 깨닫고자 하여도 얻지 못함’이라고 풀이했다. 문득 궁금해서 더 찾아보았더니 <강희자전>에는 ‘鬱積而怒滿: 울적하여 가득 성남’이라 풀이했다. 다산의 풀이가 더 적극적이나 실제 경험으로 옮기면 답답해하는 경우는 있어도, 저렇게 달려든다고 할 정도의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힘들다.
임자헌의 풀이는 좀 과하다. ‘삼우반三隅反’에 대한 풀이가 너무 번잡하다.
하안과 주희는 모두 기다림(待)과 따져봄(類)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생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학생은 스스로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둘이 마주칠 때야 비로소 배움이 일어난다.
확실히 공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기대하는 ‘친절한 선생’과는 거리가 멀다. <논어>를 보면 그의 기준은 확고하다. 그는 결코 제자들을 쉽게 칭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긴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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