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7-5

7-5
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이을호 역

선생 “나는 정말 늙어 버렸나 보다!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다시는 꿈에 보지 못하니……”
[평설] 공자의 尊周思想은 사실상 周公에 대한 心醉에서 비롯한다. 공자의 道의 淵源은 堯舜에서 비롯하지만 현실적 근원은 周公의 제도-周禮-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道를 堯舜周公의 道라는 所以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임자헌 역

공자가 말했다. “아아, 내가 너무 늙었구나! 꿈에 나의 롤 모델이신 주공周公님을 못 뵌지가 한참이나 되었어!”

옹달메모

<주소>와 <집주>에서는 따로 참고할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이을호는 공자의 사상이 요순에까지 이른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후대 도통론의 관점에서 보면이야 공자의 사상을 그렇게 심원한 것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논어>에서 요순은 그렇게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역사적 인물로서 주공 단이 요순을 계승하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가졌는지도 의문이다. 공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주공을 크게 숭상했다는 점이며, 이는 곧 周禮에 대한 깊은 선망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공자는 주나라의 체제야 말로 돌아갈 하나의 모범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공자보다 앞서 주나라의 체제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대의 변화, 춘추전국에서 진한의 통일 제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면 주례를 붙잡고 있는 공자에게는 낡은 냄새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정말로 봉건封建-‘전근대’의 의미가 아니라 주왕실을 중심으로 한 주나라 체제-을 고수하려 한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공자가 노예제 사회를 유지하려 했다느니, 혹은 시대에 뒤쳐진 인물이라느니 하는 말은 일견 타당하다.
그렇다고 공자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릴 사람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당대의 변화를 낯설게 느꼈던 인물이었다. 거꾸로 돌아가려 했다기보다는 멈추어 있으려 했다. 그가 꿈꾸었던 새로운 주나라의 이상이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꿈이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논어>에서는 이상과 현실 가운데 늘 이상이 패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살아 있다. 그렇기에 <논어>는 儒家의 聖典이 될 수 있었다.
한편 과거-현재-미래라는 도식 안에서 그는 과거에 뿌리 박힌 인물이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한 다양한 성격의 제자들로 孔門의 미래가 쓰였다. 꿈에서도 주공을 만나지 못할 정도로 현실-시대의 변화, 자신의 노쇠함-이 만만치 않았으나 그의 곁에는 이런 그의 푸념을 들어줄 수많은 인물이 있었다. 일부는 <논어>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고, 일부는 이 말을 후대에 전해주는데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공자에게 이들, 제자들이 없었다면 그 역시 역사에 휩쓸려간 필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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