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2-1

子曰
為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眾星共之

이을호 역

선생 “정치는 곧은 마음으로 해야 함은 마치 북극성이 제 자리에서 뭇 별들을 이끌고 함께 돌아가는 것 같은 거야!”
* 政: 옛날 정치란 行政이란 뜻을 강하게 풍긴다. 위정이란 곧 행정인 것이다.
* 共: 같이 한다.
[평설] 몇몇 주해자들은 이를 ‘無爲而治(무위이치)’의 극치에 비하여 ‘居其所(거기소)’를 不移(불이)-不動(부동)-無爲(무위)’라 하였으니, 이는 노장사상에 의한 해석으로서 유가의 ‘正己正物(정기정물)’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居其所(거기소)는 正己(정기)의 자세로서’ 共之(공지)’는 그 교화에 따르는 태도인 것이다.

임자헌 역

공자가 말했다. “내면에 갖추어진 바른 가치로써 정치를 하는 건 말이죠, 이를테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다른 많은 별들이 알아서 빙 둘러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논어주소>, 정태현 등 역

* 北辰常居其所而不移 故眾星共尊之 以況人君為政以德 無為清靜 亦眾人共尊之也
北辰이 항상 제 위치에 머물고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뭇별이 共尊하니, 이것으로써 임금이 덕으로써 정치를 하여 無為清靜하면 역시 뭇사람이 共尊함을 비유한 것이다. (疏)

<논어집주>, 박성규 역

* 政之為言正也 所以正人之不正也
정政의 의미는 올바름(正)이니(12-17), 남이 바르지 않음을 바로잡는 것이다.
* 共 向也 言眾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為政以德 則無為而天下歸之 其象如此
공共은 향함이니, 모든 별들이 사방에서 돌면서 둘러싸 북극성을 향해 있다는 말이다. 덕으로 정치하면, 일부러 일을 벌이지 않아도(無爲) 천하가 귀의하는 형상이 그와 같다.
[어류]
‘덕으로 정치함’은 덕을 가지고 정치를 편다는 뜻도 아니고, 우두커니 서서 전혀 아무런 작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덕이 임금 몸에 닦여 있어서 인민이 저절로 감화한다는 뜻이다. 감화란 정책이 아닌 덕으로 감화함이다. 정치란 남의 부정을 바로잡는 일이니 작위가 없을 수 없다. 다만 사람이 귀의하는 까닭은 그의 덕 때문이다.”
“노자의 무위 정치도 같은 것 아닙니까?” “노자의 무위는 전혀 일하지 않는 것이다. 성인의 무위는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자신을 바르게 하여 남면할 따름이다.”
모기령:”집해의 ‘덕이란 무위이다’는 포함의 설은 황노의 설을 뒤섞은 것이다. 하안은 <집해>를 지을 때 본디 노자에 익숙해 있어서 유가를 도가로 끌어들였다. ‘덕으로 정치함(爲政以德)’이 바로 유위有爲이다. 공자는 이미 명백히 ‘위爲’ 자를 썼다.”

<논어한글역주>, 김용옥

* 덕이란 무엇인가? 공자나 노자나 그 덕의 내용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덕德이란 바로 ‘무위無爲’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란 무엇인가? 무위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음’인가? 무위란 함이 없음이 아니요, 바로 북극성과 같은 기능이라는 것이다. 북극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자리를 지키고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변의 모든 별이 그것을 구심점으로 해서(共之) 돌아가게 만드는 어떤 힘을 갖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 이 ‘공共’을 ‘공拱’자로 해석하면, 모든 별들이 이 북극성을 향해 소매를 들어 공수拱手하면서 고개 숙여 절하고 있는 어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 공共자의 원의는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나는 정현주에 의거하여 이런 해석을 나의 원문번역에 반영하였다.

옹달메모

– 이 문장을 해석하는 데 몇 가지 까다로운 걸림돌이 있다. ‘정政’이란 무엇인가? ‘덕德’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공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앞의 둘은 다른 문장에서도 언급되므로 간단히만 정리한다.
– 이을호는 ‘정政’을 행정이라 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자의 말을 풍성히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政’은 ‘치治 – 다스림’이기도 하며, ‘정正 – 규범적 교화’이기도 하다. / 共을 ‘함께 돌아감’으로 풀었다. 이는 無爲를 강하게 비판한 다산의 해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이을호는 ‘곧은 마음(直心)’으로 임자헌은 ‘내면에 갖추어진 바른 가치’로 德을 풀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이을호의 풀이를 따르겠다. 이을호의 풀이는 德을 글자 모양으로 풀이한 것인데, 그보다는 어떤 역량이나 힘, power로 풀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 형병의 소에서는 共을 共尊, 함께 높임이라 풀이하였다. 도덕적 교화를 강조하는 신주의 풀이보다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위정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부분보다는 위정자의 역할, 기능에 대해 공자는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라 했던 것처럼, 위정자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덕이라는 역량을 갖춤만으로도 뭇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을 수 있다.
– 주희는 교화와 감화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하안 및 포함 등의 설을 비판하는데, 無爲라는 표현에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 도올의 풀이를 옮겼다.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풀이다.
– <논어>는 위정자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공자가 군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데서 볼 수 있듯, 공자는 권력을 쥔 자에게 더 강한 도덕을 요구했다. 동시에 도덕적인 사람이 권력을 쥐어야 한다고 보았다. 군자다운 사람(도덕적인 인간/有德者)이 군자(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군자는 어떤 통치를 하는가?

201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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