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기픈옹달의 논어읽기 2-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이을호 역

선생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때 목표가 섰고, 마흔에 어리둥절 하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고, 예순에 듣는대로 훤했고, 일흔이 되어서는 하고픈 대로 해도 엇나가는 일이 없었다.
[평설] 공자의 자서전이다. 문학사 상 가장 오래고 짧은 작품인 것이다.

임자헌 역

공자가 말했다. “저는 15세에 공부에 뜻을 두었어요. 30대에 들어서니 저만의 주체적인 견해가 생기고, 40대에 들어서니 허망한 것에 휘둘리지 않게 되더군요. 50대에 들어서니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되고, 60대에 들어서는 어떤 주장을 들어도 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70대가 되니까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이 기준은 공자의 것일 뿐이고 사람은 각각 다른 속도로 자신의 삶을 걸어간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자기에게 정답!

<논어주소>, 정태현 등 역

* 有所成[立]也
* 馬曰 矩 法也 從心所欲 無非法
馬曰: 矩는 法이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으되 법도가 아님이 없었다.
* 正義曰 此章明夫子隱聖同凡 所以勸人也 (疏)
正義曰: 이 장은 夫子께서 聖人임을 숨기고서 凡人과 같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니, 사람들을 권면하기 위함이시다.
*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者 矩 法也 言雖從心所欲而不踰越法度也 (疏)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矩는 法이니, 비록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는 말이다.
* 孔子輙言此者 欲以勉人志學 而善始令終也
孔子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학문에 뜻을 두어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도록 권면하고자 해서이다.

<논어집주>, 박성규 역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자립하였고,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에 귀에 거슬림이 없었고, 일흔에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좇아 행해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되었다.”
* 程子曰 孔子生而知之也 言亦由學而至 所以勉進後人也 立 能自立於斯道也
* 胡氏曰 … 欲得此心者 惟志乎聖人所示之學 循其序而進焉
[어류]
“립은 다만 외물에 의해 휘둘리지 않음이다.”

옹달메모

– 이을호 역에서 ‘而立’을 목표가 섰다고 풀이하는 것이 신선하다. 아무래도 평생에 걸친 공자의 성숙을 이야기학 위함이 아닐지. 가장 짧고 오래된 자서전이라는 말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임자헌 역은 그만의 독특한 리듬, 유쾌함이 있다. 익숙한 문장도 그의 손을 거치면 낯선 문장이 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70대가 되니까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기지 않게 되었습니다.’는 밋밋하다. 而立을 ‘저만의 주체적인 견해’라고 풀이한 부분을 곱씹게 된다. 하긴 주체적인 견해라 부를 만한 게 있어야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 知天命을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한계’라 풀이한 것은 커다란 두 풀이를 모두 고려한 결과겠다. 둘 가운데는 ‘인간의 한계’가 더 맞는 풀이일 텐데, 이렇게 하면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이런 맥락이라면 이을호 식의 풀이가 낫다는 생각이다.‘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라는 말이 인상 깊다. 이 문장을 하나의 표준으로 생각할 경우 열등감 이외에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 <논어주소>에서는 而立의 立을 成으로 풀었다. 사실 이 풀이가 현실에 가까운 듯 보인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30대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나이이다. 矩를 법도로 해석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형병의 소에서 ‘踰越法度, 법도를 넘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안의 주에는 별 말이 없으나 형병의 소에서는 이미 공자를 성인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문장은 공자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단계를 설정해 준 것에 불과하다. 공자를 지나치게 절대화할 뿐만 아니라 공부의 단계를 획일화한다는 면에서 지양해야 할 풀이이다.
– 주희의 해석은 형병의 소를 확대하여 더 공자의 말을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들었다. 스스로 생지生知 자처하지 않았음에도 후세의 유자들은 공자를 생지生知로 높여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삶의 성숙이라는 주제가 사라지고, 천리를 깨우침에 심화된 과정이 있을 뿐이다. 경험이 아닌 ‘순서(序)’는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딱딱하다.
– 개인적으로 공자를 이해하는 문장으로 크게 주목하는 데, 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소박하게 들려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위보다는 경험이 담겨 있기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 나이에서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이 아니다.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예로 공자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며,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가 배움(學)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1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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