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읽기 #4 《인간세》 – 굽이굽이 걸어가는 길

1. 장자과 노자… 장자와 공자

전국시대 이후 《노자》학은 한대 초엽에 성행했고, 장자학은 한대 말엽에 성행했다. … 사마담은 도가를 일컬어 “항상 시대적 추이와 함게 하고 사물에 순응하여 변화했으니, 풍속을 수립하고 정사를 베푸는 데에 온당하지 못한 바가 없고, 그 종지가 간략하여 견지하기가 쉽고 공력은 적게 들여도 효과는 많다”고 했다. 《한서》 〈예문지〉는 도가를 일컬어 “군주의 통치술이라고 했다. 한나라 사람이 말한 도가는 실은 《노자》학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학은 처세법을 서술하지만 장자학은 인간사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한이 흥기하면서 황로의 학설이 성행하여”, 청정무위에 바탕한 정치를 주장했을 때 그것은 《노자》학이었다. “한나라 말에 이르러 현허玄虛를 숭상하게 되자”, 비로소 《노자》를 장자학화하여 노장을 병칭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노자》는 《노자》, 장자는 장자이다. – 《중국철학사 상》, 펑유란, 280쪽.

《노자》와 《장자》를 한두 구절씩 읽어보아도,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자와 장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서 나름대로 사유를 전개했지만 서로 다른 점이 많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두 사람은 관심 분야도 확연히 다르다. 노자는 무엇보다 국가와 통치자에 자신의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제국을 소유하려면 통치자가 무위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반면에 장자는 험난한 시대를 사는 개인을 위해서 사유를 전개했다. 장자는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연못물 같은 맑은 마음, 즉 선입견이 전혀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게 해야만 풍속이 다른 공동체에 가서도 그 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장자&노자 – 道에 딴지 걸기》, 강신주, 19쪽.

… 《노자》는 기본적으로 ‘누가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격언들의 모음집이다. … 《노자》는 평범한 백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노자》의 독자는 《노자》를 읽고 그 내용을 실천해 천하를 다스릴 방법과 힘을 체득해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을 호모 임페리알리스, 즉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과학 기술적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달리 말해 《노자》의 독자들은 천하의 대권 지망자들로서, 바로 《노자》를 읽고 실천 방법을 모색하려 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자》는 철저하게 권력의 기술에 관한 책 이라고 할 수 있다. –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57쪽.

메이컴은 《장자》에 묘사된 공자의 모습이 《논어》에 묘사된 공자의 모습과 유사하고, 유가에 속하는 《맹자》나 《순자》 그리고 사마천의 〈공자세가〉에 묘사된 공자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장자》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이 본래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본다. – 앞의 책, 159쪽.

동양사상 혹은 중국철학의 커다란 두 조류로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를 꼽는다. 이 둘이 상호 보완하여 발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서술이다. 치세治世, 즉 평화로운 시기에는 유가가 난세亂世, 어지러운 세상에는 도가가 발전했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과연 정말 그런지는 따져보아야 할 일이나 이처럼 유가와 도가를 짝지어 서술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런 토대에서 불가佛家를 또 다른 요소로 넣어 유불도儒佛道 삼가三家의 회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편 불가의 자리에는 법가法家가 놓이기도 한다.

이런 도식적인 이해는 매우 편리한 방법임에 틀림없지만 틀에 끼워맞춘 경우가 많은 까닭에 실제를 이해하는 데는 도리어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유가와 도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었을까? 도가는 유가의 폐단을 극복하는 데만 가치가 있는 사상일까? 도가라는 사유의 독립적 특성은 없는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과연 ‘도가’라는 학파, 혹은 일관성 있는 사상의 조류가 존재했던 것일까?

흔히 도가라고 하면 노자와 장자 두 인물을 꼽는다. 그래서 도가를 다른 말로 노장학老莊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자와 장자의 학문이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이 말이 쓰였는지는 모르나 이는 분명, 유가의 공맹학孔孟學을 염두해놓고 만든 말임에 틀림없다. 공자가 유가를 창시했고 맹자가 발전시켰듯 도가는 노자에 의해 창시되었고 장자에 의해 발전되었다는 식의 서술이 일반적이다. 이런 식으로 공자와 노자를 유가와 도가의 시초로 보기 때문에 공자가 앞서느냐 노자가 앞서느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동양사상, 중국철학의 뿌리를 찾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다.

계통을 찾는 일은 필연적으로 그 고유성에 대해 덜 주목하게 만든다. 누구의 자식이라는 말은 그가 누구인지를 까먹게 만든다. 그 이름 석자 조차 망각하게 만드는! 마찬가지로 노장학이라는 말은 노자의 사상적 자식이 장자라는 뜻이며, 이러한 구도는 필연적으로 장자의 고유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심하게 말하면 《노자》 오천자의 주석으로 《장자》를 읽는 것이다. 만약 장자가 《노자》의 충실한 계승자였다면 이런 접근이 도움이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는 오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앞에서 인용한 글들은 모두 노자와 장자의 연관성에 의문을 던지는 글이다. 《중국철학사》를 서술한 펑유란은 《노자》와 《장자》가 서로 다른 시기에 구성되었고, 나아가 노자와 장자의 문제 의식이 서로 상이하다는 주장에 까지 이른다. ‘《노자》는 《노자》, 장자는 장자이다.’ 이어서 아래는 강신주의 글이다. 그는 더 강하게 노자와 장자의 연관성을 부정한다. 그것은 이 둘의 사유가 정반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가 국가와 통치를 다룬다면 장자는 반대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지향한다. 그는 장자를 사랑하는 동시에 노자를 배척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노자와 장자는 상극이다.

김시천은 《노자》를 두고 ‘호모 임페리알리스’를 꿈꾼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니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니 하는 식으로 《노자》를 이해했던 것이 맞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자》를 자유, 자연, 생태, 여성, 평등 등의 개념과 연관지어 읽어온 역사보다 병가兵家 혹은 법가法家와의 연속성에서 읽어온 역사가 더 깊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중적인 《노자》의 이해는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장자》를 이야기해야 하므로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김시천의 이어지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장자와 공자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와 장자를 묶고 이를 공자와 대립키키는 관점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도가를, 장자를 유가의 폐해를 극복하려했다고 이해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런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 〈인간세〉 편에서 공자의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자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서.

《논어》가 과연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시천이 이야기하듯 《맹자》와 《순자》에 묘사된 공자의 모습이 《논어》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둔다면, 이 《맹자》와 《순자》, 두 책 이후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설사 그 이전에 완성되었거나 일부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맹자 학파나 순자 학파와는 거리를 두고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장자》와의 관련성은 어떨까? 최소한 《장자》에 언급된 공자의 행적을 보건데, 《논어》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더라도 완전히 무관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논어》의 문장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이야 장자와 공자를 연관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별로 없지만 과거 학자들 가운데는 장자와 공자의 연관성을 이야기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가설도 가능하다. 장자는 공자 학파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혹시 장자는 공자가 제기한 어떤 문제를 심화 발전시켰던 인물은 아닐까?

 

2. 가시나무야 가시나무야!

《논어》 연구자에게 〈인간세〉는 매우 흥미로롭다. 왜냐하면 <논어>의 문장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세〉의 마지막, 접여가 공자를 만나는 부분이 그렇다.

孔子適楚 楚狂接輿遊其門曰 鳳兮鳳兮 何如德之衰也 來世不可待 往世不可追也 天下有道 聖人成焉 天下無道 聖人生焉 方今之時 僅免刑焉 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 已乎已乎 臨人以德 殆乎殆乎 畫地而趨 迷陽迷陽 無傷吾行 吾行卻曲 無傷吾足 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桂可食 故伐之 漆可用 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공자가 초나라에 갔다. 그곳에서 현자 접여를 만난다. 본문에는 초광접여楚狂接輿, 즉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라고 했지만 여기서 미쳤다는(狂) 것은 정신 이상을 뜻하지 않는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 세상의 일상적인 말이 아닌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주는 인물을 가리킨다. 게다가 접여는 《장자:내편》에서 몇번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현자는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며 노래를 부른다. 학자들에 따라 접여의 노래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의견이 서로 다르다. 위에 인용에서는 ‘山木自寇也’ 이후를 이 장면에 대한 장자의 논평 정도로 보고 있지만 일단은 끝까지 접여의 노래로 보기로 하자. 그의 노래는 ‘봉황새’를 부르며 시작한다. 아마도 이것은 공자를 가리키는 말일테다. 덕이 쇠한 것을 어찌하느냐?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고 지나간 과거도 좇아갈 것이 없다. 어찌해야 하나? 현재만이 남을 뿐이다.

유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과거와 미래를 많이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과거 성인들의 삶을 좇아 살 것을 주문했다. 공자도 꿈에서 주공을 뵙느니 운운하지 않았나. 요순시대의 아름다운 정치를 회복하는 것이 유가의 공통된 목표였다. 그런가 하면 이들이 내놓은 삶의 방법, 그 대표를 주례周禮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따르면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해도 태평성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과거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장자는 바로 지금, 여기를 이야기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지금 천하가 무도無道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과거 성인이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은 더 이상 오늘과 같은 혼란 속에는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겨우 형벌을 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조심하라. 이것이 접여가 초나라에까지 찾아온 공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역사적으로 공자가 정말 초나라에까지 이르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공자의 여행이 초나라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공자는 방랑하는 자였다.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주공周公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그는 어디선가 과거의 영광을 미래에 싹티우고자 했다. 그러나 접여-장자가 보기에 그의 꿈은 허망한 것이다. 그는 시대를 볼 줄 모르던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이와 거의 유사한 문장이 《논어》에 등장한다.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 《論語》 18微子 5.
초나라의 광사 접여가 공자 곁을 지나가며 이렇게 노래하였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는가? 과거는 탓할 수 없지만, 앞일은 그래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은가? 그만두라! 그만두라! 지금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따름이다!” 공자가 수레에 내려 그와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피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 《논어집주》, 박성규 역. 713쪽.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논어》에서는 여전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라. 이 장면이 실린 〈미자微子〉편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은자隱者가 되는 것이다. 세속 일과 거리를 둔 사람이 되는 것.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장자》의 것은 접여의 노래만 실려 있는 반면, 《논어》에는 공자의 반응도 실려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접여를 만나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이 둘은 만나지 못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논어》의 편집자들이 품고 있었던 고민의 결과인지 모른다.

〈미자〉편에서는 은자들의 삶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공자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들과 결코 만나지 못한다. 《논어》에서는 은자의 삶을 동경하나 그 거리를 확실히 할 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삶, 천하의 일에서 손을 떼라는 충고는 긴장감을 낳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이 세계에 속하는, 바로 공자와 같은 삶이다.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을 시도하는 삶.

그러나 《장자》에는 그런 긴장이 사라져버렸다. 도리어 여기에는 더 참혹한 현실이 마주하고 있다. 天下有道,聖人成焉;天下無道,聖人生焉。方今之時,僅免刑焉。장자에게 성인은 시대를 변화시키고 새 시대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도리어 성인 조차 한 시대의 인물이다. 천하가 평안했던 시대에 성인이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무도한 세상에서는 성인도 그저 살아갈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겨우 형벌을 피할 수 있을 뿐.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 길로 다닌다. 그들의 길은 곧다. 그것은 바로 인의仁義의 길일 테다. 그러나 장자가 제시하는 삶의 태도는 이와 다르다. 迷陽迷陽,無傷吾行!吾行卻曲,無傷吾足! 굽이굽이 가시나무를 피해 사는 삶이다. 가시나무로 얽힌 길을 가면서도 곧게 나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미련한가! 그는 스스로를 상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굽이굽이, 위험을 피할 줄 알아야 한다.

맨 마지막 충고가 뼈 아프다. 山木自寇也,膏火自煎也。桂可食,故伐之;漆可用,故割之。人皆知有用之用,而莫知無用之用也。산의 나무, 재목材木이란 스스로를 해칠 뿐이다. 쓸모 있음, 유용有用이란 결국 베어지고 잘려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 쓰임은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위험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유용함을 위해 오늘도 애쓴다.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 증발해버렸다. 삶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도리어 삶을 해치는 것을 위해 살고 있다. 따라서 그를 해치는 것은 그 자신이다! 결국 장자가 제시하는 것은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 없음의 쓸모이다.

 

3. 저 사마귀를 보라

어쨌든 유가의 정서는 유용한 인물이 되는데 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써줄 군주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열망은 매우 큰 것이어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과 함께 일을 도모할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제자 가운데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는 자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공자는 자신이 쓰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공자에게 학문이란 정치적인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사士 계층 출신으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려면 군주에게 발탁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공자가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끝내 번듯한 관직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에게 주나라의 영광을 회복할 역량이 있다고 믿었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의문이다. 이웃 나라의 위대한 재상이었던 관중이나, 그가 훌륭하다 평가한 정나라의 자산과 비교해서 더 나은 정치를 펼쳤을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장자는 반대로 쓸모없음을 추구한다. 공자와 장자의 주장이 서로 다른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장자와 공자의 근본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당면한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춘추시대에 희미하게 드리워졌던 전란의 먹구름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천하를 온통 혼란속으로 빠뜨렸다. 공자의 시대는 그나마 주공으로 대표되는 이상을 말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면, 장자의 시대는 그 이상을 폐기해야 하는 시대였다. 앞서 본 초광접여와의 만남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시대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장자가 공자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문헌학적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접여의 이야기는 《논어》의 것이 먼저 있고, 《장자》에 기록된 것이 후대에 고쳐졌으리라 보여진다. 이 이외에도 《논어》에 기록된 것을 의도적으로 변경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이를 보건데 장자는 생각보다 《논어》에 언급된 공자의 이야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인간세〉는 공자와 안회의 대화로 시작한다. 안회가 위衛나라로 떠나겠단다. 그것은 위나라 군주가 포악한 정치를 펼치기 때문이다.

顏回見仲尼請行 曰 奚之 曰 將之衛 曰 奚為焉 曰 回聞衛君 其年壯 其行獨 輕用其國 而不見其過 輕用民死 死者以國量乎澤 若蕉 民其无如矣 回嘗聞之夫子曰 治國去之 亂國就之 醫門多疾

역기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둘이다. 하나는 안회가 가겠다고 하는 위나라의 상황이다.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마도 위장공衛莊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위나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군주였던 영공靈公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다가 그의 부인인 남자南子를 만났는데 그 바람에 추문이 생기기도 했다. 공자는 위나라에서 무엇인가를 도모해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위나라는 매우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훗날 장공이 되는 공자公子 괴외는 남자의 권력 다툼을 벌이다 국외추방을 당했다. 결국 손자인 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문제는 장공이 돌아와 자리를 되찾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들과 아비가 제후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공자의 대답은 그 유명한 정명正名이었다. 결국 공자는 그 혼란스런 상황에서 몸을 뺀다. 제자 자로는 위나라에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 위나라의 혼란스런 상황은 공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런 배경에서 안회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흥미롭다. 분명 지어낸 이야기일테지만 안회가 그 혼란스러운 위나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 이유인즉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란다. 어지러운 나라에 들어가 나라를 바로 잡으라! 그러나 앞서 말했듯 공자 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공자의 말을 꼬아놓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治國去之,亂國就之’라는 말은 《논어》의 이 문장을 바꿔놓은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공자는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물지 말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뒤에 나오는 ‘古之至人,先存諸己,而後存諸人。所存於己者未定,何暇至於暴人之所行!’라는 말도, ‘守死善道’라는 가르침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을 법하다.

이 둘의공통성과 차이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논어》에서 제기되었던 다양한 주제 가운데 하나를 장자가 심화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본디 《논어》에는 다양한 주제가 섞여 있다. 아니, 공자라는 인물 자체가 상반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나. 통치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막무가내로 모든 일을 맡지는 않는다. 그는 갈등하며 방황한다. 그 방황이 낳은 한 길이 장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名 實者 聖人之所不能勝也 而況若乎

명실이란 성인도 이기지 못한다. 하물며 너는 어떻겠느냐? 장자가 보기엔 성인 역시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그도 세상사의 흐름에 이러저리 흔들리는 존재다. 보통 유가에서 성인으로 꼽히는 비간이나 관용봉에 대한 평가를 보면 잘 볼 수 있다. 이들은 걸왕과 주왕의 시대라는 난세에 태어나 세상을 바꾸려다 실패한 이들이다. 유가는 이들의 의기를 높이샀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 이들은 명실名實, 즉 명성과 이익에 눈이 멀어 쓸데 없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이들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해결책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심제心齊를 제시한다. 심제란 무엇일까? 본디 ‘제齊’란 제사와 같은 큰 일을 앞두고 몸을 단정히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취했던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음식을 삼가는 것이다. 술이나 고기,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고 식사를 소박하게 하는 것. 심제란 마음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이를 두고 오강남은 ‘마음의 굶김’이라 했는데 적절한 번역이다.

回曰 敢問心齋 仲尼曰 若一志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심제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목耳目, 기본적인 기관으로 들어오는 감각을 멈추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마음으로 듣지도 말라고 한다. 마음이란 다양한 감각들이 들어와 저마다의 소리로 복잡한 그런 공간이기 때문일테다. 그럼 어떻게 듣는가? 장자는 기氣로 들으라고 말한다. 장자에게 이 기氣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참고로 이는 앞서 포정의 이야기에 나왔던 ‘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을 떠오르게 한다. 눈으로 귀로 듣는 것 이외에 보고 듣는 방법이 있다.

이런 부정의 방법, 이를 다르게 말하면 날게 없이 날고, 무지로 앎을 체득하는 방법이라 하겠다.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无翼飛者也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无知知者也

이어지는 이야기는 섭공 자고의 상담이다. 섭공 자고 역시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초나라의 유력 정치인이었는데, 공자와 생각을 달리했던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장자》에서는 공자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사신으로 가려는데 여러 힘든 일이 있다고. 일단 사신으로 가게 된 일이 만만치 않았나보다. 하긴 과거에 사신으로 이웃 나라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일이다. 행여나 일을 무사히 완수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마음이 영 불편하다. 요즘 이야기로 바꾸면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괴롭다. 목구멍으로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

仲尼曰:「天下有大戒二:其一,命也;其一,義也。子之愛親,命也,不可解於心;臣之事君,義也,無適而非君也,無所逃於天地之間。是之謂大戒。是以夫事其親者,不擇地而安之,孝之至也;夫事其君者,不擇事而安之,忠之盛也;自事其心者,哀樂不易施乎前,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德之至也。為人臣子者,固有所不得已,行事之情而忘其身,何暇至於悅生而惡死!夫子其行可矣!」

공자가 보기에 이 세계는 닫혀있다.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듯, 신하란 자들은 군주의 그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자식이 자식 아님을 선언할 수 없듯, 신하는 군주의 명을 바꿀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주의 명을 따를 수 밖에. 본디 신하된 자들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為人臣子者,固有所不得已’

그렇다면 기계적으로 일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단 말인가? 장자가 일의 성패보다는 마음의 문제에 주목함을 눈여겨보자. 일은 그렇다치고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니 일은 일대로 맡겨두고 마음을 가꾸자. 다만 이때 장자가 지향하는 마음이란 특정한 감정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고요한 마음.그렇다면 이것으로 해결된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장자는 여지를 남겨둔다. 결코 쉽지 않으리란 경고와 함께.

且夫乘物以遊心,託不得已以養中,至矣。何作為報也!莫若為致命。此其難者。

이어지는 이야기는 안합과 거백옥의 이야기이다. 거백옥은 위나라의 대부로,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 당시 공자를 도와준 인물이기도 하다. 공자는 거백옥을 두고 군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공자가 빠졌다하나 공자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사건은 이렇다. 안합이 영공의 태자, 앞에서 언급했던 장공 괴외의 사부가 되었단다. 그런데 괴외의 성정이 포악하여 걱정이다. 가만히 버려두자니 나라가 위태롭고, 그를 바로잡으려니 자기 일신이 걱정된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참고로 유가는 이후 성학聖學, 즉 성인이 되는 학문을 한다고 자처했다. 이때의 성인이란 자기 수양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군주를 성군聖君으로 만드는 비전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퇴계의 성학십도나 율곡의 성학집요 따위를 생각해보라. 이들은 군주를 성인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고, 군주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그러나 장자의 생각은 다르다. 포악한 성정을 타고난 군주를 어찌하랴?

汝不知夫螳蜋乎?怒其臂以當車轍,不知其不勝任也,是其才之美者也。戒之慎之!積伐而美者以犯之,幾矣。

저 사마귀를 보라. 그는 강력한 턱과 날카로운 앞다리를 믿고 사납게 대든다. 거대한 수레 바퀴 앞에서도!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자신의 능력은 헤아리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비는 꼴을 비꼬는 말이다. 사마귀에게 수레바퀴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장자가 보는 군주도 그렇다. 수레바퀴 앞에서 사납게 기세를 올렸던 사마귀의 운명은 뻔하다. 헛된 죽음 뿐이다.

장자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인간세〉 안에서 표현된 힘은 둘이다. 하나는 시대적 상황, 또 하나는 군주와 신하라는 관계. 장자가 보기에 당대의 상황은 어찌할 수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대의 폭력 앞에 겨우 형벌을 면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어떤가. 이 갑을관계 앞에 철저히 무력한 존재로 던져졌다. 장자가 골몰하는 것은 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앞에 보신保身하는 삶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완벽하게 내버려두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은 맞지만 어찌할 수 없으니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여기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어지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둘이 그 힌트가 아닐까? 하나는 호랑이 사육자 이야기, 또 하나는 말 애호가의 이야기.

호랑이와 사람의 힘을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사람이 불리하다. 전설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사람이 있기는하나 이야기는 이야기로 흘려 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호랑이를 때려잡는 힘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호랑이를 기른다면 어떨까? 어떤가 이것은 해볼만 하지 않나? 다만 여기에는 어떤 지혜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생물을 주지 말것,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도록 적절한 때에 먹이를 줄 것. 호랑이의 본성을 잘 알고 대처하면 몸을 상할일은 없다.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이 조건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분명 군주를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를 잘 구슬려 이용할 수 있듯, 군주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중요한 것은 호랑이는 끝까지 호랑이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늘 군주이다.

혹여나 말을 잘 듣는 군주가 있다고 하자.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요행이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경계심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바로 말 애호가의 이야기가 그렇다. 온갖 정성을 다해 말을 기르지만 이 말이 포악스럽게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장자가 보는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각자 정해진 깜냥이 있어서 그 한계를 넘어서 행동하다가는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계한다. 그러나 더 문제는 그 깜냥대로 행동하더라도 언제 화를 입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장자에게 세상은 일상적인 폭력으로 가득찬 곳이다. 언제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른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4. 쓸모 없음의 쓸모

〈인간세〉 마지막에 언급된 ‘無用之用’이야 말로 장자가 추구하는 삶의 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쓸모가 있단다. 쓸모 없음의 쓸모! 이 모순된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공자와 접여의 이야기에 앞서 등장한 커다란 상수리 나무를 생각해야 한다.

匠石之齊,至乎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其高臨山十仞而後有枝,其可以為舟者旁十數。觀者如市,匠伯不顧,遂行不輟。

장석이 제나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를 보았다. 여기서 하나 던져볼만한 질문이란 이것이다. 장석은 어째서 제나라로 갔을까?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제나라로 갔다는 점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왜 제나라로 가는 길에 이 나무를 보았다고 했을까? 이 우화를 하나의 비유로 생각하면 어떨까? 제나라로 가는 길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지 않을까?

제나라는 천하의 지배자로 손꼽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7개 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전국 칠웅! 그런데 이 가운데 진나라가 가장 강력했고, 이를 견제할 만한 나라는 동쪽의 제나라 남쪽의 초나라가 있었다. 당시에는 전국 사공자라고 하여 각 나라에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제나라에는 맹상군 전분이 있었다. 계명구도로 유명한 그는 천하의 재주있는 인물을 여럿 불러모았다. 장석 역시 자신의 재주를 팔러 돌아다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혹은 그를 나무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유세객 가운데 하나로 보면 어떤가? 제 2의 소진이나 장의를 꿈꾸는 야심찬 정치 지망생 아니었을까?

그가 제나라로 가며 곡원이라는 곳을 지났다. 거기서 커다란 나무를 보았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소요유에 나왔던 혜시가 말했던 커다란 나무는 저리가라 할 정도다. 이 커다란 나무를 보고도 장석을 그저 지나간다.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석을 따라가던 제자는 이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고는 할 말을 잃는다. 이 커다란 나무는 얼마나 훌륭한가! 실컫 구경하다 뒤쳐지고 말았다. 뒤늦게 스승을 좇아가 묻는다. 저렇게 훌륭한 나무를 거들떠 보지도 않다니 어째서입니까?

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故能若是之壽。

장석의 말이 명쾌하다. 쓸모 없는(不材) 나무였기 때문에 저렇게 크고 말았다. 쓸 데가 있었다면 진작에 잘려버렸을 게다. 상수리 나무를 하나의 비유로 생각하면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사람을 여럿 끌어 모은 인물을 보았다. 제자는 그 인물의 능력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장석의 말은 간단하다. 그가 그토록 능력이 있었다면 벌써 군주들에게 불려갔을 것이다. 저가 저토록 주목받는 것은 쓸모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쓸모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송나라 형씨라는 곳의 나무들을 기억하라. 그곳에서는 각기 쓸모에 따라 나무를 베어간다. 결국 남는 것은 괴상한 나무들 뿐이다. 장석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남백자기의 이야기를 보자. 그도 커다란 나무를 보았다. 그런데 그 나무의 상태가 영 아니다. 가지는 구불구불 하고, 밑둥은 갈라져 있다. 잎은 사람의 혀를 상하게 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 괴상함이 그를 크게 만들었다. 괴상함이란 곧 쓸모 없음이다.

그런데 장석의 꿈에 그 커다란 사당 나무가 나와 이야기한다. 이 거대한 나무는 장석의 평가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且予求無所可用久矣,幾死,乃今得之,為予大用。使予也而有用,且得有此大也邪?

쓸모 없음, 이는 한 시대와 사회의 가치 척도를 통해 평가된 결과이다. 그 쓸모 없음이란 누구의 것인가? 적어도 나의 것은 아니다. 그런면에서 그는 ‘쓸모’를 뒤집는다. 세상의 쓸모 없음이 나에게는 쓸모가 있다. 그것도 크게! 為予大用. 그것은 세상의 칼날을 피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끼질을 피하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쓸모 없음의 쓸모란 이것이다.

그러나 여기 또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나무가 처음부터 쓸모 없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 나무는 쓸모 없기를 바랐다. 무용한 것 되기! 이것이 필요하다. 쓸모 없음이란 결코 간단치 않다. 아무나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커다란 나무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쓸모 없음을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支離疏者,頤隱於臍,肩高於頂,會撮指天,五管在上,兩髀為脅。挫鍼治繲,足以餬口;鼓筴播精,足以食十人。上徵武士,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上有大役,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上與病者粟,則受三鐘與十束薪。夫支離其形者,猶足以養其身,終其天年,又況支離其德者乎!」

그렇기 때문에 지리소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지리소는 몸이 불구이다. 그러나 그는 삶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없다. 도리어 노역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상황에서 그는 빗나가 있다. 시대의 폭력에서 빗나가 있기.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못난이로 자처하기.

한편 그에게 《논어》 등에 보이는 은자隱者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어》의 은자는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며 세속에서 벗어난 인간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개인적인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방안이다. 대부분 소규모로 농사짓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장자에게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 어째서 일까? 이 세계가 폭력적이라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장자는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경험한 세계의 폭력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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