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것

* 8월 27일 온지곤지 열린서당에서..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멀리서 함께 공부하는 이가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기분나빠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論語: 학이學而>

논어와 공자

정말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 있습니다. 이 괴물은 어찌나 식성이 좋은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줄 모릅니다. 이 괴물은 사람을 집어 삼키는 것은 물론, 나라를 집어 삼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의 기억도, 좋은 추억까지도 먹어치우지요. 가끔은 커다란 입으로 다 집어 삼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은 봐 주는 일이 없습니다. 커다란 이빨로 콱 물고는 절대로 놓아주는 법이 없지요. 집요한데다 교활하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 괴물의 커다란 입에서 도망쳐도 소용없습니다. 잠깐 한눈을 팔면 여지없이 이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수밖에요.

대체 이 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이 괴물의 이름은 ‘시간’이랍니다. 이 괴물 – 시간의 커다란 배에도 이름이 붙었답니다. 바로 ‘망각忘却’, 우리 말로 옮기면 잊어버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이 시간이라는 괴물에게 무엇인가를 빼앗겨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이라는 놈은 빼앗아버린 것을 절대 돌려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날카로운 이빨과 커다란 입을 가진 이 괴물도 집어 삼키지 못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는 책도 있습니다. 수십, 수백 년도 아닌 수천년을 살아남은 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에게 먹혀버리지 않은 책을 우리는 ‘고전古典’이라 부릅니다. 오래되었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책이 고전입니다. 이 고전이라는 책은 너무도 단단하고 커서 시간의 날카로운 이빨도, 그 커다란 입도 소용없습니다.

세상에는 고전이라는 책이 많습니다. 그 중에 제가 소개할 책은 바로 <논어>라는 책입니다. <논어>는 무려 2천 살이 넘은 책입니다. 저 먼 옛날 노나라의 공자라는 사람과 그의 제자들이 나누었던 말을 기록한 책입니다. 대체 이 책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시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하려는 이야기도 <논어>라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유익한 내용 가운데 하나랍니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책이, 글이, 글자가 태어난 것이 이 시간과 싸우기 위해서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적고 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논어>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공자라는 사람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공자孔子는 <논어>의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이거든요. 공자가 없었다면 <논어>는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자가 <논어>를 쓴 사람은 아니랍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쓴 글이 하나도 없답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한참 후에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억해서 만든 책이 <논어>랍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이 매우 귀한 나머지 책으로 만들어 훗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까닭이지요.

공자는 제자들에게 많은 부분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논어>도 꽤 두꺼운 책이 되었어요. 약 500개 문장 정도가 되니 짧은 책은 아닌게 분명합니다. 이 많은 문장 중에서 우리는 첫번째 문장을 함께 읽으려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문장이라니 무척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자들이 책을 만들면서 맨 처음에 놓았으니 분명 중요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배움(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어떤 글자보다 이 ‘학學’이라는 글자는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깝게 있지요. 특히 여러분에게 그럴거에요. 여러분은 대부분 ‘학교學校’에 다니는 ‘학생學生’이겠지요. 한편 다양한 이름의 ‘학습學習’을 경험하고 있을 겁니다.

이처럼 ‘학’이라는 말을 널리 쓰이게 만든 사람이 바로 공자랍니다. 왜냐하면 공자는 그 무엇보다 배움을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공부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대해, 배움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전한 사람이랍니다. 저도 어찌보면 공자의 제자로 여러분에게 공자 선생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이런 공자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드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공부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요.

 

배움은 기쁜 것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배움은 기쁜 일이다.’ 정말 그런가요? 저는 공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일이지요. 그런데도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답니다. 사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을 소개하는 것은 이것이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말을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번 읽으면서 이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보았습니다.

다행히 저보다 먼저 <논어>를 읽고 골똘히 생각한 사람 덕분에 그 비밀을 풀 수 있었습니다. 주희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배움-학學’이란 ‘본받음-效’이라고 합니다. 어떤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하긴 우리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따라 해보면서 배웠지요. 걸음도, 말도 모두 부모님의 행동을 따라 익혔습니다.

방금 익힌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한자로 옮기면 ‘습習’이됩니다. <논어> 첫 문장에서는 이 둘, 배움과 익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이것을 줄인 말이 바로 ‘학습學習’입니다.

‘습習’이라는 글자를 잘 보면 여기에는 새의 날개(羽)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익힘-習’이란 새가 날개짓을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새는 참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좁은 알을 깨고 나와 좁은 둥지에서 한참을 지냅니다. 어린 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빼고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먹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둥지에 갇혀 있던 새가 조금 자라나면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린새에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날개짓을 반복한 뒤에야 하늘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새들은 날기 위해 어미새의 날개짓을 따라하곤 합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 꽤 시간을 들여야하지요. ‘시습時習’이란 그렇게 오래 시간을 들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난 새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좁은 둥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기만 하던 새가 높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이전 둥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겠지요. 아마 훨씬 멋지고 신나는 경험일 것입니다. 높이 하늘을 나는 새는 결코 둥지 속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테지요.

이런 새로운 경험, 세상을 다르게 느끼는 것을 공자는 ‘기쁨’이라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한 시간이라는 괴물 때문에 잊어버렸겠지만 처음 말을 할 수 있게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기어다니다가 걸음마를 떼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아마 무척이나 기쁘지 않았을까요? 배움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배움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어린새처럼 이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꽤 힘들기도 하지요. 처음부터 두 발로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 것으로 만들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걸음걸이를 까먹는 사람이 있을까요? 따라서 배움이란 ‘기억하기’와는 다릅니다. 기억해놓은 것은 언젠가는 잊어버리지만 배운 것, 내 것으로 익힌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지요.

옛 서당에서는 소리내어 책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계속 반복해서. 마치 새가 날개짓을 배우듯, 우리가 처음 말을 배우듯 그렇게 글을 내 것으로 익히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기억 – 머리에 저장해두는 것보다는 몸에 저장해 두는 것이 더 오래갑니다. 머리보다는 몸이 시간의 공격에 더 강하거든요.

‘암송暗誦’ 보지 않고 외는 것이란 바로 이렇게 몸으로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저장해두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번 성실히 반복해야 해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내 귀에 들리도록 정확하게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사실 이 방법은 꽤 오래된 것이랍니다. 지금처럼 책이 많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소리내어 책을 읽고 익혔어요.

 

함께 그러나 혼자

신기하게도 사람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일을 더 잘합니다. 혼자서는 잘 안 되던 일도 여럿이 하면 거뜬히 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소리내어 읽으며 글을 익히는 공부가 그렇답니다. 혼자 방에서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금방 지칩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함께 목소리를 내어 글을 읽으면 쉽게 익힙니다.

공자는 혼자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논어>를 읽으면 다양한 곳에서 몰려든 여러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찾아온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멀리서도 찾아와서 함께 공부하니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혼자서는, 적은 수로는 벅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훌륭하기는 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중에는 공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설령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지요.

하나 덧붙이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꽤 어지러운 시대였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공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더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책을 읽으면 어지러운 시대를 홍수가 일어나거나 폭풍이 불어닥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물이나 바람에 휩쓸려 가듯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앞서 시간을 괴물이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시간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하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시간을 선물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훨훨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홍수가 일어나고 폭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이 아니 뮐새, 꽃 좋고 여름 하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칠새, 내가 되어 바다로 가느니
– 용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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