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맨 얼굴

1. <노자>는 누구의 글인가?

<노자> 혹은 <도덕경>이라 불리는 책은 흔히 노자의 저작으로 여겨진다. <노자> 번역서를 보아도 노자는 당당히 저자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찍이 펑유란은 모든 제자백가서는 특정 인물을 추종하는 학파나 무리의 저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맹자>는 맹자 본인의 저작이 아니며, 맹자를 따르던 제자, 혹은 그 뒤에 맹자의 사상을 따른 이들이 쓰고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책의 제목, <맹자>는 맹자가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맹자의 책’, ‘맹자의 사상을 담은 책’이라고 보는 게 옳다.

어떤 이들은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 공자 등이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은 참된 가르침을 말로 전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 가운데 노자가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언어의 한계를 이야기했다고 전해지는 노자라면 그 역시 글이 아닌 ‘말’로 가르침을 전한 이들 가운데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마 이는 상술한 이들과 달리 노자에게는 그의 말을 기록할 제자들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노자>에 얽힌 하나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는 이 책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이야기한다. 노자가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가면서 ‘관윤’이라는 자에게 5,000자의 글을 남겨 주었다는 것이다. 이 81장, 5,000자의 글이 오늘날 <노자>라고 본다. 이어지는 내용에 따르면 노자는 이 글을 남기고 숨어 살았다 한다. 이렇게 <노자>는 은자隱者의 책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 전설같은 이야기를 가리고 <노자>를 읽어보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된다. 대체 <노자>라는 책에서 노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어>나 <맹자>, <장자> 등에서 공자, 맹자, 장자 등이 직접 등장하여 말(曰)하는 것과 달리 <노자>에는 노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최진석은 이것이 특정 인물의 권위를 빌려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법칙을 근거로 삼는 <노자> 특유의 서술 방식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정반대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구체적인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편적 진리를 다룬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보다 추상적이며 절대적인 위치에서 가르침을 전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쉽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핵심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혜롭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아는 자가 드물기에 나의 가르침은 귀하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천한 갈옷을 입었으나 귀한 옥을 품고 있다고 한다.

<노자>가 침묵으로 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노자>의 화자는 전설 뒤에 숨어서 비밀스러운 말을 전한다.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역설적으로 <노자>의 화자는 이렇게 말함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한다. ‘나의 가르침은 귀하다!’

노자는 ‘노老’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후대에 그려진 수많은 노자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노자> 안에서는 이 ‘늙음’에 대한 찬양을 찾아볼 수 없다.

30장, 55장: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사물이 장성하면 늙으니 이것을 일러 도가 아니라고 하겠다. 도가 아니므로 일찍 사라진다.

<노자> 전체에서 두번 반복되는 이 표현은 늙음에 대하여 정확히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한다. 도리어 <노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조이早已’와 반대되는 ‘장구長久’, 지속에 대한 찬양이다. 과연 상술한 <노자>에 얽힌 전설을 가리고 이 글을 읽었다면, 혹은 <노자>라는 제목을 없앤 채 읽었다면 흔히 그려지는 노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간단히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노자와 <노자>는 별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노자의 모습도 본래 전통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노자>라는 책이 언제 기록되고 오늘날 보는 형태로 완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분히 논란이 많다. 대체로 전국시기 중반 이후에서 한대 초기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아마 이때 노자의 전설과 <노자>가 만나 오늘날 전해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번째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노자는 누구인가?

다른 제자백가와 마찬가지로 노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사기>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열전>의 여러 인물 가운데 꽤 일찍 등장한다는 것이다. <백이열전>, <관안열전>을 이어 세번째로 등장한다. <노자한비열전>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노자와 한비자를 다룬 편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장자와 신불해를 함께 다루어 <노장신한열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노자와 장자가 함께 엮인, ‘노장’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노자와 장자가 함께 연이어 다루어지기는 하나 그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것은 노자와 한비자의 조합이다. 보통 도가의 창시자로 노자를, 법가의 종합자로 한비자를 든다. 그러나 도가와 법가는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하지 않았나? 한쪽은 자유로운 자연적 삶을 추구했다면 다른 한쪽은 억압적이며 폭력적인 사회를 그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렇게 보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둘을 한데 묶은 게 아닌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듯, <노자>의 최초 연구자가 한비자라는 점은 이 둘의 연속성, 혹은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데, 이유는 노자로 지칭되는 인물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세 명이 등장한다. 이이李耳, 노래자老萊子, 주나라의 태사 담儋. 세세하게 따져보면 이들의 생몰연대도 불분명하다. 대체 몇 살을 살았는지 사마천도 난감했는지 ‘160여살 또는 200여 살을 살았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과연 역사적 인물로서 노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늠하기 힘들다. 그의 행적에 얽힌 사건은 크게 셋인데, 하나는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는 내용,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사라지며 5,000자를 남겼다는 내용, 마지막으로 진나라 헌공을 만나 예언을 전했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공자와의 사건은 여러 문헌에 두루 보인다. <공자세가>에서도 볼 수 있으며 <장자>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다. 송대 이후 이 기록은 여러 사람의 의심을 샀으며, 오늘날에는 이를 공자 생애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으로 보지 않는 입장도 있다. 우리 주제와는 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나머지 둘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둘은 매우 밀접하게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서쪽으로 사라지기 전 지났다는 함곡관이 이른바 ‘관중’, 진으로 가는 길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진나라에 가기 위해서. 가서 무엇을 했을까? 이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헌공을 만나 예언을 들려준다. 주와 진은 본디 한 나라였는데 나뉜 지 500년 만에 다시 합쳐질 것이며, 합쳐진 이후 70년이 지나면 패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이때 패자는 누구일까? 사마천은 주난왕의 사망 이후 주나라가 사라진 것으로 본다. 주는 진에 흡수되며 진시황의 통일, 그리고 잠시 혼란기를 지나 다시 한에 의해 통일된다. 난왕이의 사망은 진 소양왕 51년으로 기원전 256년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육국을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다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것은 기원전 202년. 한편 난왕의 죽음 이후 70년 후를 잡으면 기원전 186년이 되는데, 이는 여태후가 정권을 잡았던 때였다. 이후 다시 유씨가 권력을 잡은 것은 기원전 179년 문제였다. 이를 상세히 나열한 것은 언급된 인물들이 이 패자의 후보이기 때문이다. 70년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튼 사마담은 진의 통일과 패자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 기록은 <노자한비열전> 뿐만 아니라 <주본기>, <진본기>에도 함께 실려 있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대신 그 예언의 성격이다. 통일과 패자의 등장. 대체 이 예언이 <노자>라는 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일부 연구자들은 <노자>를 법가 혹은 병가의 저술로 보기도 한다. 김시천은 한걸음 더 나아가 <노자>가 권력의 기술을 위한 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을 호모 임페리알리스, 즉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과학 기술적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달리 말해 <노자>의 독자들은 천하의 대권 지망자들로서, 바로 <노자>를 읽고 실천 방법을 모색하려 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자>는 철저하게 권력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57쪽.

노자는 구체적인 생애와 업적이 모호한 인물이다. 예언자로서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다. 소국과민을 주장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던 인물이기는커녕 진의 통일과 패자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그가 진으로 넘어가기 전 세상에 남겼다는 책은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김시천의 말처럼 천하를 통일할 제왕을 위한 책이 맞는 걸까? 도와 덕을 이야기한 이 책이!

3. <노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도덕경>은 <노자>의 다른 이름이다. <도덕경>이라 불린 것은 도道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경道經과 덕德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덕경德經을 합쳐 놓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마천의 기록에서는 <도덕경>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도와 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천여자(言道德之意五千餘言)’를 말할 뿐이다.

이 둘 가운데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도경, 그것도 시작하는 첫 문장이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 문장은 도에 대한 신비로운 표현으로 여겨졌다. 도는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도’라는 난해한 주제를 다루지 않으려 한다. 다만 ‘노자는 도에 대해 무엇이라 말했는가’라고 질문하지 말고 ‘노자가 말한 도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는 점을 짚어둔다. 왜냐하면 ‘도’란 사람마다, 시대마다 달리 사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도’에 대해 노자가 무어라 말했는가를 묻는다면 ‘도’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노자>를 읽게 된다.

여기서 ‘도’를 괄호치고, 그리고 그와 연관된 혹은 대립되는 ‘명’이라는 개념을 괄호치고 읽으면 이 글은 ‘상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상’은 <노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다.

16장: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명을 회복하는 것을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알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모르면 헛되이 행동하고 다치게 된다.

<노자> 첫머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는 어떻게 하면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담겨 있다. 적어도 그것은 가도可道, 혹은 가명可名이라 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앞서 자신의 가르침을 아는 이가 적다고 말한 것처럼 이는 또 다른 식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자>가 언어의 한계를 말했다는 통상적인 이해는 반만 맞다. 그는 새로운 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자>에서 현상유지의 욕망을 가장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7장이다. 그 유명한 천장지구 天長地久로 시작한다.

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천지는 오래 간다. 천지가 그처럼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처럼 오래 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자신을 뒤로 숨겨야 자신을 앞세울 수 있다. 자신을 버려야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노자>의 가르침은 모순적이다. 그러나 이 모순 자체보다는 이 모순의 현실을 알아야 특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노자>가 전하는 핵심 내용이다. 7장에서 보이는 목적이란 천지처럼 오래 갈 수 있을 것, 나아가 자신을 앞세우고 보존하며 사사로움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흔히 알려진 것처럼 <노자>가 무지무욕無知無欲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무지무욕이라는 표현이 <노자>에서 나온 것은 맞다. 그러나 <노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무지무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무지무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

3장:
不尚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為盜 不見可欲 使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為也 為無為 則無不治

재능있는 자를 높이지 않으면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 수 있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바랄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의 다스림은 그들의 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우며 그들의 뜻은 약하게 만들고 뼈는 강하게 만든다.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무욕케 하라. 그리고 저 안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라.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과연 <노자>는 누구를 위한 책인가? 앞서 보았듯 통일 제국과 그 지배자를 예언한 노자, 그리고 그의 글은 당연히 권좌에 앉아 천하를 다스릴 사람을 위해 말한 것일 테다. 김시천의 말을 빌리면 호모 임페리알리스.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노자>의 핵심이다. 따라서 백성은 대상으로 머물며 그들은 무지무욕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노자>를 읽어보면 어떤 지혜를 가진 자가 그 지혜의 비밀스런 부분을 전수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지혜를 듣는 청자는 누구일까? 일차적인 청자는 위에 언급된 ‘성인’일 것이다. 무릇 성인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 인용한 글의 맥락이다. ‘성인’은 통치자 곧 왕을 의미한다.

25장: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역시 크다. 이 세계에 큰 것이 모두 넷 있는데 왕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천, 지, 그리고 ‘도’와 왕은 동일한 자리를 공유하고 있다. <노자>에서 그 자리의 모습은 크다(大)는 말로 표현된다. 무릇 큰 것은 다른 법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마치 천지가 그러하듯. 이 커다람은 어떻게 스스로의 모습을 증명하는가? 자신의 커다란 모습을 숨겨서이다.

34장:
以其終不自為大 故能成其大
끝내 스스로 크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 커다람을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노자>에서 강조되는 것은 부정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을 통한 특정한 목적의 성취이다. 커다란 존재는 커다란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을 때 그 존재를 내보일 수 있다. 이런 윤리는 결코 모두를 위한 보편적 윤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디 작은 존재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보다 나은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기는 커녕 부정당하는 자신을 긍정하기에도 벅차다.

<노자>는 제왕, 본디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를 위한 글이다. 권력의 유지와 보전의 글! 그런 면에서 ‘故能成其大’가 진시황에 대한 표현으로 <사기>에 다시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훗날 통일 진의 승상에까지 오르는 이사는 젊은 시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한껏 꿈을 품고 진나라에 왔지만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때 진시황에게 올렸다는 글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是以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眾庶,故能明其德
이런 까닭에 태산은 작은 흙덩이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커다란 크기를 이룰 수 있었으며, 바다와 강은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토록 깊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뭇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아야 그 덕을 밝히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이사열전>

<노자>는 춘추전국, 특히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시대의 배경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천하가 혼란으로 치닫는 시대였으나 당대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예감하고 있었다. 과거의 체제가 주왕실을 중심으로 천하를 마치 한집안처럼 운영하는 것이었다면 새롭게 등장할 권력은 그와 동일한 모습일 수 없다. 새로운 권력은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이전 주왕실의 왕과는 달라야 한다. 당연히 충효를 기반으로 유지되었던 권력의 성격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권력은 ‘인친仁親’이라는 가까운 표정을 가진 얼굴이 아닌 무표정의 얼굴이어야 한다.

5장: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천지는 인하지 않으니 만물을 마치 풀강아지 처럼 보잘 것 없이 여긴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인하지 않으니 백성을 마치 풀강아지 처럼 보잘 것 없이 여겨야 한다.

예禮와 인仁으로 대표되는 가족적 정감을 천하의 통치 방법으로 쓸 것을 주장한 것은 유가였다. 그러나 법가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한다. 기존의 전통과 단절하며 또한 혈연적 친소에 의해 사회적 계급이 구성되는 것을 근절하고자 했다. 이들은 정확히 공과功過에 따라 새롭게 사회가 재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노자가 한비자 곁에 있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유명한 ‘무위’라는 행위도 이와 같은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37장:
道常無為而無不為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鎮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 행위가 없으나 하지 못하는 일도 없다. 만약 왕이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교화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통나무를 가지고 그를 누를 것이다.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통나무로 욕망을 갖지 못하게끔 하라. 고요하여 욕망하지 않으면 천하는 장차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노자>는 천하의 소란스러움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바로 욕망 때문이다. 누구의? 앞서 보았듯 백성들이 아래서 들끓는 욕망을 갖고 저마다 여러 일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것이 천하의 지배자에게 남겨진 숙제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상적인 언어로 일컬어지며, 말해지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비밀스런 방법을 쓸 것. ‘무위’, 즉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 그렇다면 그 결과는? 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무위이무불위無為而無不為,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나 이루어 내지 못함도 없는! 바로 이것이 표정 없는, 아니 표정을 숨긴 권력의 비밀이다. 진시황은 스스로를 짐朕이라 불렀다. 이때 ‘짐’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수많은 궁을 지어 자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감추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노자>는 끊임없이 표정을 지우도록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욕망을 감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절대 권력은 영원을 추구하는 법. 최초의 황제 시황제는 만세토록 자신의 제국이 유지되고자 했고, 이에 신선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신선이 된 노자, 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4. <노자>, 오독 혹은 해석

<노자>는 정말로 그렇게 복잡하고 풍부한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노자>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후세 사람들의 지레짐작으로 <노자> 본래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의미가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요? <노자>는 처음부터 곁가지가 무성한 거목의 축소판이 아니라 그저 한 그루의 바싹 마른 등나무는 아닐까요?
<노자를 읽다> 65쪽.

<노자>를 읽으며 늘 당혹스러운 것은 그 가면의 이면에 대체 어떤 얼굴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러한 막막함은 이 책이 그려내는 인물이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발견에서 연유한다. 끝자락에 매달려 아둥바둥 거려야 하는 나에게 <노자>의 이야기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나아가 어떤 불편함마저 남겨 주는데 이는 그 존재가 가진 낯설음 때문일 테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관계’에서 만나는 장소에서 내가 저들과 똑같은 표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며, 특히 계급적 지위가 다른 까닭일 테다. 보아도 읽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가면은 필요하다. 자신의 욕망을 맨얼굴에 펼쳐 놓은 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들이 쓰는 가면과 내가 쓰는 가면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한쪽의 가면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면, 다르게 말해 또 다른 수탈을 위해 쓰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덜 상처입기 위해 쓰는 가면도 있다. 욕망의 실현보다 덜 좌절하기 위해 쓰는 가면. 아니 헬맷이라고나 해야할까?

당연히 ‘무욕’도 다르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이야 어느 시대 모든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말일 테다. 그러나 수 없이 욕망을 거세당한 사람에게 무욕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의 의미는 있을 수 있겠다. 본디 무욕의 존재인 자신을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할 말을 찾는 것. 그러나 이런 해석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위안을 준다고 하나 그 깊이가 얼마나 될까? 이는 도리어 신체를 무감하게 만드는, 마치 모르핀과도 같은 이해가 아닐까? 어떤 사유는 사유 자체를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위에 소개한 <노자> 해석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권력의 기술, 제왕학으로 <노자>를 이해한 역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에 대한 이야기에는 대부분 무위자연, 생태주의, 자율성 따위 등이 붙기 마련이다. 물론 이는 직접 글을 읽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노자>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노자>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알음알이!

그러나 <노자> 번역이나 해설을 찾아보면 상술한 것과 정반대를 찾는 것이 더 쉽다. 자유와 평등 따위를 이야기한 책으로. 그렇다면 저 많은 <노자> 번역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대체 왜?!

하나는 서구적 근대화에 따른 자기 변신의 결과 때문이다. 전통 사상은 이른바 유가나 도가 따위는 근대적 사회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철학’으로 탈바꿈해야 했다. 거꾸로 이는 본디 가지고 있던 정치적 색체를 지우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른바 ‘동양의 정치’란 낡아 수명이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아닌 철학으로! 이것이 전통 사상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따라서 그 구체적 맥락보다는 개념과 추상적 명제가 더 크게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노장철학’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저 고아하고 세련된 말로 치장된 이론의 묶음을 가리키지 않는가?

그러나 ‘철학’으로 변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민권은 2등 시민권이었다. 1등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으려면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함을 증명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이른바 동양철학에 요구되는 바가 그렇다. 무엇인가 삶의 대안을 마련해 줄 것. 삶을 분석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고 삶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것을 도와주는 보조자로서의 위치!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일종의 신앙이라고 할만 한 것이 깃드는데, 거기에는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뭔가 신비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이 아닌 대안으로서의 철학.

한국적 상황에서 그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함석헌 류의 해석이다. 그는 이른바 전통적인 노장사상을 현대화, 토착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석헌의 사상은 어떤 독창적 세계관을 추구한 철학적 탐구의 결과라기보다 20세기 한국인의 아픔과 삶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닌 독창성은 따라서,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찾아 헤맨 사람이 아니라 아픈 역사의 길을 따라간 고난의 순례자였기 때문이다.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 109쪽.

많은 이들이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서구 기독교가 토착화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가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을 통해 말한 수난받는 민중의 모습은 기독교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문제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난으로 설명하면서 고난 자체를 수용하도록 요구한다. 어째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고통을 의미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고통은 개인의 문제로, 내면의 영역으로 후퇴한다. 이 퇴보의 지점에서 <노자>는 위안을 위한 적절한 안식처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려 이런 해석태도에서 ‘꼬오온대’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흔히 도가를 난세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도가는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부흥했다. 그러나 식자들은 절벽 끝에서도 어떻게든 밀리지 않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절벽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곤 한다. 도교의 부흥이 민중반란과 함께 한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이때 그들에게 <노자>가 혹은 노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도가라는 학술전통과 다른 도교라는 종교적 영역에 대한 탐구로 시선을 옮겨야 할 것이다.

언뜻 보아 오늘날 <노자>를 읽는 사람들은 시대를 뛰어 건너기 위해 읽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쓴 약을 삼킨 뒤에 달콤한 사탕에 손을 대듯, 철저히 현세적 위치에서 <노자>를 읽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낭만적 독해 속에 노자는 맨 얼굴은 드러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는 저 옛날, <노자>를 쓴 누군가가 바라 마지 않았던 상황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거꾸로 이제 권력은 스스로 표정을 숨길 필요도 없어졌다. 맨 얼굴의 권력, 인간의 탈조차 벗어 버린 짐승의 시대. 오늘날 <노자>를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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