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선농인문학서당 《논어》 6강 – 나루를 묻다

1. 위기지학為己之學 – 나를 위한 공부

子曰 古之學者為己 今之學者為人

여기서 공자는 ‘為己’와 ‘為人’을 구분한다. 자기를 위한 공부와 남을 위한 공부. 공자는 이 둘이 각기 옛 사람의 공부와 오늘날 사람의 공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본다. 요즘이야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남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높이 칠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다르다. 《논어》에서 내내 이야기 했던 것을 참고하면 그는 과거의 사람들이 훨씬 현명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옛 사람들처럼 자기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후대 사람들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불렀다. 공자의 생각을 따르면 무릇 공부란 위기지학이어야지 위인지학為人之學이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주희의 주석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위하라는 말은 자신이 체득하는 공부를 의미하며, 남을 위한 공부라는 것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하는 공부를 뜻한다. 더불어 정이천의 풀이를 더해 보충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공부에서 시작하여 남을 도와주는 데 이르렀지만,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한 공부에서 시작하여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공부란 무엇일까? 오늘날 공부란 학교에서 요구하는 교과목을 이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공교육을 비판하는 프레이리는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면서 다른 공부의 가능성을 닫아 두게 되었다고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학교 바깥에서 교과목이 아닌 것을 공부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학교라는 시스템과 상관 없는 배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는 것은 ‘독서’라고 하지 그것을 ‘공부’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학교가 공부를 독점했다고 했을 때, 근대 교육 시스템의 목적은 특정한 인간 – ‘국민’을 길러내는 것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과거의 이름은 ‘국민학교’지 않았나. 여튼 이러한 특성은 크게 바뀌지 않아서, 이를 국민이라 부르건, 시민이라 부르건, 혹은 인재, 인적 자원이라 부르건 어찌 되었든 그 목표라는 것이 외부에서 정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학생’은 근본적으로 ‘배움의 내용’에 간섭하지 못한다.

학교라는 시스템에 학생이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접어두자.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구도, 즉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출발점에 놓였고,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결승점이 정해졌다는 데서 공자의 저 말을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국가가 ‘인적 자원’이라는 말을 쓰며 인격을 하나의 사물처럼 대하면서 학교 안의 경쟁은 더욱 극심해졌다.

옛날 말이지만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표현을 꺼내보자. 이는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를 비판하는 말로 입시생이 거쳐야 하는 세 요건을 가리킨다. 내신, 수능, 논술 – 이 셋은 사실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제안되었던 것이다. 내신 성적이 안 좋으면 수능으로 대학가면 되고, 수능 성적이 나쁘면 논술로 가면 되고, 수능이나 논술이 엉망이어도 내신이 좋으면 되고… 그러나 모두가 주지하듯 결과는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붙은 말이 ‘죽음의 트라이앵글’

말의 소멸은 때로는 그 말이 필요 없어진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가리키던 상황이 더는 특이한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검색해보니 약 10년 전에 유행한 말이다. 지금은? 이 말을 폐기처분 해야 할 텐데, 이는 ‘죽음’이라 부르던 조건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셋’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을 빌리면 예전에는 단순히 뜀박질만 잘하면 되던 것이 어느새 높이 뛰기, 넓이 뛰기도 잘해야 했고, 이제는 예술성까지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까?

나로부터 출발하는 지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책 속의 거인과 겨뤄보지 않았다면 공자가 이야기하는 ‘나를 위한 공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쉽게 알기 힘드리라. 그러나 공자가 한탄하며 말했던 것처럼 공자의 시대에도 이미 ‘남을 위해’ 공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에 대해 공자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정이의 말을 참고하면 섬뜩하다. 남을 위해, 다르게 말하면 남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부하다가는 결국 자신을 잃고 만다고 말한다.

나를 잃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의견, 생각, 표현, 관점, 주장 따위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불가 용어 가운데 主人公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 경우를 가리키는데,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조연이나 단역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관 없는 삶. 최근 ‘취존’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이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충돌하는 의견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렇다고 주장해도 저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주장이 없다. 냉소적인 확인이 있을 뿐이다. 네가 그것을 좋아하니 OK, 나는 이러니 서로 상관말자.

이 문장을 두고 해석한 정이의 말 가운데 앞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해 공부한 사람은 결국 남을 도와주는데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조금 더 표현을 다듬으면 ‘남을 도와줌’으로 번역한 것의 원문은 成物이다. 원의를 더 살리면 이때의 성成이란 그 존재를 그답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논어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그것은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모든 존재의 고유성이란 자신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개별적이지 않고 어떤 관계 속에 놓여있다. 마치 그물망처럼.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인격을 완성할 때 자연스레 그 영향력을 끼치기 마련이다. 마치 고요한 물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동그랗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듯. 한편 이는 ‘진실에 대한 앎’ 자체가 가진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진실, 진리란 스스로를 감추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어떤 생각, 의견, 주장의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려고 안달이다. 그렇기에 오늘날도 수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나. 근본적으로 앎이란 저장의 속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누려는 힘도 함께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무엇인가를 알면 말하고 싶기 마련이다.

연구실에서 오래 생활하며 느낀 것은 말이 그칠날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식인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입만 살았다면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지식은 말을 욕망한다. 고로 위기지학의 윤리란 끊임없이 읽고 말하고 소통하는 데 있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앎을 더욱 진리에 가깝게 이르게 하는 길이며, 앎을 더욱 명확하게 삶에 새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이 가진 무게를 삶에 짊어져야 하는 의무도 있다. 말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대로 위인지학에는 어떤 윤리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전시이며, 경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하나 덧붙이면 구체적인 상황에서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을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는 않는다. 학교 안에서도, 교실 안에서도, 교과서 속에서도, 시험지 지문에서도 감동을 주는 앎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학교 바깥에도 세상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배움 역시 많다. 문제는 이 둘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분간하는 것이다. 위기지학인가 위인지학인가? 후대 유학자들이 이에 대해 많은 말을 남겼다는 것은 그만큼 이 둘의 구분이, 궁극적으로 위기지학을 추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 문진間津 – 나루를 묻다

〈위령공〉 첫번째 문장을 어떻게 끊느냐는 학자들 사이에서 입장이 엇갈린다. 주희는 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보았는데 이렇게 보면 공자는 위나라를 떠난 뒤 만만치 않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게 된다. 이때 자로의 질문 ‘군자도 이렇게 힘든 때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필시 어떤 억울함이 묻어있으리라.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에게 어찌 이런 힘든 상황이 닥친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공자의 대답은 의연하다. ‘군자야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 소인은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 함부로 행동해 버린다.’

《논어》 후반부에는 공자가 겪는 다양한 고초가 기록되어 있다. 일전에 이야기했듯 공자는 여러 나라를 전전하는 방랑가였다. 그 가운데 위나라에서는 군주를 만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당시 군주였던 위령공과 잘 맞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 〈헌문〉을 보면 석문의 문지기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공자에게 한 말은 후대에 길이 남아 전해진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 공자의 방랑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따라 다녔다. 안 되는 일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이어지는 문장도 공자를 비꼬는 이야기이다. 공자가 경쇠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의 감정이 소리에 묻었는가 보다. 이를 듣고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저 땡땡거리는 소리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할게 아닌가?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 올리고 건너면 그만이지만 물이 깊으면 옷을 홀딱 벗고 건너야 하지 않나?’ 공자를 피도 눈물도 없는(!) 성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의아하게 생각될 부분이다. 공자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했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경쇠의 소리에 그의 감정이 묻어 난 것일까?

《논어》 번역서 가운데 최근에 나온 리링의 번역은 《집 잃은 개》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는 당시 천하를 떠도는 공자를 빗대어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喪家狗! 집 잃은 개! 리링은 주장한다. 《논어》에서 읽히는 것은 이처럼 서글픈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개인적으로 이 주장에 매우 동의하는 편인데, 잘 읽어보면 공자는 그리 쿨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양화〉에 기록된 부분들을 보자. 첫 머리에 등장하는 양화는 당대 노나라의 실력자였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당시 노나라는 세 귀족 집안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계씨 집안의 권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이 계씨 집안의 권력을 독차지한 인물이 바로 양화였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치면 일종의 쿠데타로 일시적으로 권력을 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공자를 만나고자 한다. 그러나 공자는 만남을 회피한다. 양화가 꾀를 내는데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선물을 받으면 찾아가 답례하는 것이 예였다. 공자가 있을 때였다면 선물을 받지 않았겠지만 양화는 이를 알고 그가 없을 때를 틈타 선물을 보냈다. 하는 수 없이 공자도 그가 없는 틈을 타서 양화집을 찾아가 답례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아뿔싸!! 길에서 그를 만났다. 양화는 공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어지러운 나라를 가만 둔다면 옳은 일이 아닙니다. 나랏일에 참여하고자 하면서도 때를 놓치면 그것도 옳은 일은 아니지요.” 이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네, 저도 곧 벼슬길에 나가겠습니다.”

양화와 공자의 관계는 미묘하다. 때문에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엇갈린다. 다만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은 직접 공자에게 자리를 제시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뿐만인가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공산불요, 필힐과 같은 사람도 공자를 초빙했다. 그때에도 공자는 가려고 마음 먹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큼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는 점이다. 제자 자로는 발끈하며 성을 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째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찾아 가려하십니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초빙에 응하려고 하는 공자의 모습을.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자는 그들의 반란을 그렇게 심각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공자는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매우 컸다. 자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어찌 조롱박과 같이 가만히 매달려만 있어야 하겠느냐?”

공자의 생애를 두고 연구자마다 여러 입장이 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자가 크게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가 고향 노나라에서 관직에 올랐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낮은 자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그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논어》를 편집한 이들도 이를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공자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이 《논어》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공자도 욕망을 가진 하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욕망을 실현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미자〉는 따로 떼어 읽어도 될만큼 독특한 주제로 가득차 있다. 처음부터 소개되는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미자와 기자, 비간. 이들은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다. 시대와 어울리지 못한 삶. 공자도 이와 다르지 않지 않나? 〈미자〉에는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이유가 살짝 언급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다양한 설명이 뒤따르지만, 《논어》에서 밝히는 이유로는 제나라 사람이 보낸 여인과 음악단 때문에 나라의 정치가 멈추었기 때문이란다. 공자의 방랑은 정치에 실망해서 시작되었다.

장저와 걸닉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두 노인이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와서 묻는다. ‘나루터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자의 제자 자로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공자와 자로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한다. ‘흙탕물이 잔뜩 일어나 천하를 뒤엎고 흐르는데 누가 이를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을 피해 떠돌아 다니는 것보다는 세상을 피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논어》 전체와 비교해 보아도 뭔가 좀 다르다. 매듭이 확실하며 인물들이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다. 아마 이것은 실제 사건을 옮긴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에 지어낸 우화일 것이다.

공자는 제자 자로를 통해 나루터를 묻는다. 나루터는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는 곳이다. 대체 공자는 어디로 건너가려 한 것일까? 게다가 수수깨끼처럼 장저와 걸닉은 이렇게 말한다. 공자라면 알 것이다. 그렇다면 흥미롭게도 공자는 건너가는 길을 알고 있지만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만다. 길을 알면서도 헤매는 사람.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공자의 모습은 이렇다.

강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이다. 공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까 고민하나 결국은 건너가지 못한다. 앞의 이야기를 보면 양화, 공산불요, 필힐 등이 주장하는 관직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세계로 건너가지 못함을 의미한다. 공자는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고자 했으나 늘 그 앞에 주저한다. 장저와 걸닉이 비판하는 것처럼 그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줄 그런 군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직접 그 나라에 들어가 군주와 나라를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일정한 타협. 그러나 공자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거꾸로 또 다른 저쪽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장저와 걸닉이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삼태기를 멘 노’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장저와 걸닉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어정쩡한 인물이다.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 초야에 은둔하며 사는 삶은 어떤가? 관직에 오르지 못하면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공자는 제 몸으로 일하기는 커녕 오곡도 분간하지 못한다. 그들이 보기에 공자는 또 다른 저편, 즉 복잡한 세상일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람이다.

결국 공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는 관직의 세계로 나아가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는 삶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길. 외롭고 힘든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로 그 길, 여기야 말로 공자가 갖고 있는 특정한 매력이 아닐까. 왜냐하면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와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접여라는 초나라 미치광이는 공자를 지나가며 노래를 부른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덕이 쇠락한 것을 어찌할까? 지나간 것은 어떻게 따져볼 수 없지만, 앞으로는 기대할 것이 있으니! 그만둬 그만둬!! 지금 정치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여기서 보이는 인식은 천하가 어지럽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천하에서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 장저와 걸닉이 말하지 않는가. 마치 거대한 홍수가 나듯 어지러운 세상을 어찌할까? 한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 떨어져라. 다만 내일을 기약하자.

여기서 하나의 전환을 볼 수 있다. 《논어》의 앞 부분에서 공자는 주나라의 예를 회복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꿈에서 주공을 만나던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꿈에서도 주공을 만나지 못한다. 게다가 천하가 돌아가는 모습은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 이제 주나라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 돌아가는 길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일지 모르지만 더 나아질 미래를 기대할 뿐이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기약하자.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로.

모든 위대한 책은 시대와 불화한 끝에 나온다. 〈미자〉에서 우리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겪었던 다양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혹은 과거로, 미래로? 그나마 탈출구는 있다. 그러나 이도저도 완벽히 막혀버린 시대도 있지 않을까? 《장자》는 이런 당혹스러움 끝에 나온 글이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기록을 《장자: 인간세》에서 볼 수 있다.

孔子適楚 楚狂接輿遊其門曰 鳳兮鳳兮 何如德之衰也 來世不可待 往世不可追也 天下有道 聖人成焉 天下無道 聖人生焉 方今之時 僅免刑焉 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 已乎已乎 臨人以德 殆乎殆乎 畫地而趨 迷陽迷陽 無傷吾行 吾行卻曲 無傷吾足 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桂可食故伐之 漆可用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논어》와 공자의 이야기가 거의 끝났다. 이제 다음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공자가 떠난 뒤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자의 가르침은 후대에 어떻게 전해졌을까? 미리 이야기하면 공자 이후의 시대도 그리 밝지는 못했다. 춘추전국의 혼란이 더욱 더 큰 혼돈으로 빠져드는 시대.

오늘날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다. 어찌 되었건 《논어》는 고전 가운데 고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도올은 서양에 성서가 있다면 동양에 《논어》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 남았고, 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무엇인가 읽어볼만 한 게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한편 누군가는 동양 사상, 동양 철학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고 할 수도 있다. 바른 삶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읽기란 어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변화를 위해서이며, 그 책에 담긴 무엇인가를 이어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읽느냐가 사람을 바꾼다. 음식물이 세포를 이루듯, 글은 사유와 감성의 토대를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만만치 않은 폭력으로 육박해 온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겨낼 힘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아니, 견뎌낼 힘이라도. 나는 《논어》의 문장이, 공자의 삶이 무엇인가 단단하게 삶을 다져주리라 믿는다. 적어도 이 책과 함께라면 덜 상처입고, 덜 망가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을 더 깊이 사랑하기를.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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