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7책] #18 – 노자 ABC 《왕필의 노자주》

다사다난한 올해가 어서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빨리 시간이 지나야 올해 겪었던 사건들이 ‘과거’의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테니. 그래도 아무 성과가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장자》와 《논어》를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둘 가운데 더 큰 소득을 꼽자면 《장자》를 들어야겠다. 벌써 몇 번째 강독이니 세미나니 하면서 읽는데, 읽을 때마다 다르다. 이제 좀 길이 보이는 듯하다. 길이 보이는 만큼 장애물도 또렷이 드러난다. 《장자》를 깊이 이해하려면 《노자》와 《열자》를 잘 읽어야겠다는 점.

그래서 내년에 《노자》 강독을 준비 중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노자》에는 크게 관심이 없음을 밝혀둔다. 《노자》와 《장자》는 다르며, 또한 《노자》는 통치의 기술을 위한 텍스트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노자》를 읽고자 하는 것은 《장자》에 《노자》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이를 《노자》 내부의 맥락과는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노자》의 계승 발전으로서의 《장자》 독해가 아닌, 《장자》의 고유함을 읽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노자》 읽기. 진짜 장자를 찾기위한 방편으로.
개인적인 입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자》가 해석의 방향이 크게 열려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왕필, 하상공, 성현영의 주석에 따라 각기 해석의 방향이 크게 갈릴 뿐만 아니라 문장을 끊어 읽는 방법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곽점초간, 백서 등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노자》 번역서는 모두 이 가운데 어떤 해석, 전통을 선택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하는 이야기의 차이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이전 세미나에서 최진석 선생의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을 읽었는데, 이 책은 일단 왕필의 주석을 비판하며 노자 고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곽점 초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일부 글자를 바꾸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노자 고유의 목소리인지 저자의 주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강독을 준비하면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 가운데 왕필의 주석을 담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이렇다. 일단 저자의 독창적 해석보다는 가장 보편적인 해석을 취할 것. 현대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텍스트를 수정한 것이 아닌 통행본을 실은 것. 다양한 해석이 많아 이론적인 이야기를 잔뜩 담아 놓은 책이 아닌 간단히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간결한 번역일 것. … 이런 기준 아래 책들을 훑어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것과는 다른 번역서를 참고하고 싶었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이 책으로 낙점.
대중적으로 《노자》를 이해한다고 할 땐 이 책의 필요성이 감소하지만, 《노자》를 좀 ‘공부’해보겠다고 할 때는 이 책은 필수라고 하겠다. 왕필은 《노자》 해석에 1000년 이상의 영향을 끼친 인물이니. 예를 들어 《논어》를 읽을 때 아무리 주희의 주석이 낡고 고리타분 하다고 하더라도 한번은 읽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기서 출발해야 하는 것처럼. 그러니 《왕필의 노자주》를 읽자. 내년에 기획하는 세미나에서는 기필코 《노자》 5천자를 암송하고야 말테다!!

참고로 왕필주 번역은 2종이 보인다. 홍익출판사의 김학목 번역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홍익출판사 고전 시리즈를 신뢰하지 않는다. 게다가 뒤에 붙은 역자의 논문 제목을 보고는 읽을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도덕경』의 시각으로 본 『성경』의 「창세기」 신화’;;; 예전에 서점에서 살짝 훑어본 기억이 있는데 영 엉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서와 노자를 이어서 읽을 수 없는 건 아니나, 노자를 통해 성서의 비밀을 벗겼다라고 운운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위에 소개한 임채우의 번역에 대해 성토하는 글들이 많기는 하나, 예전에 그럭저럭 읽은 기억이다. 홍익출판사보단 나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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