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7책] #6 – 그의 소설《엄마의 말뚝》 외

 

 

대학 때 소설을 읽으며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는 수업이 있었다.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소설로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읽었다. 소설과는 별로 가깝지 않았던 나에게 그의 글은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소박한 문장 속에 숨겨 있는 번뜩이는 날카로움! 한 학기 수업을 통해 열 권이 넘는 소설을 읽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뚝》을 으뜸으로 쳤다. 그때엔 그의 소설을 찾아 읽어보겠다는 열망에 불탔지만 정작 그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계기가 없었다고 보는 게 옳겠다. 하긴 스스로 소설을 찾아 읽는 타입은 아니니. 글을 쓰면서 문득 어느 헌책방에서 《나목》을 샀지만 펼쳐보지도 않았다는 부끄런 사실이 기억났다. 그 뒤로 우연히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어봤고…

배운대로 가르친다는 말은 옳다. 약 10년 뒤 비슷한 수업을 기획해서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 만에 만난 《엄마의 말뚝》은 여전히 좋았다. 그의 문체와 따뜻한 시선. 잔혹하기까지 한 그의 집요함까지. 뭇 책이란 스스로 집어 들어 읽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만난 책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직도 좋은 책을 가려낼 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리라. 대학 시절 박완서라는 작가를 소개해준 선생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올 가을부터 일요일 아침에 청소년들과 소설을 읽고 있다. 9-10월에는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강좌가 제법 흥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 다음 책으로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두 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꼽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충 책의 내용을 알고 있을 뿐 다 읽어보지도 못했다, 강의를 준비하는 사람이 저렇게 게을러도 되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험상 이미 정돈되고 완결된 지식을 나누는 것보다는 함께 배워가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되었다. 적어도 이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벌써 살짝 기대된다. 물론 척박한 그 시절, 박완서의 유년시절을 경험하는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이 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의 미학이 그저 아름다운 시절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나 그의 따뜻한 시선과 소박한 문장들은 적지 않은 선물이 되어 주리라.

첫 문장을 읽어보았다. 누군가 첫 문장을 읽고 책을 산다고 했다. 파르르 떨리는 문장. 그의 글을 읽을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 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더 먹었을까》, 세계사. 13쪽.

덧: 책방 온지곤지에서는 11-12월 동안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더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습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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