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논어》 읽기 #3 – 〈위정〉

1. 남면, 군주의 자리

〈위정〉편 시작부터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為政以德! 이상적인 군주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린다. 공자는 이를 북극성에 견준다. 군주를 북극성에 견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일단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뭇별의 자리가 바뀌어도 북극성은 늘 제 자리에 있다. 쉽게 바뀌지 않는 군주의 자리를 이야기하기에 북극성은 적절한 대상이었다. 한편 주희의 주석에서 이야기하듯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에 있다. 계절에따라 별의 자리가 바뀌는데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이 회전한다는 것을 고대인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중앙에 있는 북극성과 이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별들, 이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한 자연 현상이었다.

군주는 남쪽을 향해 앉는다. 이를 남면南面이라 하는데, 북쪽이 군주의 자리가 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논어》에서도 몇 차례 이런 기록이 나오니 말이다. 다만 그것이 제왕의 자리로 강조된 것은 좀 후대인 것으로 보이는데, 공자가 한 제자에게 ‘남면할만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후 방위에 대한 관념 등이 합해져서 다양한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옛 궁궐의 배치와 사대문의 이름 등은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다. 지금도 경복궁 근정전에 가면 남쪽을 향해 확트인 시야를 맛볼 수 있다. 그 앞의 너른 뜰은 백관의 자리이다.

군주 일인과 백관이라 불릴만큼 많은 신하들. 이 둘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둘의 힘의 분배를 가지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그 가운데 유가儒家는 대체적으로 군주 일인의 역할보다는 그 권력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유가는 통치이념 아니었느냐고. 군주의 자리를 이념적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끊임없이 개발하지 않았느냐고. 좀 낡은 말이지만 유가에 붙은 ‘봉건의 잔재’라는 딱지가 바로 이 말이다.

개인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은 주제기도 하지만, 일단 천자라는 지배체제가 유가의 발명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리어 그것은 유가에게 주어진 역사적 조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유가가 이를 옹호했느냐의 문제는 보잡하다. 군신의 윤리를 강조하고 이 구분을 강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의 경우 그것이 ‘윤리의 강조’인지 ‘권력 관계의 고착화’인지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주희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政의 의미를 正이라 말한다. 政之為言正也,所以正人之不正也。 다른 부분의 주석에서 보았을 때 주희가 말하는 부정이란 곧 소인의 행실을 떠오르게 한다. 為善者為君子,為惡者為小人。(10) 그가 비록 선악이라는 잣대를 통해 군자와 소인을 가르기는 하나, 소인이라는 말에는 순수하게 윤리적인 의미만 담기는 것은 아니어서 계급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치란 무지몽매한 소인 –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어류》의 기록에 따르면 民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사대부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이때의 백성은 서민을 지칭한다. 선비라면 자기 행실에 수치를 아는지라 윗사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주희의 시대를 가리켜 사대부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낯선 계층이 새롭게 출현한 시대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사대부의 정체성에 토대를 닦은 인물이 바로 주희라고. 유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말 가운데 우환의식憂患意識이라는 게 있다. 세상 일에 대해 앞서 걱정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논어》에도 간간이 보이지만 이를 잘 드러내는 글로 주희의 주석에 등장하는 범조우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악양루기岳陽樓記>라는 글에 이렇게 말한다.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이를 줄여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라 하는데 바로 이런 데서 자신들이 윤리의 최전선에 있다는 정체성이 생겨났다. 그런면에서 시 삼백편을 두고 이야기한 ‘사무사思無邪’에 얽힌 오독도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약 300편에 달하는 시詩를 ‘사무사’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공자가 말하는 시詩가 주희 등이 이야기하는 《시경詩經》의 그것이 맞는지, 혹은 다른지는 모른다. 게다가 공자가 시를 정리했다는 전설도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이는 공자의 말이라기 보다는 편집자의 말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얽힌 다양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사무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늘 문제가 남는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나오는 시의 본래 맥락에 따르면 이때의 ‘사思’는 허사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라고 옮기기 보다는 ‘사특함이 없다’고 풀이하는 게 본래 시의 맥락에 맞다는 점이다. 주희가 과연 이를 염두해두었는가는 모르겠으나 시가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쓰여야 한다고 본 것은 확실하다. 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

이렇게 보면 주희의 주장이란 숨이 턱턱막힐 정도가 된다. 백성을 바르게 이끈다는데, 성정性情까지 그 대상으로 삼으니! 윤리의 선봉장을 자임하는 그가 매섭다. 그러나 그가 군주에서 백성이 이르는 통치의 완결한 체제를 꿈꾸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먼저 그는 북극성의 비유를 들어 군주의 역할을 표현하는 말로 무위無爲를 인용한다. 이는 매우 논란이 클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보통 노자의 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단을 공부하면 해롭다는 공자의 말이 있지 않았나. 이는 군주의 역할을 ‘그 자리에 있음’으로 제한하고(居其所,不動也。) 덕의 의무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為政以德,然後無為。군주는 덕을 실현하는 모범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주장은 어떻게 보면 군주의 자리에 상징적인 권력을 더하는 것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군주의 실제적인 권한을 제한하는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주희와 상대적으로 군주의 직접적 역할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한 다산의 주석을 보면 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發號施令正百官以正萬民者也… 駁曰非也淸淨無爲即漢儒黃老之學晉代淸虛之談亂天下壞萬物異端邪術之尤甚者也… 夫無爲則無政夫子明云爲政儒者乃云無爲可乎不可乎

그렇기에 다산은 여기서 共을 주희처럼 向으로 해석하지 않고, 同運 함께 움직임으로 풀이했다. 군주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한편 주희가 백성을 바른 길로 이끄는 사대부로 자임했을 때 조차 개별 인간의 자발성을 빼놓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공자는 이 출발점을 부끄러움이라 보았는데 주희는 이 부끄러움을 불선에 대한 것이라 본다. 부끄러움이란 언제 일어나는가? 이는 덕과 예의 화신을 만남을 통해 일어난다. 躬行以率之,則民固有所觀感而興起矣 사대부는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남면, 군주의 자리는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과연 이 중심을 단 하나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은 이 군주의 자리를 군자의 자리로 대신하고, 하나의 별이 찬란한 그런 하늘보단 뭇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는 그런 세계를 상상한 것은 아니었을까? 윤리적 가치로 권력을 비호하려했다기 보다는, 윤리라는 무기로 군주를 제한하고, 스스로 윤리의 실천자를 자임하며 또 다른 정치적 공간을 창출했다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2. 효, 예의 대표주자?

유가는 천하天下 혹은 국가(國)라는 거대한 공간만 이야기하는 이들은 아니다. 《대학大學》이라는 책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천하국가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家와 身에도 주목한다. 여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가家이다. 흔히 가족으로 옮겨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옮기는 순간 이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중국의 지아, 일본의 이에와 한국의 가족을 분석하기도 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한국의 가족엔 훨씬 가부장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논어》의 두번째 문장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는 孝弟를 이야기한다. 효제가 무엇이냐를 논의하지는 않으나 여기서는 이것이 근본(本)이기에 이런 윤리적 태도를 갖추면 어지러운 세상(作亂)이 오지 않으리라 말한다. 어지러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犯上즉 윗 사람에게 대드는 것이다. 따라서 효제란 위계적 구조에서 아랫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태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어지는 1-6에서는 효제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弟子入則孝 出則弟 효제가 出入과 관련된 윤리라면 이때의 출입이란 곧 家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맹자》에서는 이것이 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부모에 대한 윤리와 군주에 대한 윤리라는 짝으로. 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 《논어》의 효제는 곧 《맹자》의 인의라고 하겠다. 1-6의 공자의 말과 1-2의 유자의 말, 그리고 맹자의 인의를 비교해보면 보다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공자에게 효제란 제자弟子, 즉 남의 동생이나 자식뻘이 되는 젊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였다면, 유자는 이것을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순응적 태도로 바꾼다. 한편 맹자에는 군주에 대한 복종적 태도로 발전한다.

이런 까닭에서 《맹자》에서 그려지는 효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다. 맹자는 순舜을 大孝로 칭송하는데 이는 아버지와 계모, 배다른 형제가 공모하여 자신을 죽이려했음에도 원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효는 절대적이어서 제자들에게도 별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런 질문을 던지까지 한다. 순이 천자가 되었을때 그 아비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천자의 아버지임으로 벌하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아버지임에도 처벌해야 할까? 맹자의 대답은 이렇다. 짚신을 버리듯 천하를 버리고 아버지를 업고 도망쳤을 것이다. 효는 절대적인 윤리가 되었다. 천하보다 더 큰!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가의 윤리 가운데 하나는 효孝라고 하겠다.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五常은 별로 이야기되지 않지만 효는 끊임없이 이야기되지 않나? 실제로 청소년들과 《논어》를 읽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바로 효孝이다. 기성세대는 늘 발랑까진 아이들이라며 손가락질 하기 바쁘지만 어찌나 효자효녀가 많던지 《논어》를 읽고 쓴 과제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불효자는 웁니다’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과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효가 친숙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논어》에서는 효를 그렇게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효에 관련된 일련의 문장들에서 조차 일관된 태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맹자》와 비교했을 때,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감수성과 비교했을 때 공자가 말하는 효란 소박하면서도 간결하다. 맹의자와의 대화를 보면 효란 특별한 위상을 갖는 독립적인 규범이 아니라 예禮라는 커다란 규범 가운데에 하나로 소개된다. 다만 특정한 의무들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섬김(事)과 장사지냄(葬), 제사(祭)이다. 섬김의 내용으로는 봉양(養)이 대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에게 여러 사람이 질문했던 것을 보면 공자가 효孝를 강조하기 이전에도 이미 당시에 보편적인 윤리로 여겨졌던듯 하다. 문제는 그 내용과 태도에 있어 논의가 필요했을텐데 공자는 여기에 공경(敬)을 더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기본적인 책임을 다한다고 그만인가? 부모를 공경할줄 알아야지. 이게 간단한 공자의 입장이다. 훗날 다양한 희생의 서사가 뒤따르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공자의 말은 참으로 간결하다.

《논어》를 읽고 주희의 주석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감수성보다 훨씬 여유있게 효를 논한다는 점이다. 오늘날에야 효가 예의 출발이자 전부인것처럼 논의되나 과연 공자와 주희에게도 그랬을까?

“《주례》는 매우 번쇄한지라 본래 행하기 어렵다. … 공자도 반드시 《주례》를 모두 따르려고 하지는 않았다. … 세상에는 옛날의 예를 억지로 그대로 행하려는 자가 꼭 있다. 그러나 후세의 실정은 예법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 제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일이 다 행하려고 하면 많은 집사가 필요하다. 전에 아무개가 억지로 앞장서서 행하려고 한 경우가 있었다. 자신은 물론 절차를 잘 알고 있겠지만, 고용된 집사들이 모두 익힌 적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집사들조차 웃음을 참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예를 행할 바에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모두는 ‘상황과 예법’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니, 차라리 행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논어》를 통해 효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상술하였듯 시간이 흐르며 효에 다양한 의미가 덧씌워졌다. 그렇다면 공자가 여기에 공경이라는 마음의 태도를 담기 이전의 효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효를 전통사회의 사회보장 시스템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더 쉽게 말하면 노후보장이라 하겠다. 이렇게 보면 효란 과연 개인들에게 부과되는 절대불편의 지고한 행위 규범이라 할 수 있을까? 도리어 다른 형태로 상상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사족처럼 덧붙이면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며 효가 자본주의적으로 전환되어 훨씩 강력한 윤리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효가 부모에 대한 봉양, 설사 그것이 희생일지라도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강력한 의무였다면, 이제는 그 의무에 부채감정이 더해져버렸다. 2010년 김예슬은 대학을 나오며 ‘투자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세대’라 스스로를 지칭하였다. 이제 효란 봉양을 넘어 수익, 최소한의 원금 회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하긴 정치인이었던 모 방송인은 자식 교육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노후대비 투자라고 말하지 않았나.

메일 보내기

아무 내용이나 상관 없어요.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는 중입니다..
또는

로그인하세요.

계정 내용을 잊으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