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소나기》

‘토요서당’ 친구들과 《소나기》를 읽었다. 얼마 만에 읽은 것일까.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게 초등학교 3-4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소년이 뽑아준 무를 베어 먹고 소녀가 내뱉은 말이 한참이나 기억에 남았다. ‘아, 맵고 지려.’라는. 소년의 무뚝뚝하면서도 친절한 모습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번에 읽으면서 소년이 뽑아 준 무가 참외 대신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더불어 이야기의 배경이 추석을 얼마 앞둔 초가을이라는 점도.

“저게 뭐냐?”
“원두막.”
“여깃 참외 맛나냐?”
“그럼. 참외 맛두 좋지만, 수박 맛이 참 훌륭하다.”
“하나 먹어 봤으면.”
소년이 참회 그루에 심은 무밭으로 들어가, 무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밑 건넨다. 그러고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적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
하며 집어 던지고 만다.
– 17쪽.

토요서당에서는 한 달에 한 두 권 고전 작품을 선정해서 읽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짧은 작품을 선택했다. 《소나기》를 한 달에 걸쳐 읽었으니 꽤 천천히 읽은 셈이다. 전문은 고작 15쪽 정도. 그것도 삽화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글자만 빼곡히 넣었다면 훨씬 짧았을 것이다. 이렇게 짧은 책을 읽는 데 한 달이나 걸린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 읽었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그렇지만,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많이 다르다. 문장 특유의 리듬감과 표현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읽는 내내 담백한 맛이 좋았다. 뚝뚝 끊어지는 문장은 그 자체로 소년과 소녀의 어색한 관계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이 둘의 감정이 달라지는 부분을 잘 담아내었다. 53년 발표된 소설이니 벌써 반 세기 전 이야기인데도 그 감성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여러 책이 있겠지만 전국국어교사 모임에서 엮은 휴머니스트 판을 선택했다. 만듦새가 좋아 고전읽기 시리즈부터 ​교재로 많이 쓰고 있다. 게다가 본디 중학생을 대상으로 엮어 낸 책이지만 초등학생이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기에. 책의 2/3 이상은 여러 보조 자료인데 시간상 다 함께 보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개울과 도랑’이라는 글이 좋았다.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에서 인용한 글인데 도랑과 개울, 개천, 시내 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던 물이 방울이 되어 땅 위레 내려오는 것을 ‘비’라 한다. 그리고 가파른 뫼에 내린 비가 골짜기로 모여 내려오면 그것을 ‘도랑’이라 한다. 도랑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사람의 집 곁으로 흐르기 싯상이기에, 사람들은 힘을 기울여 도랑을 손질하고 가다듬는다. 그래서 그것이 물 스스로 만든 길임을 잊거나 모를 지경이 되기도 한다. 도랑이 흘러서 저들끼리 여럿이 모여 부쩍 자라면 그것을 ‘개울’이라 부른다. 
- 51쪽.

《소나기》의 또 다른 결말이 실려 있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본디 원 제목은 《소녀》였고 끝에 네 문장이 더 있었다고 한다. 너무도 유명한 《소나기》의 결말은 이렇다.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는 윤 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그런데 먼저 발표된 《소녀》라는 작품은 이어서 이렇게 끝난다.

“아마 어린 것이래두 집안 꼴이 안 될 걸 알구 그랬던가 부지요?”
끄응! 소년이 자리에서 저도 모를 신음 소리를 지르며 돌아누웠다.
“쟤가 여적 안 자나?”
“아니. 벌써 잠들었어요. 얘, 잠꼬대 말구 자라!”
– 88쪽.

이후 친한 친구의 충고에 이 부분을 삭제했단다. 언젠가 이 부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읽은 기억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금 《소나기》의 짧은 결말이 좋다.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의 생각은 다른데, 대부분 《소녀》의 결말이 더 좋단다. 이유는 끝이 허망하지 않아서.

다 읽고 나니 제법 재미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과제로 감상을 받아보니 제법 느낀 면도 있었던 게 보인다. 오늘날의 이야기로 바꿔보라 했더니 메르스에 걸려 둘 다 죽거나, 좀비가 되는 이야기로 끝내던 친구들이…;; 맨 아래 친구들이 쓴 글을 첨부한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들의 풋풋한 이야기가 아련하게 남아 가슴을 울렸다. 특히 수숫단 속에 쪼그려 앉아 비를 긋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이런 경험은 이젠 영영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넞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저으기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 23쪽.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보기 좋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소녀인냥 설랬다. 하지만 마지막에 소녀가 죽을 때 소년의 마음을 생각하니 소년이 너무 불쌍했다. 소녀가 오래 살다 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죽음이 갈라 놓았던 것이 슬프다. 내가 만약에 소나기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면 누구보다 슬플 소년을 위로해주고 싶다.

결말이 아쉽다. 소녀가 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궁금하다. 소년이 소녀에게 고백을 하거나 더욱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아쉽다. 또 소녀가 불쌍했다. 드디어 소년과 친해지려고 하는데 죽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슬프고, 갑자기 하던 일이 망해 약을 챙겨주지 못한 가족들이 한편으로는 이해되지만 원망스러울 것이다.

소년이 참 불쌍하다. 소녀도 불쌍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마음을 아파하는 소년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함께 정을 나누고 노는 하루였다.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더 친해지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소녀를 죽게하는 하루가 되었다. 역시 세상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녀가 죽은 뒤로 소년이 어떻게 지낼지 소설에서 나타나지 않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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