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선농인문학서당 《논어》 2강 – 바른 정치란

1. 대체 정치라는 게 뭐길래?

‘정치’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국회의사당의 그 많은 의자와 치고받고 싸우는 정치인들? 깔끔한 청와대의 전경과 그 실세라는 진돗개!? 아니면 언젠가 손에 쥐게 될 투표지? 보통 어떤 인물과 제도를 떠오르게 마련일텐데, 사실 이것들이 다 없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건 여전히 존재한다. 《논어》에서 볼 수 있듯 공자는 매우 오래전부터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만 그가 이야기하는 정치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좀 많이 다르다.

子曰 為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眾星共之

《논어》의 두번째 장은 ‘위정為政’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정치를 이야기한다. ‘나라를 다스림’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물론 이 말은 원칙적으로 따지면 몇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일단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처럼 ‘나라’라는 것을 공자 시대에도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어쨌건 국가國家란 한참 후대에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위정’이 과연 다스림에 대한 것일까 하는 문제가 있다. 공자가 말하는 다스림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다스림이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긴 오늘날 우리는 ‘다스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라라고 할만한 대상이 있었으며, 공자가 말하는 정치란 ‘다스림’이라고 할만큼 권력의 문제와 동시에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자는 다스림(政)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政者正也. 《논어》에서 만나게 될 문장인데, 다스림이란 곧 바르게 이끄는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공자는 다스림을 북극성에 비유한다. 옛부터 북쪽은 군주의 자리였다. 그래서 남면南面, 즉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다고 한다. 북쪽을 향하는 것은 신하의 자세이다. 자세히 보면 우리네 옛 궁궐도 그 형태를 그대로 갖고 있다. 남쪽을 향해 커다랗게 문이 나있고 군주는 북쪽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경복궁에 가보면 여러 차들과 건물을 치우면 남쪽 숭례문까지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군주는 남쪽을 바라보며 통치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의 역할이 무엇이냐를 두고 문제가 생긴다. 이를 두고 가만히 있으라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즉 군주는 가만히 있고, 뭇 별들이 북극성을 받들어 그 주위를 돌듯 신하들이 직접 움직여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풀이하는 것이다. 군주보다는 신하들이 정치의 주체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는 늘 권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군주제라고 해서 군주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하는 시대는 아니였다. 특히 유가의 나라였던 조선을 기억하자. 사극에서 많이 보던 장면, ‘그리하면 아니되십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 눈살이 찌뿌려지는 군주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 이리 이리 하라는대로 곧이 곧대로 해하는 신하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나?

한편 여기서 ‘이덕以德’을 강조하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군주란 무릇 덕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군주가 덕으로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을 때 그에 따라 신하들도 혹은 천하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아 바르게 되리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렇게 보면 군주란 참 피곤한 존재기도 하다. 늘 바름을 옆에 끼고 행동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가하면 정말 군주의 영향이 그렇게 큰지 질문이 들기도 한다. 정말 군주는 북극성과 같아서 사람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기준이 되는가? 행여나 군주가 잘못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바르지 못한 길로 빠져들게 되는가?

서구에서 정치를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공자가 정치에 관해 이야기한 이래로, 정치란 권력의 독단적인 행위를 막는 힘을 가리키도 했고, 나아가 도덕적인 가치를 지니는 개념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정政이란 행정行政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권력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공자가 이것을 바르게 함(正)이라 말했듯 단순히 권력의 실행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실행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치란 정의正義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 정의가 무엇이건간에. 그에 비해 치治는 보다 권력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 단어는 본래 ‘물길을 바로 잡음’에서 왔다고 한다. 치수治水라는 말이 있듯, 물길을 간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홍수는 매우 커다란 재앙이어서 치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는데, 한두 사람의 힘으로 물길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의 노동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고, 이 힘을 바탕으로 커다란 공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 물길 공사가 주지육림酒池肉林, 즉 왕이 즐길만한 개인적인 취향을 위해 시도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란 이처럼 천하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이를 통해 바른 세계를 열어줄 의무가 있었다. 따라서 ‘바른 정치’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틀렸다. 정치란 본디 바른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기에, 악한 정치란 모순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제 잇속을 차리는 권력자가 얼마나 많은가? 이점에서 보면 공자는 권력이라는 면을 너무 간과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실제 정치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 아닌가?

 

2. 주례周禮, 공자의 이상

공자는 예禮를 중시했다. 그러나 공자가 말하는 ‘예’를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예의범절’ 정도로 치환하면 곤란하다. 인사 잘하고 존대말 잘 쓰는. 물론 그런 구체적인 행동이 ‘예’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생각하는 게 아닐까?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공자는 여기서 둘을 대비시켜 이야기한다. 하나는 정政/형刑, 보통 법령과 형벌로 번역된다. 다른 하나는 덕德/예禮. 여기서 덕과 예를 어떻게 이해하건간에 공자는 법령과 형벌로 다스리는 것에 반대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자 당시는 성문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이었다. 공자보다 앞선 인물 가운데 법령 체계의 기초를 놓았다고 하는 인물이 있지만 그것이 일반적으로 확대된 것은 아니였다. 당시의 형벌은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습속에 따라 행해졌고, 무엇보다도 군주 한 사람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기도 했다. 그런 시대에 법령의 출현은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시대에서 적어도 그것을 예측하고 계산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러나 공자는 그런 계산하는 태도를 싫어했던 것으로보인다. 그렇게 행동의 잘잘못을 결과를 통해 유추할 경우 부끄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란 마음에서 솟아나는 매우 개인적인 감정이어서 이것이 있어야먄 스스로 바르게 되는 자기 변화가 비로소 가능하다. 어떤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 행동의 출발점이 자기 밖에 있는 어떤 지침이나 이해관계 때문이라면 바른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주체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남이 만들어놓은 지침에서 과연 ‘바른 인간’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공자에게 어떤 특정한 기준이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공자가 예禮라는 말을 쓸 때엔 개별 사람의 행동거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것을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언급되는 하나라의 예, 은나라의 예, 주나라의 예가 그렇다. 공자는 특히 주례, 주나라의 예를 중시했는데 이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것을 계승한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안정된 체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나라가 완성한 통치 체제, 이를 봉건제封建制라 부른다.

봉건제라고 하면 중세의 기사가 농노를 다스리던 것을 떠올리지만 사실 봉건이라는 말은 주나라의 통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중에 서구의 그것을 가리킬 말로 봉건을 붙인 것이고. 주나라는 천하를 통일한 이후 넓은 땅을 혼자서 다 다스릴 수 없어 친족과 공신에게 땅을 떼어준다. 이를 봉토건국封土建國이라 부른다. 영토를 나누어 나라를 세워주었다는 말이다. 이를 줄인 말이 봉건! 각 나라와 중앙의 주나라는 혈연과 신의에 의해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천하란 커다란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구조였다.

그러나 공자 시대에는 이것이 많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팔일〉에서 공자가 팔일무를 추는 계씨를 나무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커다란 구조는 각 구조의 구성원이 마땅히 지켜야할 구분된 행동들로 안정된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 틀을 깨뜨리고 천하의 주인공인냥 행동한다면? 사실 춘추전국 시대란 다름이 아니라 저마다 천하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나선 시대였다. 공자는 이점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사람이란 각기 제 분수가 있는 법인데.

그러나 이런 점은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보기에 껄끄럽기만 하다. 사회 전체의 수직적인 위계적 구조라니 답답하지 않는가? 게다가 오늘날 주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인 ‘평등’과 모순되는 태도가 아닌가? 계씨가 천하의 주인처럼 행동한 것이 뭐가 문제인가? 어찌 천하가 한 사람의 것이겠는가? 훗날 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외치며 일어난 사람이 있었다. 진승이라는 인물인데, 그의 호소는 수 많은 사람을 일으켰고 제국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어찌 사람에게 따로 타고난 역할이 있단 말인가?

물론 공자에게는 둘 모두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는 군주의 지배를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도덕을 행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 하나는 수직적인 위계 체제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미리 말하지만 모든 사상가는 그 내부의 모순을 품고 있다. 무엇을 더 읽는가 하는 점은 우리의 몫이다.

 

3. 효孝라는 이데올로기

개인적으로 효孝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누군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그토록 아름답고 바른 것에 대해? 그러나 과연 효가 아름다운 전통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이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루쉰이다. 그는 어렸을 적 삼강오륜도라는 책을 보며 자랐는데 이 책의 내용이 너무도 끔찍했단다. 내용은 별 것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뿐이다. 부모는 몸이 아프고 자식은 아픈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한다. 겨울에 산딸기를 떼오기도 하고,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와야 하기도 한다.

그것만인가? 보다 난이도를 높여보자. 이제 겨울이 아닌 가뭄이 든 한 여름이다. 초목은 시들고 먹을 것은 없다. 기근으로 모든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상황에서 효자와 효녀는 제 살을 베어낸다. 이보다 심한 버전도 있다. 자식을 희생양으로 삼는. 꼭 남편이 말한다. 아들을 삶자! 아내가 반대하자 이에 대한 남편의 또 다른 설득. 부모는 한번 잃으면 그만이지만 자식은 또 낳을 수 있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 끔찍한 희생의 이야기를 루쉰은 벌벌 떨며 읽었다. 집이 풍족하니 다행이지만 집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이 첫번째 희생양이 되지 않겠나?

어린 루쉰이 너무 순진하게 이야기를 받아들였다고 넘어가지 말자. 실제로 그런 일, 인신공양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안심하기 전에, 루쉰의 던졌던 질문을 왜 우리는 던지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를 왜 아무렇지도 않게 읽는건가? 게다가 이 희생의 이야기는 늘 반복되지 않는가? 심청전은 정말 좋은 고전인가?

모든 관계는 관계의 수 많은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아니 그만큼 다양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관계가 아닌 특정한 역할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게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에 주목하기 보다는 특정한 역할에 생각이 머무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가족이라는 전통적이면서도 오래된 구조 안에서 그 역할의 폭이란 제한적일 수밖엔 없다. 즉 친구 관계의 가지수만큼 다양한 관계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제한적으로만 부모자식의 관계를 생각한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효라는 관점 안에는 과연 ‘우정’이라는 가치가 들어갈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엔 효란 지나치게 위계적인 구도 위에서만 가능한 개념이다. 그것은 오로지 자식에게만 요구된다. 부모가 어쨌건 자식은 효를 행해야 한다. 당신은 나쁜 부모니 난 불효하겠소. 이 말이 가능한가? 불가능한 이유는 본디 효란 나쁜 부모라 하더라도 해야 하는 불변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순간 도리어 효는 빛난다. 갖가지 역경을 이겨내야 비로소 효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이는 거꾸로 이 효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효는 자연스럽지 않다. 늘 무엇인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효에 대해 결여된 감정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 ‘나는 효자요’라며 나선다 생각해봐라. 그를 바라보는 눈길이 어떨지. 하다못해 ‘효행상’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효자를 자처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이 개념의 출현이 어쨌건 통치체제의 일부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자식은 아비에게 효를 행해야 한다. 마치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듯. 그래서 효자 집안에서는 충신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나? 군주와 아비는 하나다. 그런면에서 공자가 가지고 있는 차별적 부분, 군자와 소인을 나눈다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와 유사한 구도, 부모와 자식간의 위계 차이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 점은 안타깝다. 차라리 앞의 것은 해결된 시대가 아닌가?

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효에 담긴 정치성을 빼놓지 않고 읽을 때 비로소 이 문장도 잘 읽을 수 있다. 삼년상을 떠오르게 만드는 이 문장은 과연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을까? 뒤에 다시 이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실제로 군주도 삼년상을 치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공자는 왜 이 말을 하는 것일까?

이를 군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보자. 군주는 늘 선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 자리에 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3년은 선왕의 통치방법을 바꾸지 말라. 왜? 그것은 선왕의 유지를 받드는 동시에 조금 더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끄는 방법이 된다.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고 마음대로 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이 크게 시끄러워질 것이다. 연구자들은 공자가 이 말을 하면서 일종의 재상제도를 근간에 깔아두었다고 보기도 한다. 삼년동안 바꾸지 말라를 넘어 삼년상 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에는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가 필요하다. 재상이 바로 그런 인물인데, 실상 그는 군주보다 더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공자가 생각한 군주의 자리란 별로 대단한 게 못된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공자의 시대에 비춰보면 매우 훌륭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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