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술이 네 죄를 증거한다 (욥기 15-17)

그런 말들은 자네의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 자네 혀는 용케도 그럴 듯한 말을 골라내는군! 자네를 정죄한 것은 자네 입이지, 내가 아니라네. 자네 입술이 자네의 죄를 증거하고 있지 않는가? (욥기 15:5-6)

《욥기》를 읽으면서, 공교롭게도 고난주간을 맞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1주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통과 고난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에 《욥기》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욥의 친구, 엘리바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욥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한다. 그토록 심하게 말하다니! 네 입이 네 죄를 증거한다! 불의한 자의 불의한 말. 선한 자라면, 죄가 없다면 저렇게 심한 말을 늘어놓지 못하겠지. 엘리바즈는 이렇게 고통을 손쉽게 처리하려 애쓴다. 그는 욥의 말 이면에 있는 욥의 고통엔 관심이 없으며, 그의 불평을 통해 드러나는 부조리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는 마치 수술대 앞에서 깔끔한 고무장갑을 낀 의사처럼 그렇게 청결한 몸으로 욥의 고통을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어찌하여 이렇게 진정하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이렇게 눈을 치뜨고 극성인가? 어찌하여 하느님과 맞서 화를 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렇게 지껄여대는가? (15:12-13)

세월호에 얽힌 죽음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이것을 ‘사건’으로 처리하려 하지, 고통으로 맞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들에게는 유족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 소리는 그저 의미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 떼 쓰는 것에 불과하다. 고통이 자아내는 비명으로 듣지 않는다. 그 안에 어떤 부정함이 있겠지. 탐욕이 있겠지라며 넘겨 짚는다.

그런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네. 자네들이 한다는 위로는 기껏해야 괴로움을 줄 뿐, 그 헛된 말은 끝도 없는가? 자네들은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말을 하는가? 자네들이 내 처지에 있다면 나도 분명히 자네들과 같은 말을 했을 것일세, 기가 막혀 머리를 저으면서 근사한 말을 늘어놓았을 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격려하는 말을 했을 테지. (16:2-5)

고통을 품평하는 자들은 잔혹하다. 그들은 고통을 덜어내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통에 무게를 재며, 그것의 질과 양을 보고 손가락질 하기 때문이다. 저들의 말에 고통은 배가 된다. 지옥이 있다면 그 어느 구석에 이처럼 남의 고통을 품평하는 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리라.

욥에게는 친구도, 야훼도 기댈 곳이 못 된다. 그가 바라는 것은 또 다른 증인이다. 보증인, 중재자. 이 고통의 심연에 함께 거하며 그 계곡의 음습함에 함께 손을 잡아줄 자. 칼날 같은 말로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며 야훼를 불러세워 심문할 자.

땅이여, 나의 피를 덮지 말아다오. 나의 부르짖는 소리가 쉴 곳을 마련하지 말려무나. 보아라, 지금 나의 증인은 하늘에 있다! 나의 보증인은 저 높은 데 있다. 내가 하느님께 눈물를 쏟을 때 나의 마음을 대변할 자여, 이웃과 이웃의 시비를 가리듯이 사람과 하느님 사이를 판가름하여 다오. 그래 봐야, 몇 해 되지 않아 나는 가버리리라.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길로! (16:18-22)

과연 그 날은 올 것인가? 욥이 바라는 또 다른 재판정은 과연 열릴 수 있을까? 욥의 바람대로 증인, 중재자가 억울함을 풀어내줄 것인가? 모르겠다. 그러나 곧 닥칠, 혹은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닥칠 죽음의 날이 있다. 이 유한한 시간의 끝자락에 대체 무슨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인가? 대체 무슨 말을 더 남길 수 있을까?

《욥기》에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덤이다. 개역판에는 스올로 옮긴 그것. 욥은 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논한다. 따라서 그에게 기쁨과 희망이란 사치이며 자신의 현주소를 배신하는 말일 뿐이다. 이 절멸의 지점. 희망이 함께 갈 수 없는 저 어두컴컴한 심연. 빛을 몰아내는 어둠의 그림자. 욥은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자다. 그러나 끌려가는 자는 아니며, 그렇다고 순응하며 기꺼이 달려가는 자도 아니다. 도리어 그의 발걸음은 멈칫하며 망설인다. 아마도 그것은 그 깊이와 짙은 어둠의 날카로움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지.

나의 생애는 끝났고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실낱 같은 희망마저 끊기었네. 밤은 낮으로 바뀌고 빛이 어둠을 밀어낸다지만, 저승에 집터를 마련하고 어둠 속에 자리를 까는 일밖에 나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구덩이를 향하여 ‘아버지!’하고 구더기를 향하여 ‘어머니!’, ‘누이’하고 부를 몸인데, 희망이 어디 있으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나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갈 수 없는 희망이요, 나와 함께 땅 속에 들어갈 수 없는 기쁨이 아닌가. (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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