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장자’에 대한 짧은 기록

장자는 역사적 인물이다. 물론 이를 증명할 근거보다는 이를 의심할 조건들이 많기는 하다. 의미있는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실려 있다. 참고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제자백가, 좀 더 학술적인 표현을 빌리면 선진先秦 사상을 연구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자료이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거의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아래에 서술할 사마천의 기록은 《장자》에 실린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역사적 장자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사기열전》에 기록된 장자의 모습을 초라하기 그지없다. 일단 실린 자체가 폼이 나지 않는다. 〈노자.한비열전〉에 잠깐 소개된다. 노자와 한비자가 소개되는 틈에 끼어 언급된다는 말이다. 제목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소개되는 신불해를 넣어 〈노.장.한.신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자, 장자, 한비자, 신불해의 열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노자.한비열전〉이다. 장자는 노자의 이야기에 부록으로 등장할 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거리가 생긴다. 노자와 장자가 같이 언급되는 것은 그렇다치자. 어째서 노자와 한비자가 함께 언급되었을까? 노자와 장자는 도가로, 한비자와 신불해는 법가로 유명한 인물아닌가.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도가와 강력한 통제를 지향한 법가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다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사마천과 그의 시대가 이렇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에게 노자와 한비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노자〉를 법가 혹은 병가의 텍스트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에 상당히 동의하는 편이다. 따라서 장자야 말로 사마천의 이 구성에 가장 피해를 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와 얽혀버리는 바람에 한비자나 신불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에 관한 기록은 매우 짧다. 어떻게 짧은가 하면 아래 내용이 전부다. 사마천시대에 장자는 그렇게 주목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김원중 번역을 따라 전문을 아래에 싣는다.

장자莊子는 몽蒙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그는 일찍이 몽지방의 칠원漆園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학문의 요체는 노자의 말에서 시작하여 노자의 학설로 돌아간다. 십여 만 자에 이르는 그의 책은 대부분 우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어부漁夫〉, 〈도척盜跖〉, 〈거협胠篋〉편을 지어서 공자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가르침을 밝혔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 꾸며 낸 이야기이다.

장자는 빼어난 문장으로 세상일과 인간의 마음을 살피고 이에 어울리는 비유를 들어 유가와 묵가를 공격했다. 당대의 학문이 무르익은 위대한 학자들도 장주의 공격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초나라 위왕威王은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많은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 금千金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교제(郊祭: 고대 제왕이 해마다 동짓날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이것이 관련 기록의 전부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장자에 관한 매우 간단한 정보 몇 가지, 《장자》라는 책에 관한 소개, 장자의 행적, 그리고 초위왕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고사가 전부이다.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분량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전부인 것을. 참고로 《장자》에 나오는 장자에 관련된 내용도 그렇게 많지 않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있었고, 제자들이 얼마 있었다는 것. 혜시라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것. 이런 것이 고작이다.

여기에서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장자 사후 수 백년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사마천은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서술을 목적으로 삼는 역사가가 아니다. 게다가 한대 초기라는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원문을 통해 꼼꼼하게 살펴보며 중요한 부분을 짚어가보자.

莊子者,蒙人也,名周。周嘗為蒙漆園吏,與梁惠王、齊宣王同時。

장자에 관한 객관적 정보이다. 몽蒙 출신이었다고 하는데 전국시대 송宋나라 땅으로 추정된다. 펑유란은 그가 송나라 사람이기는 하되 초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름은 주周, 따라서 그의 본명은 장주莊周이다. 자字는 자휴子休였다고 하는데 《사기》에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다. 아마도 후대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는 칠원漆園의 관리였다고 하는데, 옻나무를 생산하는 동산지기, 혹은 옻칠을 하는 관직을 맡았다고 추정한다. 그가 관리 생활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역시 다른 제자백가와 마찬가지로 사士 계층의 인물이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라는 말은 이 둘을 만났던 맹자와 같은 시대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장자와 맹자는 서로에 대해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믾은 해석이 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마 기원전 4세기 중반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는 주周나라의 통치 체제가 거의 완벽하게 무너진 상황이었다. 얼마 전까지 공公이라 불리던 제후들이 왕王을 자청하고 나섰다. 천하는 참혹한 전란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其學無所不闚,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故其著書十餘萬言,大抵率寓言也。

학문을 두루 익혔다는데 이때의 ‘학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사마천이 도가를 종합적인 학파로 분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장자를 도가의 인물로 규정하는 언급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노자가 등장하는데, 장자와 노자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이 바로 사마천이다. 그는 장자의 핵심이 노자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거듭 언급하지만 노자는 신화적인 허구의 존재이며, 《노자》와 《장자》의 내용은 상이하다.

《장자》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기록을 볼 수 있다. 10여 만자의 글이라는 점, 대부분이 우언寓言-우화라는 점. 우화로 쓰였다는 것은 《장자》의 대단히 중요한 특징이다. 모든 내용은 어떤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다. 물론 중간에는 철학적 언술로 보이는 것도 적지 않으나 《장자》 전반을 꿰뚫는 것은 우화의 형식이다. 우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거나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고, 보여준다. 인식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형식 때문이다.

作漁父、盜跖、胠篋,以詆訿孔子之徒,以明老子之術。畏累虛、亢桑子之屬,皆空語無事實。然善屬書離辭,指事類情,用剽剝儒、墨,雖當世宿學不能自解免也。

사마천은 그가 ‘孔子之徒’, 공자의 무리를 공격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학자들 가운데는 공자와 장자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마천은 유가와 도가라는 도식을 이용하여 공자와 장자를 갈라놓지만 이 구분은 재고되야 할 것이다. 사마천은 장자가 공자를 논박하며 반대로 노자의 가르침을 드러냈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발전했다고. 외루허, 항상자는 전해지지 않는다.

其言洸洋自恣以適己,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장자의 특징이 잘 표현되었다. 그는 지나치게 큰 말을 했다. 따라서 그의 말을 광언狂言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광언이란,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그는 당시 사士 계층이 목표로 삼았던 왕공대부와 어울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 자유인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은 왕공대부로 대표되는 사회적 배치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楚威王聞莊周賢,使使厚幣迎之,許以為相。莊周笑謂楚使者曰:「千金,重利;卿相,尊位也。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養食之數歲,衣以文繡,以入大廟。當是之時,雖欲為孤豚,豈可得乎?子亟去,無污我。我寧游戲污瀆之中自快,無為有國者所羈,終身不仕,以快吾志焉。」

초위왕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고사.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장자》에 보인다. 여기서 흥미롭게 보아야 할 것은 관직을 얻어 세상에 나가는 것을 곧 죽음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명예와 이익에 몰두하는 순간 인간은 도구화된다. 그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화려함 대신 그가 추구한 것은 더러움이었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그는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선택하는 것은 오독污瀆, 더러움 속이었다.

사마천은 이곳의 삶을 유희游戲, 자쾌自快로 이야기한다. 즐김과 노님, 이것이 장자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더러움 속의 즐거움과 노닐음이었다는 점이다. 이 더러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깨끗하고 매끈한 세계가 아닌 더러운 세계를 지향했다는 것을. 나는 이것이 장자가 발을 담았던 현실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장자는 현실을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에 신비한 역설을 봐야 한다. 어딘가 다른 세계,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현실위에서 다른 신비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그것.

+ 2017.03.06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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