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늘날 우리가 읽는 《장자》는 총 33편이다.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이다. 이렇게 나눈 것은 위진시대 곽상(?252~312)이라는 인물로 그의 《장자주》는 이후 《장자》의 표준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곽상 이전의 《장자》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뜻이다.

《사기》에 따르면 약 10여만 자의 《장자》가 있었다. 한편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총 52편의 《장자》가 있었다. 곽상은 이 52편, 10여만 자의 《장자》를 33편 약 7만자로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 ‘내/외/잡’으로 분류해 놓았다. 이런 면에서  곽상은 《장자》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장자주》는 아직까지도 번역되지 않았다. 안타까움을 미루고 통행본 《장자》를 가지고 이야기하도록 하자.

내/외/잡으로 나눈 것은 장자의 말에 가깝고 먼 거리를 기준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내편〉은 비교적 장자의 말이 확실한 것을, 〈외편〉은 이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을, 〈잡편〉은 이에 비해 더욱 멀다고 여겨지는 것을 묶어 놓았다. 이 구분에 따르면 〈내편〉 7편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편〉 전체가  ‘장자의 말’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제자서諸子書가 그렇듯 그를 추종한 후학의 편집물로 보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子’라 불리는 책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명확하게 말하면 《장자》의 저자는 장자 본인이 아니다. 그것은 《논어》의 저자가 공자가 아니며, 《맹자》의 저자가 맹자가 아닌 것과 같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장자》에서 장자의 말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제자서와 마찬가지로 《장자》는 장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가르침을 쫓던 무리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되었을 것이다. 짧게는 몇 십년, 길게는 몇 백년에 걸쳐. 결론적으로 《장자》 안에는 시대가 다른, 여러 저자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이런 곤혹스런 사실은 연구자로 하여금 《장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텍스트 안에 ‘장자적’이라고 할만한 부분과 ‘장자학파’ 혹은 나아가 ‘장자의 이름을 빌린 누구’의 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장자의 말’, 혹은 ‘장자의 것’에 가까운 것으로 공인된 〈내편〉에 주목하는 것이다. 내편 7편은 그나마 어느 정도 통일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각 편의 내용과 서술 방식에 이질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33편 가운데 〈내편〉을 시작점으로 삼아도 무방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는 편이다. 〈내편〉 7편을 깊이 이해한 뒤 〈외편〉이나 〈잡편〉에서 이를 심화하거나 보충하는 내용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장자》 전체를 몇 가지 주제로 나누고 여기에서 ‘장자적인 것’, 혹은 ‘장자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을 뽑아 그 부분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더러, 왕왕 텍스트 바깥의 주제들이 《장자》를 이해하는데 끼어들기도 한다. ‘절대적 자유’, ‘만물의 평등’, ‘무위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장자》를 읽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절대적 자유’나 ‘만물의 평등’은 《장자》를 이야기하는 책에서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주제다. 이는 각각 〈소요유〉와 〈제물론〉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내편〉 7편을 하나로 다룬다면 이러한 태도에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뒤에 나오는 〈양생주〉, 〈인간세〉 등은 이와 다른, 때로는 정반대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여기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장자에 투영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언급해두자. ‘무위자연’이라는 주제는 ‘노자’와의 연관성에서, 혹은 ‘도가道家’라는 지평위에서 언급되는 주제다. 그러나 장자는 노자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으며 ‘도가’는 후대의 학자들이 임의로 붙인 호칭에 불과하다. 게다가 노자는 허구적/신화적 인물 아닌가. 〈외/잡〉에서야 노자의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장자와 노자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따라서 〈내편〉에서 시작하자는 것은 기존에 갖고 있던 《장자》에 대한 이미지를 내려놓아 보자는 말이기도 하다. 무수하게 떠도는 《장자》에 대한 말들을 접어두고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 그 이야기를 직접 대면해보자는 뜻이다. 이와 함께 역사적 인물인 장자에 대한 이야기도 괄호쳐야겠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차적 관심사는 ‘《장자》라는 책’이지 ‘장자라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자’라는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으리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장자에 대한 통상적인 이야기를 《장자》를 통해 비판적으로 읽고 장자라는 인물을 흐릿하게나마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적절한 질문은 ‘장자가 무슨 말을 했나’가 아니라, ‘《장자》는 무슨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각 편이 다루는 주제는 상이하며, 이것을 논리적인 말들로 엮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장자》 특유의 문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걸림돌이 된다. 그의 말은 마치 미꾸라지와 같아서 잡았다고 생각하면 도망가고, 어느샌가 사라져버려 찾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종횡무진 전개되는 《장자》의 우화를 읽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아찔함이야 말로 《장자》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견고한 인식을 흔들고, 균열내며, 때로는 깨뜨리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장자》를 읽고 마음이 편해졌다는 사람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은 아무런 질문을 만들지 못했다는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의 답을 찾았다는 말일텐데, 《장자》는 그런 책이 아니다. 답을 주는 친절함 대신, 질문으로 몰고가는 불친절함이 이 책의 본래 모습이다. 그 몰아침은 폭력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어서, 어느 순간에는 마치 벼랑에 선 것과 같은 아찔함으로 몰고간다.

그래서 《장자》를 읽다보면 말을 잃어버린 순간에 이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知者不言 言者不知!! 제대로 아는 자는 말하지 못하고, 말하는 자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장자》가 언어를 거부하고, 앎을 부정한다고 생각하면 성급한 판단이다. 통상적인 앎이 끊어진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또 다른 앎을 얻는다. 그것은 지식이라 부를 수 없는 어떤 통찰이기도 하고, 깨달음이기도 하고, 번뜩이는 순간을 포착한 한 순간의 감각이기도 하다. 한편 이런 것을 만났을 때에 우리는 또 다른 말을 찾아야 한다. 일상의 언어가 아닌, 말이 안 되는 말, 말 같이 않은 어떤 단어, 표현, 문장을 찾아내야 한다. 결국 知者不言 言者不知, 이 말은 다른 앎, 다른 말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자》는 거기가 어딘지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다.

《장자》를 읽는 것은 곤혹스런 경험일 수 밖에 없다. 보통 우리는 ‘읽기’를 어떤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오해한다. 거기에는 ‘기억’과 ‘이해’가 자리잡기 마련이다. 문자에 쓰여진 어떤 내용은 읽기를 통해 기억되고 이해된다. 그러나 《장자》 읽기란 그런 방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기억할것도 없고 이해할 것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에는 어떤 ‘경험’이 있다. 문자로 쓰여진 어떤 이야기가 있고, 이 괴기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선 경험을 전해준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건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앎, 어떤 말이 주어지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경험의 장으로 들어가는 데, 경험의 장을 보다 참되게 만드는 노력이다. 그냥 눈으로 쓰윽 읽어서는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번째, 여러번 읽기. 반복해서 읽을 때 우리는 그 경험의 장을 더 생동감있게 열어볼 수 있다. 둘째, 가능하면 원문으로 읽기. 번역된 《장자》 문장은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을 많이 잃어버렸다. 더구나 특정한 관점, 이해가 삽입되기 마련이다. 셋째, 끈질기게 읽기. 그저 답답함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답답함을 견뎌내지 않으면 그 경험의 장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어디까지 견뎌야 하느냐는 아무도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책은 책장을 덮는 그 순간 그 경지를 선물해준다.

+ 2015.06.20 수정.
+ 2017.03.06 수정. :: 글이 거칠다. 그래도 버릴 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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