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총장 김영길과 국사편찬위원장 유영익 그리고 국부 이승만

총장님 총장님 영길 총장님

우리학교 김영길 총장이 지난 6월18일에 열린 이사회 회의에서 4대 총장으로 재선임됐다. 회의에는 장순흥 이사장 직무대행자(KAIST 교학부총장)를 포함 이사 9명이 참석했으며 선임은 참석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로써 김영길 총장은 2014년 1월 31일까지 총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그러나 교수들은 김영길 총장의 연임이 결정되고 일주일 뒤에 보내진 이메일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윤춘오 법인부처장은 “총장 선임은 이사회의 고유권한이라 교수들에게 따로 알릴 의무가 없다”며 … 현재 우리학교는 이러한 절차들이 없으며 총장 선출을 이사회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기에 비공개적인 총장 선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한동신문 ‘김영길 총장 연임 결의 뒤늦게 밝혀져’ http://www.hgupress.com/142)

20년을 코 앞에 두고 있다. 95년부터니 내년이면 햇수로는 20년이 된다. 그러고 보니 00학번인 나는 입학식 날인가 총장 연임 행사를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10년이 되고 20년이 될 줄은 몰랐다. 10년을 채우고 ‘이제는 그만…’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어느새 쏙 들어가 버리고 3대 총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쯤 되면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이 아니라 김영길 총장의 한동대학교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하긴 그는 20년간 총장’님’이 아니었나.

20년은 길었다. ‘새 총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몇 달 전 한동대학교 총장 초빙 공고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진행은 수월치 않다. 한동신문의 기사를 보면 이사회에서는 새 총장을 찾는데 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학내 구성원의 관심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새 총장을 위한 기대와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영길 총장님’ 말고 ‘새 총장’을 생각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동신문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차기 총장님은?’이라는 제목을 기사를 냈을까. ‘총장님의 대학’ 한동대학이 바라는 건 ‘총장님’이지 ‘새 총장’이 아니다.

‘총장님’과 ‘총장’의 차이는 크다. 입에서 입으로 각인된 이 말은 우리의 상상력을 빼앗는 것은 물론 객관적 평가의 기회도 앗아간다. 어느 누가 감히 ‘총장님’을 평가의 도마에 올릴 수 있겠는가. 지난 20년간 총장의 전횡은 ‘총장님’이라는 껍데기 아래에 고이 숨겨졌다. 안타깝게도 학교에 있을 때보다 졸업 이후, 김영길 총장의 전횡이 더 잘 보인다. 취임 10년이 넘자 독점적 권력을 더 크게 휘두를 수 있게 된 걸까, 아니면 본디 문제란 떨어져 볼 때 더 잘 보이는 걸까.

교수 임용과 승진에 있어 김영길 총장의 권한은 여러 문제를 낳았다. 2010년 벌어진 교수 승진 심사에서는 총장 면담으로 승진이 보류 되기도 했다.(http://www.hgupress.com/2054) 이에 대한 총장 측의 대답은 이렇다. ‘인성, 영성교육 역량과 헌신 부족’. 김영길 총장은 이것이 인사권자로서 총장의 고유 권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영길 총장이 ‘과거 현 정부 비판 발언이나 개인의 이념에 대한 질문’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총장님은 개인 신앙의 헌신도를 판단하시며 정치적 입장의 정결함도 보시는 분이다.

총장님은 알고 계시네!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거짓말 같다고? 믿어라. 정말이다. 바로 이듬해 2011년 벌어진 윤상헌 교수 징계 사건을 보라. 내가 기억하는 사건은 이렇다. 윤상헌 교수가 수업 시간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모 학생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내용을 녹음하여 부모에게 전했다. 부모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총장에게 항의했고 총장은 징계를 내렸다. (http://www.hgupress.com/2443)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김영길 총장은 미래적 혜안이 있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몇 해가 지난 지금 이와 유사한 사건을 신문에서 목도하지 않는가. 바로 얼마 전 경희대 강사 임승수는 불온한 내용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국정원에 신고 당했다. 제보자는 학생. 한편 지난 7월 고려대는 학부모가 학생의 성적을 열람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윤상현 교수가 국정원이 아닌 총장실에 신고된 이유는 ‘총장님의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세속의 법이 통하지 않는. 당시 교무처장인 제양규 교수는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교육시켜달라고 맡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아이’를 보살필 책임 아래 총장은 교수에게 징계를 내렸다. 성적쯤이야 당연히 공개해야 할 것 아닌가? 앞서 가는 대학 한동대학교.

나는 윤상헌 교수 사건을 논하면서 더 이상 “‘대’학생은 없다”고 했다.(http://suyunomo.net/?p=6938) ‘총장님’과 ‘어린아이’들의 알콩달콩한 모임. 이것이 한동대학의 현주소다. 한동대 학생은 김영길 총장을 ‘총장님’으로 신화화-우상화했으며, 김영길 총장은 자신의 권력으로 학생들을 피교육적 대상으로 국한했다. 그렇게 길러진 ‘착한 아해들가 세상에 질주한다’고 김영길 총장은 자랑하고 다녔다. 이 ‘착한 아해’를 쓰담쓰담 할 미담은 안타깝게도 조금 앞선 2009년에 벌어졌다. 노무현 분향소 사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다. ‘총학생회가 특정 교수의 지도 아래 성명서를 내놓았다’는 점. 덕분에 개교 이래 한동대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이어 윤상헌 교수 사건 때엔 일간지 사설에까지 오르는 위업을 이룬다.

 

국부와 총장님의 기묘한 동거

독재獨裁 –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 (표준 국어 대사전)

아니나 다를까 김영길 총장이 종신 권력을 꾀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학교에 오랫동안 몸 담은 교수의 말이니 허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형태야 명예 총장이나 이사장이라지만 그것이 종신 총장과 똑같다는 것을 한동대 관련자라면 누구나 쉽게 안다. 사건은 심각하다. 몇 달 전 신임 총장 임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런 상황이라는 것은 누가 총장이 되건 허수아비나 다름없을 거라는 말이니. 게다가 송성규 교수는 이 글을 공개로 돌렸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것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일까? 사람들은 독재를 과정이나 절차의 문제일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일견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독재란 권력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김영길 총장은 적법한 절차를 걸쳐 4대까지 20년 동안 총장 노릇을 했다. 아마 명예 총장이나 이사장의 자리도 적법한 과정을 걸쳐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송성규 교수의 글에서 볼 수 있듯, ‘총장이 선임한 이사장과 이사들이 자신들을 선임한 총장을 다시 한동대학교의 총장으로 추대하는 형태’가 그 적법함의 실체다. 과거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종신 집권을 노린 박정희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이런 상황에서 유영익 석좌 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치계는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크게 들고 일어날 기세다. 기사를 찾아보면 문제가 되는 대안교과서를 교과서로 쓴 유일한 학교로 한동대학이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유영익 교수가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2008년은 공교롭게도 MB가 집권한 해였다. MB의 집권은 확실히 크나큰 은총이었다. MB 정권 아래 김영길 총장은 2011년 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2010년 ACE(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협의회)의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2013년 그는 재선임 되었다.

이런 면모를 보면 한동대학교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교육 선진화에 손색이 없는 훌륭한 학교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이 손수 골라낸 교과서를 가지고 미리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나. 게다가 김영길 총장은 대학 교육의 다양한 개혁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혹시라도 궁금한 사람은 ‘학부교육선지화선도대학협의회’가 뭐하는 곳인지 찾아보자.(http://www.acec.or.kr/) 덕분에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국제형, 융합형, 창업가형’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http://goo.gl/AAwlZv) ‘총장님의 대학’이 가진 교육 비전은 실제로 다양한 형태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로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학부교육선지화선도대학협의회’의 조직도를 보면 오직 2명의 실명이 거론되는데 회장에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과 사무국장에 ‘한동대학교 방청록 기획처장’이 있다.(http://goo.gl/PWTwmW) 하나 더 첨언하면 20억이 넘는 이 사업기금은 ‘대학의 자체 발전계획에 따라 총장이 리더십을 발휘,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업 추진 가능’하다고 표기되어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다면 꼼꼼하게 이 문단을 다시 읽어보자.

유영익은 이승만을 두고 ‘우매한 백성을 새 국민으로 만들었다’며 그의 치적을 높이 샀다. 그런가 하면 그를 통해 남한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적에 비견된다’고 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구약성경의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임이 틀림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덜컥 겁이 날 정도다. 하느님의 대학을 이룬 ‘김영길 총장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만든 ‘국부 이승만’이 오버랩 되는 건 나의 착각일까?

유영익과 김영길은 사명에 불타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뤄야 한다는 열망 아래 모든 판단을 가두어 버렸다. 하느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나누는 이 유치한 구별을 통해 이들은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아마도 김영길의 치적은 나중에 유영익의 평가와 유사하게 기려지리라. 어린 아해들을 광야에서 이끌어낸, 참된 기독교 대학을 만들어낸, 그래서 모세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임이 틀림없다며.

햇수로 이승만은 13년을, 박정희는 17년 동안 권력을 잡았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를 두고 설왕설래 말이 많다. 편향된 시각이라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들의 집권이 결코 좋은 일이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로지 자신만이 이 나라를 이끌 참된 지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열정은 부패한 권력을 낳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사문화시킨 것은 바로 저 탐욕스런 열정 때문이었다. 이승만 독재에서도 이 헌법 조문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같은 이유로 김영길 총장이 모든 것을 버리고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예 총장이나 이사장과 같은 이름으로 명패를 바꾼 채 ‘총장님’으로 남으려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위대한 령도자’, 오직 한 분 뿐인 ‘수령님’의 나라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의 탐욕스런 열정으로 신앙의 옷을 걸친 채 ‘하느님의 대학’을 운운한들 그것이 하느님의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국부 이승만’에게는 ‘우매한 백성’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총장님의 대학’에 하느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을 리 없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의 복음서 17장, 공동번역)

 

  • 솔바람

    똑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표현으로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통해 그 사람의 심성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한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글에는 무엇을 위한 사랑의 동기가 아닌
    불평과 줄만의 마음 만이 느껴집니다.
    육체의 눈이 나빠지면 의사라도 고치겠지만
    마음의 눈이 잘못된 건….

  • 그렇게 어줍잖은 사랑이란 스스로 잘 챙기세요.
    남을 그저 환자로 만들면서 자위하지 말구요.

  • 그렇게 어줍잖은 사랑이란 스스로 잘 챙기세요.
    남을 그저 환자로 만들면서 자위하지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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