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그린비

장자 세미나에서 «장자»를 일독했다. 아직도 «장자»가 낯설기는 하지만 이제는 «장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책인지 어렴풋이 알 듯하다. 고전을 읽을 때 원문을 읽는 것이 좋기는 하나 문제가 있다면 사유하며 읽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기울여 읽다보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그치기 십상이다. 텍스트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문제화시키기 힘들다. 특히 «장자»처럼 산만한 텍스트는 더욱. 그래서 2차 서적을 읽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책 가운데 하나로 강신주의 이 책을 선택했다.

누가 뭐래도 강신주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문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건드린 부분이 워낙 많아서 그의 전공을 까먹기 쉬운데 그는 장자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장자 전공자인 셈. 따라서 이는 «장자»를 통해 철학자 강신주의 문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소통’이다. 그는 장자를 사회적 규범, 특히 국가를 강하게 비판한 아나키스트 사상가로 본다. 그러면서 장자는 개별적 자유를 추구한 동시에 자유로운 연대를 주장한 사상가라고 주장한다. 그가 «장자»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 라이프니츠, 부르디외 등 서구 철학자들과 장자를 만나게 하는 그의 능력은 탄복할만 하다. 책의 제목으로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라고 했는데, 독자들은 동서를 횡단하며 사유를 펼쳐내는 그의 폭넓음에 즐거움을 누리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즐거움은 반대로 피로감이 되기도 한다. 책 어디선가 그는 ‘현기증’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런 현기증 비슷한 것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횡단은 나에게 즐겁기 보다는 산만하게 느겨졌다.

연구서가 아닌 대중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더라도 텍스트보다 저자의 생각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버렸다는 점은 장점으로 보기에는 무리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장자를 만났다기 보다는 강신주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이 적합하겠다는 거다. 강신주의 생각, 강신주의 장자 독해가 어떤지는 알겠다. 그러나 과연 «장자»를 그렇게 읽어야 하는가는 모르겠다. 이는 내가 «장자»를 읽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의 강렬한 주장이 거북한 탓이기도 하다.

세미나를 하면서 다시 일독할텐데 그때는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다.

덧: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 뒤에 붙은 ‘보론: «장자»읽기의 어려움’이었다. 장자 텍스트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따라서 어떤 기준에 따라 «장자»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보론 ‘노자와 장자가 다른 이유’는 그의 다른 책들에서 많이 나왔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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