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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열전> 및 <장자익서>

일러두기

2.
PDF 인쇄본을 나눕니다. (21.04.02)
00. 장자열전 및 장자익서.pdf
1660.9KB
3.
번역을 위해 붙인 주석 및 글자 풀이는 가독성을 위해 아래 번역문에는 뺐습니다.
장자는 몽蒙 지역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장주는 한때 몽 지역의 옻나무 동산의 관리였다.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학문은 두루 여러 방면을 다루었으나 핵심은 노자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러므로 십여 만 자의 글을 남겼는데 대체로 우화이다. <어부漁父>, <도척盜跖>, <거협胠篋>편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학술을 주장했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따위는 모두 사실과 무관한 헛소리이다.
그는 글과 이야기를 지어 세상일을 논하는 것을 잘 하였다. 이를 가지고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다. 당시 빼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제멋대로여서 제후나 대부에게 등용될 수 없었다.
초위왕이 장주가 빼어난 인물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과 많은 재물을 보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장주가 웃으며 초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귀한 재물을 가져왔고, 높은 재상 자리를 제안하는 구려. 헌데 교제郊祭에 바치는 희생 소를 보지 못했소? 여러 해 동안 잘 먹이고, 비단 옷을 입혀서 태묘로 끌고갑니다. 그때 혼자 나뒹구는 돼지를 바란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나를 더렵히지 말고 썩 꺼지시오. 나는 이 지저분한 곳에서 멋대로 즐기며 살지언정, 나라를 가진 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겠소.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오."
노자는 주나라 말기에 살았는데, 상하편의 책을 지어 도/덕의 뜻을 밝혔다. 관윤자, 양주, 열어구, 항창초, 장자는 모두 그의 제자였다.
제자 가운데 양주만 글이 없었다. <열자>는 진晉 말기에 비로소 유통되었는데, 아마도 훗날 사람이 장자의 글을 모아 보충하여 책으로 엮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사공(사마천)은 열전을 지으면서 열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항창자>는 당唐 왕사원王士源이 지은 것이다. <관윤자>는 매우 허황하다. 아이, 선녀, 주문, 흙인형 따위에 대해 말하는데, 노자의 때에는 이것들이 없었으니, <관윤자> 역시 후세의 도를 안다는 선비들이 관윤자의 이름을 빌려 지은 것으로 진짜가 아니다.
옛날에 전해지던 <장자>는 53편이었는데 지금은 33편이 남아 있다. 외•잡편 가운데는 가짜로 지어낸 것처럼 여겨지는 내용도 있으나 내편은 확실히 장자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글이다. 그러니 노자 제자 가운데 세상에 글로 전해지는 것은 오직 <장자>뿐이다.
앞서 나는 <노자익老子翼> 몇 권을 엮었는데, 다시 <장자의소莊子義疏>를 읽고 뜻에 맞는 것을 뽑아 이 책을 엮어 <장자익>이라 이름을 붙인다.
공자에게 맹자가 있는 것처럼 노자에게는 장자가 있다. 노자와 공자는 같은 시대였고, 장자와 맹자도 같은 시대였다. 공자와 맹자는 노자와 장자를 비판하지 않았으나 세상의 학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소리가 적지 않다. 공자와 맹자가 있음(有)을 중시하고, 노자와 장자가 없음(無)을 중시했다고 하며 어찌 이들 사이에 다름이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아! 공자와 맹자가 없음(無)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 거늘! 없음은 바로 있음에 달려있다. 공자와 맹자는 세속의 널리 알려진 것으로 없음을 설명하였는데, 바로 '일상의 것을 배워 고매한 것을 깨우침(下學而上達)'이 그것이다.
노자와 장자는 당시 공자와 맹자 무리가 있음에 갇혀 깨우치는 자가 적다는 것을 알았다. 없음을 깨우친 뒤에야 있음에 대해 다룰 수 있다고 여겨, 이를 간략한 말로 설명하여 공자와 맹자의 부족한 부분을 돕고자 하였다. 인의예악과 같은 것들은 이미 공자와 맹자가 누차 이야기했거늘 또 쓸데없이 말을 덧붙여 무엇하겠는가. 이것이 노자와 장자의 훌륭한 뜻이니 억지로 고매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형체 앞에 있는 것을 도道, 형체 뒤에 있는 것을 기器라 이른다(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라는 유가(孔孟)의 말에 대해, '도道/기器를 유有/무無라 하고 위아래로 바뀌는 것이 오묘하게 돌아간다'(易道器為有無。轉上下為徼妙。)라고 하는 것은 엉뚱한 풀이에 불과할 것이다.
엉뚱한 풀이라며 노자•장자의 뜻이 공자•맹자의 뜻과 같다는 주장을 비난하며 공격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그들 자신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어찌 노자•장자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는가.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는 배우는 자들이 그 본성에서 어긋나는 것을 걱정하였다. 이에 글을 지어 그들을 깨우쳐 주고자 하였다. 제 본성을 돌아볼 줄 모르며, 같고 다름을 세세히 따지는 것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만력 무자戊子(1588년) 인일人日 (음력 1월 7일)
초횡 약후 쓰다.
장자익서莊子翼敍 [원문]
나는 일찍이 언영鄢郢과 오월吳越의 여러 명승지를 둘러보았다. 그 길에 세속을 떠나 사는 방외거사方外居士를 만났다. 문득 황로黃老의 일을 이야기했는데, 또 그 성품이 <장자>를 읽기를 좋아하였다.
<장자>의 수많은 글은 모두 노자의 허무와 도道/덕德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는 멍하니 이해하는 게 없다. 오래 읽으며 그 뜻을 깊이 음미해보니, 그 뜻이 크고 넓어 종횡무진하며, 변화무쌍하고 미묘하게 통하는 바가 있다. 그 말은 마치 세상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나 '도'를 깊이 체득하고 있다.
나는 장자의 속마음을 생각해보았다. 그는 사람들과 뒤섞여 어지럽게 지내면서도 홀로 자유롭게 노닐며 생사에 연연하지 않았다. 천지와 함께하고 신명과 아울리는 사람이라 하겠다. 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장자>를 읽으면 문득 몸과 정신이 자유로이 날아가고 마음이 넉넉하며 깨끗해진다. 티끌같이 지저분한 것 따위는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까닭에 위진시대의 여러 이름난 선비들은 말이 고아하고 맑으며, 뜻이 넓고 호쾌하였던 것은 모두 <장자>로부터 나왔다. 선도仙道를 닦는 이들의 말과 행동도 반드시 <장자>를 따른다.
예나 지금이나 유가의 가르침을 외치는 자들은 장자의 뜻을 살펴보고는 기이하다고 여기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어찌 세속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는 힘써 이단을 배척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으면서도 한마디도 장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공자가 노자를 존경한 것처럼, 맹자도 장자를 인정하다. 공자와 맹자는 노자와 장자의 주장이 자신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어찌 의심할까.
아! 후세에 장자를 풀이하는 자들이 수십 갈래나 되나 대체로 쓸데없는 것들 뿐이니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더 아리송한 말이 되었도다. 나는 매번 <장자>를 펼칠 때마다 이를 안타까이 여겼다. 지금 초횡약후가 두루 주注와 소疏를 취하고 장자와 합치하는 부분을 뽑아 <장자익>을 지었으니 훗날 <장자>를 읽는 이들은 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함께 적어 서문으로 삼는다.
만력 무자戊子(1588년) 청명일清明日
왕원정 맹기 쓰다.
<장자열전> :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장자열전>이라는 제목의 글은 없다. <사기열전>의 <노자한비열전> 가운데 장자에 관한 부분을 떼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장자에 대한 역사 기록을 먼저 소개하고자 <장자익>의 부록에 실린 것을 맨 앞에 옮겨두었다. (*)
<장자익서> : 초횡의 서문이다. <장자익>에는 초횡의 서문과 왕원정의 서문 두 개가 실려 있다. 초횡이 엮고 왕원정이 간행했다. (*)
莊子列傳 [번역문]
莊子翼敍 [번역문]
莊子翼敍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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