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장 및 풀이는 박성규의 [논어집주] 참고
2-17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야! 네게 앎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 그것이 앎이다.”
5-7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 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가 말하였다.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나려 한다. 나를 따를 자는 아마 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는 용기를 좋아함이 나를 능가하지만 분별력이 없다.”
5-8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맹무백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는 어진 사람입니까?” “모르겠습니다.” 그가 재차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는 천승의 제후국의 병권을 맡길 만합니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습니다.” “염구는 어떻습니까?” “염구는 천 가구의 고을이나 백승(대부)의 가家에서 읍재를 시킬 수 있습니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서화는 어떻습니까?” “공서화는 관복을 입고 조정에 서서 외교사절을 응대하게 할 만합니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습니다.”
5-14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는 어떤 가르침을 듣고 아직 실천하지 못할 경우, 다시 새로운 가르침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5-26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안연과 자로가 모시고 있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각자 너희의 뜻을 말해 보지 않겠는가?”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나 말, 좋은 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망가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를 뽐내지 않고자 합니다.”
6-8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何有 曰 賜也可使從政也與 曰 賜也達 於從政何有 曰 求也可使從政也與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자로는 결단력이 있으니, 정치를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자공은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자공은 사리에 밝으니, 정치를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염유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염유는 재능이 많으니, 정치를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6-28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가 남자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가 맹서하며 말하였다. “내가 잘못했다면, 하늘이 버릴 것이다! 하늘이 버릴 것이다!”
7-11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공자가 안연에게 말하였다. “등용되면 도를 실천하고, 버려지면 도를 잘 갈무리할 사람은 나와 너뿐이다!”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동원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호랑이를 맨손으로 치고 황하를 걸어서 건너며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함께하지 않는다. 반드시 사태에 임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좋은 대책을 세워 성사시킬 사람과 함께한다.”
7-19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너는 왜 ‘그 사람은 발분망식하고, 즐거움으로 근심도 잊어, 장차 늙음이 다가오는 줄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7-35
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子曰 丘之禱久矣
공자가 병을 앓았다. 자로가 기도를 청하자, 공자가 물었다. “그런 도리가 있는가?” “예,에 ‘그대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린다’ 하였습니다.”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이미 오래되었다.”
9-12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공자가 병이 나자, 자로가 문인을 가신으로 삼았다. 병이 좀 낫자, 공자가 말하였다. “오래구나! 자로의 거짓 꾸밈이, 가신이 없어야 하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가 누구를 속이랴? 하늘을 속이랴? 또 내가 가신의 손에 죽을 바에야, 차라리 너희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 내가 성대한 장례는 못할지언정, 길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9-26
子曰 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 而不恥者 其由也與 不忮不求 何用不臧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臧
공자가 말하였다. “허름한 솜옷을 입고, 화려한 가죽옷을 입은 권력자와 나란히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에 ‘시기하지 않고 탐욕부리지 않으면, 어찌 선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리하여 자로가 그 구절을 종신토록 외웠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런 도리가 어찌 선한(좋은) 것일 수 있겠는가?”
10-27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새는 기미를 느끼면 곧 날아올라, 빙빙 돌아본 뒤 다시 앉는다. 공자가 말하였다. “산골짜기 다리의 까투리가 때를 만났구나! 때를 만났구나! 이에 자로가 잡아다 바쳤으나, 공자는 세 번 냄새만 맡고 일어났다.”
11-2 / 11-3
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를 진, 채에서 따랐던 이들이 지금은 다 문하에 있지 않구나.”
德行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덕행은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언어는 재아, 자공이, 정치는 염유, 자로가, 문학은 자유, 자하가 뛰어났다.
11-12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귀신은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사람도 섬길 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랴?”
11-13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
민자건이 곁에서 모실 때는 온화하였다. 자로는 깐깐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강직하였다. 공자가 즐거워하였다. “자로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 같다.”
11-15
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공자가 “자로의 거문고를 어찌 나의 교실에서 울리는가?”라고 말하자, 문인들이 자로를 무시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는 대청에 올랐다. 안방에만 들지 못하였다.”
11-17
柴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
자고는 우직하고, 증삼은 우둔하고, 자장은 편벽되고, 자로는 거칠다.
11-22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도리를) 들으면(깨달으면) 곧 행합니까?” “부모 형제가 계신데, 어찌 들으면 곧 행한단 말인가?” 염유가 공자께 물었다. “들으면 곧 행합니까?” “들으면 곧 행하라.” 이에 공서화가 공자께 물었다. “자로가 ‘들으면 곧 행합니까?’라고 묻자 ‘부모 형제가 계신다’고 대답하셨고, 염유가 ‘들으면 곧 행합니까?’라고 묻자, ‘들으면 곧 행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감히 그 까닭을 묻습니다.” “염유는 소극적이어서 분발시켰고, 자로는 압도적이어서 억제시켰다.”
11-23
季子然問 仲由冉求 可謂大臣與 子曰 吾以子爲異之問 曾由與求之問 所謂大臣者 以道事君 不可則止 今由與求 可謂具臣矣 曰 然則從之者與 子曰 弑父與君 亦不從也
계자연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와 염유는 대신大臣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대가 색다른 질문을 할 줄 알았습니다. 겨우 자로와 염유에 대한 질문입니까? 이른바 대신이란 원칙에 따라 임금을 섬기고, 그럴 수 없으면 그만둡니다. 자로와 염유는 구신具臣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추종하는 사람입니까?” “아버지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은 추종하지 않습니다.”
11-25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然後爲學 子曰 是故 惡夫佞者
자로가 자고를 비읍의 읍재로 삼자,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남의 자식 망치는구나!”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습니다. 꼭 책을 읽어야만 학문입니까?” “그래서 나는 저 말재주(변명)를 미워한다.”
11-26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 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求 爾何如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赤 爾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點 爾何如 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嘆曰 吾與點也 三子者出 曾晳後 曾晳 曰 夫三子者之言 何如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曰 夫子何哂由也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 唯求則非邦也與 安見方六七十 如五六十 而非邦也者 唯赤則非邦也與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모시고 앉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너희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뿐이다. 나를 어려워하지 마라.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들 말하는데, 만약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하였다. “천승의 나라가 대국 사이에서 협박을 당하고, 군대의 침략을 받고, 기근으로 시달립니다. 제가 다스리면 삼 년 안에 백성이 용기를 가지며, 또 의로운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가 빙그레 웃었다. “염유, 너는 어떤가?” “사방 육칠십 리 또는 오육십 리의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삼 년 안에 백성을 풍족하게 하겠습니다. 예악에 관련된 일은 군자에게 맡기겠습니다.” “공서화, 너는 어떤가?” “잘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배우고 싶습니다. 종묘의 일과 회동에서 의관을 차려입고, 작은 보필자 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증점, 너는 어떤가?” 증점은 거문고를 멈추고, ‘둥’하고 퉁기더니, 거문고를 놓고 일어나 대답하였다. “세 사람의 선택과는 다릅니다.” “무슨 상관인가? 각기 자기 뜻을 말하는 것뿐이다.” “늦봄 봄옷을 갖춰 입고, 어른 대여섯과 아이들 예닐곱과 합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가 크게 탄식하고 말하였다. “나는 증점을 인정한다!” 세 사람이 나가고, 증석이 뒤에 남았다. 증석이 물었다. “저 세 사람의 말은 어떻습니까?” “각기 자기 뜻을 말했을 뿐이다.” “선생님은 왜 자로의 말에 웃으셨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예로써 하는 것인데, 그 말에 겸양이 없었기 때문에 웃었다.” “염유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 아닙니까?” “어찌 사방 육칠십리나 오륙십 리를 나라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공서화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 아닙니까?” “종묘의 회동의 일이 제후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서화의 일을 작다고 하면, 누구의 일을 크다고 하겠는가?”
12-12
子曰 片言 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공자가 말하였다. “반 마디 말로 송사를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한 일은 하루도 지체하지 않았다.
13-1
子路問政 子曰 先之 勞之 請益 曰 無倦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선수범하고, 몸소 수고하라.” “더 말해주십시오.” “나태함이 없어야 한다.”
13-3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 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면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역시 그러시군요. 선생님은 답답하십니다. 하필 이름을 바로잡으십니까?” “너는 너무 모른다!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가만히 있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말)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고, 예약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다.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주장을 했으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기주장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13-28
子路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子曰 切切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切切偲偲 兄弟怡怡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간곡, 면밀하고 세심히 권면하며 온화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사이는 주도면밀하고 세심히 권면하며, 형제 사이는 온화하다.”
14-12
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성인成人(된 사람)이 무엇입니까?” “장문중의 지혜, 맹공작의 청렴, 변장자의 용기, 염구의 기예를 갖추고, 예악으로써 다듬으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요즘의 ‘성인’이 하필 그럴 필요 있을까? 이익을 마주하면 의리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마주하면 목숨을 바치고, 오랜 곤궁에도 평소의 다짐을 잊지 않으면 또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14-16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자로가 공자께 말하였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따라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어질지 못한 것이지요?”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노력 덕분이었다. 어질다고 할 수 있다. 어질다고 할 수 있다!”
14-22
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임금은 어떻게 섬깁니까?” “속이지 말고 면전에서 비판하라.”
14-36
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 其如命何
공백료가 계손에게 자로를 참소하였다. 그 사실을 자복경백이 공자에게 아뢰면서 말하였다. “계손은 참으로 공백료의 말에 생각이 미혹되었습니다. 내 힘으로도 공백료쯤은 시장이나 조정에 찢어 놓을 수 있습니다.” “도가 실현되는 것도 운명이고, 도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공백료 따위가 운명을 어찌하겠느냐!”
14-38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가 석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신문이 자로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오?” “공孔 선생님 문하입니다.” “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려는 사람 말이군요.”
14-42
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어떻게 해야 군자입니까?” “경으로써 자신을 닦아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다 됩니까?”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케 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다 됩니까?”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케 해야 한다.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은 요순임금도 근심하였다.”
15-2
在陳絶量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진나라에 있을 때 식량이 떨어졌다. 따르는 이들이 병이 나, 아무도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가 화난 얼굴로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군자가 이처럼 곤궁해도 됩니까?” “군자는 원래 곤궁하다. 소인은 곤궁해지면 흐트러진다.”
15-4
子曰 由 知德者 鮮矣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야, 덕을 알아주는 이가 거의 없구나!”
16-1
季氏將伐顓臾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 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冉有曰 今夫顓臾 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爲子孫憂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欲之 而必爲之辭 丘也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故 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墻之內也
계씨가 전유를 치려 하자, 염유와 자로가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계씨가 전유에서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염유야, 네 잘못이 아니냐?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았고, 또한 우리나라 안에 있다. 이는 사직(공실)의 신하이다. 어찌 정벌한단 말인가?” “계씨가 원하는 일이지, 저희 두 신하는 원하지 않습니다.” “염유야! 주임이 말하기를, ‘능력을 다해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잘하지 못하면 그만두라’ 하였다. 위태로운데도 붙들어주지 못하고, 넘어지는 데도 부축하지 못하면, 그런 보좌관을 장차 어디에다 쓰겠느냐? 또 네 말도 잘못이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거북 껍질과 보옥이 궤 안에서 망가졌다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17-5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공산불요가 비읍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다. 자로가 화난 얼굴로 말하였다.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두시지, 하필 공산씨 같은 자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나를 부른 사람이라면 어찌 공연히 그랬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동쪽에 주나라의 도를 부흥시킬 것이다.”
17-7
佛肹召 子欲往 子路曰 昔者 由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肹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子曰 然 有是言也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필힐이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다. 자로가 말하였다.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몸소 앞장서서 악을 행한 자에게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필힐이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켰거늘, 선생님께서 가려고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물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갈아도 닳지 않음이 견고함 아니겠는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음이 흼 아니겠는가? 내 어찌 그저 매달려만 있고 아무도 따먹히지 않는 박과 같을 수 있겠는가?”
17-8
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對曰 未也 居 吾語女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공자가 자로에게 물었다. “너는 6언(주장), 6폐(폐단)를 아느냐?” “아직 모릅니다.”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인仁을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다. 지혜를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방종이다. 믿음을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해침이다. 정직을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각박함이다. 용기를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난동이다. 강직을 좋아하고 학문을 멀리하면, 그 폐단은 조급함이다.”
17-23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자로가 말하였다. “군자도 용기를 숭상합니까?” “군자는 늘 의로움을 중시한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둑이 된다.”
18-6
長沮桀溺 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 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 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其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 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장저와 걸익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공자의 일행이 그 옆을 지나게 되었다. 공자가 자로를 시켜 나루터를 물었다. 자로가 다가가자 장저가 되물었다. “수레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요?” “공구孔丘이십니다.” “노나라의 공구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루터를 잘 알 텐데.” 자로가 다시 걸익에게 나루터를 물었다. 걸익이 되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자로라고 합니다.” “아, 노나라 공구의 제자 말인가?” “그렇습니다.” “도도한 흙탕물이 바로 천하의 형국일진대, 누구와 더불어 개혁할 수 있겠는가? 또 자네도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를 바에야, 세상을 피한 선비를 따르지 그래?” 그러고는 흙덮기만 계속하였다. 자로가 돌아가 공자께 고하니, 공자가 한숨 쉬며 말하였다. “새나 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사람 무리와 어울리지 않으면, 누구와 어울리랴? 세상에 도가 서 있다면, 내가 굳이 바꾸려 하겠는가?”
18-7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子路拱而立 止子路宿 殺鷄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 뒤쳐져 노인을 만났다. 지팡이로 삼태기를 걸쳐 메고 있었다. 자로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혹시 우리 스승님을 못 보셨습니까?” “손가락 하나 꿈쩍이지 않고, 오곡도 분간 못하면서, 누구를 스승이라 하는가?” 그리고는 지팡이를 땅에 꽂고 김을 매기 시작하였다. 자로가 두 손을 맞잡고 공손히 서 있었다. 노인이 자로를 자기 집에 묵게 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고, 두 아들을 인사시켰다. 다음날 자로가 길을 떠나 공자께 아뢰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은자로구나!” 자로에게 다시 찾아보게 하였다. 자로가 가니 노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義가 아니다. 장유의 예절도 폐할 수 없거늘, 군신의 의를 어떻게 폐하겠는가? 자기 한 몸만 깨끗이 하려고 대륜大倫을 어지럽히겠는가? 군자가 벼슬함은 자신의 의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아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