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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타래: 공자와 논어 세미나

‘공자와 논어 세미나 시즌 3 – 인간 공자를 찾아서’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책을 읽었고, 앞으로 어떤 책을 읽을 예정인지 한번 정리해본다. 작년 7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6개월이 훌쩍 넘었구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올해 내내 세미나를 진행해야 할 듯. 지금까지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을 한번 정리해 보자.

 

시즌 1 – 포스트 경학 시대의 고전 읽기 (2011년 7월 11일 ~ 9월 26일)

본래는 그저 ‘고전집중 세미나’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애초에는 [논어]만 계속 팔 생각은 없었으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포스트 경학 시대의 고전 읽기’라는 제목은 이후에 붙인 것인데, 링크한 글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읽은 책 종류는 하나, 도올의 [논어 한글 역주] 그러나 분량이 분량인지라 3개월이나 걸렸다.

[논어 한글 역주], 김용옥, 통나무, 2008

시즌 1에는 번역서로 [논어]를 일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많은 [논어] 번역서 가운데 하필이면 도올의 책을 골랐느냐고. 실제로 도올의 책을 골랐다고 했을 때, 어떤 분은 도올 같은 사람의 책을 읽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도올과 같은 사기꾼, 혹은 깊이가 없는 사람의 책을 읽을 필요가 뭐냐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 남회근의 책은 어떠냐고 물어…)

도올에 대한 일반적인 지적, 너무 대중적이라거나 깊이가 없다는 등의 말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도올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대중적인 동시에 독특한 문체와 강한 주장을 숨기지 않는 학자이기도 하다. 한편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성실하게 다양한 자료를 읽는 것은 물론 최근의 연구 성과까지 반영하려 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도올이라면 박학博學이 떠오른다. 심문審問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논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번역서에서는 볼 수 없는 비평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텍스트 비평이 성서의 그것을 빌려온 바람에 아직 정확히 체계화 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따라서 원전을 읽지 않는 이상 번역서 가운데 [논어]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가능한 책이 도올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 책을 꼽았다.

 

시즌 2 – 공자와 그의 제자들 (2011년 10월 ~ 11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제목도 나중에 붙인 제목이다. 본래는 기획 세미나로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예상보다 사람이 너무 모이지 않아;; 결국 일반 세미나로 전환하게 되었다. 나름 고난의 행군이었다고나 할까? 근데 뭐, 그런게 어제 오늘 일인감? 내가 하는 세미나에 사람들이 많이 온 게 언제라고… ㅠ

세미나 형태가 달라진 만큼 목표도 수정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후 시즌 3에 읽을 텍스트가 본래는 여기에 함께 엮여 있었다. 일단은 공자와 제자들에 대해 언급한 1차 텍스트를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보았자 얼마 되지 않는데, [춘추]나 공자와 제자들을 등장시킨 [장자]나 [묵자]를 읽을 것이 아니면 꼴랑 [사기]의 [공자세가], [중니제자열전]과 [공자가어]만 읽으면 된다. 이 중에 [공자가어]만 분량이 조금 되고 나머지는 단숨에 읽을 정도로 짧은 분량.

[사기세가], 김원중 역, 민음사 2010 / [사기열전], 김원중 역, 민음사, 2007

 

사마천의 [사기]의 경우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보지는 못했으나 최근 번역본이 낫겠다 싶어 민음사판 김원중의 번역을 골랐다. 물론 이 두권의 무지막지한 책을 읽은건 아니고 [사기세가]에선 [공자세가]를 [사기열전]에선 [중니제자열전]을 뽑아 읽었다. 예문서원에서 [공자세가]와 [중니제자열전]을 묶어 책으로 내긴 했으나(링크) 그냥 [사기] 번역본에서 뽑아 읽었다. 뒤에 소개할 크릴은 사마천의 텍스트를 읽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으나, 어쩌겠는가 여기서 공자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시작하는 걸.

[공자가어], 이민수 역, 을유문화사, 2003

품절이다. 하는 수 없이 제본을 했다. [공자가어]를 검색해보면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3권짜리가 있기는 하다. 아마도 원문까지 포함하고 역주를 단 책인가 본데, 너무 비싸서(각 13,000원) 못보고 그냥 예전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봤다. 보통 공자에 대해 공부할 경우 이 [공자가어]를 빼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거의 명백한 위서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공자가어]를 씹어 놓아서 읽지도 말아야할 텍스트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혹자는 이 [공자가어]의 일부가 [예기]보다 이전에, [공자세가]보다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인지는 모르나, [공자세가]와 비교해서 읽어보면 특히 앞부분에서 사마천이 이 [공자가어]를 참고했으리라 추측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텍스트가 완성된 시기는 아마도 한대漢代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읽을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대에 사람들이 이해한 공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공자에 대한 이야기들의 근원이 이 텍스트인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공자가문 3대 이혼설)

덧: 나중에 이런 식으로 세미나를 기획한다면 아래 책들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은 자료인데 이 책들을 읽었다면 더 흥미로운 세미나였을 듯. [신간소왕사기]는 한대 금문학파의 공자관을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고, [공자 성적도]는 공자의 삶을 그림책으로 구성한 책이다.

  

 

시즌 3 – 인간 공자를 찾아서 (2011년 12월 ~ 2012년 2월)

현재 진행중. 공자라는 인물을 다룬 연구서를 읽는 것이 목표다. 제목으로 잡은 것처럼 역사를 산 한 인간의 모습으로 공자를 만나보고자 했다. 그러니까 성인 공자가 아니라, 인간 공자를! 처음으로 읽은 책은 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 그 다음으로는 핑가레트의 [공자의 철학], 카이즈카 시게키의 [공자의 생애와 사상], 시라카와 시즈카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를 일을 계획. 애초 계획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서구 학자 둘, 일본 학자 둘을 읽게 되었다.

[공자, 인간과 신화], H.G. 크릴, 이성규 역, 지식산업사, 1997 

대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책. 공자에 대해 다룬 책 가운데 매우 뛰어난 역작이다. 공자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할 만큼 좋은 책이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그렇다고 녹녹한 책도 아니다. 공자의 다양한 면모를 여러 키워드로 분석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아마도 교육가와 개혁가로서의 모습에 치중되어 있다. 교육-학문을 통한 개혁을 공자가 구상했고 그것이 이후 과거제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저자는 과거제야 말로 민주주의적 제도라고 평가한다. 엘리트이기는 하나 일반 백성들이 누구나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벼운 논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지만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아쉬운 점은 크릴의 다른 저작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책들에 언급되는 것을 보니 크릴의 ‘Confucius and the Chinese Way’도 꽤 훌륭한 저작으로 보이는데… 번역하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없다면, 내가… 응..?!

[공자의 철학:서양에서 바라본 예에 대한 새로운 이해], 허버트 핑가레트, 송영배 역, 서광사, 1991

이 책은 현재 구할 수 없다. 품절이라… 핑가레트는 예禮를 [논어]의 중심 주제로 보고, 이 ‘예’야 말로 공자가 주장한 인간됨-인仁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주장한다. 책을 읽으며 핑가레트의 탁월한 통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었던 ‘예’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기 때문이었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서구 학자라고 이른바 ‘동양철학’에 무식하다 생각하면 큰 코 닥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무식할지니!

철학, 그것도 언어 철학을 전공한 학자라 그런지 이해가 쉽지는 않다. 철학적 개념들을 경유해야 그의 논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이 바닥에서는 낯선 방법이다. 주석을 경유하지 않고 [논어] 원문을 파고들며 분석하는 그의 방법은 흥미롭다. 그렇기에 역자 송영배가 언급했듯 그의 한계도 매우 분명한데, 역사적인 배경이나 당대의 구체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기에 평가하긴 이르나 미덕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듯. 덧붙여 치밀하나 분량이 짧다는 것도 미덕이라면 미덕.(!?)

[공자의 생애와 사상], 카이즈카 시게키, 서광사, 1991년

이 책도 절판. 그러고보니 핑가레트의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 서광사는 뭐하나!? 이런 좋은 책을 더 찍어내지 않고… 버럭! 아직 읽지 않았으니 패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 시라카와 시즈카, 정원철 옮김, 한길사, 2004년

원제는 공자전孔子傳(1991). 간결한 제목은 본래 고수들만 붙일 수 있는 법이다. 일찍이 전목錢穆 선생도 동일한 제목의 책을 냈으니… 국내에 번역될 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는 긴 제목으로 바뀌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는데, 기존의 공자 해석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공자라는 인물을 분석하는 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텍스트로만 파고들던 이전의 연구방법과는 다르게 민속학적(맞나?)인 접근을 펼친다. 그의 다른 저서 [주술의 사상]에서 시라카와 시즈카가 가진 독특한 지반을 볼 수 있어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공자는 다 거짓인 게야?’라는 도발적인 질문이 들게 만든 책!!

덧: 공자의 삶을 다룬 책은 상당히 많다. [공자 최후의 20년]을 비롯해서 [공자 평전]이라는 제목의 책이 2권이나 있고, 게다가 김학주가 쓴 [공자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도 나름 참고해 볼만한 책

시즌 4 – [논어], 찢어보고 뒤집어 보기 (2011년 3월 ~ 2011년 6월??)

‘고증학자의 눈으로 본 [논어]‘라고 세미나 이름을 붙였다가 바꿨다. 뒤에 다산의 [논어고금주],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을 읽을 예정이니 다른 이름이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술을 전면에 내새우자면 ‘고증학’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뭔가 고증학에 대해 더 배워야 할 거 같은 의무감이…(그럴 여유는 아직 없다!!)

일단 시즌 4의 목표는 [논어]라는 텍스트 자체를 분석해보자는 것. 최근에 나온 리링의 [논어 세번 찟다]와 최술의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이 주요 텍스트가 되겠다. 김영호의 논문집 [논어의 주석과 해석학]은 양념 정도. 텍스트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 아는 바로는 [논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도와주는 책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이 정도를 소화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테니 이 정도로 만족. 부족한 부분은 논문으로 보충할 수는 있겠는데 [최술]에 관한 논문이 몇편 있는 상황이고, 내가 궁금해마지 않는 유보남의 [논어정의]에 관한 논문은… 못찾겠다 꾀꼬리!!

시즌 5 – 실학과 고학의 새로운 [논어] 이해 (2012년 7월? ~)

목표는 다산의 [논어고금주]와 오규소라이의 [논어징]을 읽는 것. 다산의 [논어고금주]의 경우 최근 2010년에 출간된 번역본의 경우 총 5권에 20만원이다!!(더구나 할인도 안 된다!! ㅠ) 어쩔 수 없이 도서관에서 가끔 들춰보기로 하고 예전에 여강출판사에서 나온 [여유당전서] 가운데 일부를 뽑아 제본하기로 하자.

다산의 [논어고금주]는 일독했으나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아주 기대되는 중. 이토 진사이의 [논어고의]가 번역되었다면 좋겠지만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어디선가 번역한다는 소문을 들은 거 같은데… 구할 수만 있다면 잽사게 구해 봐야겠다. [논어고금주] 3권, [논어징] 3권, 총 6권을 읽는 것이니 6개월이 모자르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이렇게 1년이 가겠구나..

북타래: [근사록] 번역서

일단 짤방부터… 왼쪽엔 하루 종일 문자 노동에 지친 나를 위한 나름의 선물! 오른쪽에 보이는 [근사록] 4종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써볼까 한다.

이렇게 [근사록]에 대한 책을 한꺼번에 모은 이유는 연구실에 가져다 놓았던 책을 이사 때문에 빼야하던 차에 일단 한동안 안볼 예정인 [근사록]이 일차로 걸렸다. 그러고보니 올해 [근사록]을 엄청 공부했잖아! 전문은 아니지만 약 80% [근사록]을 강독하기도 했고, 게다가 루니에서 [전습록]과 함께 강의하기도 했으니…

일단 [근사록]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면 남송 시대의 주희와 여조겸이 북송시대 4명의 학자의 글을 오은 책이다.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이 네 명의 글을 모았다. 송대 학술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학자인지 알 것이다. 이들의 글을, 그것도 정수만 모았으니 [근사록]이 어느 정도 수준의 책인지 짐작할만 하다.

참, 주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이기도 하다. [사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물론 [사서]는 중요하다. 허나 본문보다는 주석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이 [근사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주자-주희께서 [사서]로 가는 사다리라고 말씀하셨단 말씀, 그리고 [사서]는 [육경]으로 가는 사다리라고 했지 아마? 그러니까 [사서]를 읽기 전에 이 [근사록] 부터 읽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 [사서]를 읽고 [근사록]을 읽는게 낫다. 왜냐구? 기본적으로 [사서]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었던 과거 사람에게나 [근사록]이 [사서]보다 쉽지, 오늘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근사록]이 [사서]보다 더 어렵다.

어쨌든 일단 성리학이건, 주자학이건, 유학이건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근사록]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은 꼭 독서목록에 올려두기를. 물론 이거 읽고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장재의 [정몽], 주돈이의 [통서]를 읽어보면 더 좋고… 근데, 내 경험으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더라. (워낙 옛날에 읽어서 그런가?) 일단 [근사록]만 충실히 읽어도 성리학의 중요한 문건은 대충 섭렵한다 보아도 될 정도. 강조는 이 정도로 해두고 리뷰 시-자악!


일단은 교수신문에서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힌 [근사록집해]. 엄밀히 말하면 이건 [근사록] 번역이 아니라 [근사록]에 주를 붙인 [근사록집해]의 번역본이다. [근사록]원문은 물론 주석까지 번역했다는 데서 높은 점수를 줄만한 책이다. 그런데 두 권이라는 부피에서 볼 수 있듯, 읽기엔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여러번 [근사록]을 읽었지만 완독했다고 말하기엔 부끄럽게 다 읽지는 못했다. 필요할 때 주석을 참고하기에 보기에 좋은 책.

쓸데 없는 말을 덧붙이면, 주석을 단 사람이 ‘엽채’인지 ‘섭채’인지를 두고 여전히 말이 오고가고 있는 책.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서점 관련자의 말을 들으니 재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니 공부할 사람은 사두도록 하자. 그런데… 책 값이… ㅠㅠ

 


찾아보면 명문당에서 나온 [신완역 근사록]이 두 권이 있다. 신기하게도 모두 2004년에 나온 책인데, 하나는 파란색, 성원경의 번역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김학주의 번역이다. 김학주 선생은 엄청난 양의 번역서를 내고 있는 학자이다. 뭐 거의 손 대지 않은 게 없다고 할 정도. 그런데 (이런말 하는 것이 좀 웃기나) 전공이 중문과이기 때문인지 번역에 있어서 사유의 독창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달까? 부정적인 의미에서 충실한 번역이라고 평가할만한 책들을 많이 내고 있다. 그나마 나름 장점을 이야기하면 문법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꼭 넣는다는 점. 특히 [근사록]이 송대 책인 바람에 문법적으로 고문과 차이나는 부분이 많은데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다음으로는 이기동의 번역. 이기동은 한국에서 몇 안되는 고전 번역본을 많이 내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강설 시리즈로 유명하니.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이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도올을 깠기 때문. 민족주의적인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바람에 나에겐 별로. 비록 지금은 품절이나 그나마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원문이 없다는 점. 원문이 없는 번역본은 어쨌거나 읽힐 수 있는 번역을 추구하기 때문에 주목할만한 번역을 내놓곤한다. 한편 번역의 질을 차치하더라도 한문에 두려움이 있는 독자에게 매력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다. 그래서 나도 청소년들과 [근사록]을 공부할 때 이 책을 참고하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쓸데 없이 해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점.

 


헉! 어느덧 마지막 책이다. 역시나 품절인 책이다. 2004년에 나왔는데 벌써 품절이라니. 나중에 [근사록]을 직접 강독하면서 원문과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본 결과 오역(?!)이 많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도 처음 [근사록]을 공부하면서 읽은 책이니 일단 간단히 소개 해둔다. 이범학은 역사학 전공인데 어째 이 책을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중역티가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왕 언급한 김에 번역서가 아닌 다른 책을 하나 소개하도록 하자. 풀빛에서 나온 청소년을 위한 책. 워낙 척박한 [근사록] 바닥이라 번역서도 구하기 힘든데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니 반갑기만 하다. 그…러나. 구입해놓고는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다는… ^^;;;;

북타래: [논어] 번역서

* ‘북타래’를 열어본다. 이름은 그냥 정한 거구, 책 모음 리스트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포스트는 시간 나는대로 갱신되기 마련이다. 잠깐 머리를 식히는 틈에…

 


읽기 편한 단 한권의 [논어]를 꼽는다면 바로 이 책을 꼽지 않을까? 미야자키 이치사다 선생의 역작. 일단 읽을 수 있는 번역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한국적인 정서에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적 전통의 관점에서 볼 때 말도 안되는 해석이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저자의 탁월함이, 치밀한 고민이 보이는 부분이다. 할배들이야 이런 번역본을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꽤나 만족했다.

 


최근에는 한문이 실리지 않은, 따로 해설과 주석이 붙지 않은 [논어] 책도 간간히 보인다. 아무래도 [논어]가 읽기 힘든 것은 주석과 해설이 함께 실리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사실 원문은 양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데, 주석을 붙이고 거기에 해설을 덧붙이나보니 분량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논어] 자체가 서사성이 결여된 텍스트다 보니 그렇게 두꺼워진 번역본은 읽기가 참 힘들다. 나름 무난한 책. 저자 대신 ‘공자의 문도들’을 엮은이로 표기한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렇게하지 않고 저자를 공자로 하는 책도 많거든. 우리 뻥치지는 말자. (‘[성서], 하느님 지음’하면 얼마나 웃기냐?)

 


최근에 나온 가장 주목할만한 번역. 박성규 선생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상하권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철학사] 역자라고 하니 좀 들어본 사람은 대단한 역작을 번역한 사람이군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중국철학사]를 읽어보면 그게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자료 모음집 같은 부분이 있기에 현대 중국어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문, 그것도 춘추시대부터 청대까지 문헌을 일부라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

박성규 선생니 [논어] 번역본을 낸다는 소식은 이전부터 들었는데 올해에나 나왔다. 그것도 무려 ‘주자와 제자들의 토론’이라는 무시무시한 부제를 달고. 이게 왜 무시무시하냐면 아직 국내에 완역되지 않은 [주자어류]에서 [논어]의 해당 부분과 관련된 문장을 번역해서 실었기 때문이다. 좀 아는 사람이 보면 ㅎㄷㄷ하게 여길만한 업적. 번역본 만으로도 하얗게 세어버릴듯한 포쓰.

미안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 어떻게 평가하지는 못하겠다. 여튼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책.

 


도올의 책. 말도 많고 논란도 많은 책이다. 그러나 여러 번역본 가운데 하나로 놓을 만큼 훌륭한 저작이라고 평가할만한 책이다. 물론 앞에 써 넣은 ‘인류문명전관’이라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서론격 글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국내 학자들은 싫어할 사람이 많아 보이는데, 일단은 도올 자체가 학계와 거리가 있는 사람인데다 일본 학자들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읽을 것이 많다는 점, 참고할 문헌들 꼼꼼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다른 저작에도 보이는 도올의 약점이 이곳에서도 보이지만 그래도 완역했다는 점에서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올이 마침표를 내지 못한 책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만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너무 분량이 많다는 점과, 판형을 너무 크게 찍어낸 터라 부피는 물론이거니와 책값도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110909: 오늘은 여기까지. 성백효 선생 책과 신정근의 번역 등등이 언급되어야 하겠지만 일단 패스!

[마르지] 너와 공유하는 나의 과거

프레시안에서 만화 [마르지]에 대한 서평을 읽었다. (들어 봤니? 공산주의 사회의 ‘소녀 시대’!) 이미 제목은 이곳저곳에서 접했는데 서평을 읽어보니 읽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친다.

마르지는 눈이 크고 빼빼 말랐으며, 늘 토끼 인형을 안고 잠들며 엄마보단 아빠를 더 사랑하는 소녀다. 걸핏하면 눈물짓는 여린 성격이지만, 남자아이들처럼 뛰어 놀기를 더 좋아한다. 마르지의 주된 놀이터는 자기가 사는 HLM(서민용 임대 아파트)의 층계참으로, 여기서 이웃집 친구들과 엘리베이터를 위로 올라가도록 버튼만 누른다거나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 놓고 도망치는 등 짓궂은 장난을 친다. HLM의 풍경은 한국의 80년대 시영아파트처럼 삭막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마냥 밝고 정겹다.

마르지네 엄마는 유제품 가게 계산대에서, 아빠는 공장에서 일한다. 마르지는 삼촌이나 아빠가 미국에 가 있어서(이는 한국의 6~70년대 월남 갔다 온 삼촌, 중동에서 일하는 아빠와 비슷한 의미라 한다) 초콜릿 같은 좋은 물건을 가져다주는 집이나, 바비 인형을 가진 ‘고시아’네처럼 잘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 마르지는 새 것을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엄마로부터 “우리는 넉넉하지 못하잖니” 소리를 듣는 게 슬프고 지겹지만, “아빠가 미국에 가는 건 싫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설사 살림이 넉넉하더라도 물건을 사기 위한 ‘줄 서기’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 앞서 인용한 농담에서 알 수 있듯 기다림은 힘겹고 지루하며, 때때로 분노를 촉발시킨다. 일곱 살 난 마르지 역시 엄마가 “가게에 설탕이 들어왔대”라고 외치면 바로 튀어 일어나 세수만 하고 급히 길을 나서야 한다. 한 사람에 1킬로씩만 받을 수 있는 설탕 줄, 아빠를 앞에 두고 선 마르지는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 나오는 허연 김을 바라보며, “뭐라도 살 게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구름 모양 같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먹일 작은 먹을거리를. 이 나라에서 사는 불편함을 누그러뜨리고 잊게 할 설탕이라도 말이다.”

불편한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르지 가족은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기름 배급표론 한 달에 세 번 10리터씩밖에 주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르지는 표 가져오는 것을 깜빡한 바람에 어떻게 기름을 좀 살 수 없겠냐고 통사정을 하게 된 아빠에게, 주유소 직원이 “자기 가족만 생각하고 나라와 다른 사람을 생각은 안 하는 거짓말쟁이, 도둑” 취급을 하는 걸 본다.

들어 봤니? 공산주의 사회의 ‘소녀 시대’! – 안은별

서평을 읽고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은 바로 [페르세폴리스]였다. [마르지]가 폴란드 소년의 삶을 보여줬다면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에서 출생하고, 유럽에서 자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여주기 때문이었다. 이와 동시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떠올랐다. 폴란드 출신 유태인 아버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만화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세밀하고도 묵직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청소년들과 함께 몇 권의 만화를 읽고 이질적 공간에서의 삶을 생각해보는 수업을 기획한 적이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만화로는 무엇이 있을까. 언뜻 생각나는 것은 없으나 옆에 낄 수 있다면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자전적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면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삶을 만화로 담은 박건웅의 [나는 공산주의자다]가 있기는 한데 뭔가 좀 끼워넣기엔 어색하다. 만화로서의 재미가 떨어져서일까?

[마르지]는 총 4권인데 아직 2권까지 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림을 보아하니 딱 읽고 싶게 생겼다. 1980년대 공산권 폴란드를 살아간 한 소녀의 이야기. 물론 그것은 그 소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폴란드인의 과거도 아닐 것이고. 뭔가 나의 과거와 공유하는 무엇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읽을 거리

 

이 책 재미있어 보인다 –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백소영.엄기호 외 지음/이파르

잉여와 잉여짓, 청(소)년의 고통과 저항은?

지구화 시대 공공성의 위기로 청(소)년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고통과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청(소)년은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자, 곧 잉여가 되고 있다. 또한 잉여로 전락하지 않은 청(소)년들도 그들의 많은 행동들이 잉여짓으로 분류되는 고강도 규율 아래 놓여 있다.

자원화될 수 없는, 쓸데없는 짓으로 낙인찍힌 행동들을 해서는 안 되는, 오직 스펙 쌓기 머신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 그들의 고통과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제1부는 이러한 청(소)년의 고통을 다룬다. 청(소)년의 자기 진술을 듣고, 그 배후를 추론하여, 지구화 시대의 공공성의 위기의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 이것이 제1부의 목적이다.

제2부와 3부는 청(소)년의 저항을 다룬다. 제2부에서 다루고자 하는 저항은 잉여짓을 적극적으로 재전유하는 청(소)년의 창조적인 행위들에 관한 것이다.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재전유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체제의 질서로부터 탈주를 감행한다. 제2부는 그러한 탈주, 탈주체화의 기록들이다.

제3부는 그러한 저항을 제도화하는 시도들을 다룬다. 즉 재주체화의 기록들이다. 그 과정은 때로는 기성의 제도를 개혁하는 실천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성 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제3부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저항의 양면을 점검해보는 글들을 모았다.

: 책 소개글에서..

책 소개를 간단히 읽어보니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기획인데, 하나는 청(소)년이라는 잉여.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공성에 대한 문제이다. 과연 이 둘을 어떻게 연관짓고 풀어낼지 관심이 많다.

특히 ‘잉여’를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자… 좀 있으면 ‘잉여론’이라는 책도 나오려나??

밑줄긋기_ [순수이성비판]

순수이성비판 1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아카넷

169쪽: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설령 대단히 칭송되고 애호되던 망상이 소실된다 해도 말이다.

172쪽: 쉽게 만드는 것은 언제든 호감이 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목적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173쪽: … ‘많은 책은 그렇게나 분명하게 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분명하게 되었을 터인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성을 돕는 수단들은 비록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흔히 전체적으로는 이해를 산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독자가 충분히 빨리 전체의 개관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고, 그것들의 갖가지 밝은 색칠로써 체계의 분절 내지는 골격을 붙여 매우고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니 말이다. 체계의 분절 내지 골격이야말로 그것의 통일성과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칸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원 첫 학기 때였다. ‘철학’을 한다면 칸트를 봐야한다는 의무감(?)에 칸트 수업을 들었건만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학기 수업의 태반을 «순수이성비판»의 앞 부분을 보는 데 들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수업 시간이면 여지 없이 엄청나게 졸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칸트를 읽는다. 천천히 읽지만 여전히 문장은 뻑뻑하며, 내용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책장은 넘어가는 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낯설다. 이럴 때면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머리와 서양 고전을 공부하는 머리는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그러고보면 중국어로 칸트의 저작을 소개한 모종삼은 얼마나 대단한 이란 말이냐~!

머릿말과 서문을 읽는 데만 많은 공력을 들였다. 머릿말에서 가장 눈에 가는 문장은 바로 저 문장들이다. 하나는 철학의 의무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쉬운 책에 대한 비판.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을 제거하는 일이라는 칸트의 말은 철학에 대해 적어도 조금 호감을 갖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망상과 오해를 제거하라. 물론 그것이 언어적인 차원에서만 제기된다면 그리 매력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쉬운 글이란 언제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쉽다는 자체가 오히려 오해를 낳거나 적어도 산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칸트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말로 치장된 책은 읽기가 싫다. 눈이 피로하기 때문이며, 생각이 번잡해지기 때문이다.

밑줄긋기_ [논어한글역주 1권]

40쪽: 우리는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나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의 언어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학강의를 하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의 언어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보편언어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이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칸트의 구성설적 세계관의 핵심은 물론 시대정신이 다르다 할지라도 반구대의 예술가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전달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제 아무리 [존재와 시간](Sein and Zeit)의 독일어 어휘의 조어방식이 현란하다 할지라도 하이데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실존의 본래적 자아의 회복의 테제는 아프리카의 부쉬맨들에게도 전달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보편철하그이 자격이 없는 것이다.

보편 언어와 보편 철학에 대한 도올의 주장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보편 철학을 위해서는 또다른 언어가, 또다른 지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이란 보편성 위에서 철학이라는 것도 성립된 것이 아니겠는가.

87쪽: 여기 우리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로 읽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누가]나 [마태]의 기자들이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건을 기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내면적 논리와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89쪽: 사마천의 [공자세가]는 이미 그것이 세가(世家)로 편입되었다는 사태가 이미 명백한 어떤 케리그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공자가 “지성至聖”이심을 선포하기 위하여 그것을 집필한 것이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료가 된 많은 공자에 관한 기술의 파편들(fragments)이 모두 일정한 목적을 지니고 공자제자의 집단들에 의하여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것도 역시 공자 사후의 초기 교단(敎團, 가르침을 신봉하는 집단)의 케리그마적 성격에서 파생된 것이다.

케리그마를 여기서 써먹다니!!! 사마천의 [사기]가 뛰어난 저작임은 분명하지만 도올의 지적처럼 그것은 어떤 특정한 의도 속에서 편집된 것이다. 과연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94쪽: 맹자에게는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의 공자가 없다. 인의(仁義)라는 도덕적 사상의 주체로서 추상화 되어있고 논리화 되어있고 형해와 되어있다. 마치 사도 바울에게 역사적 예수의 상이 없는 것과도 같다. 예수는 오직 부활이라는 자신의 케리그마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념덩어리일 뿐이다. 맹자에게도 공자는 삶의 예지의 역사적 전승이 아닌, 맹자 자신의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주는 이념일 뿐이다. 맹자의 이러한 추상적·이념적 공자상은 증자에게서 받은 것이다. 증자는 공자의 14년 유랑장정의 고난길에 참여한적이 없는 후기의 어린 제자이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맹자의 공자는 생동감이 없다. 바울의 예수는? 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가? 복음서는 땡기지만 어릴적 그토록 많이 읽었던 로마서 따위의 서신서는 이제 흥미가 없다.

127쪽: 오늘날 발달된 문자학의 연구는 “성聖”이라는 글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요소는 귀(耳)라는 부수에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 이 모두 소리(聲)를 귀(耳)로 듣는다(聽)는 뜻이다. 여기서 “소리”란 곳 “신의 소리”다. 성(聖)이란 곧 “신의 소리를 들음”이다. 성인(聖人)이란 곧 신탁의 소리를 듣는 “무당”이란 뜻인 것이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논의를 많이 참고한 듯. ‘뭐야?! 공자가 무당 출신이라고!?’라고 호들갑 떠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법하다. 그러나 도올의 견해처럼 그런 종교적, 심미적 삶의 토대가 공자를 [논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박이문의 [논어의 논리]는 참… ‘철학’의 시선이 어떻게 망쳐놓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59쪽: 공자는 사(士)로 살고 사로 죽었다. …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사실은 어폐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라는 개념의 모든 속성을 최초로 구현한 자가 바로 공자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삶으로써 사를 규정해야지, 사로써 공자의 삶을 규정할 수 없다. 공자에게서 최초로 “성聖”의 새로운 의미맥락이 생겨났다면, 마찬가지로 “사士”도 공자에게 이르러서 새로운 의미맥락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평유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늘 물음표 속에 있는 것이 과연 사士와 유儒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일단은 [논어]에서 두 개념의 차이를 찾아봐야할 듯.

[일곱 가지 밤], 청소년을 위한 고전의 좋은 예

일곱 가지 밤
이옥 지음, 서정오 옮김, 이부록 그림, 안대회 해설/알마

청소년들을 위한 고전 수업을 계획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적당한 책을 고르는 일이다. 책이 없어서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점에 가보면 청소년을 위한 고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책이 너무 쉽다는 데 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수준을 낮추는 방법을 택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쉬운 고전’을 읽어서는 도무지 고전을 ‘읽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기 쉽다. 도리어 차라리 읽지 않는 것이 나은 경우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쉽게 쓴다는 핑계로 내용을 대폭 삭제해버리기거나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대치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대충의 줄거리에 대한 이해만 남는다. 그것도 왜곡된. 비유하자면 영화 예고편만으로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착각한다고나 할까. 아예 노골적으로 간단한 줄거리만 정리해놓은 책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쉬운 책 대신 친절한 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고전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되 읽기 좋게 번역한 책이어야 한다. 고전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엄숙한 티를 내는 책도 문제기는 하다. 읽을 수 없는 언어, 번역투의 문장으로 가득한 책은 당연히 제외해야 한다. 덧붙여 내용을 아무리 잘 옮긴 책이라 하더라도 편집 상태가 엉망이라면 선뜻 고르기 어렵다. 책이란 물질적인 텍스트인 만큼 디자인이나 구성도 꽤 중요하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편집이나 디자인에서 좋은 책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래도 최근에는 청소년이 읽기에도 적당한 ‘좋은 고전 번역서’가 많이 나오고 있다. 서점을 배회하다 보면 가끔 저절로 읽고 싶게 만드는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의 반가움이란. <일곱 가지 밤> 역시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보배 같은 책이다. 내용, 구성,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든다.

<일곱 가지 밤>은 조선 후기 문인인 이옥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옥은 주로 정조 시대에 활동했다. 뒤에 붙은 안대회 선생의 글에서 볼수 있듯 그는 ‘글쟁이’이라는 호칭이 진정으로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쓰는 문장 때문에 정조에게 꾸짖음을 들은 것은 물론 성균관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을까. 게다가 과거 시험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정조는 글이란 모름지기 세상의 이치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옥은 그 ‘이치’를 담아내기는커녕 화려한 기교에 시시콜콜한 소재들로 글을 쓰고 있으니, 정조의 눈 밖에 난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엔 지방으로 쫓겨나 내려가 병사 노릇까지 하게 된다. 한마디로 임금님에게 크게 찍힌 셈.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관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말년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 삶을 마감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썼기에 그런 것일까? 그가 글감으로 삼은 소재만 보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일곱 가지 밤>에는 여러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傳’이라는 형식으로 쓰인 이 글들은 다양한 인물의 삶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소리꾼. 어찌나 노래를 잘 불렀는지 사람들이 ‘귀뚜라미’라고 불렀을 정도란다. 요즘으로 치면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옥은 이 사람을 글감으로 삼아 한편의 멋진 글을 만들었다.

이어서 나오는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점입가경이다. 귀신을 내쫓은 나머지 귀신을 대신해서 제사를 받았다는 최 생원의 이야기부터, 사기꾼으로 여러 사람을 골탕먹인 이홍, 게다가 과거 시험지를 대신 써줘서 호강을 누린 류광억까지. 신비한 호랑이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흔히 고전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사기꾼에 글장수라니!

바로 이것이 이옥의 재주이다. 낯선 이들을 글로 초대하는 것. 훌륭한 선비를 칭송하는 글만이 아니라, 교훈으로 가득 찬 꼰대 같은 글이 아니라 제각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옥의 글이 가진 매력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살았던 시대도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글 읽는 선비와 땅을 일구는 농사꾼만 있었던 게 아니라 다채로운 삶이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날과 별 차이 없는 동시대성을 확인하는 일. 이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의 이야기가 그저 과거에 머물러있는 이야기일 뿐이라면 고전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와 무관한 과거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일 뿐이다. 똑같은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의 다른 측면들을 슬쩍슬쩍 엿볼 수 있게 된다.

글감을 선택하는 이옥의 재주도 재주지만, 옛 한문으로 된 이옥의 글을 오늘 말로 옮겨낸 서정오 선생의 솜씨도 돋보인다. 마치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것 마냥 그의 문체는 살아 있다. 그의 글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입으로 읽어야 제맛이 나는 글이다. 이 책을 손에 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깨칠 수 있다.

잘 다듬은 손길 때문인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귀한 책이 되었다.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중고생은 물론 어른까지, 여러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해주었는데 모두 만족스럽단다. 좋은 책, 좋은 고전이란 나이를 뛰어넘어 읽히는 책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예쁘게 책을 만들어 놓은 편집자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보기 좋은 책이 읽기도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에 들어간 적절한 삽화는 읽는 내내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절한 도움을 주었다. 청소년들에게는 책의 크기, 자간, 삽화까지도 좋은 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책이란 모름지기 활자들의 조합만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중학생 청소년들과 함께 고전을 읽는 수업을 새로 시작했다. 첫 번째 책으로 이 <일곱 가지 밤>을 꼽아보았다. 결과는 역시 대만족. 혹시 고전하면 딱딱하고 어려운 책만 떠오른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멋진 이옥의 문장과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참!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꼭 소리내어 읽어보자. 문장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 2010년 11월 22일 일부 수정

2008년 4월 도서 구입 목록

주자학과 양명학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까치글방

시마다 겐지의 역작. 오래전에 나온 책임에도 꽤 훌륭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후배 학자인 미조구찌 유조 등에 의해 그의 이론이 이미 비판받았음에도 그 가치는 여전하다. 특히 양명학을 주자학에서 나타나는 내면화 과정의 결과로 보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주자학과 양명학이라는 대립 구도를 전제하고 있지만 그 연속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주역 왕필주
왕필 지음, 임채우 옮김/길

국내에 출간된 유일한 주역 왕필주. 번역이 더 매끄러웠으면 하지만 아쉬운 대로 읽을 수밖에 없다. 역자 임채우는 주역 이외에도 노자 왕필주를 번역하기도 했다. 전공자의 평에 따르면 노자주보다는 주역주가 낫다는 평. 주역을 공부하겠다고 구입했는데 양이 많아서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주역에 관해 많이 배웠다. 더 싼 가격에, 가볍게 나올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고전들은 다 같이 두껍고 무겁기만 한지…

2008년 1월 도서 구입 목록

근사록집해 1
주희. 여조겸 편저, 엽채 집해, 이광호 역주/아카넷
근사록집해 2
주희. 여조겸 편저, 엽채 집해, 이광호 역주/아카넷

국내에 나온 『근사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구입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주석이 달려 있는 터라 워낙 방대한 분량이어서 다 읽지는 못했다. 가끔 궁금할 때 찾아서 참고하는 정도?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함께 『근사록』을 잘 공부했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국내에 출판된 유일한 『근사록집해』로 알고 있다. 다만, ‘엽채’가 집해한(주석을 모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葉’자는 성씨로 쓸 때는 ‘섭’으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일부 문헌에서는 ‘섭채’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성씨 엽’이라고 뜻과 음을 달기도 한다.)

정몽
장재 지음, 장윤수 엮음/책세상

책세상에서 나온 고전 번역본은 참 높게 평가하고 싶다. 물론 어떤 저작들은 일부만 번역해 놓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을 그나마 읽기 쉽게 내놓았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괜히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읽을 수 없도록 번역해 놓은 책보다는 낫지 않은가?(물론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원문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긴 하다.) 장재는 송대 학자들 가운데 아주 독특한 사상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뛰어난 학자의 저서 번역이 아직도 초보 단계라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중국사상사 세미나를 위해 구입한 책.

다산과 대산 연천의 경학논쟁
정약용 외 지음/한길사

다산경학세미나에서 공부하려고 구입. 사람들은 다산 정약용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에 다산 관련 저작들을 부지런히 읽고 있고 벌써 꽤나 많은 다산의 글을 읽었지만 읽을수록 다산에 대한 기존 견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산이 당대 여러 학자와 논쟁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읽어보면 논쟁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주변 지식인과 간단히 교류한 서신들을 엮어 ‘논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버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사상사에 남을만한 ‘논쟁’이라면 번쩍거리는 진검 승부여야 하는데 그런 날카로움도 없다. 연구자가 아니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책.

다산과 석천의 경학논쟁
정약용 외 지음/한길사

마찬가지. 비싸기만 하고… 책 표지도 멋 없고…

송학의 형성과 전개
고지마 쓰요시 지음, 신현승 옮김/논형

중국사상사 세미나에서 읽기 위해 구입. 매우 훌륭한 저작이다. 일본의 중국 사상사 연구자들을 보면 그동안 축적된 선배 학자들의 연구가 얼마나 큰 토대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시마다 겐지, 미조구찌 유조와 같은 선배 학자들이 있기에 고지마 쓰요시와 같은 뛰어난 학자가 나올 수 있었으리라. 중국 사상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개념이나 문헌 연구에 치우치지 않고 시대적 배경에서 사상사의 변천을 주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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