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 Z씨 에필로그

2008년 ~

벌써 10년이다. 2008년 뜨거운 여름 밤, 광장에서 겪은 수 많은 일 가운데 K와의 만남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몰랐다. 그것이 악연의 시작일 줄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에스더 구국기도 모임과 연관된 사람이더라. 그뿐인가. 이승만을 국부라 칭송하는 유영익과도 친했고, 조선일보 조갑제와의 안면이 있었다. 훗날 그가 학내 대자보를 찢고,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을 비난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날 대응이 좀 달랐을까?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하면 대체 무엇을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20년 조금 넘는 모교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설사 그가 모교의 교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다를 게 있을까? 이명박 장로를 따라 함께 보수화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모교는 4대강을 찬양하고, 종북몰이를 하고, 나아가 보수 정권을 옹호하고 그랬겠지.

K교수 사건이 학내는 물론 언론에까지 모교의 이름을 오르락내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큰 일일까 싶기도 하다. 그저 속내를 조금 일찍 내비쳤을 뿐 아닐까. K교수는 한동의 예외적 인물이 아니라 그 본성을 가감없이 내보였을 뿐이다.

돌아보면 학내에 그렇게 외쳐졌던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구호는 정확히 김영삼 시절의 세계화를 떠오르게 한다. 세계를 바꾸겠다는 그 긍정의 힘은 김대중, 노무현 시절 ‘네가 원하는 것을 해봐’라는 잠언과 닮았다. 총장님 하며 모세를 추종하듯 따르며, 교수를 아버지처럼 좇는 학우들의 모습은 늘 목자가 그리운 한국 교회를 닮았다. 그래서 일까? 신임 총장 인선 과정은 새 목자 대신 세습 목자를 끌어들이는 교회를 떠오르게 한다. 총장직은 세습이 불가능하니 내정된 이사 가운데 하나를 세웠다.

숱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던 그 때, 대통령님을 배출한 포항 구석에 있다는 이유로 모교는 환한 시절을 겪었다. 그런데 이제 정권이 바뀌고 그늘질 조짐이 보이자 척후병의 기세가 다시 드날린다. 먼저 나서서 이 황량한 땅에 깃발을 드날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마 그것이 반동성애건 뭐건 하는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이 무더운 여름. 방학을 맞아 고요한 모교에 궁금한 것은 그 조급한 발걸음이 또 어디로 향할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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