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시대,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할 이유

1년간 진행했던 장자 강독 세미나가 끝났다. 매주 조금씩 읽었더니 13개월만에 내편을 다 완독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분간 세미나를 쉬기로 했다. 일단 돈 되는 일을 먼저 하기로…

장자 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읽은 글을 아래 붙인다.


근본 없는 시대,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할 이유

근대와 전통이라는 낡은 구도에서 접근할 때 유가儒家는 비합리적인 사유의 대표가 된다. 도가道家는 차라리 신비한 부분이라도 있지. 그러나 근대와 전통이라는 구도에서 벗어나 유가를 본다면 평가가 좀 달라질 것이다. 유가는 인간의 실제적 관계, 사회적 규범을 다루는 사유이다. 그런 구체적인 토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대단히 합리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는 유가야 말로 신성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를 연 사유로 평가하기도 한다. 왜 중국에는 신화나 전설이 서구보다 적은가?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주목할 것을 주문하였기에 인간들의 이야기 – 역사(史)가 신화나 전설의 자리를 대신했다.

역사는 표폄褒貶이라는 춘추대의春秋大義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시공간, 여기서 하늘은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맡는다. 유가가 그토록 본말本末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근본이 있으면 말단은 저절로 따라온다. ‘本立而道生’, ‘도道’라는 세계에 대한 규범 역시 마찬가지이다. 촘촘하게 짜인 이 세계는 인간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 다만 유가는 그 역량이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뿌리에서 가지를 거쳐 모든 잎까지. 그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당대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돌아다니던 이들이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없다. 장자에게는 유가에서 보이는 그런 합리적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는 세계의 맨 얼굴을 심연으로 그려낸다. 설사 이 세계의 얼굴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세계의 맨 얼굴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눈코귀 등이 없는 혼돈의 얼굴! 이 혼돈의 시공간에 유가식의 규범적 사유가 끼어들리 만무하다. 도리어 장자는 유가식의 접근에 딴죽을 건다. 정말 그런가? 어찌하여 그런지 알겠으며, 어찌하여 그렇지 않은지 않겠는가?

이러한 차이는 세계와 시대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출발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문화기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본말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유가는 수목적 사유에 익숙하다. 비록 맹자가 농가학파를 비판했으며, 공자가 오곡도 분간 못하는 사람이라지만 유가는 논밭 옆에서 사유를 진행했다. 유가 문헌에서 나타나는 농사꾼의 이야기들을 기억하자. 이들은 콩 심은데 콩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뿌린 대로 거두며, 땀을 흘리면 땅은 그만큼 보상을 해준다. 개발開發 가능한 무한한 땅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충忠-성誠과 같은 유가의 핵심 덕목은 이런 비옥한 땅위에 서있다.

그러나 장자는 농사에 관심 없다. 도리어 그는 강과 바다에 친숙하다. 잔잔한 물결 위에 너그러움과 한가함이 한없이 깃들지만 언제 저 얼굴이 돌변할지 모른다. <추수>에서 보여주듯 빗물이 모여 강물이 불어나면 그 횡포란 뭇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바다는 어떤가? 어촌에 사는 이들은 바다가 결코 너그럽지 못한 공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침에 잔잔하다가도 저녁에 매서운 파도가 몰아치는 곳이 바다이다.

장자에 나오는 어부를 기억하자. 어부는 일하는 만큼 거두는 직업이 아니다. 물론 그물질을 해야 물고기를 얻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성실해보았자 의미가 없다. 어부는 농경사회 이전 수렵사회와 닮아 있다. 언제 대어를 낚을지 모르는 일이며, 설사 대어를 낚았다 하더라도 이를 처분하기 힘들 때도 많다. 곡식 낱알은 저장이 가능하지만 잡아놓은 고기는 저장이 쉽지 않다. 오늘은 배부르지만 내일은 굶주릴 수 있다.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도.

변화 가득한 세계 속에 길러지는 감각은 전혀 다르다. 예민 할 것. 유가는 우직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에는 그런 게 없다. 왜냐하면 쌓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천변만화하는 세계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된다는 매뉴얼을 만들기도 힘들다. 다만 ‘지금-여기’에 직면한 문제에 예리하게 대응할 것. 사냥꾼에게 기민함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한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장자의 유명한 <소요유>는 드넓은 대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땅은 내 두 손으로 개척 가능한 곳이 아니다. 문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비옥한 대지라기보다는 황량하며 드넓은 광야에 까깝다. 이 넓고 커다란 땅위에는 논밭은커녕 길조차 없다. 지도로 그려지지 않는 땅. 방향조차 잡기 힘든 거대하고도 드넓은 세계. 장자에게 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대지 위에 살아가는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은 씨를 뿌릴 곳도 아니며, 우리를 압도하는 커다란 공간도 아니다. 대도시의 삶은 늘 이리저리 부유한다. 좁고 좁은 골목을 오가며. 그렇기에 우리는 유가가 말한 일상의 힘도 매일 쌓아가는 우직한 삶의 윤리도 체득하기 힘들지만, 장자가 말하는 광활한 세계도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거꾸로 세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면 유가식의 세계, 근본으로 짜인 시공간보다는 장자식의 세계, 맨몸으로 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험난한 공간에 가깝다. 비록 수풀은 없으나 도시의 삶은 정글의 삶과 비슷하다. 더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슴에 들어앉은 ‘각자도생’이라는 삶의 현실은, 미래를 위해 삶을 일구어갈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오늘 우리는 살아 내야 한다. 오늘 하루도. 그리고 내일도.

‘비정규직’이라는 기묘한 단어를 보라. ‘비정규’라는 말에는 일시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만 거꾸로 그 일시성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 삶의 현실 아닌가. 우리 모두는 일시적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임시적 일상성. 당연히 이런 사회에서는 일상이 지속 가능한, 서사가 남아 있는 세계가 요구하는 우직함이라는 덕목이 깃들기 힘들다. 무엇인가를 지속한다는 것은 그저 말 그대로 어리석고 아둔한 일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아마 프리랜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명의 고독한 사냥꾼을 만나게 되지 않을지. 한편 우리는 생존왕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보험광고는 무엇을 말하는지, 더불어 서바이벌이라는 장르가 주는 쾌감은 어디서 연유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민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근대는 어떤 형태로건 사람들에게 지도를 한 장씩 쥐어주었다. 이렇게 살면 멋진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함께 나아가자 말한다. 새사람, 새마을, 새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청사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우리가 여기서 멈춘 것이 문제라 말하고, 누구는 우리가 가진 청사진이 잘못되었다 말한다. 어쨌든 우리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어떤 사람은 손에 지도를 쥐었던 게 잘못이라 말할 것이다. 지도를 쥐고 나아간다 생각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결코 나아간 게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청사진도 진보도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가 길을 잃은 것만은 분명하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낡은 노래 가사처럼 어딘가 내던져진 삶이다.

누군가 묻는다 지도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대지보다 지도가 먼저 있지 않았다. 누군가 묻는다 목적 없이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삶보다 목적이 먼저 있지 않았다. 길 없는 길을 걷는 법, 아득한 세계를 탐사하는 법, 알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법 장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본이 사라진 시대다.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우선인지 헷갈린다. 과거의 지식은 끊임없이 용도폐기당하고 있다. 미래는 말 그대로 미-래, 현재로부터 이어진 시공간이 아니라 무엇이 도래할지 모르는 미지의 시공간이다. 근본이 사라졌다는 말은 근-뿌리와 본-가지 사이에 거대한 단절이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무수한 현재와 아득한 미-래 이 광막한 시공간을 살아낼 지혜가 필요하다. 일찍이 날개 없이 나는 법, 발 없이 걷는 법, 무지로 아는 법을 이야기했던 장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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