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독재자 2

승전보를 전한다. 독재자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 저항하던 힘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독재자는 오늘 밥그릇을 찬탈하고야 말았다. 물론 이는 지존의 권력을 손에 쥔 대장님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재자는 화를 내었지만 대장님은 쿨하게 말씀하셨다. “먹지 마. 가서 씻고 자.”

승리의 기쁨을 곱씹으며 독재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싱크대 앞에 섰다. 성찰을 즐겨하는 독재자는 설거지를 하며 곱씹었다. 대체 무엇이 발단이었을까? 발단 이전에 심오한 질문 하나가 떠 올랐다.

밥 먹으라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하지 않으며 어찌 그리 화가 나는 것일까? 변기 커버를 젖혀 놓은 것보다. 양말을 뒤집어 놓은 것보다, 밥 먹으라 부르는 소리에 답하지 않는 않은 것이 그토록 큰 분노를 불러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단기 스트레스로는 최고를 찍는 듯.

여튼 저녁 식탁을 되짚어 본 결과, 시작은 무거운 장바구니에서 시작하였다. 우유와 계란, 그리고 된장찌개 거리를 사 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애호박 하나와 두부 한 모를 샀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겁다. 팔에 두꺼운 책을 끼고, 장바구니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계란판을 들었다.

낑낑대며 집에 왔는데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밥을 차려야 한다. 저녁 시간이 늦었다. 밥상 차리는 것도 바쁜데, 장본 걸 정리하기는커녕 우유 뚜껑을 열어 마시는 것이 문제다. 그래, 이때부터 심사가 뒤틀렸을 테다.

된장찌개를 끓이기에 앞서 멸치를 볶는다. 기름 없이 멸치를 볶으면 감칠맛이 더하다. 푹 파인 프라이팬에 멸치를 던져놓고 장 봐온 것들을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미션이 하나 더 늘었다. 숙주나물을 발견한 것. 늘 그렇듯 숙주는 빨리 먹는 게 좋다. 좋다 숙주나물도 하자.

대장님께 여쭈었다. 숙주를 데칠갑쇼? 아니면 볶을갑쇼? 네 좋을 대로 하거라. 아무래도 볶은 게 좋다. 서걱서걱 씹는 맛도 있고. 쇠고기가 조금 있으면 좋겠지만 냉동실에는 얼려둔 국거리 돼지고기뿐이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참치와 볶는 거다!

참치 기름에 마늘과 파로 향을 내고, 좀 볶아졌다 싶었을 때 참치를 넣었다. 참치를 넣고 좀 볶다 숙주 투하! 살짝 간장으로 간하면 끝이다. 팬을 잘 돌려주며 고루 익히게 하면 끝. 옆에서는 멸치 국물을 내는 중이다. 볶아진 멸치에 물을 부어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사실 요리하는 밥상머리 독재자를 가장 사랑하는 건 우리 집 첫째냥 꽃돌이다. 국물을 낸 멸치가 자신의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친절하게 건져 주었다. 신기하게도 냥이 넷 가운데 첫째만 멸치를 먹는다.

된장찌개에는 된장을 먼저 풀어 넣는다. 그다음 표고를 썰어 넣은 걸 넣고, 늘 먹던 맛이 좀 지겹다는 생각에 고추장을 조금 넣었다. 색도 좋고 맛도 좋다. 잘개 썰어두었던 호박을 넣고,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팽이버섯을 넣었다. 된장+고추장에 듬뿍 들어간 버섯향, 거기에 살짝 가미된 호박 향. 두부도 작게 썰어 넣었다. 푸짐하다.

미션 컴플리트! 이제 상차림이다. 그런데 식탁이 어지럽다. 밥 먹자고 치우자는데 손을 까딱하지 않는다. 숙주가 물러질 게 신경 쓰이고, 막 끓여낸 찌개의 신선함이 날아갈까 걱정된다. 버럭 짜증을 내었다. 지난번 이후로 밥그릇은 아들 녀석 담당이다. 밥을 담는 일도 꽤 중요하니.

그런데 뭔가 투덜거림이 섞여 있다. 과장된 몸짓, 괜히 낑낑거리며 부당하다 온몸으로 말한다. 흥! 주걱을 손에 쥐기 싫다면 수저도 손에 쥐지 말아라!! 밥그릇 셋을 식탁에 모아 두었다. 가져가요? 뭐?! 가져가라고? 상차리면 자리에 놓아주어야지 가져가라니!!

어째 어째 밥상에 앉았다. 된장찌개의 두부가 탐이 났나 보다. 젓가락으로 집어 보지만 툭 잘려버린다. ‘수저로 해라’ 수저로 두부를 건지려니 딸려 나오는 게 많다. 버섯에 호박까지. 어느새 커다란 찌개를 휘휘 젓고 있다. 그래 휘휘 젓는 숟가락을 볼 수 없었다.

밥 먹을 때엔 헤집지 말아야 한다. 왜 헤집으면 안 되는 데요? 난 밥을 이렇게 해집는데? 아마 그때 눈에 불꽃이 튀었을 거다. 대장님의 말씀으로 간단히 상황이 정리되었다. 먹지 말고 씻어라. 처음으로 밥그릇을 빼앗겼다.

독재자의 훈령은 이렇다. 밥 먹기 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군 소리 말고 누구나. 밥 먹으라는 소리는 정언명령이다. 반항은커녕 타협도 불가능하다. 밥 먹을 때엔 해집어 놓으면 안 된다. 옛 전설들이 마구 떠올랐다. 수저를 이빨로 긁지 말아라. 삽으로 퍼 먹듯 밥그릇 한쪽만 파서 먹지 말아라, 밥그릇에 수저를 꽂아두지 말아라. 그러나 전설은 전설일 뿐. 독재자의 훈령은 간단하다.

식탁은 비워졌고, 설거지도 끝났다. 요리가 끝나고 난 뒤 텅 빈 식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째서 밥상 준비는 늘 속도전인가. 헐레벌떡 속도를 내어 땡 하고 음식을 내어 놓을 때에, 결승점을 통과하려는데 어째 식구들은 끝도 없이 느긋한가. 밥상 차릴 때의 시간과 밤 먹을 때의 시간은 왜 다른가. 아마 그 단절의 지점이 그토록 커다란 분노의 원인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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