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확실히 즐거운 하루는 아니었다. 점심때 ‘생일인데 마음이 스산하고 우울하다’는 한 문장을 쓰고는 글을 덮었다. 하루를 온전히 지냈는데 별 차이는 없다.

생일인데 별 게 없다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내심 기대한 점도 있었다. 카톡이며 페북이며 다들 누구 생일이라고 잘도 알려주더라. 으레 메시지라도 날아오겠거니 했는데 고요하기만 하다. 알아보니 비공개로 돌려놓은 까닭이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일이라 유난 떠는 게 싫어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생일이면 들리던 노래 가사인데 요즘은 도통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약 30년 전,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생일도 일요일이었다. 내가 유난히 그 때를 기억하는 건, 열 명 남짓한 친구들이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용하다. 공동묘지를 넘어 한 1시간 정도를 걸어와야 했으니.

문 앞에 가득한 친구들의 신발 무더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농장 사료포대 더미를 오가며 놀았던 일이며… 그런데 그 중 태반의 이름은 이미 잊어 버렸다. 길에서 만나도 남남이리라. 선물로 공책과 연필을 받았다. 어찌나 많았는지 한동안 써도 줄지 않았다.

그 흥성이던 친구들보다 공책과 연필을 기억하는 건, 이리 나이 먹도록 대체 무얼 쓰고 공부하느냐는 고민 때문이다. 밤에 산책하다 동네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묻는다. ‘그러니까 기픈옹달님은 학자인거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여튼 얼렁뚱땅 공부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 결론내렸다.

요즘 날 괴롭히는 건 내 구질구질한 삶이다. 나이는 먹었는데 아직도 정체성 타령을 하는 모습이 싫다. 따져보면 실존적 고민 따위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저 못났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강좌를 열었다. 개강이 코 앞인데 신청자가 없어 폐강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옆 동네를 기웃거려보는데 내 딴엔 별 차이를 모르겠다. 근데 옆 동네는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긴 이리 사람이 없는걸까? 저쪽은 잘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 학문이 영글지 않아서 그렇다. 아니 공부도 못하고 강의도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게 별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렇다. 장자 따위에 누가 관심을 둔다고. 사람도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렇다. 내 이름에 무슨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다고. 글이라도 잘 쓰면 좋겠는데 그렇지도 않다. 학계에 발을 붙이는 학자가 되지 못하는 건 다 못나서 그렇다.

7월이면 갚아야 하는 돈이 있어 가슴이 무겁다. 부모는 늘 돈돈 하는 삶을 원망했는데 나도 별 차이가 없다. 누구의 말마따나 주머니에 돈 들어올 궁리만 하고 있으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초연하지 못한 것도 다 내가 못난 탓이다.

아들은 아빠 생일을 챙기겠다며 친구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여행을 포기했다. 점심을 차려 주며 물었다. 여행가고 싶지 않았느냐고. 괜찮냐는 질문에 대답이 걸작이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바람에 더 이야기 하지 못했다.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성숙한다느니 하는 말은 다 거짓이다. 주저함을 너그러움이라 착각한다. 단호하지 못함을 신중함이라 포장한다. 한 톨도 나아진 게 없으면서 나이에 숫자 하나 더했다고 유세를 떠는 모습이란.

한 걸음이라도 어디로 나아가려면 제 꼬라지를 알아야 하기에 이래저래 말을 남겨 보았다. 부끄러움을 우울함이라 부른 것을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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