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 Z씨 #0

큰 일을 벌이나 싶었는데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변명을 붙여본다. ’개인의 삶 때문에…’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한 변명이다. 그러나 가장 솔직한 대답이기도 하다. 동성애 이슈가 폭풍처럼 몰아쳤지만 이내 식어버린 냄비 마냥 고요하다.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두터운 냉소가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기도하다. 한번 씹으면 그만이지 뭐 큰 변화를 바란다고.

모교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정리한다 했지만 그만큼 시간을 내지 못했다. 다른 일 하기도 바쁜 와중에 그것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고 핑계를 붙이자. 이럴 때면 모교가 더욱 악랄하고 더 노골적이었으면 한다. 이미 잿가루가 되어버린 마음에 작은 정의감의 불씨라도 붙었다면 달랐을 텐데.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뜨거운 정의감이라도 있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입에서 뱉어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행동을 반성하고 사죄한다 한들 무엇하랴. 무어라도 꾸역꾸역 해야겠다는 생각에 짧은 글을 남긴다. 제목을 이렇게 적은 까닭은 <1982년생 김지영>을 바로 직전에 읽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상식을 압도하는 시대, 창작자는 설 자리를 잃는다. 도리어 현실을 글로 옮긴 것이 ‘소설-fiction’이 되어 버린다. 시사교양프로그램 <PD수첩>의 ‘프로그램 작가’가 가장 잘 팔리는 소설의 ‘작가’가 되었다. 현실과 창작이 교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의 삶은 개인으로 멈추지 않는다. 특히 무겁고도 끈끈한 사회적 압박이 개인을 짓누르는 우리 사회는 더더욱. 개인의 삶 마다 역사가 문신처럼 새겨져있다. 그렇게 개인사는 한 개인의 고유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시대의 보편성을 폭로한다.

모교 역시 IMF직전에 세워져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맞추어 변화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그 변화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진격의 대학교>라는 책을 내었는데, 그 선두를 꼽으면 한동대를 꼽을 수 있으리라. 보수화되는 대학의 선두에 모교가 있다. 교회의 그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에 교회를 따라 또 보수화 되었다.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가장 좋은 것은 ‘1995년생 한동씨’를 추적하는 것이나 그럴 역량은 부족하다. 20년 넘는 모교의 역사 가운데 살을 붙이고 지켜본 것이 고작 4~5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못쓰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뻔한 자기 고백이 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이를 통해 무엇인가 새롭게 읽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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