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5월 5일… 정확히 기억한다. 책방에서 친구들과 재미있는 작당질을 하던 중, 바로 근처에 N씨가 책방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론보다 먼저 올라온 한장의 사진은 매우 눈에 익었다. 책방에서 창문을 열고 보이는 건물 가운데 하나인 거 같았다. 실제로 그곳에 책방 하나가 열렸다.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모욕감이 들었다. 뭐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책방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이 그저 취미로 책을 판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상했다. 게다가 음주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한편으로 똑똑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으로 이미지 쇄신을 할 생각을 하다니.

생각보다 그의 새로운 책방은 가까웠다. 건물 하나 건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니. 몇달 간 시끄러운 공사 소리에 시달렸다. 대체 무얼 하는지 내내 드릴로 온통 뚫고 부수고 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작년 가을인가. 화려하게 연 책방을 방문하기 위해 수 없이 줄을 늘어선 풍경을 마주했다. 허름한 동네에 보기 힘든 낯선 풍경.

그래도 호기심에 몇번이나 가려 했으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바로 코 앞에 있으면서도 구경해보지 못했다는 아이러니. 동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실제 가본 사람이 별로 없다. 주말에만 여는 까닭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 집에 있을 주말에 열고, 동네 돌아다니는 평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올해 와서는 거의 문을 여는 날이 없다. 여전히 동네에는 그의 책방을 찾기 위해 힘겹게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길 잘찾는 택배 아저씨도, 길 찾는데 이골이났을 퀵 아저씨도 그쪽을 찾다 잘못해서 우리 책방 문을 두드리는 일도 있다.

거대한 책방 하나가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그의 책방이 들어서고 신흥시장 땅값이 몇배 올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생선가게가 사라지고, 세탁소와 구멍가게가 사라졌다. 편의점과 선물가게가 되었다. 작년 여름, 집 주인은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전세를 올려 달라 했다. 집이건 책방이건 둘 중 하나를 잃으면 이 동네에 살 이유를 되묻게 되는 상황.

손바닥만한 동네에 드릴 소리가 쉬지 않는다. 어딘가 늘 공사중이다. 가끔 길을 걷나 TV에서 얼굴을 본 익숙한 연예인을 만날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누가 건물을 샀네, 이번에 바뀐 곳은 누구 것이라는 둥 소문은 무성하다. 시끄러운 공사 소리와, 소문에 마음은 늘 불안하다. 대체 언제까지 이 동네에 ‘살’ 수 있을까.

올해 여름인가 보다. 서러운 마음에 하늘에 빗긴 동네 모습을 눈에 꾹꾹 눌러 남았다. 언제건 이별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고 꼭꼭 약속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가늠하기를 포기했다. 언제까지 이 동네에 살 수 있을지 손꼽아 보는 짓을 그만 두었다. 서울에 올라와 10년 산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게 막막하지만. 다시 어디에 터를 잡고 살 수 있을지 까마득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마음을 빼니 가슴이 가뿐하다. 내년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지만 천년 만년 살 동네가 아니라 생각하니 그냥 마음이 편하다. 작년에는 올해까지만 버텨보자 했고, 올해 와서는 올해까지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기한도 예상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할 수 있을때까지, 살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언제든 훌훌 털고 떠날 생각이다.

엉뚱하게도 책방을 새단장 했다.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책장도 새로 들여 놓았다. 미래를 기약하지 않으니 엉뚱한 욕망이 꿈틀거리더라. 한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쥐지 못했는데 요즘은 좀 낫다.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공간, 해방촌은 그렇게 정겨운 곳이다.

동네에 새로 연 식당을 찾았다. 구경삼아 들렸다가 10년째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서 10년 살았으면 오래 살았네요. 그렇죠. 10년간 떠난 이웃도 있고, 새로 만난 인연도 있다. 그간 결코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은 이들도 여럿 만났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하다.

메일 보내기

아무 내용이나 상관 없어요.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는 중입니다..
또는

로그인하세요.

계정 내용을 잊으셨나요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