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후기 – 10월 17일 음성고등학교, 무극중학교

지난 여름부터 10월에 강의가 몇 개 잡혔어요. 그 가운데 가장 반가운 곳은 음성이었습니다. 제 외가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내려가면서 생각해보니 거의 10년 만에 음성을 가보는 것이었네요.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명절이면 가끔 찾아가던 곳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갈 일이 없었습니다. 음성에 사시는 할머니는 명절 때면 청주 큰외삼촌 댁으로 나와 계시곤했지요.

음성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갑자기 옛 추억에 젖었습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게 참 신기했어요. 특히 매점! 몇살 때였는지… 터미널은 사람도 많고 무척이나 넓었는데, 지금 보니 참 작더군요. 씁쓸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터미널 바로 옆에 ‘반 약국’을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고추 이외엔 별로 내세울 것 없던 음성이 ‘반기문’ 때문에 유명세를 탔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씨라는 걸 저렇게 보여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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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오전 오후 강의입니다. 오전은 음성고등학교였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만드셨다는 플래카드가 저를 반기더군요. 너머학교 출판사를 통해 소개 받아 강의를 하는데, 사실 출판사에서 내놓은 다른 책도 있긴 합니다. ‘고전이 건내는 말’이라는 주제로 여러 원고를 모은 책인데, <나를 위해 공부하라>에서는 <논어>를 주제로한 책을 썼어요. 그 이외에도 <장자>, <사기>, <욥기>를 주제로 쓴 원고도 있답니다.

그런데 다른 주제로 강의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나를 위해 공부하라’는 말이 학교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반가운 말이었나봅니다. 강의 장소에 가 보니 플래카드가 태극기 밑에 붙어 있습니다. 전혀 반길 수 없는 배치인데다, 저의 미적 감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감까지!! 한 친구는 ‘맛난 만남’이라는 표현을 직접 썼는지도 묻더군요. 아니요, 아직 제 감각은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다.(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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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진행하면서 뒤늦게 제가 ‘작가’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강의가 끝난 뒤에 ‘어떻게하면 작가가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엄혹한 세상에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니 반가웠습니다.

예전에는 강의에 내용을 많이 담으려 했는데, 요즘에는 내용보다는 제 생각을 많이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함께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를 위해 공부하라’는 주제이지만, 공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공부라는 게 좋은 것이라는 느낌을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학교에서 의무로 하는 그런 공부 말고 다른 공부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면도 있어요.

점심은 급식을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니던 세대여서 급식이 늘 궁금했습니다. 생각보다는 맛있었어요. 다만 교장 선생님 옆이어서 쉬지 않고 밥만 먹었습니다. 학교 식당이 시끄럽기도 해서 서둘러 먹었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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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무극중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무극’중학교라는 이름이 흥미로웠는데, 역시나 학교 정문에서 확인해보니 한자로 ‘無極’이더군요. 갑자기 ‘無極而太極’이 생각나고 했는데… 나중에 강의를 마치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바로 이웃엔 ‘생극生極’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음양오행론적 지명이라니!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침반에 극이 가리키지 않는 곳이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네요. 범상치 않는 이름만은 분명합니다.

이번에도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모두 여학생들이었는데요, 역시나 그 활기에 제가 압도당해 버렸습니다. 강의는 준비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래도 끝까지 잘 마쳤습니다. 책을 읽은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요, 어떠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재미없다. 어렵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 아니다 등등. 제 기억엔 출판사에서도, 저도 중학생 또래의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을 펴낸 것인데 정작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영 불만이 많은 책인가 봅니다. 나름 노력한 것이지만 역량이 부족한 것을 어찌할까요.

사과의 말을 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부, 독서에 힘이 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저절로 재미난 공부, 독서가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바로 재미를 주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귀중한 앎을 전해주는 것인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를 하면서도 그렇지만 늘, 순수한 자발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는 데 고민이 있습니다. <논어>나 공자 따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만 모여있다면 더 좋았을까요? 아니면 재미있게 설명하고 전달할만큼 제 역량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강의 만족도와 무관하게 늘 어떤 간극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강의가 끝나고, … 책에 사인을 해달라며 줄을 섰습니다. ;;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렇게 줄을 서는지. 그래도 그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한명씩 이름을 적어 사인을 남겨 주었습니다. 본디 제 이름 석자를 쓰고 마는데, 한 친구가 이게 사인이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래서 이름 밑에 흘겨쓰는 사인을 또 해주었어요. 신용카드를 긁고 난 뒤에 하는 그 대충 휘갈기는 사인 말입니다. 그런데도 좋다고 환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누구는 돌아가다 다시 ‘정식 사인’을 받겠다며 돌아왔어요. 이름 석자만 받았다고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 하트를 그려 달라는 요청까지 있었네요. 이름 앞이나 위, 크기까지 요청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습니다. 하트를 그려본 일이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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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친 뒤에는 외할머니 댁에 들렸습니다. 음성 읍내의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데, 찾아뵙기가 쉽지 않았지요. 할머니께서는 두팔을 벌려 손주를 환영해주십니다. 식당에서 뭐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했는데 벌써 밥을 지어 올려놓고 게셨습니다. 청주에서 어머니도 잠깐 들리셨네요. 어머니와 할머니 셋이서 오랜만에 푸짐한 식탁을 나누었습니다. 음성 도서관에서 또 찾아주신다고 했는데 그때 기회가 되면 더 여유를 가지고 할머니를 찾아 뵈어야겠어요.

저녁을 먹고 일어서려니 벌써 하늘이 어둡습니다. 컴컴한 터미널에 다시 돌아오니 또 옛 생각이 납니다. 언젠지 모르겠는데, 터미널에서 연탄불에 굽던 쥐포가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그 자리가 그대로 있네요. 지금도 쥐포를 구워 판다면 꼭 사먹었을 텐데… 참! 쥐포나 오징어는 어째 집에서 스스로 구워먹는 건 그리 맛있지 않을까요? 필시 거기에도 무슨 요령이 있는 탓입니다. 터미널 의지를 보니 낡은 세월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테잎으로 대충 기워 놓은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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