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잠깐 책방에 다녀오는 길에 바로 책방 너머 수산물 가게를 철거하는 모습을 보았다.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그냥 집에 있었으면 텅빈 공간만 보았겠지.

아들은 푸딩을 만들겠다며 두부를 사야 한단다. 대체 두부로 어떻게 푸딩을 만드는지 모르겠으나, 두부와 요플레로 어찌저찌 만들면 된단다.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내 삶이 푸딩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끔하고, 예쁘고, 그럴싸 하나 사실 망가지기 쉬운. 그리고 일단 망가지면 복구하기 힘든. 그런 위태로운 삶.

요 근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동네의 발빠른 변화다. 노홍철이 책방을 열었고, (그것도 우리 책방 바로 옆에!!!!) 그 탓인지 주말에 오가는 사람이 늘었다. 좁은 골목에서 보기 힘든 명품 차의 등장도 늘었고, 더불어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그 시끄러움 중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보다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더 크다. 무엇인가 부수는 소리, 벽을 갉아대는 드릴의 소음. 5월부터 노홍철의 책방이 열린다고 매일 소음을 들으며 지냈다. 지척이라 벽을 부수고, 천정을 뚫고, 창문을 새로 내달고 하는 모습을 다 보았다.

며칠 사이에 부수는 소리가 많다. 벌써 지난 달, 동네 죽집(본죽이었으나..)이 사라졌고, 잘 가진 않았으나 나란히 제 몫을 가지고 있던 청과물 가게와 슈퍼가 문을 닫았다. 물어보니 건물 주인이 바뀌었단다. 작년에 페인트칠 한 벽에 새로 흰색으로 쓸모 없이 칠한다 했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수산물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동네 사람이었는데, 오가며 얼굴을 익히고 대충 어디 사는지도 아는 분이다. 생선을 즐겨 먹지 않았으나, 오가며 구경도 하고, 연구실 밥상에 고등어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제 생선은 어디서 사나.

사실 이 고민보다, 더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것은 스멀스멀, 이 동네에 살 자리를 잃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올해로 10년 째. 이제 내 동네라는 마음이 드는가 싶은데, 뭔가에 내쫓기는 기분이다. 누추한 삶과 어울리는 누추한 동네였는데 이제 그 자리를 상업 자본이 긁어 먹고 있다.

집 값이 오르고, 가게 세가 오르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문득 언제부터인가 서울에 살아야 하나 아니면 서울을 떠나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헬 조선의 뜨거운 지옥불 심장부에서 살아가는 게 정녕 옳은 짓인지. 그렇다고 연고도 없고, 기반도 없이 지방으로 훌쩍 뜨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라도 있어야 기틀을 잡을 텐데. 가진 것 없이 비빌 수 있는 게 그나마 사람들인데…

문득 철거하는 모습이라도 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하긴 만들고 꾸미고 꾸려가는 데는 한참 시간이 들지만 없애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사라지는 것, 내쫓기는 것이 자명한 미래라 하더라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지. 이런 의지 따위도 어쩌면 우울함에 먹혀버릴지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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