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다 이루었도다!!

1.

댓글 폭탄에 놀랐을 줄 압니다. 뒤늦었지만 과제를 하나씩 읽으면서 정리하다가 댓글을 달아보자 했는데… 음… 많더군요. 많아요. 여튼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습니다. 수업시간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댓글로 갈음했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이야기할 것은 많지만 다 다룰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이죠. 댓글에 대해서는 댓글로 다시 재질문해도 좋고, 혹은 수업시간 가운데 짬을 내어 쉬는 시간이나 앞뒤로 질문해도 좋습니다.

2.

사람마다 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저는 연구실이라는 대안적인, 독립적인 연구공간에 있으면서 글에 대한 문제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도권에서 소통되는 게 아닌, 다른 형식과 내용의 글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논문’이라는 형태의 글을 쓰지 않지요. 저도 옛날에 글의 고유성과 깊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은 개인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나 자신을 드러냄을 넘어 문제로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쉽지… 이런 글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글이야 말로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글쓰기란 결국은 하나의 완성인 동시에 또다른 디딤돌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과 의견, 느낌을 표현함으로 그저 어떤 기운으로 뭉뚱그려 있던 것을 구체화시켜 볼 수 있지요. 글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한편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말 걸기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늘 어떤 비판이나 질문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청소년이 공부하며 쓰는 글은 더욱 그렇지요. 이것이 여러분의 최종 의견, 확정된 이론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익숙하지도 않은 《논어》라는 글을 읽으며 쓰는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논어》를 잘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3.

다시 잔소리지만… 그러려면 몇 가지 익숙한 버릇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 글을 쓸 때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와 처지,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쓰지 마세요.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것은 예리함을 무디게 만드는 몹쓸 버릇입니다.

2) 반성하는 이야기를 쓰지 마세요.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 저는 청소년들과 공부하며 여러 글을 받아보지만 반성하는 글은 그 진정성을 늘 의심합니다. 그것은 ‘과제’에서 나오는 특정한 형태의 글은 아닐까요? 더불어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반성하는 주체가 변화하는 경우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묵직한 질문이 낫습니다.

3) 글의 형태상 눈이 가는 문장들을 나열하게 되는데, 가능하면 그 문장들 가운데 흐름을 찾고 맥락을 찾으려 해보세요. 그저 이것저것 모아놓은 것은 산만함을 더할 뿐입니다.

4) 전체를 다루려 하지 말고 부분을 깊이 다루세요. 어느 한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잡고 자신의 이야기과 고민, 생각을 펼펴보세요. 전체는 부분안에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한 문장을 제대로 보면 다른 문장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논어》에 들어가는 문을 찾아야지 밖에서 자꾸 이곳 저곳을 쑤셔보아선 안 되는 일입니다.

5) 상투적 결말은 좋지 않습니다. 결말을 위한 결말, ~야 겠다는 식의 결말은 글의 힘을 사그라뜨립니다. 성급한 글맺음으로 글에서 튀어나왔던 어떤 중요한 문제가 어의없이 사라지는 경우를 왕왕 보았습니다. 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을 끝까지 밀어나가도록 하세요.

4.

저는 청소년과 하는 수업에서 ‘우쭈쭈주의’를 경계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선 저의 선생들이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가 그런 것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리한 칼날 같은 비판과 지적에 상처입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글쓰기란 소중한 것이어서 연약한 자기 속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합니다. 가시밭길을 성큼 걸을 수 있는 의연함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길의 고통과 아픔은 오롯이 자신의 것입니다. 누구도 그 길을 치워줄 수 없고, 그길을 둘러가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댓글을 달면서 저와 함께 밖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이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저 인간 학교에서 강의한다더니 말을 골라서 하는 군.이라며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모든 말에는 장소에 걸맞는 언어가 있다는 식으로 그 지적질을 피해보렵니다. 한편으로는 여러분과 그렇게 가깝지 않기에 더 직접적으로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5.

지난 주 새로 시작하는 수업에서 친구 소개로 왔더며 새 얼굴이 보였습니다. 어떻게 소개받았느냐 했더니, ‘성적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삶에는 도움이 되는 공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옆에 있던 OB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더군요. 고전이라는 게, 인문학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고전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지만 제 꼴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성공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역주행하기 쉽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줄줄이 이야기했지만, 이런 글쓰기가 논술이라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압니다. 대학에서 에세이나 서평을 쓰는데, 논문을 쓰는데 뭔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말과 생각을 찾고, 한걸음 나아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글쓰기는 더욱 치열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글이, 쓴 글이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만한, 그나마 무엇인가 자라고 태어날 토양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뭐, 괴물같은 게 나와도 좋을 일입니다. 태반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며, 낳은 것이라고 뻔한 모양이라면 뭔 재미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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