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대학

1.

아직도 기억난다. 생전 처음 포항에 도착해서 다음날 면접을 앞두고 늦은 저녁 학교를 찾아갔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슥한 산길을 지나 훗날 활주로라 부르는 언덕을 기어 올라갔는데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량한 가로등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이란 다 그렇게 황량한 곳인 줄 알았다. 다음날 면접에서 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좋아한고 말했다. 높이 나는 갈매기. 먹을 것 대신 비행을 꿈꾸던 플래처가 좋았다. 바다 바람이 실려 오는 그곳은 날개를 펼쳐보기 적당한 곳이라 생각했다. 부모는 100% 취업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하느님의 대학’이라는 문구가 좋았다. 어느 하나 만족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2.
졸업을 앞두고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모 교수가 모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대자보가 붙었다. 학내는 다양한 소리로 들끓었다. 결국 유야무야 사건은 대충 덮어졌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몇 명이 모여 대자보를 붙였다. ‘개교 10주년을 맞았다. 과연 지금 우리의 교육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담은 글이었다. 밤늦게 책상을 끌어와 본관 높은 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조금이라도 늦게 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10년 전 맨손으로 시작한 한동이 이제는 열매를 맺고 성숙할 때다.’라는 구호를 담았다. 뭐라도 바뀔 줄 알았던 까닭이다. 그래, 바뀌긴 바뀌더라.

3.
졸업하고 보니, 한동대학교 졸업생이라는 딱지는 별로 쓸데가 없었다. 취업 대신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나에게는 별로 좋은 발판이 아니었다. ‘철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하겠다고 배짱 좋게 덤볐지만 그쪽에서는 듣보잡인 나를 반기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대학원에 들어갔다. 뒤늦게 내 전공이 ‘자유전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년간 제대로 배운 게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나마 몇 선생들과 치열하게 읽었던 두꺼운 텍스트가 없었다면 고시원 쪽방에서 자신을 자책하며 맥주로 영혼을 달랬으리라.

4.
오랜만에 학교 소식을 들었다. 유영익 교수가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친다는 소식이었다. 국부 이승만을 추종하는 그의 강의에 대해 몇 학생이 대자보를 붙였다. 그를 학교에 불러 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던 김미영 교수는 학생을 시켜 대자보를 떼어 버렸다. 학교 직원이 대자보를 떼는 경우는 있었어도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을 시켜 대자보를 떼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김미영 교수라는 사람은 우연히 촛불 집회에서 만났던 ‘에스더 구국기도 모임’의 무리 가운데 하나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라를 흔드는 사탄의 무리라며 물러가라던.

5.
흥해읍 시골 학교가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노무현 분향소 설치를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총학생회에서 공개적으로 분향소 설치에 반대했는데 김미영 교수가 성명서 작성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덕분에 한동대학교는 조갑제닷컴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얻었다. 학교 밖까지 논란이 일자 김미영 교수는 교수직을 사퇴했다. 그를 학교에 교수로 데려다 놓은 것은 김영길 총장이었다던데… 이 일 역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했다. 참! 이때 김미영 교수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친구의 이름이 ‘총명’이라나 뭐라나.

6.
이번엔 일간 신문의 사설에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징계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업 시간에 4대강 등을 비판했는데 이를 녹취하여 부모에게 전달했고, 부모는 총장에게 따졌다. 일개 교수가 각하를 비판하다니! 총장은 징계의 칼날을 들었다. 여론이 학교를 주목하자 다른 이유를 들었다. 총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렸다. 물론 은혜 많은 총장은 징계의 칼날을 누그러뜨려 감봉 3개월로 만족했다. 개인적으로 그 교수를 알지 못하나, 그 선한 눈과 말투, 조심스런 발걸음은 똑똑히 기억난다. 얼마 전 정교수 승진에 이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올랐단다. 당연히 승진은 불가!

7.
차기 총장 문제를 두고 학내의 여론이 들끓었다. 그럴 것이 1948년 이후 10년 넘게 대통령은 이승만이라 여겼던 그 시절 사람들처럼 총장하면 김영길 이외의 인물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20년 해먹었으니 종신도 좋다는 쪽과, 마니 묵었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쪽의 의견이 엇갈렸다. 스스로 모세를 자임하던 김영길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요단강도 건너가지 못했으니 더 해먹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가 크자 그 욕망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창조과학으로, 한편으로는 원전 마피아로 이름을 떨친 장순홍이 차기 총장이 되었다.

8.
<진격의 대학교>를 읽었다. 대학이 기업에 잡아 먹히고, 어떻게 노예로 전락했는지를 고발하는 책이었다. 지난 15년 간의 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돌아보면 취업 100%부터 영어 교육, 친기업적 인성교육을 주장했던 김영길은 당대의 기린아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10년 전 한동대학교는 서울의 내노라하는 대학보다 몇 발짝 앞선 ‘진격의 대학교’였다. 덕분에 아직도 구글에게 한동대에 대해 물어보면 ‘서울의 OO 대학보다 낫나요?’라는 질문이 뜬다. 한동대 태그를 달아놓은 내 블로그엔 여전히 ‘한동대 수준’으로 검색해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9.
그러고 보니 저자와 나는 동문이다. 하느님의 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예수회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기업의 자본투자를 두고 학내의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 그러나 대세를 거역할 수는 없는 법. 많은 자본이 들어왔다. 뒤늦게 책으로 접한 소식에 따르면 자본의 은택으로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을 세웠단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거적과 맨발로 유명한 인물 아닌가. 포스코가 그토록 가난한 기업인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모교 한동대학은 이명박 기념 도서관을 지으려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이다. 암!

10.
오랜만에 학교를 생각했다. 오찬호라는 좋은 학자 덕분이다. 훌륭한 사람의 책이니 돈 아끼지 말고 사서 보자. 졸업생에게 모교를 추억하게 만드는 책이니 오죽할까? 재학생들은 무조건 사봐야 할 책이다. 학교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니 얼마나 좋은가. 진격의 대학교, 그 가운데 선두에 선 그 영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친절히도 아래에 모교 이야기를 붙일 테지만 꼭 읽어보자. 참, 그러고 보니 모교는 여전히 누구의 대학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더라. 그런데 문득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뭐… ‘그.분의 대학’이라 하자. 대충 맞겠지. 그렇지 않나?

.. 지난 2011년, 한동대 영문과 A 교수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가 크나큰 실수를 했다. 교육자로서 그의 삶을 모조리 파괴할 만한 치명적 실수였다. 교수라는 양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도 아니건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수업시간에 반정부 발언을 한 것이다. 4대강 사업비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제기, 급기야 대통령님의 존함을 그냥 이명박이라 불렀다. 이 순진한 교수는 지금도 우릭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이런 만행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 강의를 녹음했고 부모님께 알렸다. 부모님은 참담함을 금치 못하며 학부모회 임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이들은 학교측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 교원 인사위원회는 엄정하고 단호한 조사원칙을 확립한 후 교수 품위를 손상하고 직무 윤리에 어긋난 … 죄목은 학습권 침해로 결정됐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요구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징계’라는 철퇴로 이어진 것은 문제다. 교수가 ‘사과 요구’를 거부하자, 학교측은 “왜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걸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징계할 만한 건더기를 찾는다. 여기서 총장에 대한 비판이 문제가 된다. 교무처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을 외부 사람들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삼성 직원이 그를 욕하면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처럼, 교수가 총장을 조랑하는데 유야무야하면 학교 기강이 안서지 않나”라며 징계의 타당성에 대해 설명한다. (논리도, 비유도 기업 그 자체다! ‘총장’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이라고 불러라!) A교수는 교수 품위를 손상시키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는다.

: 219-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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