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선농인문학서당 《논어》 3강 – 수레 바퀴를 따라

1. 읽기의 힘!

잔소리. 말했을 테지만, 과제를 받는 이유는 1) 더 깊은 읽기를 위해 – 과제를 쓰기 위해 어쨌든 한 문장이라도 붙잡고 씨름할테니까. 2) 활발한 수업을 위해 – 과제를 읽으면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영감을 받을 수 있으므로. 모든 기대에는 실망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과제를 받아보면서 한숨이 나온 게 하나 둘이 아니다. 그것은 대체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될만큼 맥락 없는 글이 있는가 하면, 의무방어를 한 나머지 아무런 느낌도 전해주지 못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글쓰기가 안 되는 것 – 예를 들면 간단한 맞춤법이 틀린다던가, 균형감 없이 끄적거린 글 따위 눈 감아 주더라도, <논어>를 읽으면서 여전히 <맹자> 타령하는 소리를 흘려 듣더라도, 이렇게 갑갑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지나치게 일반화 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공교육의 폐해인가 하는 질문이 든다. 제대로 된 쓰기를 위해서는 텍스트와 자신에 대해 진솔하고도 성실한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교과서 읽듯, 도덕책 읽듯 <논어>를 읽는데 그렇게 읽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대체 왜 그리도 <논어>의 말들을 실천하지 못해서 안달인 것인지? 대체 이 책에 어디 이리하라, 저리하라는 말이 있던가? 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소화하기도 이전에 왜 자꾸 규범적으로 받아들이는지? 공자의 말이 그렇게 대단한가?

한편 누군가는 아무런 무게감 없이 읽는다. <논어>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기는 커녕 질문하기를 멈추고, 내놓는 것이라고는 싸구려 이야기들 뿐. <논어>를 읽지 않아도, <논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한참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근본적인 질문이 솟아난다. 대체 <논어>라는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 모 게시판에서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바낭 – 바이트 낭비, 전파 낭비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둘, 지나치게 무겁게 읽는 것이나 지나치게 무게감 없이 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내놓는 사유가 지독히도 가벼워서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사실. 수 천년을 넘게 살아온 문장을 읽어도 소용 없다. 이 게으름의 두터운 벽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다. 그래서 그 위대한 스승 공자조차도 두 손을 든 사람들이 있지 않나?

子曰 不憤不啟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憤/悱 – 애태우는 마음, 답답한 마음이 없다면 啟/發 – 일깨워 주는 것이, 가르쳐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선생은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주는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더 큰 몫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나머지 셋은 배우는 사람에게 맡겨져 있는 부분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이를 도와 어미 닭이 밖에서도 쪼아준다는 말이다. ‘동시同時’! 이 둘이 함께 어우려져 이뤄져야 한다.

혹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도와준답시고 알을 깨뜨려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알이야 깨고 나오겠지만, 그 병아리는 허약하여 오래 못 산다. 알을 깨고 나오면서, 세상으로 비집고 나오면서 힘을 들여야만 그 존재가 건강한 신체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힘든 일에는 힘을 들여야 한다. 힘을 들여야 하는 일에 힘을 들이지 않으면 힘을 기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그러나 허약한 신체는 단순히 근육양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나지 못하는 신체도 있다. 읽지 못하는 신체!

‘공교육이 문제다’라는 뻔한 이야기로 끝맺지 않으련다. 읽기 능력의 부재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1) 너무 많은 학습노동으로 지쳤기 때문이거나 2) 지나치게 부드러운 지식만 받아먹는 나머지 스스로 씹고 소화시키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피로감 때문이라면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사유는 여유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해치우는 인간인지 사유하는 인간인지 살펴보라. 하나 덧붙이면 긴 시간을 떼어놓도록 하자.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조각난 시간보다는 덩어리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독서와 글쓰기는 짧은 시간 조각들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하고도 가벼운 지식만 습득했던 나쁜 버릇 때문이라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지친 신체는 쉬면 회복되지만 나쁜 버릇은 더 강렬한 힘이 없이는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재미난 설명들, 조각난 지식들을 습득하던 버릇을 멈추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생각과 말을 얻기 위해서 아닌가? 남의 이야기에 먹혀 버리지 않기 위해. 세상의 바람에 먼지처럼 흩날리지 않기 위해! 이를 위해서는 단단한 글을 읽고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불친절한 세상에 살수록 더욱 건강한 신체가 필요하다.

명심하라. 읽기는 힘들다.

 

2. 나를 누구라 하느냐?

<논어>에서 일차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의예지신과 같은 유가의 윤리적 규범을 배우고 고개를 끄덕이기? 천만에 말씀! <논어>에는 ‘인의예지신’ 따위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윤리적이지도 않다. 이렇게 저렇게 살라는 꼰대질로 읽기 전에 공자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읽어야 한다. 어쨌건 <논어>는 공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아닌가? 이 책이 여러 부분을 통해 소개하는 그 인물을 만나지 못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주유천하周遊天下, 공자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여기서 ‘주유周遊’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말이다. 공자는 천하를 누볐던 인물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보면 그가 돌아다닌 범위는 ‘천하’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고작 몇 나라를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니. 그의 방랑길이 천하라는 말에 비할 바 못되더라도 그 길은 매우 고된 것이었다. 교통 수단도 딱히 없고, 게다가 길마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대 아닌가? 그 시대에 먼 길을 수레를 타고 돌아다녔다. 천하에 수레 바퀴 자국을 남겼다는 뜻에서 철환천하轍環天下라고 하기도 한다. 공자는 아마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공자는 73세로 세상을 떠나는데, 방랑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세상을 떠나기 약 5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는 10년 넘게 돌아다녔는데, 이를 역추적해보면 50대에 방랑을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지금이야 50이면 한창 나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는 수고롭게 먼 길을 돌아다닌 것이다. 대체 그는 왜 그렇게 많은 나이에 고된 방랑을 떠나야 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공자가 고향 노나라의 정치에 실망하여 방랑길을 떠났다고 본다. 이와는 반대로 공자가 스스로 고향을 떠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문제로 쫓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따르는 편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 방랑길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는 제자 자로의 도움으로 위衛 나라에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공자는 위나라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자南子와의 만남은 이런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제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자로만 성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로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로와 공자가 맺었던 특별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로는 누구보다 공자에 가까웠던 제자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대체 어째서 공자는 맹세까지 해가며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는 것일까? 그것은 남자와의 만남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테다. 자리를 얻기 위해 당시 위나라의 군주였던 위령공의 아내 남자를 만난다는 것을 자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기록을 보면 이 둘의 만남에는 좋지 않은 소문이 뒤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보면 문득 <논어>의 편집자는 대체 무슨 까닭에 이 부분을 남겨두었는지 의문이 든다. 원한다면 삭제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논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자의 모습이 단순히 ‘성인’의 모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테다.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為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이를 생각하면 섭공과의 이야기도 그냥 흘러들을 수 없다. 이번에는 섭공과 공자가 직접 만난 것이 아니다. 섭공이 자로를 만나 공자에 대해 묻는다. 여기서 잠깐! ‘섭공葉公’이라는 호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 ‘공公’이란 보통 나라의 군주에 붙이는 호칭이었다. 보통 나라 이름과 시호를 앞에 붙이기 마련이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위령공이란, 위나라의 령공이라는 뜻이다. 다음 군주는 위출공인데 여기서는 ‘출’이 시호가 되었다. 그렇다면 섭공은 대체 어느 나라의 누구란 말인가? 주석가들에 따르면 그는 초나라의 대부大夫, 귀족이었다고 한다. 당시 초나라는 대부도 공을 자처하는 나라였다. 쉽게 말해 군주가 아니나 군주가 쓰는 호칭을 썼다는 말씀! 어쨌거나 당대의 정치적인 실력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자로를 불러 선생에 대해 묻는다. 참고로 공자가 매우 가까웠던 제자였던 탓에 자로는 공자와 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자주 맡고는 했다. 그런데 자로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떤 주석가는 섭공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대꾸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뒤를 보면 섭공은 공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옳지 않다. 도리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앞서 섭공은 초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초나라는 공자의 고향 노나라에 비해 꽤 멀리 떨어진 나라였다. 공자가 초나라에까지 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대화는 고향을 떠난 상황에서 이뤄진 게 분명하다.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의 제자에게 유력한 정치가가 묻는다. 대체 공자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여기에는 궁금증과 더불어 비아냥이 숨어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이리저리 방랑하는 입장에서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리저리 방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엔 부끄러워서…

공자와 자로의 대화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꾸도 못하고 돌아온 제자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하면 되었을 것이라며 일러준다. 배움의 즐거움에 때론 먹는 것도 까먹고, 근심도 잊을 뿐만 아니라 늙어가는 줄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여기서 공자의 자랑을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서 공자의 소박함이 보인다. 그렇게 대단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이를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로움. 공자라고 세상일에 완벽히 초연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는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건강함을 잃지는 않았다.

 

3. 즐거운 삶

그렇기 때문에 즐거움이란 공자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즐겁게 사는 삶과 즐거운 삶은 좀 다르다.

子曰 飯疏食飲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子曰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사람은 가난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지위가 높고 가진 재산이 많으면 부끄러운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내 삶이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 할 까닭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노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학문이 찬밥인 시대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바란다면 그것이야 말로 허황된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만 여기서 가난이란 빈궁貧窮/궁핍窮乏과는 다르다. 가난이란 간난艱難에서 온 말로 고생스럽다는 말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 사는 게 힘들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힘들게 산다고 해서 빈궁/궁핍한 것은 아니다. 빈궁이나 궁핍은 모두 어떠한 결여 상태를 말한다. 무엇이 모자르다는 것.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나 여유있게 살며, 어떤 사람은 가진 게 많으나 늘 모자라게 산다. 이것은 소유의 양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태도의 문제이며, 나아가 삶의 건강에 달린 문제이다.

공자와 안연은 모두 가난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먹는 것도 시원치 않다.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가난한 삶이 흔들지 못하는 건강함이 있다. 공자는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은 뜬 구름과 같다고 말한다. 안연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별 걱정없이 살아간다고 말한다. 게다가 즐거움을 잃지 않고.

훗날 어떤 주석가는 이때 안연이 즐거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한다. 그는 안연이 가난을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논어>는, 공자는 가난이 가치있는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물론 가난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대표적인데 그는 가난을 추구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으나 가난을 사랑하는 삶이 화폐를 사랑하는 삶보다 훨씬 가치있는 삶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난이란 사랑할만한 게 못된다. 아마 공자도 그렇게 말했으리라. 다만 가난은 어떤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삶의 현실 가운데 하나이다. 이때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가 관건이다. 안연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따라서 즐거움이란 무엇을 즐거워한다는 말이 아니다. 즐거워할만한 것을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지금 공자가 말하는 즐거움에 못미치는 것이라 하겠다. 즐겁지 않은 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움이란 그 대상에 담겨있는 게 아니다. 재미있고 유쾌한 것을 즐긴다는 게 무슨 힘이 있으랴. 도리어 즐거움이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대상이 바뀌더라도 세상이 바뀌더라도 이 즐거움은 빼앗기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즐기는 사람은 그 무엇인가를 빼앗음을 통해 그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즐거움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그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다.

장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이야기한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엔 세 개, 저녁엔 네 개’라 하니 성을 낸다. 반대로 ‘아침엔 네 개, 저녁엔 세 개’라 하니 기뻐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과 노여움이 아주 쉽게 일어난다. 그를 즐겁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쉽다.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겨처럼 일희일비하는 사람. 그의 삶 역시 아지랑이와 먼지처럼 어디론가 흩날려 버리리라.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면, 지금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공자가 말한 즐거움과 같은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재미있어서 하는 것만큼 소박하고 훌륭한 일은 없지만 자칫하면 그 재미란 하루 아침에 날아가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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