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통이어라 (욥기 6-7)

오, 나 청을 올릴 수 있어 하느님께서 나의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면, 그리하여 나를 산산이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죽여주신다면, 차라리 그것으로 나는 위로를 받고 견딜 수 없이 괴롭지만, 오히려 기뻐 뛰리라. (욥기 6:8-10)

욥은 죽음을 향한 충동을 지니고 있다. 차라리 죽는다면! 친구 엘리바즈의 말은 그에게 먹히지 않는다. 네 잘못이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꾸할 뿐이다. ‘좀 가르쳐주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다면 깨우쳐주게 . 나 입을 다물겠네.'(6:24) 욥은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엘리바즈의 말처럼 이 고통에 까닭이 있다면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물론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끝까지 주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번역이 크게 갈리는 데, 예를 들어 개역한글의 경우엔 이렇다.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그러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아무래도 10절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동번역의 경우 ‘차라리 그것으로 나는 위로를 받고 견딜 수 없이 괴롭지만, 오히려 기뻐 뛰리라.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나 아직 어긴 일이 없네.’라고 풀어 이 절을 둘로 나누어 앞 부분은 위의 내용이 이어지는 것으로, 뒷 부분은 별도의 부분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그러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옮겨서 욥이 자신의 결백을 증거하는 식으로 풀었다.

과연 어떻게 옮기는 것이 옳은지는 모른다. 다만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죽음을 향한 충동에 집중하지만, 개역한글로 읽으면 하느님의 판결에 순응하겠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개역한글의 번역은 심심한 구석이 있다.

번역의 문제에서 해석이 갈리는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다. 과연 욥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욥기》의 저자는 삶을 어떻게 말하는가? 내가 욥의 말을 죽음을 향한 충동으로 읽는 것은 앞서 자신의 탄생한 날을 저주한 것, 그리고 7장에 인생을 고통스런 노동으로 표현한 까닭이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의 생애는 품꾼의 나날 같지 않은가? 해 지기를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삯을 기다리는 품꾼과도 같지 않은가? 달마다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 고통스런 밤만이 꼬리를 문다네. 누우면 ‘언제나 이 밤이 새려나.’ 하고 기다리지만 새벽은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아 밤이 새도록 뒤척거리기만 하는데, 나의 몸은 구더기와 때로 뒤덮이고 나의 살갗은 굳어졌다가 터지곤 하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덧없이 사라져가고 만다네.’ (7:1~6)

장자는 삶을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이라 하였다.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지만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욥은 인생이란 품꾼의 노동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노동이란 적절한 보상을 받는 그런 노동이 아니다. 해 지기를 기다리며 삯 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런 고된 노동이다. 과연 그는 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못할 것이다. 고대 사회의 품꾼들은 매일 같이 고된 노동 끝에 밤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밤은 고통스럽다. 공동번역에서는 밤이 새기를 기다리며 뒤척거린다고 했지만 다른 번역들을 보면 새벽을 두려워하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그런 고된 삶을 그리는 것 같다. 아침이 되면 다시 일을 해야 하니까. 새번역을 보면 이렇다.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고된 삶은 먼지와 때 같은 삶이며 마치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삶이기도 하다. 《욥기》에서는 ‘바람’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욥은 자신의 말을 바람과도 같다고 했고(6:26), 인간의 목숨이란 입김과도 같다고(7:7) 말했다. 한편 그의 친구는 그의 불평이야 말로 바람과도 같은 것(8:2)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이 바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저 의문으로 남겨둔다. 다만 욥이 나중에 폭풍 속에서, 커다란 바람 속에서 야훼를 만난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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