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 그들의 교회

– 아래 ‘아직 가나안은 아니다(http://zziraci.com/2554)’라는 글을 모교 인트라넷에 올렸더니, 모교 신문 편집국장이라는 친구에게 메일이 왔다. 코너에 글을 써 줄 수 없느냐고. 이런저런 일이 많아 써야 하나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써서 보냈다. 1800여자의 압박이 크더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렇게 줄이기는 힘들었다. 본래 더 긴 글을 정리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그럴 정신도 없고 해서 송고한 원고를 그대로 옮긴다.
– 한동신문사에 올라온 기사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h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6
– 참! 고료를 주느니 뭐니 한 거 같은데… 소식이 없… ㅡㅡ;;

<창세기>는 두 창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지를 지은 하느님의 창조와 악행을 만들어낸 인간의 창조가 그것이다. 하느님의 창조로 이 우주가 만들어졌고, 인간의 창조로 망가졌다. 누군가는 인간의 행위에 어찌 창조라는 성스러운 말을 붙일 수 있느냐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창조경제’라는 해괴한 조어가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이해는 아니다. 게다가 창조경제의 창조란 정확히 후자, 이 세계를 망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 아닌가.

재화와 자본을 창출하는 일을 창조라 부르며 교묘하게 탐욕을 감춘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악행을 포장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이 못된 버릇은 최초의 인간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미룬다. 공동번역 성서는 ‘핑계 대었다’고 증언한다. 무고한 척 하기. 과연 최초의 인간이 지었던 죄는 무엇이었을까?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악행을 부정한 것인가? 우리는 종종 최초의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어떨지 상상한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인간이 수풀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악행에 핑계 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상상해보아야 한다.

카인은 이 핑계 대는 인간의 화신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를 부인한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는 저 뻔뻔함을 보라. 땅에서 아우의 피가 울부짖는다는 말은 그의 거짓을 폭로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카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이는 빈번하게 살인이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인간의 속성, 카인적 인간이라 부를만한 저 핑계 대는 인간, 잡아떼는 인간,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불행은 이 카인적 인간이 만연하다는 데 있다. 불미스런 일로 교회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때 으레 듣는 말이 있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잖아.’ 이들은 당면한 문제와 무관하다 주장 한다. 당연히 어떻게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아벨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묻지 말라던 카인처럼.

최근 전병욱 목사의 홍대새교회는 명예 훼손을 이유로 여러 사람을 고소했다.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사실을 언급하고 유포했다는 죄목이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모르쇠로 대응한 노회와 쉬쉬하며 언급을 꺼린 기독교내부에 책임이 있다. 그 결과 하느님의 법을 운운하는 자들이 세상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논문 표절로 언론의 도마에 올랐던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사건 역시 이와 비슷하다. 교인들은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며 그의 부정을 감싸지만 이것이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사랑의교회 건축을 둘러싸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탐욕에도 무관심하다. 신흥 이단 신천지 문제는 어떤가? 모든 유사 기독교 이단이 그렇듯 그들의 교리는 통상적인 교회의 신앙 일부를 극단적으로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만 말한다.

양희송은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에서 그리스도인이면서 교회를 떠난 사람을 약 100만 정도로 추산한다. 교회를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주요한 현상이 되었다. 일부 교회, 몰지각한 목사, 괴이한 신앙이 이런 증상을 낳은 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카인처럼 자신은 무관하다고 발뺌한다. <창세기>는 핑계를 대던 인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땅에서 쫓겨났다. 따라서 교회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어렵지는 않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교회가 쫓겨나는 날도 머지않았다. 아니, 이날은 벌써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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