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신을 충동하는 자 (욥기 1)

‘그는 여전하지 않느냐? 네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 다 헛일이었다.’
– 공동번역, 욥 2:3

《욥기》는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우스라는 땅이며, 유목생활을 하는 부자 욥, 게다가 그는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올리기도 한다. 대체 이것이 언제적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까지. 그는 흠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탄과 야훼가 내기를 통해 그의 것을 하나씩 빼앗아 본다. 처음에는 그가 가진 것. 여기에는 그가 가진 많은 재산 뿐만 아니라 10명의 자녀들까지 포함된다. 자녀들이 재산으로 계산되는 것은 그냥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빈털털이가 된 그에게 이제 신체의 저주가 내린다는 사실이다. 심한 부스럼. 유대 사회에서 피부병은 신의 저주로 여겨졌다.

이번에 읽으면서 흥미로운 부분은 ‘네가 나를 충동하여’라는 부분이다. 사탄이 야훼를 충동하였다. 《욥기》는 통상적인 관점을 깨트리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그렇다. 사탄은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존재이지만 거꾸로 신을 흔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NIV에서는 incited라고 옮겼다. 현대인 번역에서는 ‘자극’이라 옮겼다. 다르게 보면 사탄은 신이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를 흔드는 존재이다. 《욥기》가 하나의 시험을 그린다면, 여기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욥인가 야훼인가? 이들의 신뢰인가? 혹은 어떤 다른 가치인가?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1:9) ‘까닭없이’, NIV에서는 이를 ‘for nothing’으로 옮겼다. 야훼와 인간이 맺은 관계의 토대를 묻는 질문. 여기서 신명기적 계약관계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약속. 약속이란 상호적인 것이며 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 자체를 묻는다면 어떨까? 약속, 계약이 무너진 그 이후에 이 둘 — 인간과 신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따라서 사탄은 야훼를 ‘충동하여’ 약속을 깨트리도록 만든다. 야훼의 손으로 직접 욥에게 화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묵인하는 것, 그 자체로 신뢰는 무너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욥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가 당면한 현실에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욥은 멍청하다. 어리석다. 상대는 변했는데 여전히 그 행동을 버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거기에서 인간과 신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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